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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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윤주만목사 2016. 3. 12. 18:00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열왕기하8:1-6절을 보면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 칠 년이 다 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가을입니다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고 성도들에게 있어 가을은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계절을 뚜렷이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절기의 가을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가을이 오면 이 세상에는 복음이 거의 사라지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워 올 것입니다

 

성경의 계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봄에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난 후에 그 첫 열매가 드려지는 절기가 여름이 가까워지는 바로 맥추절이고 이제 가을이 오면 수장절이 되어 구원 받을 성도들이 곡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절기는 이제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시기와 때를 잘 살펴서 가을이 오기 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제가 보는 시기는 그렇습니다.

아직은 여름입니다 아니 여름의 절정에 아직 가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계절은 뚜렷하게 우리가 분별을 할 수 있지만 사실 영적인 계절은 영의 눈을 가지지 않고는 도무지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영의 눈을 갖기 위해서는 늘 성경을 묵상하고 또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캐내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 각자에게도 계절이 있습니다.

저도 이제 쉰을 넘었으니까 가을로 점점 접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가을이 되었을 때는 정말 내가 믿음에 있는 가 스스로 확증하고 내 믿음을 견고히 해서 창고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인생의 가을을 보내고 있고 자기가 어떤 때에 서 있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고 또 준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 각자의 종말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로 모릅니다. 나이가 삼십이라 해도 또 이십의 청춘이라 해도 그 종말이 언제 어떻게 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도는 늘 가을을 사는 생각을 가지고서 살아야 하고 내가 정말 주님의 곡간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늘 생각하고 또 성경을 통해 내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나가야 합니다.

 

아직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않습니다.

종말의 때가 이르기 직전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무성해야 하느냐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여 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때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교회가 점점 율법과 경건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사회가 교회에게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어쩔 수 없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될 것입니다

 

구원은 정말 신비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이성을 가지고는 도저히 구원에 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늘 성경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너무도 오묘해서 그것을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다 풀어 밝힐 수가 없고 다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최소한의 정도를 우리가 알고 그 은혜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를 보면서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은 성령의 확증이 아니라 자기들 무리에 끼어들려면 서로가 같은 고백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종교는 참 무섭습니다.

다수가 어떤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 끼고 싶으면 자기도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혀 마음에서는 확증도 없는데도 그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있고 만약 그 안에서 자기만 인정을 안 하게 되면 그 무리에서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무리에게 그렇게 가르칩니다.

믿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의 어떤 것을 통해 믿음이 있다고 가르치다 보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도 나중에는 그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는 자기가 정말 믿음이 있는 가 아닌가 분별을 하지 못하고 그저 다수를 따라가게 됩니다. 남들이 기뻐하면 자기도 억지로 기뻐해야 하고 남들이 슬퍼하면 자기는 하나도 안 슬픈데도 또 그들과 같이 슬퍼해야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런 무리 속에 있는 자기들이 전부 바른 믿음을 가진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인데 저와는 너무도 다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기에 별로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교회에 나가서 웃고 떠들고 할 기분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기쁨이 있을지라도 저는 교회는 보면 가슴이 답답한데 어떻게 그 안에서 웃음이 나오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교회만 가면 정말 가슴이 딱 막힙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히히덕거리고 웃고 있을 기분이 아닙니다. 저도 복음이 살아 있고 주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는 교회라면 얼마든지 그들과 함께 웃고 교제를 나누고 싶지만 실제 제가 이야기를 하면 다툼만 일어나는 그런 교회 안에서 제가 과연 웃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저를 보고 화기가 없다고 합니다. 생전 웃지를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그냥 쓴 웃음만 지었습니다.

 

진리가 사라진 교회는 애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더 이상 그 교회에 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정 예배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늘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계가 된 것도 같고 제가 더 이상 그런 진리가 없는 교회를 나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애통해야 합니다.

