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요한복음3:36절을 보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순종을 말 합니다.
과연 율법적으로 완전하게 순종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오직 한사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단 한사람도 육신으로 순종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모두가 육신으로는 순종을 못 한 사람입니다 또한 순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육신은 순종을 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순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자입니다 또 그것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불교의 교리를 따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순종이냐 믿음이냐
아니면 믿으면서 순종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앙인들에게 아주 난해하게 생각이 되어 지고 있고 이 문제를 잘못 이해를 하다 보면 영지주의가 나타나고 또 구원파와 같은 이단이 발생을 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단들이 나타나는 한결 같은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가 순종과 믿음에 대해서 바로 정립을 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행위에 의지하고 또 그것을 자기 몸으로 순종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한다고 하는 그들도 사실 순종을 했느냐 하고 질문을 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을 못 합니다. 왜 대답을 못 하느냐면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죄가 없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요한일서의 말씀 때문에 순종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얼마만큼 순종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꼬리를 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순종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만 93회 나오고 또 그와 연관된 단어까지 합치면 다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믿음이냐 순종이냐 이 문제를 가지고 격론을 벌이고 아직까지도 이 문제는 첨예하게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순종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대말이 마치 순종인 것으로 오해를 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믿음이나 순종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데 믿음으로도 사용되고 또 순종으로도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냐 순종이냐를 가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것은 서로가 반대를 하는 말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같은 말도 아닙니다. 다만 어떻게 사용되어 지는 가를 먼저 이해를 하고 순종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믿음과 순종이 같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상의 문제이지 같은 말씀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먼저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다 보면 아들을 믿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다른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꼭 그렇게 기록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만약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두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단입니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 오직 믿음이 아니고 다른 어떤 조건이 들어간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자요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해석을 하려면 사상의 패러다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성경을 그냥 무심히 보기 보다는 아주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아도 바른 해석을 하기 힘이 드는데 그저 순종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까 순종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순종하면 몸으로 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먼저 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순종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순종은 몸으로 하는 순종이 있고 마음으로 하는 순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종하면 거의 몸으로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종[順從]이라는 단어의 뜻은 순순히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몸으로 따를 것이야 아니면 마음으로 따를 것이냐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몸과 마음 같이 따를 수도 있고 몸과 마음 모두가 안 따를 수도 있고 몸은 따르는데 마음은 안 따를 수도 있고 몸은 안 따르는데 마음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하는 행위를 보고 순종을 한다. 안 한다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하는 몸으로 하는 행위를 보고 순종을 한다. 그렇지 않고 순종하지 못한다. 순전히 자기 눈으로 보고 판단을 합니다. 실제 그 마음은 순종을 하는지 안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이것은 순전히 사람의 판단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마음은 순종을 하지 않으면서도 몸은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권력에 억압을 받게 되면 그 권력을 마음에서는 아주 경멸을 하고 반대를 하고 있어도 자기가 해를 당할까봐 권력에 순종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꼭 권력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자기 체면과 또 그 사회와의 화합을 위해서 그들의 사상을 반대를 하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이들은 분명히 순종을 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전혀 순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복음의 비밀을 깨달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과 다르게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사람의 심장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심장을 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모든 사람은 몸으로는 순종하지 못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는 99개를 순종을 했고 누구는 1개를 순종을 했다면 당연히 99개를 순종한 사람은 순종을 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점도 흠도 없이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00개 중에 99개를 순종하고 1개를 순종 못 했어도 그는 순종을 못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99개를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온 율법을 항상 다 지키다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야고보서에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안 했어도 도적질을 하는 순간 나는 살인자가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순간 나는 간음한 자가 되고 살인을 한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요구하시는 몸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그런데 불과 몇 개를 순종하면서 자기가 마치 순종을 잘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점만 있어도 안 되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불과 몇 개를 순종하면서 마치 자기가 순종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는 몸으로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은 몸으로 하는 것이 쉽다고 말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요한복음에서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순종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적인 것을 순종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들이 한 모든 구속의 은혜를 순종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믿음과 순종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번역 상에 그것을 순종으로 번역을 했느냐 믿음으로 번역을 했느냐는 차이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순종으로 번역을 했어도 그것이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성도가 무엇을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구원과 관계가 되는 말씀에 나오는 순종은 바로 이 말씀과 같이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순종을 할 수도 없고 또 순종을 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내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을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 순종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순종을 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왜 멸망을 당했습니까?
