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증거
요한복음 5:31-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증거
모든 일에는 사실 관계를 따지기 위해서 반드시 증거가 필요합니다. 만약 증거가 없이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오히려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냥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맹목적이고 이 세상의 종교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이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믿음이 아닙니다.
증거는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옳다고 하는 것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증거를 해 주지를 않으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누구도 인정을 해 주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를 하면 참되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예수님에 대해서 스스로 증거를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증거가 무의미 해 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누군가가 증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말씀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하나님이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듣고 납득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증거가 되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증거가 가능한 확실해야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늘 마음 한 편에서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5:37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누가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증거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친히 증거를 해 주셨습니까?
증거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증거에 대해서 믿지를 못하고 또 증거를 이해하지를 못해서 증거를 보고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충분히 증거를 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 주시기 위해서 기록을 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무슨 성경입니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이고 또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전입니다 바로 구약 성경 자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
성경은 예수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 답이 예수에 대해서 안 나오고 있는 사람은 사실 증거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증거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십계명의 하나입니다 만약 이 말씀을 보고 해석을 했을 때 그저 살인하지 말라는 육적인 것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사람만이 성경에서 증거를 찾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이 증거를 해 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거의 육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으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의 살인입니다
사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증거를 잘 모르다 보니까 율법적인 살인은 안 하고 있을지 몰라도 영혼의 살인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영혼을 살인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양심에 가책을 받지도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르게 되면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모든 성경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으로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증거를 성경을 통해서 아주 잘 보고 있고 또 증거를 가지고 있는 성도라고 믿어도 됩니다.
시대가 혼탁 합니다.
증거를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제시를 해 주고 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약 성경을 그토록 조상 대대로 어려서부터 보았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 같이 이 시대 역시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고 복을 더 많이 받고 살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럼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다른 것을 보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만 보여야 내가 하나님의 증거를 바로 받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가 안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는 그저 자기들의 필요에 의한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증거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성경이 예수에 대해서 한 결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증거가 사실 필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누구를 증거하고 있습니까?
아마 거의가 율법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라, 하지 말라, 이것에 대해서 증거 하기가 너무도 바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증거를 할 것입니다 사실 율법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을 증거를 해 주고 있는지 그 근본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증거가 무엇 입니까? 증거라는 말은 법정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법정에서 증거를 가져오라 증거품을 내라고 요구 합니다 그 증거를 조사해서 증거가 정확하면 유죄가 되기도 하고 무죄가 되기도 합니다.
증거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법정에서 이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죽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결백하다 해도 이 증거가 없으면 무고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세상 법정에서 이 증거로 인하여 죽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데도 증거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람을 살리는데도 증거가 필요합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독제가 있을 때 사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함을 해서 죽였습니다. 그때 그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그 증거가 참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증거를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그 증거를 토대로 해서 그들을 신속하게 사형에 처했다는 것이 과거사를 통해서 이미 밝혀지고 있습니다. 증거라는 것이 바로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증거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증거에 대해서 성경 속에서 찾아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증거가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이 있는데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빛과 어두움을 말할 때 빛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 것은 빛을 볼 수 있고 어떤 것은 빛을 볼 수 없습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빛을 본다는 말은 살아 있어야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다는 말씀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살 수 있는 그런 증거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 보내심을 받은 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이 와서 그 빛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람들은 영의 눈이 가려져 있어 자기들이 보고 있는 육의 눈으로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율법으로 빛이냐 어두움이냐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빛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세례 요한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입니다
요한은 그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 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나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를 증거 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증거 해 주시고 있습니다.
증거라는 것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어떤 사람이 증거 할 수 있습니까? 증거 하려면 자기가 본 사람이라야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보지 않은 것을 증거 하려면 확실치 못하니까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다고 하더라. 이 정도지 실제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말을 못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진짜라고 주장을 하다가도 반대편에서 강하게 다시 물으면 글쎄요? 하고 뒤로 물러서 버립니다.
왜 그렇게 하냐면 못 봤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증거를 하려면 확실하게 본 것을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본 것을 증거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진짜 보아야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안 보고 증거 하려고 하니까 교회 다니면 구원 받는다고 하더라 한번 다녀봐라 이정도로 밖에 말을 못 합니다 자기도 갈지 안 갈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다니다 보면 구원 받는다 하더라.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증거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증거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요한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증거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증거를 가지고 오신 증거가 무엇 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증거 해주는 그 증거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33-35절을 보겠습니다. (신 183쪽)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를 본 자가 증거 하였으니...
