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전도서9:1-6절을 보면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인생[人生]
무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불교적인 용어 같지만 사실은 전도서의 모든 내용이 이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불교의 제행무상인이라는 말의 모든 내용이 이 전도서에 담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도서를 바로 알지 못하고 또 전도서를 보지 않고 성경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반쪽만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는 나그네입니다
누구보다도 인생무상에 대해서 가슴 절절히 느끼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가 타락을 하다 보니까 인생무상이 아니라 인생에 너무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과는 너무도 다른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름은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하는 것은 모두가 바알이 주고 있는 것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알이 주는 것을 받고 마치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바알을 섬겼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바알을 잘 섬기고 있고 바알이 주는 것을 받고 너무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떻게 하든지 지혜 자가 되려고 하고 있고 또 의인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 자가 된다 해도 의인이 된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전도서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전도서를 가르치지도 않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가르쳤다가는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가 모순이라는 것이 금세 들어나기 때문에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전도서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매우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철학입니다
전도서를 이해하지 않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며 반드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최소한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도서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대단한 줄 압니다.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기들이 대단하게 보입니다. 실제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하면 분명히 그들은 대단합니다. 우선 성경이라는 것을 공부를 하고 또 성경을 읽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설교를 듣고 성경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또 때로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볼 때 너무도 대단합니다.
모 교회가 있습니다.
제자 교육으로 성장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그 제자 공부를 너무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과 같이 제자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마음에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교회에서는 제자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직분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뭡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분명히 제자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교인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 교육을 평생을 받았다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성경 공부를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사상에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성경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전도서는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충돌을 하고 있는데 그런 충돌을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너무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악해서 자기가 성경을 많이 읽은 그것이 오히려 구원을 받는데 있어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라면 당연히 성경을 늘 읽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많으면 뭐합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요? 설령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쓰레기 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 대다수의 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헛됩니다.
내가 하늘의 모든 비밀을 알고 또 이 세상에서 빛이 날 정도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참 신앙이라는 칭찬을 듣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이성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과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성경 전체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확증을 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여러분이 받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지혜와 그리고 행하고 있는 모든 신앙생활을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지혜 자가 되면 뭐 합니까?
내가 의인이 되면 뭐 합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너무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의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이성을 기준으로 하는 지혜 자가 되지 마시고 또 의인이 되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 다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로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 어떤 유익을 줍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목사가 아니라 그 보다 더한 사람이라 해도 내가 구원을 받는 데는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16:9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마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까?
마음으로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정말 천국에 가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천국 가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너무 불의하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은혜를 받는 성도들에게는 이 말씀만큼 가슴에 와 닫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내가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없는데 그 가운에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것이 너무도 큰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다 갈 수 없지만 그래도 나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모두가 죽어야 하는 쓰레기입니다 다 썩어 있는 것 중에 나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시체가 다 썩어 가고 있는데 그 중에 더 나은 시체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권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 주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전도서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전도서를 바로 이해를 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천국에 선택이 되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내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자기 행위가 보이는 사람은 이것을 불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은혜가 넘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의인이나 지혜자나 그들이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면 감사하기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의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또 성경을 통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을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씀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설령 그렇다 합시다.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지혜를 알고 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를 쓴 시기는 구약입니다 이제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이셨음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해 주심으로 성경을 통해서 미래에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0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에서는 미워하였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야곱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자기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고 있는 성령께서 내 영혼의 미래에 대해서 확증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것 역시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어떻게 행사를 하시느냐에 따라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미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시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를 해서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인생은 일반입니다
다 똑같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라고 해서 병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인생이 당하는 모든 일은 일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가 선한 자에게만 비추는 것이 아니고 또한 비가 악한 자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 지진 해일이 있었습니다.
모 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일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런 재앙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목사는 전도서를 읽지도 않았고 전도서를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지진이 있으면 그 피해는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동일하게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체가 바로 기복적인 것이고 또 그것이 바알에 미혹이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태풍이 안 옵니까?
미국에는 더 강력한 허리케인이 와서 일본보다 더 심한 피해를 주었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지구 안에서 사는 인생은 그가 성도라 해도 모두가 똑같이 일반으로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안 죽을 것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인생은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병이 들어서 죽을 수 있고 심지어는 사자 밥이 되어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전쟁이 있으면 믿는 사람은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전쟁의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자연 재해가 오면 믿는 사람의 집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라 해도 그 역시도 재해로 죽을 수 있습니다.
안 믿어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 장이입니다
미국에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왔을 때는 아무 말도 안하던 사람이 일본에 지진 해일이 오니까 안 믿어서 그런 재앙이 왔다고 합니다. 그럼 미극도 안 믿어서 허리케인이 와서 쑥대밭을 만들어 버렸겠습니다. 인생은 자연 앞에서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도 내일이 오고 또 안 믿는 사람도 내일이 옵니다.
