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745강,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윤주만목사 2020. 12. 10. 06:01

745,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10:24-33절을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시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를 세상이 다 인정을 하다보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주 쉬운 일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집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의 교회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마치 주님이 제자들을 이스라엘의 집에 보내시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이방인들의 교회가 어떻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만약에 복음을 가진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교회로 가서 복음을 전하면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이 시대 어느 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고 끌어 내리려 할 것입니다. 그 정도에서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 그나마 국가의 법이 강해서 그 정도로 그치지 만약에 중세 시대와 같이 종교의 권력이 강하면 그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재판을 해서 죽이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제까지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이렇게 편안한 때는 없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국가가 되고 소수를 보호해주는 법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복음을 전해도 어느 누구도 저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때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그들은 유대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한다 해도 저는 그들을 그렇게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교회는 율법주의의 정점으로 가고 있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율법을 강조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보고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고 있습니다. 사실 제 인척들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기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이미 유대교인들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고 온갖 외식의 모양을 내고 있으면서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입니다.

정말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우리나라만 해도 1000만 명입니까? 그리고 목사들의 숫자가 10만 명이 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있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를 않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만큼 좋은 때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지나고 나서 이방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되면서는 그들이 종교재판이라는 것을 열어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천주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들입니까?

그들이 전부가 저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저는 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학교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들의 교리를 배워서 종교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은 그저 입에 바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가 발달을 했습니다.

그리고 SNS가 발달을 해서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시대라고 믿고 있습니다. 굳이 사람을 직접 대면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교회는 진리에서 멀어졌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보다 이방의 교회는 더 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신 화가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시대 우리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하나라고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의 선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선생으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음입니다.

이것을 학교에서 배워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만약에 이 복음을 신학교에서 배워서 알 수 있었다면 지금의 교회는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 자체도 이미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듣는다고 해서 그들이 다 복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그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복음을 믿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말씀하시고 그들을 이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집으로 보내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선생으로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난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면서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든 복음을 들었다 해도 선생보다 더 높지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을 가진 자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조금 복음에 대해서 알면 마치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의 비밀을 많이 안다고 해도 역시 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이나 되는 것과 같이 아니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또는 보혜사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우리는 제자입니다.

성경의 모든 비밀을 다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가 선생 같고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충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이 이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그럴 때 그들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정도로만 전해도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만 전해도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복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구원을 받을 정도로만 해도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이 내세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예표와 비유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을 가진 자는 비유와 예표들을 알아서 그것을 전함으로 그들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여 내세의 일을 바랄 수 있게 하면 됩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그것을 밝히 보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간증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성경을 보고 내세에 대해서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전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를 실상과 같이 믿을 수 있게 해 주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가 그 선생과 같고 그 상전과 같으면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상이 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도리어 내세의 일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족하도다.

구원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부족하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의 일에 있어서는 족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세의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거하는 것으로 족해야 합니다. 그 이상을 알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세는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내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 복음에 대해서 전해서 믿게 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보고 바알세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병자들을 고치시고 하니까 귀신의 힘을 빌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바알세불이라고 하면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에 사도들 역시도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것을 제가 부정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 역시 그러한 일을 정당화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병자를 고치는 일은 다 영의 일에 대해서 비유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한 일이지 마치 교회가 병원이나 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표입니다.

그리고 비유입니다. 영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진짜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해서 아니 제자들이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알세불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제자들도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실제 병자들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분명히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똑같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저들이 귀신의 힘으로 병자를 고친다고 말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 고치는 일입니다.

육체의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비유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진짜 바알세불의 힘을 빌러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병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6,“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입니다.

주님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제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제 복음을 전하게 되면 주님께서 하신 모든 기적을 귀신의 힘을 빌어서 했다고 하면서 그의 제자들도 역시 귀신에게 미혹이 되어 있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있다고 하는 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25절을 보면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고린도후서4:2절을 보면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종교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는 종교의 힘이 너무도 강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종교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로마의 법정에 세워 사형을 받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여론을 만들어서 제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고 실제 그 일로 인하여 제자들이 옥에 갇히기도 하고 때로는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옳습니다.

