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742강,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윤주만목사 2020. 12. 7. 06:05

742,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사사기10:1-5절을 보면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하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사사

통치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사십년을 보내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를 세워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가나안에 있는 나라들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왜 사사를 세우셨습니까?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사사를 세우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바알을 섬기는 일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바알을 섬김으로 하여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에 남아 있던 나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하셨습니다.

 

사사기입니다.

여러 명의 사사들이 계속해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방을 통해서 침략을 당하게 하시고 그러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들을 선지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사사는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사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무슨 일을 했고 바락이 무슨 일을 했고 삼손이 무슨 일을 했고 입다가 무슨 일을 했는가는 굳이 제가 여기서 말씀을 안 드려도 성경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한 일이 다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한 시대입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왜 사사를 세우셨는가 하면 그들이 복음을 듣고 바알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바알과 같은 이방의 신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사를 세워서 그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바알입니다.

이 바알이 언제 처음으로 성경에 나오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모압과 대치를 하던 때 모압이 바알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압이 바알을 섬기는데 이스라엘이 발람의 계략에 넘어가서 바알을 섬김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마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섬겼다는 것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겼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바알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이방의 교회 안에는 이미 바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과 같이 보이는 바알 신상을 보고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보이지 않는 바알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바알을 섬기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던 세대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마자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남겨 놓은 다른 국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징계를 하시면 그들이 다시 여호와를 찾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것이 사사기의 전체 내용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 사사가 있는 동안에는 바알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사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을 섬기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을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아버지 때입니다. 바알을 섬기다가 이방에 침략을 받음으로 해서 고통을 받았고 그때 그들이 여호와를 찾으니까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이 다시 이방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사가 죽자마자 다시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는 일을 반복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알을 함께 섬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바알을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알만 섬긴 것이 아니라 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 바알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바알도 함께 섬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이방의 기독교인들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있어서 부정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교회 안에는 바알이 가득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는 평생 교회 안에서 바알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계속해서 섬겼으면 우리 이방인들 역시도 바알을 그렇게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다스리게 하셨지만 이방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알을 섬기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사사도 세우시지 않고 선지자도 보내시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은 바알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성경을 통해서 다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모든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사사를 세우시지도 않고 있고 선지자를 보내주시지도 않고 있어서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잘못했을 때는 사사를 세우시기도 하고 선지자를 보내주셔서 그들을 책망하시기도 하고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는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다 보니까 더 이상 사사도 세우시지 않고 선지자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바알도 안 섬기고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9:24절을 보면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누가복음16:19절을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디모데전서6:9절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요한계시록13:16절을 보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바알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없어졌습니까? 신약의 교회에는 아니 이방의 교회에는 이 바알이 더 이상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너무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바알이라고 했던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바알의 사상이 무엇입니까? 부자가 되는 것이 바로 바알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된다고 하니까 물질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너무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번 돈을 적당히 헌금을 하는 것으로 부자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풍요의 신입니다.

그 바알이 이 시대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교회 안에도 바알이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그 바알과 아세라는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먼저 교회의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지나면서부터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고 당시 최고의 건물을 짓는 것으로 자기들의 믿음을 이야기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풍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어디서 온 것인가 하면 바로 바알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실제 바알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온 청년입니다.

그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님 앞에 왔습니다. 그래서 묻자 주님께서는 십계명을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는데 무엇이 더 부족 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문자적으로 지킨 그것이 너를 부자로 만들고 있으니까 그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 청년이 도무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근심하고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입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무엇으로 부자가 되어 있었는가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부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아니 이제까지 이방의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렇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을 구약에서는 바알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한 부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

바알을 섬기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이 바로 풍요의 신이고 그것을 섬기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물질로도 부자가 되고 있고 율법의 의로도 부자가 되고 있고 인성으로도 부자가 되고 있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행위로도 부자가 되고 있고 정말 제가 일일이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로 부자가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바알에게서 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구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사사기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연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것으로 바알을 섬기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초등학문에 사로 잡혀서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면서 자기들은 바알을 섬기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을 바알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기도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 기도입니까? 다 바알에게 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는 자가 누군가 하면 바로 바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고 있는 기도는 다 바알에게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의 사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무엇으로든지 부자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명예로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바알의 사상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고 바알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뿌리 깊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바알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바알을 섬기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구약에 있던 바알이 신약에 어떻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제 안 보내십니다.

사사 이제 더 이상 세우지 않습니다. 이제는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고 은사자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셨지만 한 번도 그들이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를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각 시대에 복음이 있는 자를 세우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져도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더 불행한 일은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거짓만 듣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다 라는 사실입니다.

 

설령 그가 복음을 듣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복음을 듣고 믿습니까? 수많은 설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 시대에 복음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들었으면 정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방의 교회 안에 만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이 어떻게 들어와 있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평생 바알만 섬기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고 있습니다. 쉽게 정의를 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바알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비멜렉 다음에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는데, 그는 에브라임의 산간지방에 있는 사밀에 살고 있었다.”

 

사사입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말씀 중에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사기10장에는 두 명의 사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들어 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설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 둘라입니다.