본 자가 증거 하였습니다 실제로 와서 보니까 예수님께서 죽어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죽을 시간입니까? 죽을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적으로 죽을 시간이 아닙니다. 죽을 시간이 아닌데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못 박는다고 금방 죽는 것이 아닙니다.
와서 보니까 곁에 있는 강도들은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곁에 있는 강도들 보다 견디지 못해서 빨리 죽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곁에 있는 강도들 보다 견디지 못해서 빨리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니까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많이 흘려서 죽었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려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피를 흘리는 결과로 죽었다면 강도들 보다 오래 견뎌야 합니다. 강도들도 같이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것은 옆구리를 찌르니까 피가 나오고 물이 나온 것을 본 자가 이것을 증거 했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덤 속에 장사 지냈는데 그 속에서 살아 나셨습니다. 살아나다 보니까 예수님은 진짜로 안 죽었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줄 알고 장사 지냈는데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창으로 찌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은 죽지 않아서 살아났다고 할지라도 창으로 찌른 사람은 아니야 진짜로 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찌르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찔러서 피와 물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안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봤기 때문에 본 자는 확실히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도 증거 하려면 본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 자가 안 되면 안 됩니다 본 자가 아니면 증거를 하면서도 확실하게 증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면서 너희들은 성령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라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에 대하여 증거 할 만 한 자신감들이 없었습니다.
후에 성령이 임하여 확실한 것을 보니까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확실하게 보고 증거를 해야 하는데, 진짜 우리에게도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본 것을 확실히 증거 한 것 같이 그런 것이 필요 합니다 예수님을 찌르니까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놀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었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0:17-18절을 보겠습니다. (신 163쪽)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목숨을 스스로 버릴 것을 받아 가지고 오셨습니다. 내게서 이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 하셨지만 그 십자가의 결과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십자가의 결과로 죽었다면 강도들 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죽어야 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형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 양 편에 있던 강도들도 똑같이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만 채찍으로 맞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형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십에 하나 감하는 채찍을 때립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사실 생 사람을 십자가에 달아매면 며칠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하는 채찍을 때리는 이유는 거의 반을 죽여 놓고 십자가에 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똑같이 십자가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더 오래 살 수 있습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양 편에 있는 강도들 보다 더 오래 살아 계실 수 있습니다. 먼저 이런 사실들을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더 오래 살아 있을 수 있는데 먼저 운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얼마 안 되서 운명 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자가 확실히 예수가 죽었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선택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계시를 보고 증거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99쪽)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 했습니다
확실하게 봐야만 증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확실하게 안 받으면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 왜 귀향 갔습니까?
요한계시록 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99쪽)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밧모 섬에 간 이유가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해서,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증거 하기 위해서 밧모 섬에 갔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이 자기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 갔지만 밧모라는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했습니다.
증인 이라는 것은 본 사람이라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보지 않은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확실히 봐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죽임을 당 했습니까? 증거 하려고 하다 순교 했습니다
본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은 분명히 눈으로 보아야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하심으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내 안에서 확신이 되어 지기 때문에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대 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런 확신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9절을 보겠습니다. (신 405쪽)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저희가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 했다고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자기가 가진 것을 그대로 증거 했습니다 가진 것을 증거 하니까 죽임을 당하고 유배를 보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도 그렇게 될 것이 예언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어야 증거 합니다.
내 집에 아주 특이한 난이 있습니다. 이 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난에 대해서 확실하게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난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남에게 들었다면 확실하게 증거를 못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이 성령이 내 안에 있어야 증거를 강하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증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처음에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성경을 볼 때 예수가 안 보이면 그는 증거를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성령이 내 안에서 감동을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상과 어떤 음성을 듣거나 또 기도 응답을 받은 그것을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증거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에 대해서 바로 안다면 그것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증거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해도 바르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은사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제가 은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은사가 마치 자기의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12쪽)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준다고 하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은 은사가 아니라 바로 보혜사 성령입니다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진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진리의 성령이 임재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진리에 대해서 거부를 하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입니다
말씀만 있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진리를 아는 사람을 성도라 부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11쪽)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증거를 가진 자와 싸웁니다.
마지막 때 싸움은 증거를 가진 자와 싸웁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증거를 가진 사람들은 후에 별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잡아 줍니다. 증거가 없는 사람들은 잡지 않습니다.
증거 있는 사람을 잡습니다.
