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72-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윤주만목사 2024. 11. 20. 07:39

하박국2:4절을 보겠습니다. (1303)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몸의 행실을 죽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종교적인 믿음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불교를 믿는 것과 기독교를 믿는 것과 그리고 천주교를 믿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 믿음이 종교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어디에 속해서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서 그것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일을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종교의 믿음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종교적인 행위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은 믿음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입니다.

반드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죽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기를 보고 믿음으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과 육신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육체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게 역사함으로 해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구속을 앎으로 해서 내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에 든든히 서 있는 성도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의인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진 사람이 의인입니까? 이 시대는 의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안다고 해도 의인이 자기 신체를 포함하는 의인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성도만이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는 성도만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살고 죽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살고 세상에 사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 않고 육신대로 사는 사람은 죽고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 성도는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둘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몸의 행실을 죽이고 믿음이 없으면 육신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습니까?

그들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지 실상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면, 율법의 행위를 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많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단 한 가지의 율법이 죽게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4절을 보겠습니다. (249)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왜 성령을 보내 주셨는가 하면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에만 들어오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도 않으면서도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종교는 마치 성령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누구 하나 증명할 수 없어서 목사가 하는 말을 교인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영의 일을 막연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를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반드시 몸의 행실을 죽여서 육신대로 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셨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율법의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반드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처음에는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외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성도는 그것이 율법이고 외식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에 자기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말씀하면서 육신으로 섬기는 죄를 버리라고 해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지 못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설교들을 작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설교를 보더라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신 성도는 율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증거입니다

그리고 표적입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언제 부터인지 몰라도 이방의 교회는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5:18절을 보겠습니다. (30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갈라디아에 있는 말씀을 보고도 율법 아래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율법 아래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 지켰던 것은 율법이고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받는 것을 아주 쉽게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고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몸으로 하는 행실을 죽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행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멸시하는 행위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육신대로 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오묘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내 눈에 어느 말씀이 보이느냐에 따라 율법주의가 될 수도 있고 복음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분명히 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율법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그들은 모두가 율법주의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복음을 깨닫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주님이 오실 것을 선포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그것의 기초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현상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내가 성령이 오셨는가 아니면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 전체를 지켰습니다.

그들만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율법의 기준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보고 그 중에 어느 한 가가지라도 지키면 율법 아래 있는 것입니다. 또 설령 성경에 기록이 안 되어 있다 해도 삼가 지키는 것이 있다면 율법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기초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소경이 되어서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보여도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할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할례를 받지 않는 자기들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도 율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율법이고, 십일조를 내는 것도 율법이고, 절기를 지키는 것도 율법이고,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육신대로 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 사람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전체 율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고 그가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해도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입니다

아니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보이지 않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아마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를 통해서 표면적으로 나타났던 모든 교회는 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었다면 그 교회 안에는 성령이 오신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그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를 볼 필요가 없고 그에게 있어 성경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 맞추어 보라고 주셨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내 생각을 맞추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성경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보겠습니다. (17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전제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의 전제 조건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오시면 어떻게 하시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안다고 해서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도 않은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성립이 됩니까?

육신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이 오시지도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그가 어떻게 인도를 하고 있습니까? 먼저 성령이 오시면 그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왜 율법 아래 있지 않는가 하면 그가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왜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 왜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가 하면 우리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한다고 하니까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 일들이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성경에서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가장 기초가 되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왜 완전케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의하면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난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른 그 말씀을 성령이 오시면 증거를 해 주시고 있고 그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래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소망하는 천국이 내세이며 장래의 일입니다. 이렇게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생명이 그 안에 탄생이 되고 그 생명이 있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6절을 보겠습니다. (30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에베소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10)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 아들이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어떻게 역사를 합니까?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모든 일은 동시에 일어나는 역사라고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먼저냐 성령이 오심으로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해 주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의 강해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복음을 가진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 까닭에 할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고 하면서 이 갈라디아서를 서신으로 보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성도들이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기 전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그 안에 생명이 탄생이 되었고 그것을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듣고 믿음으로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거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사도 바울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약속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면 다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면 듣고 믿음으로서 성령이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탄생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면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 둘이 함께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아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면 마귀의 자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했습니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을지라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깁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성경에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249)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도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종의 영을 받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양자의 영을 받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의 영입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종의 영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고 양자의 영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막연하게 자기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양자의 영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제가 보는 교회는 종의 영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종의 영을 받은 자가 누구고 양자의 영을 받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기보다는 목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고 그것을 이제 사도 바울이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양자는 무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표현을 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무섭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지만 믿음이 없어서 자기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을까봐 무서워서 율법을 지키다보니까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다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누가 종입니까? 이스라엘이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은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깨닫지를 못 합니다

더구나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보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 보니까 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통이라는 종교 안에 있으면 자유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유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분명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도가 되어서 이 육체의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2:15절을 보겠습니다. (354)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우리 인생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을 알았기 때문에 사실 이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극심한 통증이 오고 고통이 온다면 죽음보다도 더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기를 무서워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이 다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그 육체가 죽는 것도 무서워하고 있고 또 죽음 이후에 내세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 종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고 있다면 다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말로는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막상 죽음이라는 것이 자기 목전에 오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나이가 어린데 죽음이 목전에 있으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수한이 80이라고 합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 죽으면 그래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50이전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은 다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그런 일을 보았고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왜 무섭습니까?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건강할 때는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 이 시대 기도원이나 교회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불치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고치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병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 병을 고치려고 온갖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종의 영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데 막상 죽으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천국을 믿고 내세의 확신이 있다면 설령 암이 걸려서 죽는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아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기 육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서 어떻게 하든지 살려고 교회 안에서 기적을 바라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면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죽음을 목전에 두더라도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무서워합니까? 그리고 그 죽을병을 고치려고 너무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을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육체의 죽음이 무서워서 교회 안에서 더욱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next 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