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사야1: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인생은 망각의 동물이다
또한 인생은 너무도 착각을 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착각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자뻑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는 하나님을 너무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인물이 자기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습니까?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이 그랬습니다. 자기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자기의 믿음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막상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니까 분이 났습니다.
누가 잘 했습니까?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아벨보다는 가인의 제사가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이 분을 낼 때는 자기 제사가 분명히 아벨의 제사보다 더 낫게 보였기 때문에 분을 낸 것이지 자기 제사가 아벨의 제사보다 못했다면 결코 분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보고 비웃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못 믿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방주를 질 때 그들은 뭔가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노아에게 조금 더 자세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선지자를 핍박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선지자들을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느냐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자기들을 책망을 하니까 참지를 못하고 선지자를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하는지 잘못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좋은데 그런 이성이 있다 보니까 자기들의 분별을 마치 하나님의 분별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있다 보니까 그 이성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람의 이성과 성령의 감동은 서로 대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은 어떻습니까?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만약 법을 안 지킨다고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서로 충돌을 하고 있고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은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도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식의 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이 종교적인 의식의 법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처음 보는 분들은 저를 보고 이상하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서 법을 안 지키고 살 수 있느냐고 그것은 이단적인 생각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의 이성은 법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 뿐 아니라 성당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도 그들의 규례나 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자체가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욥기8:2-4절을 보면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욥이 고난을 당합니다.
그가 고난을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곁에 있을 때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욥은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 고난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게 산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 욥에게 말을 합니다.
욥의 친구들도 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욥이 자기가 의롭다고 변론을 하니까? 네가 어느 때 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고 욥을 오히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네가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이렇게 고난 중에 빠뜨렸다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냐 하면서 욥에게 그만 입을 다물라는 뜻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입니다
바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욥의 친구들과 같이 아니 욥이 회개하기 전과 같이 그런 이성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니까 욥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욥의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냐 하나님의 공의가 굽느냐고 하면서 욥을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맞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는 욥의 주장이나 그 친구들의 주장이나 맞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이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또 자기가 조금 잘 하는 행위가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말이 틀립니까?
욥은 정말 그의 말대로 자기가 고난을 당할 만한 죄를 자기에게서 발견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는 어는 누구도 욥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반박을 하지 못 합니다 오죽하면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까지 말씀을 하겠습니까?
이성입니다
죄를 지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져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자기가 잘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이성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성에 사로잡히면 자기는 잘 하는 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이성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과 성령은 서로 충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게 되면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 이성에 지배를 받게 되는 순간 종교화가 되고 진리에서 타락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볼 때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꺼번에 죽임을 당한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면전에서는 그렇게 말은 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듭니까?
바로 자기들의 행위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행위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을 하고 있고 행위를 잘 하려고 더욱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누차 말씀을 드리지만 도덕적으로 타락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자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진리를 저버리는 타락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릅니다.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수가 바다 보래 보다 더 많이 있을지라도 인생들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이성이 있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는데도 자기들이 그것을 분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진리에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1:2절을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식 같이 양육을 하셨습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광야에서 안아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진리를 알아 구원을 받고 또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거역을 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거역을 했냐고 오히려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잘 섬겼습니다.
마태복음12:3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은 절대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려고 노력을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을 한 그것이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성령을 거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선기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그래도 자기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는 가를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그것이 오히려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론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카데미 강의에 올려 있는 성령론을 보면 자기들이 성령을 얼마나 거역하고 있는 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책망을 듣고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서 자기들이 잘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3절을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압니다.
그리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고 있습니다. 이런 미물도 주인을 알고 있지만 이성이 있다고 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교회에 수가 바다 모래 같이 많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물도 주인을 알고 있지만 이성이 있는 인생들이 더구나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0: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주님이 이스라엘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왜 듣지 못했느냐면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영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셔서 하늘의 복음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바로 이성 때문입니다
이성이 없는 미물은 오히려 주인의 음성을 듣고 주인을 알아보고 있지만 이성이 있다고 하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매일 성경을 보고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들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7:3절을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며 영생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를 했고 정말 그들에게 성경은 자기 생명과도 같이 여기면서 어느 때라도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의 이성이라는 것은 그들이 지혜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하면 쓰레기에 불과 합니다. 미물보다도 못한 이성을 가지고 그것에 의지를 해서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또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망으로 인도를 하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다수를 따라 가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눈이 가려져 도무지 하나님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4절을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어서 범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긴 것으로 지금 이사야기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죄를 범한 그들을 보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를 진 백성을 보면서 이사야가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면적으로는 진리에 대해서 거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물도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습니까?