증거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편이 아니라 사단 편입니다 사단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싸우려고 서 있더라. 우리가 그들과 더불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증거입니다
이 증거가 확실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 했습니다 증거는 너무도 중요 합니다 사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이 증거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과 가라지들의 싸움이라고 보아도 맞습니다. 교회는 지금 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와 누구의 싸움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과는 사실 싸우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고자 하는 상대는 바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특히나 영의 싸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와 싸움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있는 율법주의자들과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증거를 가진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가 없는 쭉정이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둘은 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심각한 영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증거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증거는 어디에서 사용 됩니까? 법정에서 사용되는 것이 증거입니다
법정에서 판결하는 자는 판사입니다
그리고 검사가 기소를 합니다. 검사 옆에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죄인을 앞에 두고 판결을 합니다. 이때 판사는 무엇에 의해서 판결을 내리냐면 법적 증거를 가지고 판결을 내립니다. 이 사람이 죄인이다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이다 할 때에 이 사람이 진짜 죄인이라고 증거 할 수 있는 물품을 증거품이라고 합니다. 물적 증거입니다 이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증인이라고 말 합니다 증인과 증거품을 다 검토해서 판결을 내립니다. 판사가 있고 검사가 있고 변호사가 있고 증인이 있고 죄인이 있는 것 같이 하늘에도 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사 이십니다 검사가 있습니다.
검사는 죄인을 고발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 합니다 검사는 사단입니다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까? 사단이 무작정 너는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입니다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그것에 비추어서 죄가 드러나면 율법을 어겼다는 증거를 가지고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바로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제출하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생명과 사망입니다
이 율법은 모든 것을 항상 다 지켜야 하지 만약에 하나라도 못 지키게 되면 반드시 그 핏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가면 반드시 율법이 있는 법궤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릴 때 이 법궤 앞에서 자기들을 대신한 짐승의 피를 쏟아 부었습니다.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반드시 죄를 진 사람에게 핏 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율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것을 어겼을 때는 핏 값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변호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변호사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말은 대언자입니다 예수님이 대언자이십니다
요한일서 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88쪽)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가 바로 변호사입니다 보혜사도 역시 변호사입니다 중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변호사입니다 판사는 법에 의해서 재판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법에 의해서 법적으로 오늘 우리를 재판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법적으로 재판을 한다면 무슨 판결이 내려집니까?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사형 판결이 내려집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사형 언도가 내려지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욥은 어떨까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다면 욥도 마찬 가지입니다
왜 욥 같은 사람도 사형 언도가 내려지냐면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도 없으면 욥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욥 같은 사람도 판사 앞에 가면 사형 언도가 내려집니다. 그 사형 언도는 검사의 논고에 의해서 사형 언도가 내려집니다.
이 세상의 법과 율법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법은 도적질을 했으면 도적질에 대한 죄의 값을 지불하면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도적질을 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액수를 도적질해도 사형을 처하지는 않습니다. 도적질을 한 사람은 최고 징역 몇 년까지라고 법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과 이 세상 법의 차이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도적질을 한 사람을 이 세상의 법으로 살인죄로 기소를 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만약 검사가 그의 죄가 나쁘다고 판단을 해서 살인죄를 추가 하려고 하면 죄인이 항소를 할 수 있고 또 판사도 그것을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러나 율법은 다릅니다.
비록 그가 도적질을 했다 해도 율법은 살인죄까지 함께 기소를 하고 있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그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99.99%를 지켜도 안 됩니다
세상의 잣대는 분명이 99.99%를 지킨 사람이 의롭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범한 자가 되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핏 값을 주어야 합니다. 그 한 가지가 우리 사람이 볼 때는 충분히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된다 해도 율법은 반드시 핏 값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법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인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살인죄를 기소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율법은 그렇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비록 간음을 안 했어도 살인을 했으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살인만 했어도 그 사람은 간음도 역시 함께 한 자라고 율법은 기소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비록 살인을 안 했어도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그렇게 기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율법을 아무 생각 없이 지키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의롭다고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살인죄로 기소를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검사가 되어 우리를 참소 하는 것입니다
검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찾아내려는 것이 검사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게 있는 아주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참소를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죄를 어떻게 하든지 없게 하려는 것이 변호사입니다
죄인이 재판 받을 때 반드시 변호사가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국선 변호사라도 세웁니다. 검사는 죄를 찾아서 구형을 하고 변호사는 어떻게 하든지 죄가 없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국선 변호사가 섰을지라도 그 변호사는 죄인을 위해서 말해 줍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반드시 변호사가 있습니다. 악한 죄인을 변호 하다가 안 되면 끝에 가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정상을 참작해서 선처를 바란다고 말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 합니까? 변호사니까 선처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가 없으면 선처를 바란다고 아무리 간절하게 말해도 판사가 들어 주지 않습니다. 판사는 변호사가 선처를 바란다고 해서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판사는 법에 근거에 의해서 판결을 합니다.
