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9:15절을 보겠습니다. (구 932쪽)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너희가 이 시기를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기입니까? 복음을 들을 시기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누가 자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자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누구나 다 한 번씩은 읽어 보고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 지혜서라고 하니까 지혜를 얻기 위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성경은 못 보더라도 잠언은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잠언 역시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구약에서 대표적으로 문자로 보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가 잠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문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보면서 세상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합니다.
누가 게으른 자입니까?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말씀을 생각하면서 새벽 예배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게으름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게으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게으른 사람입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달란트의 비유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새벽 예배를 드립니까?
그런 육체의 모습을 보고 부지런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육체의 모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주님께서 게으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만 있으면 마치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달란트의 비유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부지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육체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까?
그것을 아무리 많이 해도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생명을 얻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입니다.
사람으로 깊이 잠들에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게으른 자는 자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게으른 자가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교회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으름을 육체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게으른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거의 자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은 깨어 있는 자가 아니라 모두가 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저주를 받아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비유로 해서 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자기들이 깨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그는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듣지도 못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자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으로 진노를 받지만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20:13절을 보겠습니다. (구 933쪽)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에 합니다.
누가 게으른 자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입니다 왜 그가 게으른 사람인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빈궁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요해야 합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육체의 부지런함으로 인하여 영의 일에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얻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육체의 일을 하느라 그것에 게으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잠자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율법의 의를 가졌고 그 율법의 의로 빈궁하게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잠언의 말씀을 외울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게으름이 무엇인가 그리고 잠자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성경을 문자로만 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거의 모든 사람이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는 이 말씀을 거의 문자로 보고 있고 이 세상에서 잠을 좋아하는 사람은 빈궁하게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합니까?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지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잠언을 보면서 특히 구약을 보면서 사람들은 거의 다 육체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육체의 일로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합니다. 또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빈궁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육체의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요해야 합니다.
어떻게 부요해 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한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지런한 사람이고 생명을 얻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 무엇이 부요하게 되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모르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열심이 도리어 더욱 빈궁하게 만들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 합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가난한 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못지않게 부자가 되어 있지만 자기들이 왜 부자인가를 모르고 자기 육체를 보면서 더욱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잠언은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자는 자기가 자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잠자기를 좋아해서 빈궁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잠자기를 좋아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왜 빈궁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이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의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교회의 모습을 이 시대 기독교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에 빠져 생명에 대해서 게을러서 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자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고 있다는 말씀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왜 자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압니다.
누구입니까?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는 사람들이 이 시기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굴복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 시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은 이 시기를 알지 못하고 있고 그런 사람은 자기가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13:3절을 보겠습니다. (구 811쪽)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 게으르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게으른 자는 깊이 잠들게 하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생명에 대해서 깊이 잠들게 해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달란트입니다
그것을 남기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시편에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게을러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사람은 사망의 잠을 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망을 당하게 되니까 잠언에서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거의 육체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꺼풀이 감기게 됩니다.
정말 잠이 쏟아진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이제 잠을 거의 못자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잠이 쏟아지면 정말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못 참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잠이기도 합니다. 눈꺼풀이 이렇게 쏟아지면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현실적인 말씀입니까?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그 정도로 싸워야 합니다. 마치 잠이 쏟아지는 것과 같이 눈꺼풀이 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면 사망이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육체의 생명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이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의 생명입니다
사망의 잠을 자면서도 사람들은 이것이 영의 일이다보니까 감각이 없습니다. 아니 자기 육체를 보면서 자기들이 깨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 그리고 시편의 말씀이 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지만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 육체가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고 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까? 반드시 사망의 잠을 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교회는 이 시기를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알기 때문에 그들은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지만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게을러서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육체를 보면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고 있고 자기들은 깨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잠언이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시편이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지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다수가 사망의 깊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잠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꺼풀이 감기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안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목사들까지도 성경을 안 보아도 설교를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굳이 성경을 가지고 고민을 하지 않아도 세상의 이성을 따라 선과 악을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사망의 깊은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자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입니다
나쁜 의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을 보고도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안 보는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성경은 참으로 이상하기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은 그 사람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면서 사망의 잠을 자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는 굳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성경을 보는가도 모르는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 안에서 사망의 잠을 자는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문자를 아는 것으로 끝입니다. 사망의 잠을 어떻게 누가 자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자기가 이 문자를 알고 다윗과 같이 이 문자 그대로 기도를 하면 자기가 사망의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그때에 이미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시편에서는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사망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잠에서 깨어 구원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는 에베소 교회보다 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아직까지 사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면 바로 그것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초대 교회가 거의 2000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한 세대가 지나가면 이스라엘은 바로 타락을 했습니다. 사사가 죽으면 바로 타락하는 이스라엘을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가 지나가고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습니다. 사도들이 죽자마자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만 타락을 해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바로 타락을 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율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대를 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 바울 신학이라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바울의 신학이라고 하는 책들을 배우고 있지만 그 책에서 율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사람들이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어두움을 더 사랑했는가 하면 흠 없는 율법을 갖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방에 교회 역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는 어두움이 무엇인지 빛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고 있는가 하면 그들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온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에 참예를 했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교리로 정해 놓은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잠을 언제 잡니까?
물론 이 시대는 직업이 다양하다보니까 꼭 밤에만 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사람이 어두워졌을 때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은 그가 아직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고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역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 초대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고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왜 안 믿습니까?
모두가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는 시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지 않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두움의 일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니까 주님께서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전체를 주님께서 죽은 자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죽었습니까? 물론 그들 역시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안에 이미 율법주의가 들어왔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지만 죽은 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아니 모든 사람이 성도라고 칭한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죽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이제 복음을 듣고 시기를 알아서 깨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도 이방에 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유대인의 회당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는가 하면 거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아직 율법의 문제가 정립이 안 되어서 율법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고 있습니까?
누가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추시지 않아서 자기들이 어두움의 일을 하는지 깨어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빛이 세상에 오셔서 비춰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어두움에 있는 우리에게 비춰주셨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를 지나고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면 거의 다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죽는 자로 살아가면서 자기들이 깨어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34절을 보겠습니다. (신 283쪽)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자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지 않으면 모두가 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으로 비추심을 입지 못하면 다 자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깨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그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의 자손은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그 자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추셔서 복음이 계시가 되면 그가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면 깨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깰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자체가 깨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움에 일에 참예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복음이 계시가 되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깨어 의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게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의를 말씀하면 거의 모든 사람의 생각이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깨어 의를 행하라고 하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어떤 의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의를 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기초가 안 되어 있다 보니까 의인이 없다는 말씀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아주 없다는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아주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면 자기들이 의를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의를 행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고 그것이 저주가 되고 있습니다.
깨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만이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의를 행한다고 해서 사람이 어떤 행위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를 어떻게 행합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를 행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해서 도리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의 일로 자기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죄를 짓지 말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그 행위가 도리어 죄를 짓게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짓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 입니다
세상의 죄가 아닙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죄가 무엇입니까?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6: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8쪽)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자고 있습니다. 어디에 자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빛으로 비춰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어두움의 일에서 자다가 깰 수 있었습니다.
자다가 깼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다가 이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두움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이제 우리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이 아는 것을 쉽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보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이 아는 것이 하루아침에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 성도는 영생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바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정말 늘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영생 단번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평생을 영생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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