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요한복음 강해

174-1, 명절에 예배 하러 올라온 사람

윤주만목사 2023. 3. 19. 21:19

요한복음12:20절을 보겠습니다. (168)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성경을 통해서 증거를 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육적인 조상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칭하시니까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그 자손인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건입니다

그저 그때의 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성경은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실제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사로의 무덤을 열고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불러 나오게 하시고 사람들이 볼 때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온 유대에 이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기록을 잘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해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외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이 시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가끔 의사의 실수로 해서 냉장실로 들어갔던 사람이 깨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것과는 지금 주님께서 무덤을 열고 나사로를 불러 나오게 하시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표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왜 나타내셨는가 하면 이 일을 보면 내가 여호와인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일을 보았는데도 주님께서 여호와이신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초막절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표적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바로 증거를 해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어떻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까?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일을 가지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고 증거를 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저 표적을 보고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언어에다가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배운 것을 더 해서 순전히 인생의 지식을 가지고 전하고 있지만 도리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증거입니다.

우리는 바로 증거를 해야 합니다. 그저 내가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고 증거를 하는 그 증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사건은 여러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것을 보이심으로 해서 그분이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증거를 했습니까? 육체의 왕으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 선지자가 증거를 하는 말씀을 알았다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증거를 해야 하고 이 세상의 육적인 왕이 아니라 영의 일을 알고 증거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분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증거를 하면서도 자기들의 이성으로 본 것을 그리고 인생의 이성적 한계에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성경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증거를 하고 있고 그런 종교적인 열심이 오히려 사람들로 사망으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표적의 소문을 듣고 지금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알고 맞이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이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주님을 나타내시는 표적입니다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우리 인생들에게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 생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표적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모세의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여러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표적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정말 많은 표적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표적은 영의 일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타내신 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의 일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표적을 나타내시고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믿게 하기 위해서 표적을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만약 더 이상의 표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것을 이야기를 하면 성경 외에 말씀을 더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같이 표적을 보고 있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바리새인들은 그 현상을 보고 세상이 다 저를 좇는다고 말을 하면서 너희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는데,”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다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노아 시대를 보더라도 노아가 삼백 년 동안 방주를 짓는데 누가 와서 도와주었습니까? 노아와 그의 아들들만이 방주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혼인잔치의 비유를 말씀을 하시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노아 시대에도 당시는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의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입니까

성경 어디에서 다수가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적은 수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마치 다수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아니 자기들의 종교의 세력을 키우려고 하다보니까 그들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우리나라 종교만 보아도 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거대한 종교의 힘을 세상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가 강합니까

지금 우리나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종교인들이 가장 강한 자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이용을 해서 정치까지 좌지우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세력을 키우고 있고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 들여서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고 그래서 성경에서 짐승이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23절을 보겠습니다. (148)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종교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종교를 보고 있지만 그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교회를 바로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솔로몬을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우리도 솔로몬과 같이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서 받은 자 되어야 합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자기들이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유대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그 종교를 보면 어떻게 보입니까? 광명의 천사와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의 일군으로 보이고 양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종교를 보면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내 주시기 전에는 그도 세상에서는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을 때는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몰랐다는 것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 안에 있을 때 그 역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 지적인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 학문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열심이 지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당시 가장 지혜가 있다고 자부를 하던 사도 바울도 종교에 있을 때는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자기만큼 잘 믿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가장 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그들이 스스로는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광명의 천사를 보고 있고 그 광명의 천사가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너무도 옳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리고 종교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 종교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종교를 세운 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그 사단도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차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는 사단에 비하면 저 하위 차원에 있고 그래서 잠언에서 소년이 끌려가는데 소가 푸주로 가면서도 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종교 안에서는 다 소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소자가 종교를 이길 수 있고 그 종교보다 지혜가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스스로가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지혜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기 싫으면 그냥 세상에서 살기 바랍니다. 억지로 남에게 끌려서 이웃에게 그리고 친척에게 가족에게 끌려서 진노를 받기 보다는 모르면 아예 근처에 가지도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쉽게 다가가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종교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 안으로 너무 쉽게 들어가고 있고 그 안에만 들어가면 자기가 다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인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대제사장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저 인생들의 본성에 따라 성경에서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누구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는가를 성경을 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종교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표와 경계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종교가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마지막 유월절입니다. 그 유월절의 양이 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그러자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시온의 딸들이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모르고 하고 있지만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주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셨습니다. 양들이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예배를 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그 여인도 예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대화를 하면서 먼저 자기 입으로 예배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낮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서 그 여인과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예배를 하는 자를 찾으시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예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예배를 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배합니까

