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746강,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윤주만목사 2020. 12. 11. 07:20

746,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고린도전서1:10-17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세례

이 시대 모든 교회는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문자적으로도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주님께서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어서 세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베풉니다.

저 역시도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는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침례교회를 다니게 된 후로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번역상의 문제지만 분명히 침례가 맞습니다. 지금 침례냐 세례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갑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의식을 행함으로 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이제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마지막을 보면 제자들에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어느 누구도 지금 교회 안에서 베풀고 있는 세례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또 기초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베풀고 있는 세례 역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육체로 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삼가 하고 있다면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율법의 행위는 믿음의 반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합니까?

그래서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면 그것은 육체의 행위가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했는가 아니면 사람의 이성으로 판단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위,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의 모든 행동이나 동작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동작은 다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했더라도 그것을 내가 했다면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이 행위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행위를 하나님을 위해서 하면 마치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행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그런 생각이 믿음을 방해를 하고 있고 성경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리고 외식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행위를 보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겉을 좋게 꾸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겉을 좋게 꾸미는 모든 행위를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겉을 좋게 꾸미는 행위에 대해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입니다.

정말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일을 알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를 삼가 하면 그것이 율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만 율법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행위를 내가 삼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를 보고 믿음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것은 국어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본입니다.

이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무엇이고 행위가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기본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위를 하고 믿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내가 예배를 드리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내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내가 기도를 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상대를 알고 믿는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알고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세례를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될 수 없고 내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다면 율법의 행위가 된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례입니다.

제가 율법의 행위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반대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고 있고 그것이 또 교회 안에서 삼가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 아래 있다면 그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된다는 것을 굳이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지 저주를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영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영생을 믿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예표와 비유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함으로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이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13절을 보면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다 같은 말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복음 자체로 분쟁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일로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쟁이라는 것도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제가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교리가 있기 때문에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교리를 배우기 때문에 그 교리 안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다 같은 말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는가 하면 성경에서 수많은 예표와 비유들을 통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알고 믿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그 역시도 내가 믿는 것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같다면 그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알아서 믿고 있다는 말씀이고 나 역시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자기가 믿는 것이 같기 때문에 반드시 같은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신명기의 율법에서 양털과 베실을 썩어 짠 옷을 입지 말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양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고 베실은 내 의입니다. 이 두 가지의 의를 함께 취해서 구원의 옷을 입지 말라고 말씀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저 사람도 그것을 알았다면 같은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결국에는 같은 말입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믿는 다는 것은 막연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아서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있고 저 사람도 그렇게 믿고 있다면 같은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그가 하신 모든 구속의 일을 전함으로 해서 성도들이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저 사람 역시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나는 신명기의 율법을 구원의 옷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실제 그 옷을 사람이 입는 옷으로 보고 있다면 같은 마음도 될 수 없고 같은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성경을 보고 그 문자에 따라 행위를 하는 사람은 같은 말을 할 수 없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 두 사람이 둘 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절대로 같은 말을 할 수도 없고 같은 마음이 될 수도 없고 같은 뜻을 가지고 온전히 합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문자를 보면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그가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병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문자적으로도 기록이 되어 있어도 두려움이 없이 종교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한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입니다.

지금 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문제는 모두가 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했고 아볼로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분쟁이 있었는데 나는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고 나는 아볼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초대교회입니다.

당시에는 이방에 복음이 처음 전파가 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고 초대교회와 같이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글로에의 집 편입니다.

글로에의 집이 교회로 사용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글로에가 당시 복음을 듣고 있는 가운데서 사도 바울에게 서신을 보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 집에서 성도들의 모임이 있었고 그러다보니까 그 집 편에서 사도 바울에게 서신을 보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분쟁입니다.

사실 복음에 반하는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분쟁은 사실 그렇게 크게 복음에 반하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해서는 안 되는 분쟁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은 니골라당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담임 목사가 있고 그가 거의 제왕적인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도 담임 목사의 제왕적인 뜻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달랐습니다.

건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을 갖는 시간도 일정치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에 사람이 모이면 예배를 드리는 그런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이 모이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같이 자유가 있는 시대가 아니라 종들도 많이 있었고 또 사람들이 각각의 일이 있었고 로마와 유대교의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고 그럼으로 몇 사람이라도 모이면 그때 복음이 있는 사도들이나 장로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12,“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교회입니다.

