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4:17-24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정말 이방의 종교인들은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자기들이 믿는 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이 자기 자식으로 형상으로 만든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인하여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비유와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문자를 안다고 해서 이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고 그분이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이방인들은 종교를 만들고 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니케아 공회에서 삼위일체를 만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느 누구도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을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자기들이 증거를 받는다고 하고 있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반드시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있고 자기들의 철학으로 만든 신인 삼위일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고 있고 그래서 이방의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삼위일체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렇게 성경의 문자를 고집하는 종교인들이 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경의 문자를 무시를 하는지를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입니다. 삼위일체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위와 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문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삼위일체를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저만 다른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저만 삼위일체가 없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저만 이상한 제가 번역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5가지 정도의 성경을 보고 있고 한글개역성경, 새번역성경, 공동번역성경, 킹제임스성경,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 등을 보고 있습니다.
대표할 수 있는 성경입니다
저 역시 이 성경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거의 이 안에서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경에서도 삼위일체를 주장할 수 있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인생들은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성경을 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그들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보다는 종교의 교리를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 얼마나 잘 사느냐 하는 것에 대한 문제라면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신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종교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바로 이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 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사도 바울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형제들에게 먼저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종교인들은 삼위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입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성도는 영생을 얻는 성도는 이제 이방인들과 같이 그러니까 세상 사람과 같이 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4:9절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이방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대표로 해서 이방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를 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율법을 지키는데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은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야 자기들이 생각을 하는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그것이 허망한 생각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44장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누가 구원을 해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인생은 내세에 대해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을 잘 지켜야 심판대에 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인생은 어느 누구도 그 심판대에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율법을 잘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 말씀을 믿기보다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지를 못하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비유로 해서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율법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 우상이 되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부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인생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같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있고 그 우상을 따라 섬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자를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고 했는데 이방인들은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내세를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인들을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일을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모르니까 율법을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허망하다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로는 내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 총명입니다
이방인들의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주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어두움에 다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일로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증거를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분명히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골로새서에서는 우리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는 다 이루셨고 그 창조에서 보면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생명은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이 세상 철학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인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을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인생들이 내세를 생각을 하면서 다 신체가 부활을 해서 영으로 변해서 내세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방인들은 그 신체가 내세에 들어가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생각 자체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피조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죽었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죽은 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을 하신 그대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반드시 이 생명을 얻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거듭나는 일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9-20,“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인생의 철학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이 이렇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로 해서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왜 그런가 하면 인생들은 다 율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14:3절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기초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 말씀에서 벗어나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종교 안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있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의 일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데 이럼으로 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입니까?
이 시대 누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거듭나는 일을 믿고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종교 안에서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봅니까?
우연이라도 이 말씀을 본다고 해서 아! 그래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인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이미 종교에 의해서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배운 그들에게는 이 말씀이 들어오지도 않고 그들은 역시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기초가 안 되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율법주의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진리입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헬라어를 히브리어를 안다고 해서 그 뜻을 안다고 해서 이 진리를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일이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이 오시는 아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라고 그렇게 큰 소리로 강조를 하는 그들이 종교가 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저희가 감각 없는 자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다는“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공동번역입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율법입니다
인생들이 종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라고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의 행위를 잘 하려고 하는 그것을 벗어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6-17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비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육체의 욕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욕심이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으니까 마치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인생들이 율법의 행위를 잘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욕심이라고 부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교입니다
하나를 하면 하나는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소욕을 하면 성령의 소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골로새서3: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옛 사람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벗어 버리라고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심령을 새롭게 하는 일을 골로새서에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골로새서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이미 앞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었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사도 요한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을 얻는 자를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번역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형상을 18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거듭나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고 종교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11절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요한복음에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새 사람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를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입니다
우리 사람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앞에서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는 일의 역사를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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