정말 진리가 바로 서 있는 성도라면 작금의 교회를 보고 애통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교회 안에서 함께 예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기쁨 보다는 슬픔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겠지만 진리가 사라진 교회에서 웃고 떠든다는 것은 제 신앙의 양심상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 이 설교가 올라갈 즈음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를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의 믿음에 대해서 전혀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그런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도 어쩌면 호사고 이 시대 교회는 너무도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이 아니라 가지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 또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설교가 사라지고 있고 어떻게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간절히 구하고 애통해야 하는 교인들이 오히려 그런 것은 뒷전이 되었고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고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연락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어놓은 건물을 보고 또 자기들이 하고 있는 전도와 선교를 보고 또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가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누구보다도 부자가 되어 자기들이 굉장히 특별한 줄 알고 있습니다.

 

냉철해야 합니다.

구원은 막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확증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서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됨으로서 그 구원이 나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이런 과정이 주어지지만 가라지들은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고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착각에 빠져 들어갑니다.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씀 같은데 왜 이런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 본문의 말씀을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내용적으로 볼 때 도무지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또 굳이 성경에 기록되어야 하는 말씀인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이 여인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4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굳이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아이를 어떻게 가졌고 그 아이가 죽었다가 어떻게 살아났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여인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엘리사가 이 수넴 여인에게 찾아와서 이 땅에 칠년 동안 기근이 있을 것인데 너는 네 권속과 함께 피할 만한 곳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양식이 떨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이 수넴 여인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양식이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육의 양식이지만 이 양식은 영의 양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칠년 동안 이 지역에 기근이 찾아온다는 것은 이스라엘로서는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시편33:19절을 보면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이 여인을 귀한 여인이라고 말 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귀한 여인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여인을 살리시기 위해 그 권속을 살리시기 위해 영적인 기근이 찾아온 이스라엘에서 피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찾아왔다는 말은 결국 교회에 기근이 찾아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더구나 칠년이라는 기간은 기근으로 인하여 완전히 이스라엘에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누가 존귀한 자입니까?

바로 다윗을 존귀한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윗의 신하 아비새를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람 장군 나아만을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야베스를 존귀한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신약에 와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요셉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 해서 장사를 지낸 사람입니다.

 

이 존귀한 자들을 주님께서는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영의 양식이 사라진 기근 시에도 그들에게는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수넴 여인만이 존귀한 자라 칭함을 받았고 기근이 들자 이 귀한 여인의 권속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기근이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근에서도 주님께서는 귀한 수넴 여인에게 피할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서 그가 피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기근이 들면 존귀한 자는 주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하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입니다

이들이 있는 교회가 기근이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을 먹이지 못하고 있으면 주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사를 보내 주셔서 그들에게 피할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귀한 여인의 권속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엘리사를 통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기근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육의 양식에 배가 불러서 영의 양식이 기근이 들었는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존귀한 자들을 지켜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수넴 여인과 같이 귀한 여인은 주님께서 아무리 교회가 기근이 들어도 지켜 보호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이방 땅으로 갔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영의 양식이 없어 기근이 들었을 때 성도는 어디로 피하느냐면 바로 이방 땅으로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 땅이 이방 땅이라 해도 주님께서는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에 영의 양식 예수가 없어서 기근이 들었는데도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생명을 빼앗기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양식이 없는 교회는 차라리 세상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홀로 사는 것보다도 못할 수 있습니다. 기근이 들어도 교회가 낫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입니다 기근이 들었으면 이스라엘이라도 그곳에서 피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못 했습니다.