그리고 사사 야일입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다른 사사들은 다 사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전쟁을 하든지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 둘라와 사사 야일은 그냥 이름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이미 바알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바알에 미혹이 되어 있는 목사들이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사사기에서 이 말씀을 보고 이 두 사사를 보면서 아주 나쁘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또 사사가 되었지만 그들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바로 바알의 사상이 그들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알의 사상이 있어서 사사가 되었으면 그래도 무엇인가를 했어야 하는데 이 두 사람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서 그저 성경에 이름만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면서 폄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감히 그들이 이 사사들을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을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자기들의 이성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두 사람의 사사를 폄하를 하고 있고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더 바알의 사상에 빠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2:16-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사사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사사입니다. 그들을 누가 세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바알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목사들이 감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을 평가를 하고 있고 그들이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30대 쯤인 것 같습니다. 목사가 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는 이 두 사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셨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을 하지 않은 사사는 사사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아주 강하게 비판을 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이 시대 목사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사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를 판단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자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사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성경에 한 두 줄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도가 누구입니까?

다윗의 용사인 엘하난의 아버지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도도의 이름의 뜻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집안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집안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손자 부아의 아들 둘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이방에 침략을 받을 때 구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들이 이방의 침략을 받았는가 하면 바알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방의 손을 통해서 그들을 핍박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이 둘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말씀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 나오는 야일에 대해서는 정말 사람들이 얼마나 폄하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들 삼십이 있었고 어린 나귀 삼십을 타고 성읍 삼십을 두었다고 하니까 그에 대해서는 목사들이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함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은 예표와 그림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보이지 않는 바알을 예표로 하고 있고 신약에 와서는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자가 무엇인가 하면 대표적인 것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두가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문자적으로 보면 100명이면 100명이 다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비유로 하여 사사시대에 바알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삼 년 동안 있다가, 죽어서 사밀에 묻혔다.”

 

사사 둘라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사가 되어서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기간 동안에 바알을 섬기지 않았는가 하면 이십 삼년 동안에 바알을 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는 한 번 설교를 하고 나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사 둘리는 이십삼 년 동안 사사로 살다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이십삼 년 동안에는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아 있는 그때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기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사 둘라가 있는 동안에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그냥 세우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사사로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사사 야일입니다.

그는 이십이 년 동안 사사로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그가 사사로 이십이 년 동안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입다와 삼손이 사사로 몇 년을 있었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기드온 같은 경우에는 사십 년을 사사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다와 삼손 같은 경우에는 겨우 몇 년을 사사로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사로 있는 동안에는 바알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입니다.

사사가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은 늘 율법을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십 이년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게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특히 이 야일에 대해서 목사들이 너무 함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이 없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게 이십 이년 동안 정말 잘 다스린 사사입니다.

 

외모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자식이 많고 적음이 무슨 흠이 됩니까? 예전에는 그 당시에는 그보다 더 많이 자식을 두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조금 이 세상에서 풍족하게 살았다 해서 그를 폄하를 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자이고 더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를 폄하를 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폄하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1절을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사사 야일입니다.

그는 최소한 일을 만드는 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과 같이 일을 만드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되고 있지 않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사로 세움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그가 사사로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일만 만드는 목사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사기를 보면서 특히 사사 야일에 대해서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를 폄하하고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사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십 이년 동안에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도록 잘 다스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사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 시대 목사들이 사사 야일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일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이 야일을 하나님께서 잘못 세우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잘못 세우시는 분이 되고 맙니다. 사사 야일을 폄하하는 것은 하나님을 폄하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까?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알의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은 사사 야일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교회 안에서 일은 안 하고 일만 만들고 있는 자로 살아가면서 바알에게 미혹이 돼서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십이 년입니다.

작은 기간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사사 야일이 있는 이십 이년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주의에 빠져 바알을 섬기고 있는 목사들이 사사 야일에 대해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한 일입니다.

그것을 성경을 보고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가 사사로 일을 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은 그가 있는 동안에 바알을 섬기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말씀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사사 야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로서 일을 잘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전체를 생각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장만 보고 그 단어만 보면 반드시 억지로 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불행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기에게서 듣는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사 야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셔서 사사로 삼으셨을 때는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십 이년 동안을 짧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른 마리의 나귀를 타고 다녔고, 성읍도 길르앗 땅에 서른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 성읍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봇야일이라 불린다.”

 

사사 야일입니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봇야일이라는 뜻은 야일의 촌락이라는 뜻이고 그가 있는 동안에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아들 삼십입니까?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다윗 왕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솔로몬 왕은 어떻습니까? 사사 야일이 아들 삼십이 있는 것이 문제라면 우리는 다윗이 쓴 시편과 솔로몬이 쓴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되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이 시대 목사들은 사사 야일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 야일은 사사로서 충분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봇야일이라는 촌락을 세워서 그가 다스리던 것을 지키고자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 야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십 이년 동안이나 바알을 섬기기 않게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게 잘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야일은 죽어서 가몬에 묻혔다.”

 

사사 야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신 자입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가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이 시대 목사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을지라도 이스라엘을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게 잘 다스렸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입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