처음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라는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제 사도 바울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상태고 아볼로가 그리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여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사도들이 처음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사람들이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 사람에게서 복음을 듣다 보니까 자기가 들었던 그 사람에게 신뢰를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아볼로에게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에게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복음을 전했지만 듣는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서 듣다 보니까 아니 또 여러 사람에게서 복음을 듣다 보니까 자기에게 더 좋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그런 것으로 분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사도 바울이 아볼로가 그리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어도 그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 전하는 사람을 보고 분쟁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아예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어느 목사가 좋다고 하는 것은 사실 지금 이 말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초대 교회는 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고 이 시대는 교회에서 전하는 사람들이 전혀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와 지금의 교회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 안에서 분쟁이 있는 것을 성경과 비교를 하면서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많은 교회에서 분쟁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아예 복음 자체가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고린도교회에서 하고 있는 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이성에 따르는 분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도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이렇게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있는가 하면 고린도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에 집중을 하지 않고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분쟁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왜 듣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지금 고린도교회는 복음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복음을 듣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단 하나의 목적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는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는 교회들이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습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습니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자랑질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럼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되는 것이지 지금 누구에게 속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성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가 영생을 얻으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자라는 말씀입니다. 속담에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듯이 어떻게 해도 우리는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으면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누가 전하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듣고 믿을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초대교회는 참으로 복이 있어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보고 나는 누구에게 나는 누구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기 시작한 고린도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보고 나는 누구에게서 복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분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아까운 시간을 내서 왜 말씀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단 하나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영이 거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아볼로가 무엇입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3장에서 그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복음을 가지고 있고 전하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해도 그들은 주님께서 각각 주신 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고 성도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사역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웬만한 목사들의 설교는 미디어를 통해서 다 듣고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부 교인들은 거의 기독교 방송 같은 것을 틀어 놓고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역자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 사역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여러 사람이 가서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이런 분쟁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고린도교회와 같은 이런 분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분쟁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세례,

이제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 세례는 사실 기독교만의 의식이 아니라 불교에서도 불자가 되기 위한 의식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라는 이름이 아니라 불자가 된다는 것을 의식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겠다는 것입니까? 이제 앞으로는 세례를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국어를 모릅니까?

아니 헬라어를 그렇게 잘한다고 하는 그들이 헬라어의 문법을 모르고 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라고 하는 말씀입니까? 세례를 주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까?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는 말씀은 세례를 주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문자를 고집하는 그들이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을 감사하는가 하면 이제 17절에서 그 결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보면서도 세례를 굳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8: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사도행전11:16절을 보면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고린도전서12:13절을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경의 문자입니다.

저 역시 그것을 반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기초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세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먼저 알고 그 기초를 세우고 나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을 하셨다 해도 세례에 대해서 기초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 말씀의 뜻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그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이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사도행전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가지고 마태는 그렇게 기록을 했고 누가는 사도행전 1장의 말씀과 같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 입니까?

성령 세례입니까? 저는 마태가 기록한 말씀도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태도 물세례를 주라고 그렇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말씀은 똑같은 성령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마태가 기록할 때 그렇게 기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물세례입니다.

그것을 이 시대 주어야 합니까? 물론 빌립이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에디오피아 간다게의 내시에게 광야에서 물이 있는 것을 보고 세례를 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성경은 성령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물세례를 받습니까?

그리고 또 성령 세례를 받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는 성령 세례를 가르쳐 주기 위한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은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하여 우리가 물에 완전히 잠겨서 죽고 다시 사는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새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의식입니다.

그리고 외식입니다. 또한 삼가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새로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 물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과연 성령 세례를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무지합니다.

이 시대 대형교회의 목사들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집회를 하면서 오늘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수시로 받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의미도 전혀 모르고 하는 자기들의 이성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고 교인들은 아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겠다는 것입니까? 이제는 물세례를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이 문법도 모르는 목사들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고 거룩한 의식으로 외식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받는 것 이와 같습니다.

유월절이 있습니다. 그 절기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월절을 어떻게 먹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과 진짜 유월절에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지팡이를 짚고 급히 먹는 것을 병행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지팡이를 짚고 급히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 문자적으로 적혀 있는 진짜 어린 양을 잡고 무교병을 만들고 쓴 나물과 함께 먹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치 물세례가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과 같이 이미 외식이고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결론입니다.

분쟁에 대해서 그리고 세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결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문자적으로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물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물세례를 주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장로교는 세례를 주고 있고 침례교는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의식을 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갈라디아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성령이 오시고 그것을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는 굳이 물세례를 받지 않아도 그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서 구원을 받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외식을 했어도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는 외식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물세례는 종교에 의해서 의식화 되어 있고 그것은 외식이고 삼가 지키는 것임으로 율법의 행위가 됩니다.

 

복음을 헛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물세례를 주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세례를 주는 행위를 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고 그것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오직 복음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외식이 아니라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