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0: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84쪽)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주님의 부활은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신체의 부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믿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삼위일체의 성자가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도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들에 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히브리서에서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속죄소가 있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입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들어가신 그대로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우리 앞서서 가신 주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 주님께서 들어가신 그 길을 믿음으로 우리도 그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래의 일을 알아 믿는 것과 같이 번역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는 창세전에 있는 주님과 아버지가 가지셨던 영화를 믿는다는 말씀이고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에 있던 믿음이 선진들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 믿음이 바로 아는 일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아는 그대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보는 우리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받은 그대로 우리 역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하고 그 아는 것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도 이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이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상고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못 들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었으면 그래도 자기에게 기회가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회를 그저 인간적인 생각으로 날려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아니 편하게만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정이라고 해도 그래도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허다한데 그래도 복음을 들은 것은 자기에게 기회가 온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듣고 싶어도 듣지를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듣고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암 병이 걸려 죽는다고 하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을 전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고 생각하는 사고가 있어서 너무 똑똑합니다. 특히 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더욱 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이라는 단어만 명확하게 알아도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저 성경을 보아도 단어를 아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을 보면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사도 요한은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보고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말씀이 있다면 저는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종교의 경전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사실 성경에 없는 것을 얼마나 많이 행하고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죄라는 것을 그것도 성경 마지막에 사도 요한이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서 보이는 예배를 드리고 있고 보이는 행위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굳이 생각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철학적으로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18:1-5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400년입니다 그리고 40명이 넘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하는 마음을 바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는 제 지식을 다 버리고 성경말씀으로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적으로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것을 가능한 버리고 성경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인을 합니다.
제가 성경을 풀 때는 번역이 되어 있는 5종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확인에 또 확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아도 나중에 보면 실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오묘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피조물들이 다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시간이 될 때는 SNS를 봅니다.
정말 보다가도 실망만 하기 때문에 거의 안 보려고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실망을 하고 정말 그들이 올려놓은 글이나 영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꽤나 지적인 것으로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아는 지식을 자랑을 하고 있고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가 아니면 절에 다니는 사람인가를 모를 정도의 글을 볼 때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해서 그들이 돌이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서라도 하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까지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제가 하는 일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입니까?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했습니까? 정말 피조물들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심이 도리어 복음을 방해를 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그 관계가 먼저 정확하게 설정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자기가 대단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정말 성경에 비유라도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라든지 격이라든지 하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성경에 없는 것을 믿는다고 하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저 역시 종교 안에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들이 믿으라고 하는 그대로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었으면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초기 교회 안에서도 율법주의와 성화주의가 있었다는 것을 제가 부인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 전이고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까?
성경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시대입니까? 당시에는 인쇄술이라는 것이 없었고 필사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을 필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분량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또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종이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사도들이 구약 성경만 가지고 복음을 전했던 그때보다도 더 성경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넷이 발달을 해서 성경도 다양하게 그리고 내가 찾고 싶은 말씀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 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경이 다 기록이 되고 또 성경을 여러 가지 번역본으로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정말 너무도 좋은 시대라는 것을 저는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아직도 구약 성경만 가지고 보는 것과 같은 느낌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솔직히 간단합니다.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만 있다면 성령이라는 단어만 다 찾아서 성경에서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정말 이 삼위일체의 문제 때문에 성령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을 몇 십번이나 다 보았습니다.
물론 압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분별을 할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한번이라도 접했다면 자기 영혼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스스로 깊이 상고를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서로 반대가 되는 말씀이 있으면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니까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보니까 누구로 보였습니까? 사람 셋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진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람 셋으로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브라함이 사람 셋으로 본 것을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볼 수 있습니까? 절대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도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창세기18장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 아브라함이 보니까 사람 셋이 서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 아브라함의 눈에는 사람 셋으로 보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중에 둘은 천사라는 것을 이제 19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람 셋으로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말씀이 기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에 소멸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때는 우리 피조물의 형상으로 나타내시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까?
본래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 형상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참 형상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는 하나님 나라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도 그렇고 하나님도 이제는 어떻게 해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 말씀만 바로 알아도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을 어떻게 해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내셨고 멜기세덱으로 나타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꿈에서도 볼 수 없고 환상으로도 볼 수 없습니다. 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고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사람 셋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여호와라고 모세는 성경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천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사 둘만 나타나도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딱 두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두 천사입니다.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 두 천사가 하나님과 함께 나타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장사 지내시고 부활을 하셨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시체를 장사 지냈던 무덤을 보니까 두 천사가 보이는데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 두 천사와 함께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시체를 장사 지냈던 무덤을 보니까 두 천사가 있는데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도 두 천사와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장사 지내시고 부활을 하실 때도 두 천사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다 의미가 있고 이렇게 그림자와 모형으로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 두 천사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실 때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부활을 하신 주님이 누구신가 하면 바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믿는다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창조된 세상에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분이 지금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신체로 부활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부활을 하시는 순간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지도 않고 있고 성경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도 않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을 짐승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짐승은 우리 피조물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성경에서 증거도 하지 않는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분명히 성경말씀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이신데도 사람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저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다 삼위일체를 믿는다 해도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를 믿을 바에는 그냥 차라리 세상에서 조용히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고 이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는 신체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성경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다.
두 천사입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다고 하면서 아브라함이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빈 무덤을 보고 있고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뒤에서 다시 말씀을 하겠지만 마리아는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에서 두 천사만 보고 있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부활하신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시체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가 돌아가고 난 후에 빈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 천사가 보이고 있고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성경을 보고 이방이 종교인들이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주님께서 신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 천사가 있다는 그 말씀은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부활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지금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보니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천사가 혼자 나오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천사 그리고 열두 천사를 말씀을 할 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막달라 마리아가 보는 무덤에 두 천사가 있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37:9절을 보겠습니다. (구 141쪽)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두 천사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냥 성경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두 천사를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입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약간씩 다르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사에 대해서도 요한복음과는 조금 다르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도부터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아버지와 동등하심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부활에 대해서도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입니다
제가 성막의 색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두 천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해서도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닫고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성막에 성소와 지성소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사이를 휘장으로 쳤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휘장 안 지성소를 어떻게 표현을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죄소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룹 둘입니다. 우리가 히브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그룹이라고도 하고 천사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상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비유로 하면서 두 그룹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의미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두 천사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그분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무엇을 얻게 하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 생명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면 아는 일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죄소입니다
그 생명을 의미를 하기 위해서 이 두 그룹을 금으로 쳐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천사입니다
그리고 두 그룹입니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말씀을 하고 있고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영접을 하는 일은 하나님과 두 천사를 영접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다른 성경과 다르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0-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87쪽)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경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무덤에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 두 천사가 있다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입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천사입니다
그리고 두 그룹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흰 옷 입은 두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이 그리고 종교의 교리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와 같은 신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피조물의 형체는 이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었고 무덤에서 없어졌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이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부활을 하셨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가 그 육체가 죽고 부활을 하신다면 그 부활은 하나님이 되셨다는 말씀이고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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