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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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윤주만목사 2016. 1. 28. 07:44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여호수아3:14-17절을 보면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성경은 예표를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방인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 그들을 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자세하게 예표를 해 놓은 말씀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라는 그림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심오합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면 쉽게 볼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 해 있어야지만 바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다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거의 무지에 가까운 것이 우리 나라 교회의 모습입니다 심지어는 교계에서 이름을 높이고 있는 목사들조차 성령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고 또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를 따라하는 사람을 보고 무조건 성령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성경을 알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이 임재 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전하는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가 아니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말인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지만 그가 전하는 말이 진리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의 말 인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진리를 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쉽게 믿습니다.

그리고 너무 맹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콩을 팥이라 해도 믿을 사람이 90%이상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 판단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들이 하는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 그 이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판이 없는 교회는 썩습니다.

물론 부조건 비판을 하는 것은 교회를 어지럽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목사의 설교가 전혀 비판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가 무슨 말을 전하는 가 진리를 전하는가 분별을 해야 함에도 그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모습입니다

 

제왕적 교회는 반드시 망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말씀에 독점을 하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한 전혀 비판 의식이 없다면 그 교회는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치열한 비판과 자기 성찰을 통해서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까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외식을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수제자를 그것도 변방에 있던 사도 바울이 책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지금의 교회에서 그런 책망을 한다면 원수지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책망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또 진리에 대해서 고민도 하지 않고 그저 교회의 외형을 어떻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키우는데 모든 것을 따 쏟아 붙고 있습니다.

 

세상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형 교회로 성장을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건들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부터는 그가 진리를 전하느냐 안 전하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대형교회가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는 모든 면죄부를 받아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떡 주무르듯이 치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교회가 세상을 밝게 하고 또 진보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는 데는 제가 이견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를 바른 교회냐 아니냐의 판단은 그런 진보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되고 그가 과연 바른 진리를 전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깨끗하면 뭐 합니까?

자기 기득권을 다 포기를 하면 뭐 합니까?

요즘 몇몇 교회들이 그런 것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칭찬을 받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교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조기 정년퇴임을 하고 또 교회를 나누어서 함께 했던 목사들에게 치리하게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칭찬입니다

사람이 볼 때 좋게 보이는 것이지 그런 교회들 역시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을 하게 되면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역시 그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세상 적인 일을 했다 뿐이지 진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열광을 하고 그곳으로 몰려가고 너무 신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들은 세상 사람들도 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 물론 잘하는 일이지만 성도는 그런 것으로 분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진리를 추구하고 있고 그 교회가 진리 안에서 든든히 서 있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행위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세상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해도 그 교회가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해도 그것을 보는 순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환호를 하고 있고 마치 그런 교회가 바른 교회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가 바로 서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지 말라야 합니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여호수아는 천국에 들어가는 예표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을 보내고 이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두 번 물을 건넙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접경에 있는 요단강을 건너려고 이스라엘이 그 앞에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가를 예표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도 마지막 광야라는 40년 신앙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 영적 의미인 천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광야 40년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 광야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처음 세례를 받은 이스라엘의 장정 60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물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바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세례를 받는 모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장정 60만이 홍해를 건너와 교회라는 광야 생활을 했지만 모두가 그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죽고 천국인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보고 그들과 같이 실패를 해서는 안 되고 그들을 경계 삼아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라는 광야에서 죽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든지 요단강을 건너서 광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0: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너면서 그들은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전체는 세례를 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영적인 천국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 왔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이렇게 세례를 받습니다.

이 세례의 의미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받았느냐면 그들이 이제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천국을 소망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은 단 하나의 이유는 자기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세례를 받는 이유는 내세를 소망하고 천국을 가기 위해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율법주의나 기복주의 샤머니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세를 소망하고 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오직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면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오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은 그들이 왜 광야라는 교회에서 다 죽고 말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똑 같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그렇게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고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심리가 같은지 그들과 똑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3-5절을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들은 다 신령한 식물을 먹고 다 같이 신령한 음료를 마셨지만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에 나와서 나름대로는 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것을 먹고 마셨지만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희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그들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고린도전서10장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분히 고린도전서10장을 읽어 보시면 됩니다.

오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영적 천국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이 말씀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에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고 또 그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스라엘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죽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왕에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어떻게 하든지 천국에 들어가야 하고 만약 광에서 죽는다면 차라리 애굽에 있는 것이 좋을 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애굽의 고센 땅은 목축을 하기 좋은 땅인데 아주 살기 좋은 땅인데 그곳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죽는다면 그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입니까?

