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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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16. 3. 12. 19:20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2:1-8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사람 참 이상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꼭 이것만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꼭 그것을 하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때로는 혼을 내보기도 하고 때로는 겁을 주기도 하지만 역시 또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왜 저럴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했던 일은 잘 기억을 못하고 남이 한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기억을 합니다. 사실 나 역시도 내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내 부모님이 보실 때 나 역시도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를 보고 부모님들이 꼭 지 아빠 클 때와 어쩌면 저렇게 같은지 모르겠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는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았고 내 부모님도 내 할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역시 같은 죄인이고 또 마음의 생각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죽어라고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반복을 해서 그 일을 했고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 딴에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51:16절을 보면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의 시입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때가 언제 입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도 나타나셨지만 제사를 즐겨 아니하십니다. 만약 제사를 즐거워 하셨다면 가인의 제사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제사를 드리기를 즐거워하고 있고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가 어떤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이 하니까 아니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맹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제사는 내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고 내가 찬송을 하고 내가 기도를 하고 내가 교회에서 헌신과 봉사를 하고 또 내가 내 몸으로 이웃 사랑을 하고 하는 이 모든 행위들이 다 제사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모든 행위 내 몸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는 말씀입니다

 

그 제사를 즐겨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제사를 전부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제사를 해야 합니다. 예배를 안 드리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사를 즐겨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가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제사이지만 그 제사를 전혀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제사를 즐겨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것이 제사를 해야 하지만 제사를 즐겨아니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는 이 제사에 거의 미치다 시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즐거워하시지도 않는 이 제사에 자기 생명을 내 걸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제사로 인하여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침이 미치지 못하는 것보다 같다는 뜻으로 중용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사실 영혼을 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이 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죽습니까?

이미 이 세상 죄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제사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과유불급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66:3절을 보면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아주 극단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보면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아벨의 제사보다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인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분명히 자기가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제사를 안 받으시니까 분이 난 것입니다

 

제사를 잘 못 드려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인이 드린 제사는 뭔가 문제가 있고 이 시대 내가 드리는 제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하찮은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인은 아담의 장자입니다 아담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가 처음 제사를 드리는데 얼마나 정성을 다 해서 드렸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가인은 아예 제사를 안 드렸을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자손으로 처음 제사를 드리는데 얼마나 정성을 다 했고 제물에 대해서도 최고로 좋은 것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를 즐거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믿음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제사 그 자체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의 믿음을 받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사 그 자체를 가지고 누가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시고 받으신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아벨을 받으시고 믿음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제사에 미쳐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든지 따라가려고 하고 있고 그들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망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따라 가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신 이스라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에 죽였는가 하면 그들이 그토록 정성을 다해 드리고 있는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제사를 폐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을 따라서 자기들의 제사에 미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제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이 시대 역시 제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제사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제사)로 부인을 하고 있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안식일

이스라엘에게 있어 안식일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며 이 규례를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들에게 있어 안식일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특히 십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안식일에 규례를 어긴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 안식일 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돌로 맞아 죽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인데 그런 규례를 알았을 텐데도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삭을 잘라 먹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정이 되어 있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제자들을 배고프게 만들어서 밀밭 사이로 가셨던 것이고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게 하셨습니다.

 

아직까지는 안식일이 거룩합니다.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안식일에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삭을 잘라 먹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건들인 것이 됩니다. 그렇게 안식일의 규례를 어기는 제자들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항의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잘못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것조차 용납이 안 되는데 이삭을 잘라서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 사이로 가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기도를 할 때마다 거룩한 주일이라고 말하고 있고 거룩한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강하게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누군가 자기네들이 지키고 있는 규례에서 벗어나는 주일을 보냈다면 당연히 바리새인들과 같이 공격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대부분이 안식일에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은 늘 왜 하필이면 안식일에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바리새인들 못지않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을 너무도 거룩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주일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 합니다

 

누군가 주일날 결혼을 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생에 단 한번 뿐인 결혼을 하는데도 주일이 눈치가 보여서 그 날에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날도 많은데 주일날 하지 말아야 할 결혼을 그 날에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 안식일을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깨부수기 위해서 지금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지금 이 사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주일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고 그것을 어겼다가는 당연히 질책을 받게 됩니다. 평생의 단 한번 뿐인 결혼을 하는데도 형제도 안 가는 것이 주일날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주일을 피해서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날 다른 일을 했다가는 믿음이 없는 자로 낙인이 찍히고 심지어는 자기 자녀의 결혼을 피치 못해서 주일날 잡았는데 쓸쓸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휴가도 마음 놓고 못가고 국가 공인시험도 못 보고 죽는 것도 주일에 맞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주일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뭐가 다릅니까?

