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베드로전서3:1-6절을 보면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를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는가 하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장의 말씀을 이어서 3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장절이 있지만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는 장절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베드로전서를 보면 그 말씀이 다 이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2장에서 말씀을 하고 이제 3장에서 새로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2장에 이어서 3장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장절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따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입니다
그 결론을 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영의 깊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1장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은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 거듭남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이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영의 거듭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썩어질 씨입니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씨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고도 거듭남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바로 영혼 구원을 위해서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썩지 아니할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사람들은 이 썩지 아니할 씨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썩지 아니할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을 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분명히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로는 우리도 역시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셔서 육체로 죽이심을 당하셨고 우리는 죄인으로서 육체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과 같이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 구원입니다
이 영혼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이 영이 살리심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이 베드로 전서는 거듭남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의 질문과 같이 두 번 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베드로전서에서는 썩을 씨로 난 것과 썩지 아니할 씨로 난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분명히 썩을 씨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육체는 죽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 것이 거듭남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안다고 하는 그들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썩을 씨와 썩지 아니할 씨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3장입니다
전혀 쌩뚱 맞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거의 육체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아내와 남편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교회 안에서 아내 된 자들은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거의 비유의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가 알 수 있으면 굳이 성령이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실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면 굳이 성령이 오시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 사람도 성경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보는 것과 교회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보는 것과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성령을 받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아니 세상 사람도 성령을 받은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면 남자를 우선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남자는 지혜가 있고 여자는 부족하니까 이 말씀 그대로 여자는 무조건 남편에게 순복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여자가 목사로 안수를 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0년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자들은 남편을 가리켜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여자에게 순복하는 것은 성경말씀에 비추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을 베드로전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면 어떻게 됩니까? 남편에게는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고 여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면 그 집안은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내가 된 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십시오. 그리하면 비록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말을 하지 않고도 아내 여러분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바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먼저 자기 생각에서 정의를 하고 나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이 바로 풀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앞에 있는 말씀과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 된 자들이 남편에서 순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이것이 실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순복을 하고 있습니까?
앞에서 아내 된 자들에게 남편에게 순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구원을 받으려면 누가 누구에게 순복을 하는 것이 됩니까?
에베소서5:32절을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아내와 남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가서 사도 바울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아내가 되고 남편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도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서 순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가정에 있는 아내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그의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성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3장에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사도 베드로는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아내 된 자들아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이 누군가 하면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에베소서에서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비밀을 아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비밀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에 대해서 아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고도 교회를 아내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의 남편도 됩니다. 그러나 교회의 남편이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2장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사는 가를 말씀을 한 것과 같이 교회도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사도 베드로가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이 말씀이 풀어질 수 있습니다.
순복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순순히 복종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교회를 아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을 함으로 해서 그 아내의 행위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아내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에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가 있습니다. 뒤에 남편과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고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지만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셋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8절을 보면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골로새서 2:7절을 보면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혹 도입니다
그것을 성경 밑에 보면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말씀에 순종치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베드로전서 2장 8절에서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데 그것을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아내 된 자들아 그 남편에게 순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렇게 아내가 순복을 하는 그 행위를 봄으로 해서 순종치 아니하는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남편에게 순복을 하는 것이 아내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말씀을 전하면 그 행위로 말미암아 혹 도를 순종치 아니하는 자가 있어서 그것을 봄으로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믿습니다.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을 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을 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도 베드로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고 남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저 세상의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내인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을 함으로 해서 그 안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의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을 하고 나서 그 아내가 어떻게 행위를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성경말씀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절대로 풀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실을 보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도에 순종치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멸망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가 이 시대 세워져 있는 교회를 보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가 아니라 초대 교회에 있던 성도들의 모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9:9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잠언 2:4-5절을 보면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정결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만 보고 있습니다. 정결한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그 정결한 행위가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저 그 문자의 뜻을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입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정결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성의 생각으로 아무리 정결하더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를 모르고 있다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정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그 의미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정결한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보고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저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그것을 알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초등학문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결입니다 교회의 정결한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행위가 있어서 도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라고 해도 그것을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지를 않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이미 설교에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정결한 행위라고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행위가 아닙니다.
반드시 정결한 행위가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에서 여호와 경외하기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정결한 행위를 함으로 해서 도를 순종치 않는 자들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아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꾸미며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여 겉치장을 하지 말고,”
신명기 10:17절을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내가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하면 그는 결국에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그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모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겉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성경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외모로 하지 말라고 하면 외모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가능한 교회를 더 겉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꾸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외모로 나타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뿐 아니라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외모로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입니다
그것도 외모가 됩니다. 또 그 안에 성물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좋은 물건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경건의 모양을 내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외모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눈에 보입니까?
그것은 다 외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외모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아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고 남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외모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모든 것을 다 겉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외모로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어느 교회가 이 시대 교회와 같이 화려하게 외모를 꾸몄습니까? 기독교라는 종교가 태동이 되면서 교회라는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에베소서 3:16절을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교회입니다
보이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교회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사람이 보여 있는 것을 교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새번역에서는 속사람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우리 겉 사람은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 거듭난 성도에게는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거듭난 씨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무지에 가깝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이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 영의 일을 깨닫게 하시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는 썩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거의 다 썩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썩지 아니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이 썩지 아니할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것으로 하게 하시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럽고 냄새가 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깨닫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 일을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값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행위로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거듭난 생명이 값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하는 씨로 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를 값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 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였습니다.”
전에
구약의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들이 어떻게 순복을 하였는가를 성경이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그 여자들을 실제 여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은 예표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부부는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세상의 부부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 모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 구원을 받는 것을 소망을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도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가 아닙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더욱 더 외식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외식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하던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선을 행하고, 아무리 무서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라의 딸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26절을 보면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교회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을 지키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은 영이 있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그때 사라를 교회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갈과 사라를 비유로 해서 땅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교회와 구원을 받은 위에 있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 대해서 정말 바로 알아야 하고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라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입니다 사라는 교회를 예표로 하고 있고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한 것과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초대교회에 새대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이 영혼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아내가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움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교회와 같이 정결한 행위를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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