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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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윤주만목사 2016. 1. 27. 20:38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린도전서10:1-6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10:8절을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그림자를 말씀을 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이 경계를 삼고 그들과 같이 간음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구원 문제입니다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고 광야라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우상을 섬기다가 죽고 또 어떤 이들은 간음을 하다가 이만 삼천 명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을 하지 말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이 바로 해석이 되면 그것처럼 기쁜 일이 없고 그것에 대해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시간이 되면 성경을 더 많이 읽고 어디 한적한 곳에 처박혀서 말씀을 해석해서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아 잘 살고 잘 먹고 하는 것이라면 저는 여러분에게 단호히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를 믿기 보다는 차라리 우상을 섬기거나 이 세상을 따라가는 것을 더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만약 구원이 없다면 저는 굳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안 믿어도 이 세상에서 다른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과 또 전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잘 살고 있고 또 기독교인들보다 더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본질이 다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내가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아서 자기들이 원하는 내세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절대로 내가 선하고 착하게 살아서 이 세상에서 어떤 선한 일을 한다 해도 그가 성자와 같이 자기를 불태우면서 살았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종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나는 거지 같이 살다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다가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사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선하고 착하고 의롭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상은 이 세상의 샤머니즘 적인 사상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 안에도 그런 사상이 팽배해 있고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마치 이단인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생각이고 예수를 믿는 성도는 그런 보편적인 사상이 아니라 구원에 대해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선하고 의롭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닌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것을 강조하는 순간부터 율법주의에 빠져 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바로 그 율법주의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진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것이 오히려 구원을 장해하는 요소로 자리할 수 있는 것이 진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난 후에 포로에서 다시 돌아와 그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율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왜 율법을 세웠습니까?

자기 조상들이 율법을 잘못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포로가 되어 돌아온 후에 또 그들은 헬라가 갈라진 후에 그 중 한 나라에 의해서 또 성전이 훼파되는 침략을 당하고 마는 아주 불행한 일을 격은 후에 말라기를 지나면서 율법을 더욱 견고히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은 율법에 정통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한 그들의 열심이 지나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킨 이유는 자기 조상들과 같이 범죄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또 다시 이방의 침략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들은 정말 선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하게 살고자 했던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세상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스라엘을 통해 벌어졌고 지금 우리에게 그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마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율법주의에 안 빠질 수가 없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드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용납이 되고 있고 그것을 반대하면 오히려 공격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간음이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뜻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을 간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최초의 간음 자는 바로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장자인 르우벤이 그 서모 빌하와 간음을 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 사건으로 르우벤은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그렇지 그 이전에 노아 홍수전에도 사람들은 간음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남녀가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이 쌓이고 그리고 서로 호감을 갖다 보면 간음하는 일이 다 반사로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요셉과 같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간음하면 천국에 못 갑니까?

제가 간음을 해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하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간음을 하는 것은 이미 이 세상의 윤리로 보아서도 나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이미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사건은 우리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이 육적으로 간음을 한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간음을 하는 것을 예표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육적인 간음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육적이 간음으로 생각을 했다가는 큰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그들이 한 그것을 경계로 삼아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알아야지 그들과 같이 육적인 간음을 하고 안 하고 하는 문제는 전혀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간음을 하다 멸망을 당한 것을 지금 이 시대 육적으로 간음을 하는 사람이 멸망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가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간음한 사람은 그럼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서 간음을 하지 않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진리에 반하는 세상에 속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간음을 하다가 이만삼천 명이 멸망을 당했는가를 보겠습니다.

 

민수기25: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간음이 무엇인가를 육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자들이 간음을 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모압 여자들과 간음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여자는 우선 생리적인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자가 있고 교회에 들어왔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자라고 하고 교회를 여자라고도 합니다.

 

모압 여자입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모압 여자지만 영적으로는 이방 계집입니다

 

잠언5:20절을 보면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지금 영적인 간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적인 간음으로는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해 돌로 쳐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면서 그들로 정죄를 못하게 하시고 또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그런 육적인 시대가 아닙니다.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천국을 가고 못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영적인 문제로 천국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결정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영적인 간음을 하는 자는 멸망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것이 지금 우리에게 영적인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 가를 알아야 내가 간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간음을 했느냐면 바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간음을 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간음을 하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 외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또 모압의 여자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사 드릴 때 그것을 함께 먹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모압의 남자들과 간음을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남자들만 모압의 여자들과 간음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전에 발람 선지자의 사건이 22-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으로부터 금은보화를 받기 위해서 사술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모압 여자를 통해 미인계를 써서 이스라엘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한 것입니다