로마의 법정에서도 제자들이 결국에는 어떤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법정에 가서 싸우게 되면 종교 안에서 싸우게 되면 우리 복음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법정에 가면 반드시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로 하면 그러니까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옳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의 일로는 그것은 감추인 일이고 숨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언제 그것이 드러났습니까? 주님이 오셔서 계산을 할 때 드러났습니다. 이 세상에 살 때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주님이 오셔서 회계를 할 때 그것이 드러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다 무슨 일인가 하면 달란트를 감추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고 그것이 숨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드러납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그것이 다 드러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드러날 것 같으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드러나지가 않고 그들이 옳은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 법정에 세우고 종교재판을 하면 두렵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지 안 믿는지가 언제 드러나는가 하며 주님이 다시 오셔서 회계를 할 때 드러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사람의 이성으로 옳기 때문에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주고 때로는 죽인다고 하면서 그럴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물론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도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만이 있는 곳에서 조용히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 모든 말씀을 들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고 구속의 모든 일을 이루시지 않아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밝은 대낮에 복음을 전파를 하고 또 집 위에서 모든 사람이 듣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가 되어서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교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지만 이 시대는 유대교보다 더 거대해진 기독교에 이렇게 복음을 전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좋은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고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종교재판이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만 그렇게 했습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난 후에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종교재판을 해서 무참히 죽였습니다. 특히 삼위일체라는 교리 하나로만 죽은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거의 모두가 실제 이 말씀 그대로 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열두 사도 중에서 사도 요한 한 사람만이 밧모라는 섬에서 귀양을 가서 노예로 살다가 죽었고 다른 사도들은 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몸을 죽이는 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몸을 죽이는 자들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혈과 정이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몸을 죽이는 그 일에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면 사실 이 육체는 언제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의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에게 작은 육체의 병이 걸려도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별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니까 육체의 병을 고치겠다고 무당과 같은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의 문자에 병을 고쳤다고 하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육체입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설령 복음이 있다 해도 그것을 전한다 해도 우리 인생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이제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나가서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이 제자들을 어떻게 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교회는 할 수만 있다면 몸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아니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복음을 가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죽여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인 것과 같이 기독교라는 종교가 자기들의 교리에 반하는 것을 전하면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한 앗사리온입니다.

아주 적은 돈입니다. 하루 노동자가 일해서 받은 돈이 한 데나리온이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십육 분의 일 정도를 앗사리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노동자가 10만원을 번다고 하면 약7000원 정도 되는 금액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당시에 참새 두 마리가 그 정도 가격에 팔린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할 것을 주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채찍질을 하고 또 로마에 넘겨서 재판을 받게 할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때로 몸을 죽입니다.

그때 너희 몸을 죽이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제자들에게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참새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제자들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아주 천하게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참새 두 마리의 가치도 없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죽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중세 시대만 해도 교회는 온갖 악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이단이라고 정죄가 되면 심지어는 마녀라고 까지 했고 또 사단의 종이라고 까지 하면서 참새 두 마리보다도 더 하찮게 여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끔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종교재판을 하는 동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사람을 죽이면서 정말 참새 두 마리보다 더 하찮게 여기면서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정말 사람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 빠지게 되면 아니 그들의 교리에 세뇌가 되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종교에 있을 때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들고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입니까? 그런데도 종교에 세뇌가 되는 순간에 그 역시도 종교 재판에 의해서 돌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접 돌로 쳐 죽이지는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동의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11:36-38절을 보면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성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 의해서 이렇게 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로마 시대에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입니까?

그 정도보다도 더 못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종교에 세뇌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 보다도 더 못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취급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이제까지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의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이렇게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얼마나 귀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가 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귀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보고 마치 성도의 육체가 귀한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 육체를 보고 귀하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참새 두 마리보다 더 못하게 취급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디도서1:16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시인(是認)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자기가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실입니다.

첫 번째는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시인을 해야 하고 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해서 시인을 해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는 것으로 그리고 지금과 같이 아무런 핍박이 없는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인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디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인정을 하지 않고 자기들이 행위를 함으로 부인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디도서입니다.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초대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 중에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부인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그 의를 주심으로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다 지켰다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인을 하고 있는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자들이 아니라 행위로 부인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행위로는 부인을 하면서 복음에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누가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이 부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을 부인할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으면서 시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아무 것도 시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누구신가도 시인을 하지 않고 있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시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 있을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은 시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행위로는 부인하며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시인합니까?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시인을 합니까? 만약에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할 것 같으면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사람 앞에서 시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인을 하지 않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시대 주님을 시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자기들이 어떻게 시인을 하지 않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로 부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전부 다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럴지라도 복음을 전해서 누구든지 믿을 수 있게 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사람 앞에서 복음에 복종하면서 주님을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