그들이 만약 율법적인 몸으로 하는 순종을 하지 못해서 멸망을 당했다면 이 시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이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이유는 자기 몸으로 하는 행위를 순종치 아니해서가 아니라 복음에 순종치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0:16절을 보면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한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복음이며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적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 몸으로 순종을 하는 그것을 보다가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몸으로 하는 순종은 이스라엘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몸으로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도 이스라엘을 따라 실패한 이스라엘을 따라서 자기 몸으로 순종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믿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몸으로 순종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6:26절을 보면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예전에는 하나님에게 불순종을 하던 이방에 복음을 전해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 순종케 하신다는 말씀은 믿음으로 따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로 전하여 준 이 복음을 믿어 따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과 구원과 혼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에 관한 순종은 반드시 내 몸으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믿어 따르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어 따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5:7절을 보면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진리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진리에 어떻게 순종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마음으로 믿어 따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시고 은혜를 내려주신 그 은혜가 내게서 은혜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폐하신 율법의 행위를 보고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예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자기 육체로 폐하신 율법을 순종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막아 순종치 아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가 들어 온 교회입니다
진리를 막아 순종치 못하게 한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 달음질을 잘 하던 갈라디아 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오니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를 막아 순종치 않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에 내가 순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 몸으로 무엇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따라가는 그것이 바로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1:22절을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순종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이 깨끗하여 거짓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지 진리를 내 몸으로 어떻게 순종을 할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내가 받아들이고 따라간다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으로 따라간다는 말씀입니다
율법도 물론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지켰을 때 진리가 됩니다.
만약 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 하나를 범하게 되는 순간에는 그 진리가 진노의 포도주로 변해 내 등에 비수를 꽃아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몸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체질을 아십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몸으로는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몸으로 순종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신 결과를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바로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몸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순종을 하심으로 내가 한 것이 없이 마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그 자체를 순종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장을 살피시기 때문에 저가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가 안 하는가를 아십니다.
몸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완전하게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내 몸으로는 연약해서 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마음으로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어렵습니까?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그것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내가 순종한 것으로 해 주시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오라고 하는 그것이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몸으로 순종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자꾸 무거운 짐을 진 것같이 힘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모르면 자기 몸으로 순종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몸으로 순종을 하려고 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마음으로 순종을 하려고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생명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도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순종을 한다고 하는 그것이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기 보다는 자기들의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종이라는 것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순종입니까?
바로 사람에게 보이는 순종입니다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으면서 몸으로 순종을 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순종을 하기 보다는 자기 육체의 몸으로 순종을 하면서 자꾸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데 몸으로는 최선을 다 하는 여자를 좋아하겠습니까? 아니면 몸은 조금 잘 못해도 마음만은 변치 않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를 기뻐하겠습니까? 물론 이 둘 다 잘하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기뻐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의 육신은 연약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몸을 받으시기 보다는 마음을 받으시는 것을 기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몸으로는 완전하게 순종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 마음만은 변치 않고 순종을 하는 그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마음으로는 100%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몸으로는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일지라도 진리에는 100% 순종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진리에 순종을 하려 하기보다는 사람에게 보이고자 자기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마음도 보고 우리 몸도 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으로 순종을 해야 하는 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보시는 그것으로 순종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종은 곧 믿음입니다.
그것이 마음으로 순종을 할 때는 믿음이 되고 그것이 몸으로 순종을 할 때는 행위가 됩니다. 교회 안에는 행위에 의지하는 자가 있고 또 믿음에 의지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가를 분별해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의지하다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에 부딪쳐 깨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3:27절을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내 몸으로 하는 순종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은 자랑하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고자 자기 몸으로 하는 순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이미 마음으로 순종을 해서 은혜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 마음으로 순종을 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내 몸으로 순종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내 몸으로 순종하는 것은 형식입니다
내용이 중요한데도 형식에 치우쳐 마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른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요 또 하나님께 가장 불순종을 하는 사람입니다
영혼 구원이 없는 순종은 한 마디로 거짓에 불과 합니다.
먼저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만한 순종을 하고 있는 가를 스스로 분별을 하고 난 후에 자기 몸을 쳐서 순종을 한다면 지혜로운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을 하여 자기 영혼을 보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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