세상에는 믿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어떻게 됩니까? 다 죽습니다. 그가 믿는 성도든지 안 믿는 세상 사람이든지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든지 모두가 다 죽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인생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라고 다릅니까?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 안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죄인이 당하는 일을 우리 성도도 당하고 있고 악인이 당하는 일을 우리 성도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집니다.
참 말들을 잘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최후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고 합시다. 그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비참하게 죽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을 할 것입니까? 그들의 논리대로 라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한 마디로 저주를 받은 사람이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모순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주장을 하려면 일관성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이때는 이 말을 하고 저 때는 저 말을 한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병이 고쳐진다고요?
설령 병이 고쳐지면 뭐할 것입니까? 그가 안 죽습니까? 설령 지금 당장 눈 앞에 문제를 기도로 해결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 이제 어떤 문제도 안 생깁니까? 스스로 그런 문제의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병이 고쳐지는 것이 은혜라고 하고 또 저 때는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일찍 데려 가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 입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아멘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다 악합니다.
인생은 다 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하는 모든 일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는 결국 그 악한 일만 열심히 하다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로마서7: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그 일들이 선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또 복음을 위해서 헌신을 하고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하고 하는 그 일들이 다 선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자기도 선을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악인들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선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인정을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악인은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의인은 선을 행하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 고백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는 선을 행하기를 마음으로 바랬지만 악을 행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 악입니다
인생이 하는 모든 일은 사실은 다 악입니다 아니 선을 행하고 있다고 하는 자체가 악입니다 우리 인생은 악을 행할 수 없는데도 선을 행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악인이 자기가 선하게 산다고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악한 말 입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미혹이 되어서 악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악한 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기초가 되어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악이 가득하여 그 악에 미쳐 살다가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독 더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더욱 악에 미쳐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낫습니다.
개는 비굴의 대명사이고 사자는 위엄의 대명사입니다 아무리 위엄이 있다 해도 비굴하게 살아 있는 개 보다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비굴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참예를 합니까?
마태복음25:21절을 보면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비록 비굴합니다.
개 같은 인생처럼 비루합니다. 그럴지라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를 하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개 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를 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사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죽어 있는 사람 중에는 이름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이라고 하면서 지금 이 시대도 이름이 남아 있어 사람들 사이에 회자 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사람들에게는 사자와 같이 이름이 회자 되고 있지만 그가 구원을 받았는지는 사실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사실 죽은 사자의 기록을 보면 과연 그가 구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살아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록 개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소망이 있기 때문에 후에 분명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를 해서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모든 초점이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와 같이 비록 산 개와 같이 살아가고 있을 지라도 영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성도는 소망이 있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를 하여 천국에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 합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산 자는 압니다.
그러나 죽어 있는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유명한 목사라 할지라도 아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장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는 내가 죽을 줄을 알고 있고 또 죽은 이후에 영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축복입니다
살아 있는 내가 축복입니다 물론 영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어야 축복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비록 개 같은 인생일지라도 나도 역시 인생이기에 죽을 줄을 알고 있고 그 죽은 후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상을 받습니까?
히브리서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죽은 자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 자는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된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개 같이 살아 있어서 비천에 처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줄 믿는 성도는 천국에 가서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생명이 귀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생명은 지혜 자나 의인이나 악한 자나 죄인이나 일반으로 다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기 때문에 죄인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질지라도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을 때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종교인들로 인하여 이 믿음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서 문제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선물입니다.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믿음을 종교인들로 인하여 방해를 받고 있고 그 종교인들이 천국 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로 개 같이 살아 있을지라도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죽은 사자 보다 나중에 더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는다고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성도를 하나님께서 상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들은 행위로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주의에 빠져 더욱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선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죽으면 끝입니다.
다시는 영영히 분복도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없고 미워함과 시기함을 받는 것도 없어지고 죽음으로 해서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은 살아 있는 동안에 영혼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 무상합니다.
지혜가자 된다 해도 그렇다고 의인이 된다 해도 인생은 무상합니다. 그런 인생이지만 살아 있는 지금 영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상한 인생과 같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남들이 볼 때는 너무도 초라해 보이지만 그럴지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영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상한 인생을 보기 보다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 일반입니다
그 일반 인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산 개와 같이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고 그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를 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은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들어 내셨습니다.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비루할지라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을 얻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무상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하늘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더욱 뜻 있게 복음을 위해서 헌신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소명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그리고 그 믿음으로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후에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를 해서 하늘의 모든 축복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이 세상에서 더욱 헌신을 하면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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