변호사가 선처를 바란다고 하면서 죄 없게 만들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빚을 진사람 같으면 돈을 갚았다는 증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판사 앞에 올리고 이 사람 빚을 이렇게 갚았으니까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갚지도 않고 그냥 선처를 바란다고 하면 그것은 안 됩니다
갚았다는 증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증거를 가지고 우리를 변호 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5:7-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인데 성령과 물과 피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합하여 또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물, 피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다 증거입니다 성령은 무엇을 증거 합니까?
변호사가 입회 시킨 증인입니다
성령이 와서 증거 합니다 물은 말씀을 가르쳐서 물이라고 합니다. 피의 말씀 성령께서 피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 합니다 피는 죄의 결과입니다 죄를 진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는데 죄를 진 사람의 죄의 대가를 피를 흘렸다고, 예수님께서 흘렸다고 그것을 증거 하는 말을 합니다.
성령께서 합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와 성령은 하나입니다 이 하나를 가지고 증거를 합니다. 예수가 갚았다고 증거 합니다 우리의 죄 값으로 예수가 피 흘림으로서 그 죄 값을 갚았다고 성령께서 증언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증거 그 증거를 듣고 빚을 갚았으면 판사는 무죄를 선언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듣고 무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요한계시록 12:10-11절을 보겠습니다. (신 411쪽)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우리 주님께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참소하던 자가 쫓겨납니다.
이 말씀은 변호사 앞에서 검사가 할 말을 잃은 것입니다 검사가 이 사람 죄인이다 참소하니까 변호사가 그 값을 갚았다고 말하니까 할 말이 없어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난 것입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무엇을 통해서 이겨야 합니까?
자기의 증거 하는 말로 인하여 이겨야 합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 스스로가 재판석 앞에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판사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으려면 이겨야 합니다. 증인이 와서 갚았다고 하면 본인은 뭐라 해야 합니까?
판사 앞에서 맞습니다.
내 것을 갚아 주었습니다. 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안 갚았을 지라도 내 것을 갚아 주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내 것을 갚아 주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증인이 와서 빚을 갚았습니다. 하면 판사가 물어 봅니다 너 진짜로 갚았냐고 물어 봅니다 그러면 본인은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갚았다고 해야 합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전에 갚았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를 갚으셨습니까?
얼마를 갚았습니까? 전부 다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조금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 죄 값을 다 갚았다고 나도 증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증거 하는 말로 인하여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 죄 값을 갚았다는 그 말로 인하여 이긴다는 것입니다
재판관 앞에 가서 어물어물하다 보면 정죄를 당 합니다
죄인이 똑바로 대답을 안 하고 어물어물하다가 판결이 내리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물어 볼 때 맞습니다! 당당하게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증인이 와서 이야기 할 때 그 말이 맞는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합니다.
안 갚았는데도 증인이 와서 이야기 하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안 갚았으면 자신 있게 대답을 못 합니다 증인이 와서 증언을 해 줘도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 값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고 갚았습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 하세요 갚았다! 증거 하는 말로 인하여 우리는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 값을 갚았으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죄가 없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갚아 주었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이긴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교만한 것이 아니냐고 말 합니다
그러나 결코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10억의 빚이 있습니다. 그 10억의 빚은 내가 갚을 능력이 없는 빚입니다 이런 빚을 내 형이 와서 갚아 주고 내가 갚아 주었으니까 너는 갚았다고 말하라고 할 때 그 사람이 가서 내가 갚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교만한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갚아 주었어도 갚았으면 그것은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상합니다. 갚았다는 말을 못 합니다 그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갚아 주셨다는 것을 믿고 또 갚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말로 이겨야 합니다. 말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판사 앞에 가서 말을 잘해야 합니다. 말로 이긴다고 성경에 기록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사실 때문에 밧모 섬에 들어 간 것입니다
증거 하는 이가 셋인데 물과 피와 성령 이 셋이 우리를 증거 해 줍니다. 증인이 되려면 본 자가 되어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A도 빚이 있고 B도 빚이 있고 C도 빚이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와서 이 세 사람 빚을 갚아 주었습니다. A만 빚 갚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A가 들었습니다. 네 빚을 내가 갚아 주었다 너 뿐 아니라 B, C 것도 갚아 주었다 A는 실재 자기가 증거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실재 들었고 깨달았으면 B, C에게 가서 네 빚 갚아 주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었어도 자기가 자기 빚이 갚아 진 줄을 잘 모르면 B, C에게 가서 당당하게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빚을 갚아 준다고 하는 것 같더라 오늘날 한국 교회 신앙인들이 어떤 상태 입니까?
