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4-2, 믿음의 분수대로

윤주만목사 2025. 5. 28. 13:05

베드로전서1:9-11절을 보겠습니다. (377)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예언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예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예언입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이 미리 말씀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 예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혼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 예언은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어떤 예언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언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예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약 성경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 예언을 보고 우리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그것의 성취를 우리는 신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미리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예언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예언을 신약에서 사도들과 성경의 저자들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취를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예언도 못보고 있고 그것이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통해서 나타난 인물들을 보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예언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예언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예언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데 전혀 예언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있어야 믿을 수 있어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성도가 없어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분수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의 은사가 있으면 성경에서 그 예언을 보고 믿을 수 있고 믿으면 그는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입니다.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임할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임함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어떻게 임합니까?

선지자들이 예언을 했습니다. 그 예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 성경입니다 정말 우리는 그 구약 성경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신학자나 목사들을 보면 전혀 살피지를 않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아니 수백 번을 읽으면 뭐 합니까? 그가 주석을 쓰고 강해를 쓰면 뭐 합니까? 그에게 예언의 은사가 없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은사를 주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 은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까지의 사람들을 보면 이 은사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복음을 깨닫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성경에서 풀 수 있는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상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어느 때까지 상고를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를 해서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렇게 예언을 상고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예언을 하는 자는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은 자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이 예언을 받은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고난과 그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를 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언을 하는 자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살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자는 그 예언을 알면 믿음의 분수대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15:7-8절을 보겠습니다. (28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고린도후서8:9절을 보겠습니다. (29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언입니다

성경은 예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예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있어야 성경에서 예언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없으면 그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언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예언으로 보고 있습니까? 율법으로 보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도 다 율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이 예언으로 안 보이고 율법으로 보인다면 그는 예언의 은사가 없는 사람이고 그 예언의 은사가 없으면 그는 성경을 아무리 상고해도 그것이 안 보이기 때문에 예언을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예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부지런히 살필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들의 지적인 능력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많이 보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저 성경의 문자를 많이 보는 사람은 부지런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해야 하는가 하면 영혼 구원에 대해서 부지런해야합니다. 영혼 구원을 생각하지 않고 보는 성경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 성경말씀으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기를 위해서 연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다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언을 못 보고 있다면 그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언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는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언이 보여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데 예언이 안 보이면 그는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려서 이제는 그 말씀을 우리가 깨닫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꾸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이 꾸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살폈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내가 가난한 자이고 예수님께서 부자가 되셔서 우리가 꾸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보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취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시고 우리 가난한 자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명기의 말씀대로 꾸어서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꾸었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꾸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부요함을 가졌습니다.

예언의 은사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믿어질 수 있습니까? 아마 제가 이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말씀을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믿지 않는가 하면 율법을 지킨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어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언의 은사가 있으면 그 믿음의 분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언을 부지런히 살펴서 알게 되면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신명기의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그저 율법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입니다

반드시 믿음의 분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언을 보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안 보이는 사람은 신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보아도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문자로는 압니다.

그러나 믿어지는 역사가 없습니다. 문자로 아는 것과 믿어지는 역사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말씀이 예언이 되었고 주님이 오셔서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꾸어 주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요해야 합니다.

반드시 율법으로 부요해 져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부요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부요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이 완전케 하신 율법을 꾸어서 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에게 꾸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가난한 자들을 꾸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이렇게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취가 된 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데 예언이 안 보이면 절대로 이것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는 것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그는 예언을 몰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은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은사입니다

예언을 볼 수 있는 것도 은사입니다 누군가 이 예언을 보았으면 누군가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이렇게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예언은 정말 중요합니다.

반드시 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의 기독교 안에서는 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어서 믿음의 분수가 없고 그렇다 보니까 영혼 구원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 모든 말씀들이 생각이 나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말씀을 주셔서 예언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을 보고 이 로마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구약에서 율법을 보면서 예언을 보았기 때문에 이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로마서를 보면서도 거의 다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4:1절을 보겠습니다. (279)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 큰 은사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비유의 말씀들을 보면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이 많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제일 좋은 길을 못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사랑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을 다 내어주는 육체적인 사랑을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리어 자기 몸을 불사를 정도로 육체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자기 생명을 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지 그렇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먼저 사랑을 받은 성도가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도 받지 못한 사람은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은 성도가 이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경에서 예언을 하라는 말씀이지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예언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가 예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예언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구원을 받았으면 예언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7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신령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으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제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1절의 말씀도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마치 무당이 하는 것과 같은 예언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고 기도를 하면서 무당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신령한 것으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예언을 거의 못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구약을 인용을 한 말씀과 그리고 성경을 편찬할 때 누군가 구약의 말씀을 각주로 달아 놓은 것을 보는 것으로 자기들이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이 다 예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는 성경에서 신령한 것을 전혀 못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반드시 신령한 것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 신령한 것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절대로 안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했는가 하면 성경을 볼 때 모두가 문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자에서 신령한 것을 보아야 하는데 신령한 것이 전혀 보이지가 않아서 그것을 모두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절이 있기 전에 사순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사순절이라는 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이 시대는 자기들이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고난주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지켰습니까?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가 아니면 저주를 받는가에 대한 너무도 중요한 일인데 아무 생각이 없이 종교가 시키는 대로 그런 절기들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그런 육체의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고난 주간을 지킵니까?