 

지금 그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 받게 하기 위해서 모압의 여자들이 미인계를 써서 이스라엘의 남자들을 꼬여 낸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이스라엘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 지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모압 여자들이 미인계를 쓰니까 거기에 넘어가서 간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25:2절을 보면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그들은 육적으로 신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보이는 육적인 신들에게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최소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른 신에게 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보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런 보이는 우상에게도 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술을 쓰고 있습니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으로 간음을 하는 사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혀 깨닫지 못하게 사술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교회에 이 세상의 사상을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민수기25: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바알브올은 브올 산의 지방 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알과 연관이 있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알의 뜻은 소유주, 주인, 남편이라고 합니다. 이 신은 그 땅에 정착한 사람들이 섬기는 신으로 다산 풍요를 빌기 위해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 뜻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빨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광야에서 다산과 풍요의 신인 바알브올에게 부속이 된 것입니다 새 남편에게 붙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가 어떤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인데 그 길목에서 풍요와 다산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정착을 하려하고 있고 이 세상이 주는 다산과 풍요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기복주의에 빠져 있습니까?

천국을 가기 위해서 영혼 구원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의 복을 더 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헌금을 내면서 내가 헌금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놀음을 하는 자들이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 같이 육체의 풍요를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풍요의 주인에게 부속이 된 것입니다

제가 잘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셨다면 당연히 그것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열심히 땀을 흘려서 수고한 소득의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표준새번역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과 결합하였다. 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였다

 

주인이 되었습니다.

바알이 주인이 되어서 그것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신과 종교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위해 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이 아니라 교회라는 광야에서의 축복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보고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바알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모습이며 목회자들을 교인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을 아주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빌어주지 않는다면 교인들은 거의 떠나고 말 것입니다

 

제가 씁쓸한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고 자기가 십일조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십일조를 안 받겠다고 하면 교인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그럴 것입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축복 받는 것이 싫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십일조를 못 내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에 가서 축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십일조를 하면서 축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심각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가 왜 주례를 섭니까?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구역장으로 있는 목사의 주 수입원이 바로 주례와 교인들의 경조사에 참석해서 축복 기도를 해 주고 받는 사례라고 들었습니다.

 

다 세상적입니다.

성경 어디에 성도들의 결혼식에 사도들이 그리고 목회자들이 그들을 위해 축복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까? 그리고 사례를 받았습니까? 이 모든 것은 다 이 세상적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 성도가 이 땅에 주인이 되어 살려고 하는 자체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복에 환장을 했습니다.

아니 복이 없는 교회는 나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다른 교회 교인들 보다 더 복을 많이 받아야 그 교회가 바른 교회인줄 알고 점점 교회는 물질의 풍요 속에 이 세상에서 호화스러운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말로는 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세상에 속한 일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교회도 세상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세상의 풍요의 신 바알브올에게 부속이 되어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분명한 목표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세상 것을 얼마나 구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은 자기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광야에서 바람의 사술에 걸려든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교회도 세상이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것도 세상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 있고 세상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마치 세상 밖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밖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세상 밖에서 하고 있습니까?

내가 잘하려고 하는 풍성하게 하려고 하는 그 모든 사상에는 바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바알에 부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기독교가 기득권층이 되었습니까?

거대한 세력이 되어서 이제는 정치도 쥐락펴락하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려고 합니다. 거리를 다녀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무슨 성이 되어서 그 주변에서 가장 큰 건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풍요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 하늘의 것을 함께 가지려고 하는 자체가 간음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것을 갖기 위해 축복을 기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만을 바라고 그 상을 바라고 이 세상에서 주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아주 나쁜 심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상이 얼마나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까?

심지어는 자기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마치 불교에서 백일치성을 드리는 것 같이 작정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 것을 일일이 다 말씀을 드리기가 벅찹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고 성경에 없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세상적인 것이고 세상의 주인에게 부속이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간음 하면 죽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와 간음을 했느냐면 이 세상의 풍요의 신 다산의 신 바알과 간음을 했습니다. 그들과 간음을 하다가 죽은 자가 이만사천 명 이었습니다. 우리도 간음을 하면 똑 같이 그들과 같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음을 한 것이고 그 간음의 의미가 무엇인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요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수기25:9절을 보면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이만 삼천이면 어떻고 이만 사천이면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몰랐겠습니까? 그런 중요하지도 않은 숫자에 집착을 하다가 간음에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멸망을 했는가? 이고 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들을 경계로 삼아 그들과 같이 멸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속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고 또한 영적인 간음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가나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는 예수만 바라보는 성도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세상의 것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천국에서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