이 시대 종교 안에서 매주 그리고 거의 매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런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고 그저 종교적인 의식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찾으시는가 하면 예배를 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면 굳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식을 보면서 아니 자기가 거기에 참석을 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의 주님에 말씀과 같이 자기가 예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예배를 합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종교의 의식에 의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지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저를 비난을 할지 몰라도 그들은 예배를 하는 자들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이제 유월절이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헬라에서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배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도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예배를 하러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예배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중에 빌립을 만나 예배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싶고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헬라에 있는 사람들이 명절에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예배를 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도 보았지만 예배를 하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다 우리 이방인들을 예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 역시 예배를 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이미 4장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예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전도서3:11절을 보겠습니다. (950)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헬라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나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돌아 온 것은 아닙니다. 또 북 이스라엘 역시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은 이방으로 흩어져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600년 전입니다

유대인들은 사실 다시 돌아 왔다고는 하지만 나라의 명맥만 유지를 하고 살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돌아오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이방에 흩어져 살았고 그들이 공동체가 생기면 회당을 짓고 거기서 성경을 알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라 시대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나서 그가 죽은 후에 나라가 넷으로 갈라지고 로마에 의해서 또 세계는 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헬라사상을 많이 가졌고 헬라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헬라 사람들이 많이 복음을 믿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당시 그렇게 헬라인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전승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입니다

이미 헬라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또 주님이 오셨을 때는 그리고 그 후에는 헬라인들이 하나님을 많이 믿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도 대부분이 헬라어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회당을 먼저 지었고 그들의 영향에 의해서 당시 헬라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성경을 배웠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예배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은 이 세상 만물들을 보면서도 그리고 때에 따라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내세를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유대인들과 교제를 하기 시작을 하면 하나님을 찾고자 하고 있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이렇게 유대인들의 명절에 아주 먼 길을 예루살렘으로 와서 예배를 하고자 했습니다

 

영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다 영생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가 죽은 후에 내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지혜를 주시고 또 그들이 구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믿고자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입니다

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회당에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사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교제를 할 때 많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고 그런 사람들이 명절에 예배를 하러 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이제 가면 갈수록 종교를 갖는다는 것도 힘들어 지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더욱 더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종교는 사치에 불과할 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입니다

그때는 주로 농경과 목축을 했고 그리고 장사를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는 당연히 종교에 관심이 많았을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자기가 죽은 후에 내세를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헬라인들이 특히 그런 내세에 관심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오면 예배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와서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와보았지만 예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님의 제자인 빌립에게 주님을 만나기를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러 왔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을 만나고자 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했다면 주님을 만나지 않아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래서 믿을 수 있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려 했던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예배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헬라인들이 예루살렘까지 예배를 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배를 하러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2000년 전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그 먼 길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헬라인들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성경을 배우고 있었지만 예배를 할 수 없어서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배를 하러 찾아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이 시대 역시 예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하는 사람을 찾기도 힘이 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예배를 하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2:21절을 보겠습니다. (168)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로 가서 청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헬라인들이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왔고 그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중심의 도시 예루살렘에 오면 예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기대를 가지고 왔지만 예배를 하지 못 했습니다

 

헬라인들입니다

그들이 만약에 예배를 했다면 굳이 빌립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배를 하러 예루살렘으로 왔지만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렸고 또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니까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그들의 외침을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고 대제사장들이 있고 바리새인들이 있는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가면 예배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거기에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성전이 없고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배를 하기 위해서 교회라는 건물을 짓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못지않은 교회를 짓기 시작을 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고 다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그런 성전을 보고 그리고 보이는 건물의 교회를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배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전혀 모르면서 그저 종교에서 외식 적으로 하는 행위를 하면서 예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보이는 교회를 점점 더 크고 화려하게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가장 큰 건물이 교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나다니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를 거대하게 짓고 있는가 하면 인생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어떠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이 성전을 사십륙년 동안 지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대 사회라 해도 사십륙년 동안 성전을 지었으면 그 성전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때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달을 해서 돌을 잘 다루었고 그래서 지금보다 더 잘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당연히 그런 곳에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믿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자기들이 그런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이성으로 생각을 해도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안에서 종교에 따라 의식적인 행위를 하면서 예배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당시 헬라인들입니다. 그들은 지혜가 가장 발달을 했던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고 싶어서 그러니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말씀들을 유대인들이 바로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닙니다

 

헬라인들입니다.

그래서 그 먼 길을 왔습니다. 그들이 물론 낙타나 말을 타고 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동지방에서 그 먼 길을 걸어서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배를 타고 이동을 해서 걸어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배를 하러 왔고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해서 왔더니 예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헬라인들입니다

그들이 예배를 했다면 주님을 찾았겠습니까? 물론 당시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그 광경을 보고 하나님께 로서 오시는 이라는 유대인들의 외침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이미 알고 있듯이 예루살렘에는 예배를 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을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의 말씀에서 알고 있습니다

 

예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성전이 있는 곳에 왔는데 예배를 하는 자가 없어서 예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라는 종교에서는 예배를 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유고 경계의 말씀이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예배를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합니까

유대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이 예배를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유대교인들만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예배를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헬라인들이 와서 보니까 예배를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빌립에게 청하여 유대인들이 외치고 있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next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