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성도의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생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아무 것이나 자기들의 생각에 있는 것을 바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왜 아담을 허무한데 굴복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아담을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이 있었기 때문에 아담을 허무한데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아담이 허무한데 굴복을 해서 그 피조물은 썩어 흙으로 돌아갔지만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정말 자기들이 바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비록 허무한데 굴복을 했을지라도 그 바라는 것이 있어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입니다. 그것을 바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아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바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 외에는 아무 것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설령 기도를 해서 내가 바라는 것을 받았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서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내세의 것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율법주의자들의 의해서 때로 엄청난 고난이 오더라도 참고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을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바라고 있다면 그는 이생에서 많은 것을 얻었을지 몰라도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현재 고난을 당하더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는 바알이 들어와서 자기들의 생각에 있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임을 모르고 바라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을 주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굴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굴복을 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허무한데 굴복을 한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주시고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 그의 영을, 생명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썩어 없어지는 것을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을 바라다가 율법의 흠 없는 의를 가졌다고 자랑을 했지만 도리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반드시 썩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50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썩어 없어집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받을 수 없는가 하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 썩을 혈과 육이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명확하게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배운 신학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을 보는 눈이 다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혈과 육입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의 정신도 있고, 혼도 있고, 이성도 있고, 지식도 있고, 지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우리의 생각도 있고, 그리고 내가 이제까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킨 것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한 모든 신앙생활도 있고, 내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예배를 하고, 헌금을 하고, 찬송가를 부른 것도 다 들어 있습니다.
썩습니다.
썩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썩는 것을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썩는 것은 썩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한다는 말씀은 썩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된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어떤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피조물은 썩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양자의 영이 있어서 그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습니다.
그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썩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이제 양자의 영을 받아서 그 썩는 것에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기초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로마서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성경을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썩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것이 있습니다. 썩는 것은 아담의 씨로 탄생이 되어 있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은 그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을 혼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은 어느 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것을 가져갈 것 같으면 아담을 흙으로 돌아가게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그때마다 하늘로 들려 올라가게 하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들려 올라가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해야 들려올라갈까를 늘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체의 부활을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썩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피조물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렇게 썩어 없어지는 우리 피조물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그 썩어짐에서 해방이 되게 하셨습니다. 썩어 지면 그냥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서 해방이 되게 해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피조물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서 썩어 없어집니다. 그 피조물을 어떻게 해서 구원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이 피조물은 썩어 없어지지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영이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피조물입니다
그것은 썩어질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썩어지는 이 씨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주의와 성화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잘해서 천국에 가려고 하다가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정말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거듭남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씨입니다.
그것은 아담이고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두 번 나는 것은 아담의 씨가 조금도 포함이 되지 않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신체가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아도 알 수 있는 그것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씨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자의 영은 썩어질 씨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양자의 영은 썩어질 씨가 조금도 포함이 되지 않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의 것을 포함시키려 하겠습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피조물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피조물은 썩어지는 것으로 버리고 그 썩어짐에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항상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는 눈이 다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허무한 생각으로 이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의 일과 영을 일을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피조물로 지으시고 그를 허무한 것에 굴복케 하시고 그 피조물은 썩어 없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방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합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피조물은 썩은 것으로 두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양자의 영입니다. 이 영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영의 비밀을 통해서 썩어지는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썩어지는 것에 다시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거듭남 자체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피조물이 썩어짐에서 종노릇하는데 해방이 되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이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을 통해서 양자의 영을 받아서 그 영이 부활을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입니다
그것의 어느 것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영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어느 것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천국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이 됩니다. 그 말씀은 썩어 없어져 버린다는 말씀이지 이 썩어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기초입니다
피조물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 피조물이 무엇인가 하면 아담으로부터 탄생이 된 육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음도 육체입니다. 어느 곳에서는 마음은 육체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육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육체에 있는 마음이지 그것이 영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육과 영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히 두 가지를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담을 통해서 받은 모든 것은 다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양자의 영은 피조물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로서 납니까?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이성에 이해가 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고 하면 그렇게 알면 됩니다. 그 낳는 것을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고린도후서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89쪽)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바라고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하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양자의 영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우리 육체가 자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찌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유는 율법을 지키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 수 있게 주신 자유입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이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유하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은 피조물은 완전히 썩어 없어지고 영으로서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 합니까?
물론 성도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그 영광에 이를 때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입니다
그 영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그 자유가 임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으로 나타날 때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의 자유를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 피조물은 죽어서 썩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거기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이 이르는 것이 자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 자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필요한 자유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는 그런 자유가 아니라 이 피조물이 썩어 없어지는 것에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이 이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정말 그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자유에 이르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육체는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우리 안에 있는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간절하게 고대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모든 피조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로마서 강해를 예전에 쓴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보고 있지만 그때는 성경을 바로 깨닫지를 못해서 이 피조물에 대해서 다르게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피조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져 버리는 그 피조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모든 사람들을 다 피조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입니까?
