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9강,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윤주만목사 2018. 7. 28. 08:08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신명기17:8-13절을 보면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무릇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법률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고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하리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다 알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신앙을 보면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하면 내세를 생각하고 구원을 받기를 위해서입니다. 이 구원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이성적인 생각들이 도리어 진리를 아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고 구원을 방해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율법은 하나하나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버림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을 향해서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잘못을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서 이 율법을 말씀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서 악을 행하고 있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며 깨달아야 합니다.

불구경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서 거의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그렇게 봄으로 해서 성경에서 경계가 되고 있는 말씀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를 않고 남의 집에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이 모든 성경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계된 말씀은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죽고 사는 문제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은 거의 다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보고 있습니다. 특히 신학에서부터 목사들이 그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중에 제사법과 시민법에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모든 율법은 다 폐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보고 그 안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면 그것이 율법이 되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알게 되면 복음이 됩니다. 문자 그대로 보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신명기의 말씀도 그저 이스라엘의 시민법 중에 하나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재판 제도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재판 제도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세상의 재판 제도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보고 세상의 재판 제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하고 있는 판결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마치 이 세상의 재판장까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법과 제도에 따라 생긴 재판장이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세우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재판과 성경에 있는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세상의 재판을 하는 것과 연관을 지어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이미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재판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서, 피 흘리는 싸움이나, 서로 다투는 일이나, 폭행하는 일로 당신들에게 판결하기 어려운 분쟁이 생기거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그 사건을 가지고 올라가서,”

이스라엘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네 성중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세상의 어느 성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율법에 정 하셨습니다.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시민법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법이다 보니까 폐하여졌다고 생각을 하면서 굳이 자세하게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민법이 폐하여졌습니까?

제사법과 시민법만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모든 율법은 분명히 폐하여졌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그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내가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에서 의미를 알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입니다

분명히 다투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율법의 말씀과 같이 다투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율법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성도가 세상에서 살 때 살아가는 일로 해서 다투는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도라도 할지라도 다투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교회 밖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툼이 때로는 송사로까지 발전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7절을 보면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교회입니다

반드시 이 송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 인에서도 이와 같이 송사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고린도전서 5장에서부터 연결이 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다 설명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 인에 음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탐하는 자가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자가 있습니다.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이 모든 것은 율법주의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송사가 났습니다.

그 송사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 대한 다툼으로 송사가 났는데 그것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형제가 형제로 송사를 하면서도 불의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송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6절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송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군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송사를 했습니다. 저 사람이 우상을 숭배를 했다고 교회 안에서 송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서만 했으면 좋은데 그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도 송사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송사를 했습니까?

누군가 우상을 보았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 누군가 절에 가서 관광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누군가 그것을 보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하필이면 절에 갔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 왜 하필 거기를 가느냐고 하면서 저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 우상을 숭배를 했다고 판단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송사를 하더라도 믿음이 있는 지혜가 있는 성도 앞에서 해야 하는데 믿음도 없는 사람 앞에서 하니까 어떻게 되는가 하면 불의한 자의 말이 맞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 율법주의 사상을 가진 자가 들어왔습니다. 그가 형제를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믿음이 없는 자 앞에서 송사를 하게 되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가 마치 불의를 행하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송사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초대 교회 안에 있었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교회 안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송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7절을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는 일이 교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실제 육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들은 다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특히 시민법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느 누가 이러한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성도들이 따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율법을 정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는 송사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 안에서 송사가 있는가 하면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송사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는 교회에서는 송사가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 앞에서 무두가 공감을 하는 송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다투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다투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복음을 가지고 다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일이 많이 발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 안에서도 안 보이게 이 송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피를 흘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제를 할 때 주의 떡을 떼고 주의 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지 않고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피를 흘리는 것과 같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지음으로 해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피를 흘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떡이나 잔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송사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다투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서로 피를 흘리는 것과 같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달라서 송사가 되어 있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일이 발생이 되었을 때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피를 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주의 떡과 잔에 합당하게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합당하게 먹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음으로 해서 피를 흘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그러한 일이 있으면서도 서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지금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앞에서 송사를 해서 지혜 있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운 일이다보니까 누구 앞에서 송사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이렇게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디도서 3: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다투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 다툼은 끊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아예 다툼 자체가 없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제는 다투고 말 것도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율법은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더 이상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끊임이 없이 이 율법에 대한 다툼이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더 이상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다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도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아직까지 제가 못 보았습니다.