그들은 불륜을 저질렀고 자기들이 하는 것은 로맨스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불륜이고 자기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는 것은 로맨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저하게 멸시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을 갔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아히멜렉이었는데 다윗이 시장하여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까 그냥 먹을 수 있는 떡은 없고 거룩한 떡이 있는데 너의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 안 했으면 먹어도 된다고 하면서 주었습니다.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다윗의 소년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떡을 먹으면 죽을 줄 알았기 때문에 감히 이 거룩한 떡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또 이후에도 그 떡을 먹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거룩한 떡도 먹었는데 안식일에 시장해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무슨 큰 일이 있겠느냐고 대답을 하시고 있습니다. 왜 이런 논쟁이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율법주의에 빠져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문제점을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깨기 위해서 하필이면 안식일 날에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주일도 율법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이고 주일은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또 성경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주일이라는 자체가 없습니다. 주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주일 할 때 그 주일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깨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율법에 매여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것 같이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주일이라는 날을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하면서 그 날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묵시적인 규례로 만들어 놓고서는 바리새인들보다도 더 생명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그 주일을 지키고 있는 가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그 날이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는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이 사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 같이 이 시대 바리새인들도 역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그 날에 아무 것도 못하고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죽는 것도 주일날을 피해 장사를 지내야 하고 있습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안식이 무엇입니까?

쉬는 날입니다. 그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인데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안식일을 범하게 됩니다. 안식일을 만든 이유는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종과 가난한 자들이 쉴 수 있는 날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안식일 날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면 그 날에는 예배도 드려서는 안 되고 그 날에 교회를 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동을 하고 또 교회에서 불을 켜고 하는 모든 행위는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이 되었다고 하면서 안식일과 같이 거룩하게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 지키고 있는 주일이 거룩하면 이 시대 교인들은 모두가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며 돌로 맞아 죽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성전이 무엇입니까?

성전의 모든 기물과 또 그 제사 제도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제정을 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일 텐데도 이스라엘은 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자기들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 했습니다

 

성경을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행위에 빠져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일이 중요하고 또 성전이 너무도 중요해서 감히 그것을 깬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성전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또 제사를 드리고 하는 모든 행위를 통해서 예수를 발견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 행위에 미쳐 예수를 전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에 미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저하게 외면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 진리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일날에 영의 양식을 먹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날에는 못 먹고 주일날 그 양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주일을 너무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인 진리보다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안식일도 제사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거룩하게 지키고 있는 주일도 제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비는 사라졌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 현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주일날 무엇을 했다가는 그대로 정죄를 받고 있고 감히 무서워서 주일에 무엇을 하겠다고 말도 못 꺼냅니다.

 

주일날 교회 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못 합니다

아무리 시장해도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도 이삭을 잘라 먹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도 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날을 정해서 예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의 주일은 바리새인들의 안식일보다도 더 그들의 마음에 엄격하게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로 인하여 자비는 사라지고 오직 그 날을 드리기 위해 제사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주일이라는 날은 감히 이삭을 잘라 먹을 수 없는 그 날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오셔서 누군가 결혼을 해서 주일날 축하를 하러 가신다 하면 주님을 보고 공격을 할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주일날 누구를 만나러 간다면 말릴 사람들입니다

왜 하필이면 주일날 그렇게 하시느냐고 다른 날 월요일도 있고 화요일도 있는데 왜 굳이 주일날 하시려고 하냐고 반대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강행을 하시면 이제는 자기들의 자존심을 건들렸다고 아마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주일이라는 날 때문에 자비는 사라졌고 오직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하는 열심만 남아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한 날을 정해서 예배를 하는 것을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꼭 그 날을 그렇다고 꼭 지키라고 드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율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유 하는 가운데서 한 날을 정해서 예배를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제 생각에는 꼭 한 날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리에 따라 여러 날을 만들면 그 날이 율법이 되지 않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되면 자비는 사라집니다.

주일이 묵시적으로 법이 되는 순간 그 주일로 인하여 자비가 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안식일을 깨려고 하셨는데 이 시대는 또 다른 안식일 주일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색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이 너무도 거룩해서 아니 하나님보다 더 거룩해서 감히 그 주일을 범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자비는 사라지고 주일 때문에 정죄가 있을 뿐입니다 자기들처럼 주일을 안 지킨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 정말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사를 전혀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제사도 드려야 하지만 그 제사를 기뻐하시기 보다는 자비를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작금의 세대를 보면 제사에 미쳐 거룩하지도 않은 주일을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십계명은 폐해 졌습니다.

만약 십계명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가 십계명을 어긴 죄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에는 분명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지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그렇게 이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성경을 자기들 편리에 따라 이용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고 안식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 안에서 안식을 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정해서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을 통해서 안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겠습니까?

 

히브리서4:10절을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우리는 주님 안에 들어갔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통해 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쉬면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을 통해서 안식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주일 때문에 안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안식일이라는 날 때문에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던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주일이라는 날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식에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는 안식일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시하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는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역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분명히 주셨는데도 다시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구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너무도 거룩해서 감히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식에 들어가 쉼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우리는 쉬게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져야 할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또 쉬지를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안식보다는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가 너무도 소중해서 안식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식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이 들어와서 쉬라고 하시는데 애써 거절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주님이 쉬라고 하면 쉬는 것이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제사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제사 안 드릴 수 없지만 그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가능한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려고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의 안식에 들어간 성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