절대 안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 시대에 있었던 선지자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도 믿음이 있었던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왕 중에 하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고부터 이스라엘의 신앙을 개혁하려고 했던 왕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관심이 없었습니까?
그리고 소홀히 여겼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어야 복을 받고 외세의 침략을 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적으로는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또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거역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한 마디로 아버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는데 아버지를 모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버린 것과 마찬가지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입니다.
이사야1:5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패역하고 있습니다.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아 구원을 받기를 이스라엘에게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식과 같이 여기고 그들을 사랑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병이 들었고 또 마음은 늘 피곤합니다. 스스로 꾀를 내다가 결국에는 매를 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면서부터 그렇게 늘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17:17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패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다 보니까 행위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자기 조상이 되었는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는데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으로 더욱 더 패역한 일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패역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 행위를 하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매를 맞습니다.
이 세상에서 매를 맞고 그나마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은 실체가 안 보였기 때문에 매를 때렸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매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1:6절을 보면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인생은 약합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실제 그들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 율법의 모양을 내는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게 보이고 있지만 율법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마치 할 수 있는 것같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육체의 모습을 보고 마치 그것을 자기들의 영혼의 모습으로 착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아브라함을 자손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편51:17절을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상해 있습니다. 그것을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며 내 심령이 상해 주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더욱 율법주의에 빠져서 자기들 스스로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너무 잘 아십니다.
인생은 진토이기 때문에 스스로 깨끗해 질 수 없고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상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그것은 인정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때 새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그 생명이 깨끗케 해 주시는 것이 바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릅니다.
아니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빠져 영이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육체를 보고 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율법의 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치료를 받으려 하기 보다는 더욱 율법을 잘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7절을 보면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 하였고”
가나안입니다
그들은 이 가나안의 의미를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땅이 황무해 지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했고 그저 그 땅을 다시 회복을 시키기 위해서 기복적으로 바라고만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읍이 불에 타는 것을 목도 하면서도 그것이 그저 이 세상의 성읍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땅입니다 그 땅은 비록 육적인 이스라엘이 살고 있었지만 그곳은 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천국이 황무해지고 성읍이 불에 타고 그 토지가 이방인에게 삼키었다는 것은 천국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저 육적인 자기들의 땅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육의 일입니다
그것은 영의 일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기들이 육적으로 고난을 당하면 그 육적인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육적인 일은 영의 일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것을 보면서 더욱 기복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육체가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그 육체를 고치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그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사인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이사야1:8절을 보면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포도원의 망대가 얼마나 작습니까?
원두막의 상직막이 얼마나 작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너희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겨우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막이 상직막같이 아주 조금만 남아 있다면 지금 이스라엘의 구원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냉정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겨우 그 정도만 남아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있지만 과연 그 안에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겉으로는 든든합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 같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영의 눈으로 보면 지금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겨우 포도원의 망대만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산다고 그들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구원을 받을 성도가 아닙니다.
어쩌면 포도원의 망대 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사단에 의해 모두가 미혹이 되어 겨우 그 정도만 남아 있는데도 역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우리의 모습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3:20절을 보면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겨우 여덟 명입니다
왜 성경이 이런 말씀들을 기록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겨우 두 명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모두가 믿음이 있는 성도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가진 자가 그렇게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천만이 넘지만 구원을 받을 사람은 겨우 포도원의 망대 같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늘 다수를 따라가는 자는 망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도 다수를 따라 소가 푸주로 들어가는 것 같이 자기 영혼을 그 다수의 무리에 맡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쉽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아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알 것 같으면 비밀이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적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그렇게 남은 자가 알기 때문에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자기가 교회에 나온 자체가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모래 같이 많았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이 시대도 교인은 천만이 되지만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1: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은혜입니다
내가 지혜가 있어 이 믿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이 믿음을 스스로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주님께서 남겨 두시지 않았다면 이 믿음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고 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안 됩니다
지금도 역시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 있고 실제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들을 통해서 이 비밀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잘 압니다.
롯의 가족 말고는 모두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롯의 가족도 자기들이 잘 나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고 그 불구덩이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영적으로 볼 때 소돔과 고모라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성이 지금 이 시대 보다 더 타락을 해서 멸망을 당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고 있다면 역시 이 시대 모든 성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우리 인생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가운데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이 지구가 아직까지 존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잘 났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잘나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가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우리 인생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지금까지 남겨 두시고 있습니다.
내가 남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도 없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종교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입은 성도가 되고 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를 주님께서 구워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카데미 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잔이 넘치나이다 (0) | 2016.03.27 |
---|---|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0) | 2016.03.27 |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0) | 2016.03.25 |
이는 너희가 죽었고 (0) | 2016.03.24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0) | 2016.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