애굽에 있는 자 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죽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험한 광야에 나와서 죽는 자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광야는 정착을 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옮겨 다녀야 하고 자기 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척박한 곳에 나와서 천국에도 못 간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광야는 애굽보다 더 좋습니다.

고센 땅 보다 더 좋은 곳에 현대의 광야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보면 애굽보다 더 환경이 좋은 곳이 교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천국에만 갈 수 있다면 애굽보다 더 살기 좋은 광야라 해도 가야하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애굽보다 더 험한 광야를 지나간 이스라엘도 다수가 광야에서 죽었는데 세상 보다 더 좋은 교회에서는 어떻겠는 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을 쓸어내릴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가나안의 목전에 서 있습니다. 홍해에서 세례를 받은 20세 이상의 장정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남았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던 어린아이들이 장성을 해서 가나안 목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이 요단을 건너려고 할 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그런데 그 시기가 언제냐면 요단강의 물이 넘치는 때였습니다.

사람이 그냥은 요단강을 건널 수 없는 그런 때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에서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세례가 아닙니다. 세례는 이미 홍해를 건널 때 모두가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세례와 같은 사건이 또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와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광야라는 교회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천국은 물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이 어떻게 들어갔는가를 깨달아야 나도 광야에서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맨 자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갔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면 바로 율법이 들어 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세례의식을 행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무엇이 요단에 들어가는가 하면 바로 언약궤가 요단강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함께 다시 살아난 자들의 의식이 홍해를 건너는 세례인데 그렇게 믿은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말로는 잘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를 않기 때문에 모두가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말로는 세례를 받으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하지만 역시 자기가 살아서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면서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은 두 사람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어떻게 건너야 하는 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언약궤가 물이 넘치는 요단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사를 베풀어 주셔서 실제 언약궤가 요단강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제사장의 발이 들어가는 것으로 이미 언약궤는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반드시 언약궤를 물속에서 장사를 지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장사지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언약궤가 물에 들어가서 장사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죽어야 합니다.

만약 율법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요단강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우리에게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율법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게 됩니다.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언약궤가 물속에서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른 땅이 열렸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의 하나라도 이 언약궤가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율법대로 진노를 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 합니다

 

율법이 죽어야 길이 열립니다.

이 길을 누가 열어 주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 율법은 요단강에 들어가 죽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언약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게 제사장들이 메고 있는 언약궤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장사를 지내버렸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휘장을 찢으시고 언약궤가 있는 그 휘장 안으로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갖게 하셨습니다. 바로 요단강에서 이 율법을 물속으로 넣어서 장사 지내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장사 지내서 죽여야지 내가 살 수 있는 것이지 그 율법이 아직 살아 있다면 나는 절대로 요단강을 건널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율법을 살리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율법을 모르고 그 율법을 살리고 있습니다. 천국 문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율법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의문에 속한 율법을 폐하지 않으시고 휘장을 찢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는 순간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제사장들이 반드시 율법을 물속에 넣고 장사를 지내야 그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가 제사장입니까?

물론 성도도 왕 같은 제사장이지만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적하는 율법을 물속에 넣고 장사를 지내야 우리가 천국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죽고 나니까 이제 백성이 건너기 쉬운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 그 요단강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장사 지내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요단강을 건너려면 물이 넘쳐서 도저히 건널 수 없게 됩니다. 이제 그 요단강이 어떻게 되었는가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요단의 뜻은

내려가는 것, 급히 흘러가는 것, 물의 심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언약궤가 들어갔습니다. 율법이 심판을 받아서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심판을 받고 나니까 이제 그 요단강이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건너가기 편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율법이 심판을 받은 것을 믿지 못하고 있고 이 요단강을 어렵게 건너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건너가기 쉽게 마른 땅으로 만들어 주셨는데도 믿지를 못하고 어렵게 율법을 지켜서 건너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다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언약궤가 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요단강에서 심판을 받아 율법이 폐해져야지만 우리가 마른 땅으로 편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들은 천국 문을 가로 막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반드시 율법이 죽어야 합니다.

그 율법이 살아 있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율법이 없이도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더 의롭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천국 문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못 건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심판하시고 죽이신 것을 믿으시고 편안하게 마른 땅을 걷듯이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