고린도후서5:7절을 보겠습니다. (신 290쪽)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일을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하는 일을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깊이 상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데 그 일이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의 영광인데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인생들은 그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의 의식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음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날에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또 헌금을 하고 하는 행위를 하면서 그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심정적으로 내가 그 종교를 인정을 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사도 바울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서로 비슷한 두 사실을 비교하여 나타내는 표현법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으면 비교법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혜가 있다고 하는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비교법이라는 것 자체를 무시를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과 믿음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지난 두 시간에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은 어떻습니까? 이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심각한 문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을 오해를 해서 율법의 행위를 믿음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는 것 역시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단어 역시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합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깨달을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들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유월절을 먹이시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면서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는 일입니다
가장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생명을 버리시고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셔서 도마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는 일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고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서 그 종교적인 의식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은 우리가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철학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마음은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믿고 싶어하는 그대로 믿는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하는 행위는 다 보이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믿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강하게 작용을 해서 아니 그것 역시 탐욕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 탐욕이 인생의 지식을 강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4장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시 5장에 와서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생으로는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그분은 나타내신 그대로 창조된 세상에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생명을 얻는 일을 신명기에서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이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 보고 믿습니까? 우리가 종교적 행위를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서에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행한다고 하니까 무슨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시간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고 믿음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시간에 믿음으로 행하는 일을 다 말씀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아는 것은 사실 아는 것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바로 창세전에 있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창세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화를 볼 수 없고 그래서 믿을 수 없는데도 성령이 오시지도 않는 그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그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그 문자를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저 믿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에서 믿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증거를 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그 안다고 하는 것이 북 이스라엘이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가 될 수 있고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을 안다고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주님께서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 언어를 아는 것은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아는 것을 이 세상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서도 소자, 소년이라고 그리고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는 사람입니다
구원은 내 스스로의 문제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지만 부족할지라도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도 듣지를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하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성령을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의 아들들이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자 누군지를 모르니까 자기들의 신체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조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했습니다. 창조에 속한 것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에 속한 것을 보고 그것이 마치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인생의 언어로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텍스트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텍스트를 아는 것에 불과하고 그것은 어린 아이라 해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는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성경을 보고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들어야 합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들은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10장을 말씀을 하기까지는 율법을 말씀을 했고 그리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증거를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9장에서는 씨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예언의 은사가 있다면 스스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언의 은사를 그리고 가르치는 자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묘합니다. 인생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일을 그리고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후서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6쪽)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의 철학에서는 그저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내가 아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성경에서 이 믿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로마서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저 인생의 언어만 보고 있습니다. 그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라는 단어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믿는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싶어서 믿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해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참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믿음을 비유로서 말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은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으면 도둑을 맞을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은행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입니다
그 은행이 돈을 안 주면 맡길 수 있습니까? 어느 나라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니까 은행에 넣어 두면 도리어 손해를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손해를 보면 어느 누구도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은행에 돈을 맡기면 내가 찾고 싶으면 돈을 주고 또 적지만 이자까지 주기 때문에 맡기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헬라어를 보더라도 신뢰, 확신, 확실성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과 같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신뢰를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일이 이 일에 신뢰를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반드시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뢰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율법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보니까 우리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뢰를 주지 못하면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뢰를 주지도 않는데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이 믿음과 믿고 싶은 마음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있는 믿고 싶은 마음을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신뢰를 주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생명의 도로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행하심으로 해서 생명의 복을 받는다는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에서 그 일을 믿을 수 있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증거를 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생명이 있음을 믿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는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얻는 일도 모른다면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을 하면서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입니다.
내가 믿는 마음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다서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증거를 받은 성도만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믿는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유대인들이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3년 반 동안 천국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아니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그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믿음은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실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래서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믿음의 선진들과 이 시대 우리 성도는 같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대해서 아주 조금을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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