그럴 시간이 있으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 절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성경에서 예언을 알아야 합니다.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니까 사람들이 점점 더 육체의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못하면 여러분은 믿을 수 없습니다. 예언을 하는 자가 있어서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믿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예언을 하는 자가 전혀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그리고 구약의 말씀을 거의 이스라엘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스라엘과 다르게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약을 빼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약만 보면 아마도 성전도 짓고 제사도 드릴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을 보는 것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신약 성경이 없다면 그들은 벌써 유대교에 들어가 있을 사람들입니다

예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도 너희가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눈이 흐려져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신령한 예언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굳이 율법을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언을 하는 자는 그렇게 신령한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언을 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기독교에서 남겨 있는 책들을 보아도 어느 누구도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럼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하려고 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신령한 것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너희에게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견고케 하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서 자기가 받은 예언을 말씀을 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이방의 교회에 신령한 것을 나눠주어서 그들을 믿음으로 견고케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희에게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제 그 사랑이 있으면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신령한 것으로 하는 예언이 사라졌습니다. 복음이 이방에 전파가 되고 불과 100여년이 지난 시점부터 예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사라진 것을 교회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성도들에게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으로 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기적과 같은 일이 있습니다.

지난 1900년 동안 사라졌던 예언이 이 시대 우리를 통해서 보여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큰 은혜로 우리를 하고자 하시는 대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성경에서 예언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분수대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물론 이제까지 예언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설령 있었다 해도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으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을 우리가 볼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꿈과 같습니다.

물론 제가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서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분에게서 배운 그것이 예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의 흔적도 보이지 않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해서 예언을 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그가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예언을 할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기독교에 있었다면 어떻습니까? 아니 죽을 때까지 기독교가 진리를 전하는 줄 알고 죽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서 긍휼히 여겨주셔서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그래서 이 시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를 통해서 신령한 것으로 예언을 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파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정말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후서1:19-21절을 보겠습니다. (385)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언이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예언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다릅니다. 그래도 그때는 주님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해서 성경에서 예언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어떻게 예언이 있습니까? 상상도 못하는 일이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듣고 또 배워서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예언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라는 말 밖에는 더 이상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한 것도 감사합니다. 또 사람들이 중간에 미혹을 당해서 나가고 나서 정말 주의 만찬을 나눌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갔었는데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쉽게 이길 수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든든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 예언이 무엇입니까?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예언이 비추고 나니까 이제 어두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져야 합니다. 그런 성도는 더 이상 어두운 가운데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예언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두움이 무엇인지 빛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풀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것이 무엇이니까?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 푸는 것을 사사로이 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를 해서 다수의 생각을 따라 풀고 개인의 생각으로 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수고 개인이고 사람의 생각은 다 사사로이 푸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사람의 뜻으로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누가 기록했습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그들이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뜻으로 냈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이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했기 때문에 이 예언을 풀려면 역시 성령을 받은 성도만이 예언을 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령을 어떻게 받는지도 모르고 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언을 사사로이 풀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8절을 보겠습니다. (33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예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언으로 디모데를 지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래도 초대교회는 이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교회 역시 사도들이 죽자마자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선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싸움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의 분수입니다 예언이 있어야 믿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하신 이를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선한 싸움에서 이기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자기들이 무엇과 싸워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선한 싸움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겨우 도덕적인 법을 지키고 자기들이 지키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저주 받게 하는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싸우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킨 것으로 간증을 하면서 무용담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눈에는 예언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 안에는 이미 예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더욱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언이 있어야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데 완전히 사라져서 어느 누구도 예언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가 아닙니다. 그 문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해야 하는 일이 성경을 보고 예언을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도한 예언을 알고 그 예언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예언을 주셨습니다.

모두가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기적과 같이 예언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 예언을 들은 성도들은 선하 싸움을 해서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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