예수 믿으면 죄 용서 해준다고 하더라.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더라. 그런 정도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더라가 아니라 예수 믿으면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갚아 줄 것이 아니라 이미 다 갚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갚았다는 것을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면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순교를 당 했습니다 증거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본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본 사람들은 그냥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면 나는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 할 수 없습니다. 보지도 않은 것을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확신이 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증거 하는 것이 성령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증거 하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기도 하다가 능력 받으면 성령 받았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구원 받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사입니다. 성령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증거 할 수 있어야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3쪽)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다 깨달았다면 내 속에 성령이 왔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왔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말씀을 전하지만 극히 일부분의 사람만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도 그 말씀이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의로워 져야 하고 경건해 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져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믿어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땅 끝까지 증거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증거 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갚아 주었다
판사 앞에 가서 내 빚만 갚아 준 것이 아니라 B, C 빚도 다 갚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이 나를 증거 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내가 B, C를 증언 하는 것입니다 내 평생의 죄를 갚았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내 평생의 죄를 갚았다고 믿는 사람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슴에 박혀야 합니다. 믿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증인입니다
예수의 증인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우리가 못 하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대신 갚아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증인입니다 여러분이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해 주었다 이것이 예수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증인입니다
증언을 재판 석에서 잘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증거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노아 홍수 후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것은 홍수가 나면 죽을 것이라 해서 쌓은 것입니다
증거 하는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9:11-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1쪽)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입니다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인데 사람들이 이 증거를 믿었으면 바벨탑을 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언약의 증거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언약의 증거를 믿지 않으니까 바벨탑을 쌓았고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흩어 버리셨습니다.
신약에 와서 우리에게 증거를 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증거는 예수를 믿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산다는 것이 언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으면 틀림없이 산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지 않을 것을 틀림없이 믿었다면 굳이 바벨탑을 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틀림없이 홍수가 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홍수가 날 것을 믿고 만들었을까요?
혹시 입니다. 혹시 홍수 나면 도망가서 살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혹시 라는 것이 없습니다.
완전하고 틀림없습니다. 무지개 증거가 홍수로 덮이지 않을 것이 확실 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는 죄인들이 구원 받는 피가 되는 것이 확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혹시 내가 죄를 짓는 것으로 심판을 받지 않을까 고민을 합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확실하다면 혹시 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혹시 하다가 결국에 그 혹시가 사실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든든한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믿음이 우리를 얼마나 든든하게 세워 주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 있으면 혹시 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절대로 지옥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들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부분적인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마지막 선언이 다 이루었다 입니다. 다 이루었으면 완성 아닙니까? 예수가 완성한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완성한 것을 안 받아 들입니다.
예수가 완성 했다면 우리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가 완성한 것을 우리가 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종교적인 모든 행위가 사실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바벨탑을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증거를 안 믿습니다. 피의 증거는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 확실해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무엇을 해야 구원 받는 다면 이것은 확실치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분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고 갚았다면 그것이 믿어지면 자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 하지를 못 합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이 말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다 이루지도 않은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이루지도 못했는데 무엇 하러 예수를 믿습니까?
내가 이루려고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앞에 와서도 편히 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셨다면 내가 이룬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다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의 증거를 가졌습니까?
우리는 이 증거를 가졌습니다. 우리 사는 날 동안 해야 할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전도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예수 믿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믿는 다고 하는 것이나 예수를 전하는 것이나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다 갚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내가 증거 하는 것은 당신 죄도 예수님께서 다 갚았습니다. 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값이 갚아 졌다는 것이 안 믿어지니까 갚아진 것이 믿어지도록 전달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예수가 그 사람 죄를 갚아 준 것이 믿어지도록 전하면 그 사람은 설교를 잘하는 것입니다 설교 잘한다고 하면 웅변 식으로 하거나 웃겨야 설교 잘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 사람은 설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웅변을 잘하는 것이고 잘 웃기는 것입니다 웅변과 설교는 다릅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뜻을 알고 전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는 곳 마다 무엇을 전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렸다 그 설교만 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그 설교만 했습니다. 아마 지금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만난다면 사도바울은 예수밖에 모른다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사도바울이 있다면 아마 이단으로 정죄를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느냐고 정죄를 할 것입니다
어디든지 가서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살아났다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 수 있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서 죽었다 그 말씀만 전 했습니다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다른 말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전하지 않겠다.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겠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일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교인이 많아야겠지만 아무리 교인이 많아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이고 있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증거 하려면 내가 봐야 합니다. 본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전달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안 됩니다 구원을 전달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구원 받지 못했으면 예수가 우리 죄를 사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잘못 하면 안 돼 이것을 잘해야 돼 그것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생 가르쳐도 구원 못 받습니다.
