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16:1-11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의 시편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다윗을 선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쓴 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고 또 인간 다윗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입니다
여러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으로서 시편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또 인간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시로 표현을 했다고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영의 일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16편입니다
인간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또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편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성경은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를 믿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목적입니다 이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구원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을 못보고 있기 때문에 믿음에 든든히 서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든든히 설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말씀을 한 그에 대한 말씀이 신약에 와서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시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히 이 시편을 보면서 감성에 빠져 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성에 빠지지 말로 다윗의 시에서 복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다윗의 시를 보는 사람들이 거의 육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보호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육적으로 보호를 해 주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육적으로 보호를 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 시를 보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았습니다.
사무엘서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다윗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왕으로 삼으시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다윗의 육체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서 자기도 다윗과 같은 시심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육체를 보호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께 피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까 바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육체의 일을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보호를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을 보호를 해 주신 것과 같이 자기도 다윗과 같이 고백을 하면 보호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든 말씀은 우리 인생의 육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다윗이라는 사람을 예표로 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 역시도 이 시를 통해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윗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 육체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그것을 위해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보호를 받는가를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육체를 보호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초대 교회에 순교를 당한 수많은 성도들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육적으로 보호를 받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그렇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 역시 육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더러 주님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
주는 나의 주시오니
당신은 나의 주라는 말씀입니다 주라는 말씀은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전체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때문에 나를 구워해 주실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지금 무슨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이 세상에서 왕이 되고 부자가 되는 그런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다윗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영의 일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에 있어서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입니다
이 세상 복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 성도는 이 세상의 복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다는 그 말씀은 영에 일에 있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왕이 되고 부자가 된 것을 보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복을 구하는 사람이 있고 오직 하늘의 복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함께 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이 세상의 복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이 세상의 복을 구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늘의 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아니 육체의 일로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는 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복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땅에 사는 성도들에 관해 말하라면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1:2절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성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성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성도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진 사람이 성도입니다 누가 거룩한 자입니까?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의에게 드리라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지체로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것을 믿고 우리 육체로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도를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성도가 많으면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존귀하다는 것은 높고 귀하다는 뜻입니다. 이 시대 그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보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은 물론 인간 다윗의 시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더욱더 고통을 당할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피로 빚은 제삿술을 그 신들에게 바치지 않겠으며, 나의 입에 그 신들의 이름도 올리지 않겠다.”
성경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누가 이 시편의 말씀을 보고 있는가를 알고 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다른 신이 세상에 있는 다른 신이라면 성경은 정말 이상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지도 않은 그들에게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괴로움을 더할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마치 허공에 대고 아무 의미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14절을 보면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우리는 정말 성경을 보고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었지만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자기는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냉정하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유대교를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삼위일체라는 신을 섬기고 있고 또 거기에 이스라엘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가 그대로 있습니다.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불렀던 이스라엘이 유대교라는 종교에 빠져 다른 신을 섬겼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사실 유대교와 뭐가 다릅니까? 정말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는 이 말씀을 상고하고 또 상고를 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신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시편에서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있어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다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영의 일을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종교에 의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서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분이 아니고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영의 일을 다윗은 육의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민수기14: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늘에 있는 기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다윗은 육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바로 깨달아서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땅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나안이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유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탐꾼을 보내서 그 땅을 탐지하게 했습니다.
천국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상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성에 생각이 나는 대로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땅을 같이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땅을 악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땅을 봅니다.
같은 천국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천국이 와 닫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정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세의 일을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구역이 그리고 그 기업이 얼마나 아름답다는 것을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좋은 생각을 주시며, 밤마다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시니,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훈계
잘못되지 않게 타일러 주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을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어떤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가 삼년을 밤낮으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너희가 잘못되지 않도록 성경에서 복음을 삼년 동안 가르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훈계를 하시고 있습니다.
왜 훈계를 하시는가 하면 우리가 영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훈계를 하시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도들이 있어서 성도들을 훈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훈계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록 훈계를 하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는도다
우리는 바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엇이 바른 교훈인지 그리고 사람의 교훈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종교 안에 들어오는 순간 어린 아이가 되어서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무엇에 대해서입니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영의 일에 있어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사도행전2:24-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시편의 말씀을 그래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지금 누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자기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8:1절을 보면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우편입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심으로 해서 우리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심으로 내가 요동치 않는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내가 요동치 않는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우편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대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우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계심으로 해서 우리가 요동치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 몸도 아무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구원입니다
다윗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편에 계심으로 해서 속죄를 받아 구원을 받음으로 해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영혼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다윗은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윗이 누구를 믿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었는가 하면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을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입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 시편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님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29-32절를 보면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쓴 다윗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이렇게 시편을 기록했지만 그가 죽어 장사가 되어 그 묘가 우리 중에 오늘날까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편의 말씀대로라면 다윗은 음부에 버리지 않고 거룩한 자로 썩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어서 썩었고 그 묘가 지금까지 우리 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 그는 음부에 버리지 않고 거룩한 자로 썩지 않아야 합니다. 시편의 문자만 보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께서 그렇게 되실 것을 다윗이 믿음으로 해서 다윗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면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음부에 바리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의 무덤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의 묘가 우리 중에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되실 것을 믿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음부에 버려졌습니다. 그의 육체는 썩어서 지금 무덤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쓴 시를 보면 그가 음부에 버리지 않고 거룩한 자로 썩지 않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는게 그것은 다윗이 실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되는 역사를 다윗이 믿음으로 썼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다윗 자신에 대한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말씀을 했어도 그는 죽어서 음부에 버림이 되어서 그의 묘가 우리 중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는 자기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함으로 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이 시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용입니다
우리는 정말 잘 살펴서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다윗은 이 사실에 대해서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사도 베드라가 우리가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어떻게 보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다윗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영이 거함으로 해서 우리 역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아니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입니다
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켜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음부에 버리시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거룩하신 영이 거할 수 있는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성도만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신 것과 같이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복음과 율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0) | 2018.12.30 |
---|---|
35강,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0) | 2018.12.24 |
33강,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0) | 2018.12.11 |
32강,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0) | 2018.12.03 |
31강,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0) | 2018.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