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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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윤주만목사 2016. 1. 27. 21:11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고린도전서10:1-6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10:9절을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세 번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했고 또 간음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오늘은 주를 시험하다가 멸망을 한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은 지금의 교회입니다

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경계로 삼아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들과 같이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실 이스라엘은 선민이라고 하지만 불행한 자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 그들과 같이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예표를 삼아 주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에게 까지 기회가 안 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 멸망을 당함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지를 못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림자라서 잘 안보여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을 당했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뻔히 보았고 그 실체가 보였는데도 역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나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보았고 성막과 그리고 절기와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듬어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실 성막만을 보고 또 절기와 규례와 율법만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를 보았습니다.

신약을 통해 구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기가 참 쉽습니다. 그런데도 그림자를 실체로 보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도 믿겠다고 하는 아주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실체가 왔으면 그림자를 통해서 명확히 실체에 대해서만 확증을 하면 되는데 아직도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얼마나 좋은 조건입니까?

그들은 예수를 못 보았고 단지 율법과 규례를 통해서 예수에 대해서 알아야 했는데 우리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사실 조건을 따지고 보면 우리가 훨씬 유리한데도 제가 보는 교회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나온 사람들 중에 몇이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그런 것을 뻔히 보고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다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스라엘이나 지금의 교인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60만 중에 2명입니다

그럼 지금 한국 교회가 천만 명이라고 할 때 몇 명이 되겠습니까? 물론 직접적인 대입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실 그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천이백만 명이라고 해도 40명이라는 수치입니다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도 은혜를 입어서 들어간 것이지 그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나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의 예표로 보여주시기 위해 들어 보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그 안에 드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 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광야에 나온 사람들은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비관적입니다

제가 보는 한국 교회는 절망적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고 또 간음을 하고 있고 주를 시험하고 있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아니라 하지만 제가 보는 영의 분별로 보았을 때는 이스라엘과 똑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정말 내 영혼을 위해서 한 말씀도 가볍게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 숭배를 하고 간음을 하고 주를 시험하고 또 원망을 즐겨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에는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의문도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르쳐 주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행위는 열심을 냅니다.

또 간혹 가다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에 대해서 알려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세상 지혜를 습득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인 저 보다도 머리는 좋아서 몇 번만 읽으면 무슨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말하면 아주 잘 압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책을 보고 또 세상의 논어, 사서삼경을 보고 그 안에 무슨 말이 있는 가를 아는 것 같이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성막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이 그런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막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 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교회에 나왔는가를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애굽에 사는 것이 낫지 광야에 나와서 죽으면 묘 자리도 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애굽에 사는 사람과 광야에서 죽는 사람과 누가 더 비참한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차라리 광야로 안 나오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려면 확실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어중 띠게 아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도 못 합니다 한강이 얼었는데 그 두께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대충 몇 센티 얼었을 것이라고 하다가는 그 위에서 빠져 죽을 수 있습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데리고 간 사람도 함께 빠져 죽을 수 있습니다. 나만 죽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까지 죽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원수를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수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구원하시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구원을 방해하는 자는 원수입니다 성경에서 원수를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로 말씀을 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가려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을 다 했는데 원수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되겠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주를 시험하느냐 하면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험이라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고난에 처하면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 같이 지금 이시대도 역시 그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돈을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말리기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시험을 믿음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자기들의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계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교회 안에서 주를 시험하는 자들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는 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런 말씀을 보면서 전혀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치 이스라엘만 시험을 하고 자기들은 시험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로맨스도 죄입니다.

불륜만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로맨스도 역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 머리가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게 내 영혼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불륜이든 로맨스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가장 기초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모든 환경과 처지 그리고 나에게 주신 은사는 내 분복이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하다가 결국에는 주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출애굽기17:1-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왔습니까?