모릅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지키지 말아야 하는지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을 알고 믿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말씀을 믿지를 못해서 교회 안에서 이 다툼이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이 문제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그것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이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49절을 보면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구타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실제 구타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종교가 되다보니까 서로 실제로 구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실제 있다 해도 성경은 그러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타하고 있습니다.

누가 구타를 하고 있습니까?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있는 사람들이 구타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술친구가 누구입니까? 바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구타를 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자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같은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사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가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구타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와 같이 술친구를 하라고 합니다.

자기와 같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제 구타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실제 구타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로 율법을 지키라고 구타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 율법주의자가 들어오면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30:11절을 보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이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서로 피를 흘렸습니다.

다투었습니다. 구타하였습니다. 이 일이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 믿음이 앖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성경을 알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성경을 모르면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어렵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제사장인 레위 사람과 그 때에 직무를 맡고 있는 재판관에게 가서 재판을 요청하면, 그들이 당신들에게 그것에 대한 판결을 내려 줄 것입니다.”

택하신 곳입니다

그곳은 성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서 이 일에 대해서 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는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끊임이 없이 이 어려운 일에 대해서 물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물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레위 제사장이 있었고 그리고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물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레위 제사장도 없고 재판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세상 재판장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누가 가르치고 있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이 모든 말씀을 가르치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이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증거할 수 없다보니까 자기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성령 안에서는 이 복음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가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무릇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주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당신들에게 내려 준 판결에 복종해야 하고, 당신들에게 일러준 대로 지켜야 합니다.”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성막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 성전을 어디서 보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이제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모든 말씀을 그러니까 판결에 대해서 다 보이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미 성경에서 모든 것을 밝히 보이시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디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법률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고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것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당신들에게 내리는 지시와 판결은 그대로 받아들여서 지켜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들에게 내려 준 판결을 어겨서, 좌로나 우로나 벗어나면 안 됩니다.”

로마서 1:19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다 보이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률에 대해서 이미 우리에게 다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를 흘렸습니다.

다투었습니다. 구타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이제 우리 성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고하였습니다. 또 보이셨습니다. 이것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신명기에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어렵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투고 있고 구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이 너무 어려워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판결입니다

누가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판결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어기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판결을 하셨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판결하셨습니다.

어디에서 판결을 하셨는가 하면 이미 성경에 그 판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성경을 너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판결대로 행하라고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보고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관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서 이스라엘에서 그런 악한 일은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 율법입니다

초반부에는 교회 안에서 어려운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송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반부에서는 성경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제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절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9절부터 해서 11절까지는 그 어려운 일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만이 이 어려운 일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13절의 말씀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성도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는 서로 피를 흘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구타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모든 것을 이제 다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성경 안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씀을 다 알고 있는 성도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만일입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에서 모든 복음의 비밀을 알고서 그것을 듣고서 천자히 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판결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율법에 만일이라는 단어를 써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천자히 하고 있다면 그를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하리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야 모든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며 다시는 거만한 마음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심판을 하셨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이미 심판을 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러한 모든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절대로 교회 안에서 피를 흘리거나 다투거나 구타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천자히 하지 않습니다.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성경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판결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입니다 성경도 우리가 다시 타락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일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오직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려운 일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일을 알 때까지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천자히 하지 않게 이렇게 율법에 정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