우리는 그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뜻도 조물주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을 피조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온 우주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 있고 또 직접 지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을 해서 이 피조물에 대해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먼 우주에서 어떤 물체가 들어와서 진화가 되다, 되다 하니까 지금의 모든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진화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창조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온 우주를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천문학자들이 별을 관측하고 있고 매일 새로운 별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우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많은 별들이 있지만 지구와 같은 별은 아직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진화론이 맞는다면 이 우주에 셀 수 없는 별이 있는데 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우주의 별이 얼마나 많은 줄을 압니까? 그런데 오직 이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는 것으로 천문학자들이 관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화론입니까?
그것이 맞는다면 우리 은하에 아니 최소한 다른 은하에라도 이 지구와 같은 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운석이 떨어져서 그 운석에서 생명체가 되는 유기물이 들어와서 수억 년을 진화하면서 그것이 생명체가 되었다면 지구와 같은 별이 우주에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 우주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기사로 나오는 우주에 관한 내용은 가능한 빠뜨리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으면 가능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별이 없다는 것이 천문학자의 공통된 주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들이 운석의 충돌로 인하여 이 지구에 생명체가 들어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성경을 알면 그것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지으셨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아담에 대해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입니다
아직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없다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볼 때 맞지 않습니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그곳에 지구의 나이보다 더 많이 된 그 별들 중에서 피조물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인간들은 계속해서 별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더 멀리 그리고 자세히 볼 수 있는 천체 망원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로 무인 탐사선을 보내서 멀리 있는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와 같은 별이 없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아니 이 지구가 멸망을 할 때까지도 그것은 풀어지지 않는 숙제가 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말하는 진화론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그들이 말하는 대로 탄생이 되었다면 이 지구보다 더 나이가 많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추고 있는 별들 중에서 피조물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명이 안 됩니다
이 시대 과학자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우주를 보면 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반드시 지구와 같은 별이 있어야 하고 또 지구에 피조물이 있는 것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 곳곳에 이런 피조물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에만 우리 인생들을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인류가 아무리 우주에 있는 별을 관측하고 그리고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한다 해도 그래서 은하수 성간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해도 피조물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그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면 그렇습니다. 그 아들 하나를 이 지구보다 더 귀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1:21절을 보겠습니다. (구 1144쪽)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예레미야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예레미야를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듣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이스라엘을 향해서 외쳐도 그들은 전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하면서 예레미야를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가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지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예레미야가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탄식을 위로하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때로는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니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카톡으로 설교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예의가 없습니다. 차라리 받기 싫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어디서 들은 설교를 글로 써서 보내고 있습니다. 또 어느 목사의 동영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목사나 되면 차라리 낫겠습니다. 왜 피조물들이 탄식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하더라도 복음을 듣고 보게 하고자 하지만 도리어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쓰레기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 것을 저에게 보라고 보내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주고자 하지만 도리어 사망으로 끌고 가는 그런 내용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동영상을 보내는 것을 볼 때마다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종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조건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누구고 양자가 누군가도 모르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의에 취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탄식하시기 바랍니다.
왜 탄식을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 피조물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탄식해야 합니다. 이 썩어 없어지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안에 양자의 영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성도는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면 그 생명을 전해서 다른 사람도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더라도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도리어 우리가 잘못 된 길로 가고 있다고 종교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복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정말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진리를 전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고 또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까지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까운 인척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말 그들을 위해서 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도리어 우리를 권면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듣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2:7절을 보겠습니다. (신 385쪽)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함께 고통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문자에 갇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말씀을 보면서 동성연애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동성연애가 성행을 해서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타락의 길로 점점 빠져 드는 것을 멸망 시켜서 본을 보이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통 하는 롯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육적으로 동성연애를 해서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롯의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로마서1장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부끄러운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롯이 왜 고통 했습니까?
그들이 동성연애를 해서 고통 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롯이 고통 한 것은 영적인 죄를 범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고통 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육적으로도 동성연애를 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 소돔과 고모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서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도리어 이상한 이단으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는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음행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고통입니다
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더구나 그 안에 내 형제가 있고 내 부모가 있고 내 자식이 있으면 더욱 고통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양자의 영을 받게 하는 성도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로운 롯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음행에 빠져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모두가 음행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열심을 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그 안으로 끌어 들여서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있기 때문에 탄식을 하고 고통 하는 것이지 복음이 없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입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탄식을 하고 있고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탄식과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로운 롯입니다.
이 시대 의로운 롯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종의 영을 받아서 율법의 종이 되어서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교회를 보면 탄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next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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