이 칠년이라는 기간은 사실 의미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여인은 평생 천국에 들어가기 까지 블레셋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근이 들어 있는 교회 보다는 차라리 세상에 있는 것이 그리고 홀로 그 권속을 지키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블레셋은 이방 땅입니다

그것에서 칠년이라는 기간은 평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는 말씀이 있지만 수넴의 귀한 여인은 그렇게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육의 양식이 기근이 든 것은 너무도 잘 아는데 사실 영의 양식이 기근이 든 것에 대해서는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 교회가 기근이 들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었던 것같이 언제라도 내가 다니고 있는 지금의 교회도 역시 기근이 들 수 있습니다. 기근이 들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칠년 기근 동안에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서도 가르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전혀 그 의미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기근이 찾아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귀한 수넴 여인에게는 주님께서 엘리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에 칠년 동안 기근이 있을 것을 가르쳐 주고 피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기근이 들면 사실 세상 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양식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진 교회는 사실 절망적이기 때문에 세상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서만 지켜 주십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교회가 기근이 나면 구원 받을 성도를 세상으로 피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는 생명의 양식이 없는 교회는 이 세상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정말 복음을 분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칠 년이 다 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모든 교회가 다 기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어 처처에 기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1:11절을 보면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마지막 때의 모습입니다.

생명의 양식이 사라지는 때가 바로 마지막 때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처처에 많이 있는데 그 교회들에게서 기근이 발생을 합니다. 수넴 여인이 지낸 칠년은 바로 이 마지막 때의 기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때에 처처에 있는 교회가 기근이 있을지라도 귀한 여인의 권속을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마지막 때가 지났습니다.

칠년 기근은 이 마지막 때를 거치고 나온 때입니다 이 여인이 이제 자기가 거할 천국에서 집과 전토를 달라고 왕에서 나아가서 구하고 있습니다. 이 왕은 바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칠년 기근을 거치고 나온 이 귀한 수넴 여인은 이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권리입니다

물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의미적으로 볼 때 천국으로 들어간 것이고 기근을 피해 자기 생명을 보전한 귀한 여인은 성도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가를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16:3절을 보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자를 주님께서는 기근이 들은 교회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고 기근이 끝나는 때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수넴 여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정말 큰 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헤롯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천국은 성도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은 천국입니다 주님께서 가실 때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고 너희가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 거할 처소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 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천국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고 그것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게하시는 증인입니다

왕의 앞에 있다가 귀한 여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 증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여자의 집과 땅이 맞다고 이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5절을 보면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증거를 해 줍니까?

성령께서 내가 성도라는 것을 분명히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있는 성도라는 것을 그래서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기근에 피해 이방 땅에 있었을지라도 그래서 근심하면서 살았을지라도 성령께서는 내 안에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갑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시느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를 해 주시고 또 성령께서 내가 이 땅에 있던 존귀한 성도였다는 것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나를 증거 해 주시는 분이 늘 왕의 곁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이 땅에 있는 존귀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아시고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실 것입니다 게하시는 통해서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한 것 같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성도라는 것을 증거 해 주기 때문에 천국에 가서도 우리가 거할 집과 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다 주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도가 맞습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도가 아니고 분명히 영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는 귀한 사람만이 성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늘 기근이 찾아올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성도에게 피할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가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귀한 여인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론 엘리사를 잘 대접을 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를 대접하기 전부터 성경은 이 여인을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이 여인은 귀한 여인으로 선택이 되어서 엘리사를 통해 이 여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잘 해서 귀한 여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를 만나기 전부터 이 연인은 귀한 여인이었고 이 귀한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대접했던 것입니다 이 귀한 여인을 통해 우리 성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 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이 여인에게 엘리사를 보내 주셨고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었을 때 거기서 피하게 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를 잘 대접해서 귀한 여인이 되고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엘리사를 만나기 전부터 이 여인은 이미 귀한 여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귀한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엘리사를 보냐주셔서 이스라엘의 기근에서 피하게 하시고 후에 그 기근에서 살아 돌아왔을 때 천국에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그런 성도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기근이 들어 영의 양식이 없을지라도 그곳에서 피하게 하시고 그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져 있는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기근이 들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으로 피신을 시켜서라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가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에 기근이 안 들어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존귀한 성도를 어떻게 하든지 구원을 해 주신다는 것을 이 수넴 여인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 진 사람을 성도라 부릅니다. 율법이 아니라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 진 사람만이 이 땅에 있는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더욱 은혜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