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요한복음 강해

224-2,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윤주만목사 2024. 3. 24. 19:53

에베소서2:4-5절을 보겠습니다. (31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너무도 잘 알고 교회 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글자로 써 놓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 인생들이 철학적으로 아는 사랑을 하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냉정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가지고 그 나라의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모르면 그는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고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았고 소경의 눈이 되어 주었고 절음발이의 발이 되어 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자기가 어떻게 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에서 그것을 원하셨습니까? 물론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가 과연 그렇게 물질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행위가 사랑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양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신 일을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그렇게 십자가를 지신 일이 큰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입니까

우리는 헛것입니다.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허망한 인생입니까? 그런 인생들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빵을 줍니까

밥을 먹여 줍니까? 그런 것을 하는 것으로 사랑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인생의 철학에서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밥을 먹여 주었는데 그들이 한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그저 인간적인 사랑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저를 냉정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사람들이 또 다시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 왔습니까

주님께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지만 주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다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이 배가 고파하는 것을 보고 다시 찾아왔을 때 또 떡을 만들어서 그들을 얼마든지 배부르게 먹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빵을 먹고 배가 부른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죽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렇게 살리심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우리 사람과 같은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셔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살리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살리시는 일은 없었고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성경에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보이기 위해서 자기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랑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귀결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도 막연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의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무조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의 육체를 입고 오셨지만 그 육체를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리신 그 육체를 버리지를 못해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14절을 보겠습니다. (17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종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가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리어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교와 이방인의 종교를 두 짐승으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입니다

그들의 지식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본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만들어서 그 종교에서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매매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생들에게 왜 주셨습니까? 우리 인생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그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주신 목적을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은 디모데입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었습니까? 그들은 종교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어떤 교리도 세우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에 힘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을 보아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장로의 유전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종교의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장로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시대 종교인들을 말을 하는 것이고 유전이라는 것이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종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양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알아서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주님이 오셨을 때 장로의 유전을 가지고 대적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먼저 모른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의 유전을 삼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자기들이 문자를 알고 지식이 있다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이 다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서 하나님을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하신 신으로 믿었다면 그분이 선지자들을 보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조심스럽게 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종교가 탄생이 된 시기가 언제입니까? 물론 시대적으로는 로마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미 기원전 3-400년 전부터 헬라의 유명한 사상가들이 나오기 시작을 했고 그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던 때에 종교가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도로 지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초기 종교의 교부가 되어서 모든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인생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았고 그래서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일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 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니까 그의 십자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일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을 문자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성경을 문자로 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역시 인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입니까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부터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십자가를 지시면서 아버지께 구해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면서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가 않으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생들은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다고 해도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그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헬라사상의 산물입니다

헬라사상으로 지식을 쌓은 그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고 그들은 다양한 헬라사상에 접목을 하면서 성경을 보았고 그런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철학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런 인생들은 하나님까지도 자기들이 정의를 내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입니다 

당시 헬라인들에게는 그저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보니까 그 시대 만들어진 교리에 의해서 지금도 교회는 도덕을 가르치는 종교로 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15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도 그저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 종교인들은 주님이 하시는 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고 이 말씀에서 영의 일의 비밀을 깨달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합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고 공동번역에서는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4:12절을 보겠습니다. (244)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주님의 명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신 사랑이 무엇인가를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계명입니다 

헬라어를 보면 명령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저 십자가의 고난만을 보면서 자기들의 죄를 사해 주셨다고 앵무새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그 죄를 사해 주신 일은 우리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일도 믿지를 않아서 종교 안에서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죄입니다 

누가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까? 불교가 많이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이 정작 정죄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사랑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피조물의 죽음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도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생의 언어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15장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깨끗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길에 대해서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보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성도는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이 육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창조의 개념에서 보면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입니다 

자기를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복음을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은 제가 복음을 전하면 자기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보고 있지만 복음을 듣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말씀을 하면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그 십자가를 보면서도 그 의미를 모르니까 자기를 버리지도 않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까? 예배를 의식에 맞추어서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라고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왜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종교 안에서 마치 주님의 명령과 같이 의식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니까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주님의 친구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주님을 동등하시게 믿지도 않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예수의 생명도 얻지도 못한 그들이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친구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의 명입니다 

이미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도 주님의 명령을 모른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주님이 명령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도 주님의 친구가 된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 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자취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지 그것을 내가 아는 것과 같이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믿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믿는 마음은 내가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그대로 믿는 마음을 가진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에베소서에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장부터16장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영의 일에 대해서 알게 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누가 친구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친구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자입니다 

그들이 믿었습니까? 안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무할례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경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의 친구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니까 친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해야 주님과 한 생명으로 거듭나야 주님의 친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45:14절을 보겠습니다. (835)

수놓은 옷을 입은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동무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수에 셀 가치도 없는 인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 중에서 정말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도 초라하게 보이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시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에 이 영생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는 사람들이 내세를 알 수 없으니까 자기들이 말을 하고 싶은 대로 미혹을 해서 사람들로 그렇게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영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능히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안다고 말씀을 하면서 진리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 영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입니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성령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명을 지키고 있고 주님의 사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은 자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 성도를 나의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누군가는 앞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우리 성도들에게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합니다

수놓은 옷을 입은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동무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고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큰 사랑을 알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의 생명을 알고 또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에서 왕 노릇하면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next 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