주일 못 지키면 지옥 가 이것 가르쳐 보세요. 십일조 안내면 지옥 가 이것 가르치면 구원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지옥 간다는 것을 백날 가르쳐도 구원을 못 받습니다.
예수를 가르치면 됩니다.
잘 가르쳐 주면 한 시간 만에라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 못하면 지옥 가 이것은 잘 해야 돼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도 지옥 갈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옥 가! 지옥 가!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압니다. 자기는 다 하는데 너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행위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천국 가려고 해! 그런 사람들은, 그 목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렇게 설교하면 천국 못 갑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천국 가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요즘도 종말론 자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해서 백날 가르쳐도 구원 못 받습니다. 666이나 이야기 하면서 종말에 대비 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대비 합니까? 한국에 아직 종말론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종말론 자들은 돈도 참 많습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 보면 대단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것 안하면 지옥 가 이것 모르면 지옥 간다고 그 말만 가르칩니다.
성도는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것만 말해야 합니다.
천국 가는 것을 말해 주면 지옥은 저절로 안 가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 아무리 가르쳐줘 보세요. 천국 가는 것이 안 받아 들여지면 그 사람은 그냥 지옥 가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 가르칠 필요 없습니다. 천국 가는 것만 가르치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 간다. 이것만 말하기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지옥 간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를 잘해야 합니다.
천국 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법정에 가면 두 가지 증인이 있는데 검사가 데려오는 증인이 있고 변호사가 데려오는 증인이 있습니다. 검사가 데려오는 증인은 이 사람 이런 저런 죄가 있다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율법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증거를 삼고 우리를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성령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데려오는 증인은 이 사람은 죄 값을 갚아서 죄가 없다는 것을 증거 해주는 증인입니다
판사 앞에 가서 여러분은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합니까?
변호사측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변호사측 증인이 되려고 하니까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호사측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 우리 삶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진 피고의 돈 갚은 영수증을 가지고 와서 언제 빚을 갚았다고 증언해서 빚이 없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호사측 증인입니다 검사 측 증인은 빚 장부만 가지고 옵니다. 이것도 죄, 저것도 죄, 죄에 대한 것만 가지고 옵니다.
교회 안에는 두 가지 증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검사 측 증인이고 하나는 변호사측 증인입니다 지금 예수 믿으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어느 쪽 증인이 더 많겠습니까? 검사 측 증인이 더 많습니다 교회 나오면 검사 측 증인이 되어서 이래서 천국 가겠어! 이렇게 하면 지옥 가! 율법을 가지고 죄인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검사 측 증인이 아닙니다. 예수의 증인입니다
예수의 증인은 피의 증거 하는 말로 인하여 우리가 이겼고 너도 이길 수 있다고 증거 하는 것이 변호사측 증인입니다 여러분도 증인이 되셔야 합니다. 이 증인은 성령이 임해야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 받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가 받아들여지고 믿어지는 것이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되고 그 증거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보상이 있습니다. 증인도 잘 서면 보상이 있고 잘 못서면 칼 맞습니다 이 사람 죄인이라고 했다가 칼 맞는 것입니다 이 사람 죄가 없다는 증인은 아무리 많이 해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사례를 합니다. 증인 서줘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31-32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증거는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는 다른 사람이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가 증거 하는 것이 아니고 증거 하시는 이가 따로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기 때문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가 부활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죽지 않는 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가 죄가 없으니까 살리신 것입니다
그 증거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역사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증거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나님의 증거로 살아 나셨습니다. 살아나신 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 같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또한 죄가 없어야 살아나는데 우리가 살아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 값을 갚으셔서 죄가 없기 때문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증거가 믿음으로 확증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있는 성도만이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 앞에 살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살아나게 될 줄 믿고 이것을 많은 사람에게 가서 증거 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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