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3:5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유월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셨고 이제 그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정말 때로는 가슴이 아픕니다. 인생인지라 인정에 매여 혈과 정에 매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망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든든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이 생명 외에는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자기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땅을 얼마나 사모를 했는가를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은혜라고 한번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은혜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 일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심으로 해서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고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감당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우리에게 창조주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은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 일을 위해서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는다는 것은 제가 인생의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앞에 있는 즐거움입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이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이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 일을 주님께 맡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비유로 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 모든 성경이 그렇게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사도 요한도 지금 유월절을 저녁을 드시는 주님을 보면서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장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장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요한복음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도 역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자기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헬라 사상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믿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도 없는 성자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고 위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격을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두가 종교에 빠져 그들의 교리를 따라 성경을 보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저녁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떡을 떼셔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잔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주시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다 먹은 것을 기념을 하는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저녁에 있었던 일이지만 사도 요한은 다른 사건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행위를 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이방의 교회는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도 부족해서 신약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행위로 나타내고 있고 그 행위를 보고 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실상은 불법을 행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본성이 율법주의이기 때문에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행위로 할 수 있는 것은 참지를 못하고 의식화를 해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행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이미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는 부인을 하는 자니 가증한 자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정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주께서 우리 피조물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세를 느낄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제가 드리는 말씀이 와 닫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영광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입니다.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를 보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위를 만들어서 의식화해서 하고 있습니다.
잠언16:9절을 보겠습니다. (구 928쪽)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예레미야10:2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68쪽)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 들어오셨는가를 이미 12장에서 충분하게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아시고 계십니다.
길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길을 가셨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길을 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본을 보여 주시고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에게 따라 오도록 하셨고 우리 성도가 지금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영의 길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걸어갑니다.
그래서 인생을 성경도 나그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그네가 길을 정확하게 알고 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있고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그리고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주님께서 우리로 앞서 휘장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길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갔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비유와 예표로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경계로 삼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발입니다.
인생이 발로 걸어서 가고 있습니다. 이 발이 의미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은 우리 인생들이 이 발로 걸음을 걷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잠언과 예레미야의 말씀을 인용을 했고 성경은 이 걸음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저는 이 두 성경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한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발의 의미입니다
물론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걸음을 걷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12장에서 언급을 한번 한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휘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셨다고 하는 말씀은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보여 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길입니다.
우리 성도에는 분명한 길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면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오셔서 더 명확하게 그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이라고 하는 말씀은 내가 간 길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대로 따라 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길입니다.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걸음도 역시 영의 일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 걸음으로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우리가 걷는 걸음 같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실제 걷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종교에 빠져서도 안 되고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해서 그것을 그대로 행위로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 그 길을 걸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으려고 하지 않고 실제 자기들이 걸어서 가려고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오늘 저녁이 지나고 나면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것을 아신다고 하면서 사도 요한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줄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만 그것을 말씀을 하지 않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나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리로 다시 가셨다는 말씀이고 이 말씀도 제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저 역시 영의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도 내려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에 올라가시면 더 이상 주님께서는 다른 형상으로 보이실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다 씻겨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는 중입니다.
이 자리에는 제자들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드신 것이 아니라 열두 제자들과 저녁을 드시면서 다른 복음에서는 떡을 떼어 주고 포도주를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발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의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물론 우리가 그 길을 발로 걷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비유로 해서 발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열심을 내서 믿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사람들은 자기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그 걸음을 그러니까 믿음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걸음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 걸음을 걷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은 쉽게 말을 해서 사람은 다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계획을 하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인생이라는 삶 자체가 걸어가는 길이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을 비유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획은 우리가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실제 걷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광야 교회에 들어왔지만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발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발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도 모르고 그저 발을 씻겨 주시는 요한복음의 말씀의 문자를 알게 되면 종교와 같이 그것을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게 되고 그런 행위가 더러운 것이 되고 죄악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발입니다.
실제 걸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잠언에서 말씀을 하는 것은 실제 우리가 서서 걸음을 걷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자기가 계획을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실제 걷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 영적인 일을 걸음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누구나 다 내세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갖게 되고 그 종교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들이 생각을 하는 내세를 들어가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종교가 있고 그 종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기들이 원하는 내세를 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우리가 걸어간다고 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인생들이 지도를 해서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을 합니다.
그 다음 절에서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걸음을 걷고 있지만 하나님을 나라를 가기 위해서 걷고 있지만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인생인지라 나를 징계하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그러니까 이 말씀 역시 소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자기에게 생명이 없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소멸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비록 내 걸음을 지도하고 걷고 있지만 자기 걸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징계를 하시되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걸음입니다.
그 걸음을 발로 걷고 있습니다. 그 걸음이 어떻다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주 잘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우리가 걸음을 계획을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서 광야로 나왔지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발입니다.
우선은 이 발의 의미를 알고 이 발로 우리가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걷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있습니다.
그냥 성경의 문자 그대로 보고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는 그 말씀을 아는 것으로 이것을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고 있는 사람을 사도 바울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발입니다.
그 발이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걸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모두가 다 종교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들의 발이고 걸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들이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종교에 들어가 있으면서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다 종교에 빠져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시편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발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가를 깨닫고 그 말씀을 보고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6: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7쪽)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유월절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다른 복음에서는 유월절을 먹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말씀을 해서 우리 성도들은 다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 역시 영생을 얻을 정도로 유월절을 먹었다고 믿고 있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본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본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심으로 해서 우리 역시 유월절을 먹어야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은 그렇게 영적인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이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는 하늘에 올라가시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걷는 걸음을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생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육체에 대해서는 이제는 절대로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뭐만 하십니까?
이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가슴 아픈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해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절대로 우리 인생의 그 어떤 것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 믿음대로 사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냉정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영생을 얻는 일도 이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다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영생을 얻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그 어떤 것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지를 아셨으면 합니다. 저를 냉정하다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영생을 얻기를 위해서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제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들에게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에베소 교회에서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위한 그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대강 발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과 그 발로 우리가 걸음을 걷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을 연결을 해서 지금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문제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 장절이 있는 것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절이 있음으로 해서 12장을 마치고 13장을 보면 마치 새로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연결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서로 인용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한 성경 안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의 열심이 신학자들의 열심이 성경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왜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다니셨습니까? 그냥 폼 잡으려고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해서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로 처음부터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럼 이 세상에는 제자들이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시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이제 하늘에 올라 가셔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주의 만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 저녁을 드시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유월절을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이제 제자들이 남아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신 표적의 의미와 말씀을 하신 것을 생각이 나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제자들이 남게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이 이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제자들의 발을 주님께서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섬김입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발을 씻고 주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섬겨서 무엇 하겠다고 그 일을 행하십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께서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겨우 그 정도로 밖에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아니 종교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종교인들이 먼저 자기들이 섬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고 교인들은 그런 행위에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 종교에서 하는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제까지 제자들을 섬겼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셔서 유월절을 먹이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는 제자들만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제 유월절을 다 먹이셨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고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수고와 고생을 했습니까?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창조하신 일을 알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 일을 안다면 이 복음이 우리 인생들에게 얼마나 평안 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일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주님께서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그 일을 하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평안의 예비한 복음입니다. 사도 마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아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이제 제자들에게 알게 하시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평안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걸음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많은 유대인들 중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일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을 주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가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이제 그 일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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