자기들의 능력이 아니라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시고 또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이 세례를 받으며 그 길을 걸어서 광야로 들어 갈 때 애굽 군대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결국 홍해에 수장이 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자기들보다 더 강한 애굽 군대에서 이끌어 내시고 또 바로 전에 그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본 그들이 또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달라고 하면 됩니다.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시 하나님께서 설마 그들이 목이 말라 죽에 하시겠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절대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물은 육적인 물입니다

그들에게는 사실 이런 육적인 물 보다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 보다 지금 당장 육적인 물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없다 해서 갈증이 난다 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상실하며 안 됩니다.

그들은 가나안이라는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자기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그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마신 음료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령한 음료를 찾기 보다는 육신의 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음료를 먹이셔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데 이스라엘과 같이 육신의 목이 마른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 죽으면 어떻습니까? 설령 하나님께서 그 육신을 거두어 가신다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육신을 거두어 갈까봐 자기들이 죽을까봐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가나안만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들은 자기 육체가 광야에서 죽는 것을 더 걱정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분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아 그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시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할까봐 그것을 걱정하면서 시험하고 있습니다.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고 주님께서는 나를 절대로 광야에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섭리를 모르고 그저 육체의 것에 마음을 빼앗겨 신령한 음료를 마시려 하기 보다는 육체를 위해 먹는 것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6:33절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은 더해 주신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구하면 이스라엘이 마실 물이 없어 갈증으로 고난을 받고 있는 그것은 그냥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굳이 그것을 구하지 않아도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 까지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까? 마치 이 모든 것이 없으면 천국을 가는 길에서 탈락을 한 것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천국에 은혜로 간다고 하는 그들이 실제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이 모든 것에 의해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자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주를 시험하고 있고 목적이 분명한 성도는 설령 육신에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나를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인도하실 것을 믿고 참고 견디며 하늘을 소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많은 고난을 당 했습니까?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죽임을 당하면서 또 로마 군대를 피해 카타콤이라는 아주 극한의 환경으로 내 물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만을 바라보고 살아갔습니다.

 

성도와 비 성도의 차이입니다

이 시대도 성도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설령 이 모든 것이 부족해서 고난으로 다가올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민수기14:22-23절을 보면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들려고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해 내셨다고 시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기들을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그 험한 광야에서 죽게 하시느냐고 시험을 했습니다.

 

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십일조를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고 또 헌금을 하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몇 배로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심지어는 빚을 내서 헌금을 하면서 왜 안 채워 주시냐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뭐가 더 필요 합니까?

우리는 가장 귀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면 설령 광야에서 조금 고난을 받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자기 고난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실 것이라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21:5절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스라엘은 믿지를 못했습니다.

방금 전에 남방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과 그 성읍을 다 멸망을 시킨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셔서 이긴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힘으로 싸워서 이긴 것으로 오해를 하고 또 자기들이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 식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16:6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이들은 하나님께서 신령한 식물과 음료로 먹이셨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서 천국에 가야 하는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 신령한 식물과 음료보다는 자기들이 스스로 먹는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또 자기들의 짓고 있는 죄를 보면서 그것을 안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안 하는 자신들을 보면서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식물과 음료가 박하다고 합니다.

자기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먹이시는 신령한 식물과 음료는 박하고 자기들이 경작을 해서 먹는 율법의 의를 먹고 싶어 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가꾸어 먹는 율법의 의는 너무도 좋기만 합니다.

 

율법을 따르겠다는 것은 주를 시험하고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는 신령한 식물과 음료만 먹어도 되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이 박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경작을 해서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 말고 자기들의 것을 먹으면서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시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이 시대는 더욱 더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험하다가 광야에서 교회에서 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뻔히 보여 주셨는데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를 믿지 못하고 시험을 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수기2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시험하다가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그 인도하시는 것은 바로 신령한 식물과 음료로 하시고 있고 때로는 교회라는 광야생활이 고난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는 설령 여러 가지로 자기가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오직 예수를 전하면 그것이 박하다고 매일 예수만 먹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그러다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회생활만 하다가 죽는 것 아니냐고 시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기보다는 이 세상의 것을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바로 율법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마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믿지 못하고 시험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그것을 경계로 삼아 그들과 같이 주를 시험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천국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있는 성도를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시고 잠잠히 기다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