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9: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를 넘겨받았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끝까지 주님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는 자기가 재판을 해 보니까 죄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처음에는 행악자라고 하면서 고소를 했다가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하니까 이제는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고소를 하면서 그렇게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것은 가이사에게 반역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빌라도도 더 이상 주님을 풀어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출애굽기의 율법도 그렇고 신명기의 율법에서도 유대교인들을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인생의 철학적 도덕적 관념에서 풀어 주려고 하지만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태초에 있는 말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인생이 빌라도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보고 있고 이 모든 일은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은 장사 지내고 삼일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영이 거할 수 있고 그 영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 일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한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난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러면 창조하신 목적 또한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네 할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떡을 떼어 주고 나가니까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먼저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유대교인들을 감동을 시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유대교인들을 감동을 해서 그들로 하여금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단이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사단이 주님을 죽이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유대교인들에게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러면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한 일입니까?
사단이 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단이 한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단을 이용을 해서 사단이 주님을 죽이게 함으로 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들도 주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 그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사단은 그리고 종교인들인 유대인들은 지금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을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게 하고 있고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고소를 해서 죽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다시 말씀을 하겠지만 주님은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들어가 있는 유대교인들이 고소를 함으로 해서 주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아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 제도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 죄인을 재판하는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 역시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하고 그것을 복음을 듣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결과입니다
성경은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런 말씀들을 그냥 아! 그렇구나 하는 것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이루십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정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로 믿게 역사를 하기 위해서 성경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반드시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그 문장의 단어만을 보고 있고 역사적 사실로 그런 일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빌라도에 의해서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형을 받은 것도 마치 그 재판을 받아 십자가형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피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 피조물이 창조주를 십자가형을 받을 수 있게 넘겨 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빌라도가 아무리 로마의 황제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무엇입니까?
피조물들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이 자기의 재판의 결과에 따라 창조주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씀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빌라도가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주문을 외우듯이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사도 신경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빌라도에 의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미 앞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나라가 여기 속하였다면 내 종들로 싸워 유대인들에게 넘기우게 하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로마의 총독이라고 해도 그리고 그가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그렇지 빌라도 역시 피조물이라고 주님께서는 창조주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루심입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를 십자가에서 못 박게 내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가 게임을 만든 사람을 재판을 해서 죽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그래도 과학이 많이 발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깨닫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에서 사실 이런 말씀들을 깨닫는다는 것은 쉽게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과학이 발달을 한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그만큼 깨닫는데 있어서 쉽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본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정도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이스라엘은 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아니 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방의 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비유와 예표를 보여주면 그대로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보는 성경을 이방인들을 위해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들 역시 보이는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고 그 아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에 얼마나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5장을 보면 전혀 인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성경대로 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성경에서 정말 많이 찾을 수 있는 말씀을 전혀 찾지를 못하고 있고 인용도 못했습니다.
첨삭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인용입니다. 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는 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어느 것은 명확한 것이 있어서 그 인용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는 말씀에 인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인용이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만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입니다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인용이 되는 말씀만 성경에 인용을 첨삭을 해 놓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편집을 한 것을 보고는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늘 깨어 성령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내어 주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그가 자기 마음대로 그가 자기가 그런 권세가 있다고 해서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주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출애굽기 23장의 율법대로 너희는 헛된 소문을 퍼뜨리지 말며 허위 증언을 하여 악한 사람을 돕지 말아라.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고 법정에서 증언할 때 대중의 편이 되어 허위 진술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유대인들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입니다
우리는 신명기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생들이 종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해서 자기들의 생명으로 갚아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예언입니다
대적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대로 주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인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소를 하는 것 역시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빌라도는 내어주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부터 시작을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까지를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예언도 있고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말씀들도 있고 이제 우리가 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와 같이 생각이 되는 그 나라도 역시 과거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은 죄인입니다. 율법을 지킨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해서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정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첫 번째 목적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죽임으로 해서 자기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번제로 드려지심으로 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는 것을 절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그 외에 어느 누구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흠 없는 그러니까 죄가 없는 어린 양이 죽음으로 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레위기에서도 번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넘겨줍니까?
물론 그가 넘겨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에게는 그런 권세가 없습니다. 성경은 마치 그의 의지로 넘겨주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미 신명기의 율법에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했는가 하면 당시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빌라도가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이심을 당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의 죄를 주님께서 의인으로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의 죄가 없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 죄가 없어지고 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알고 믿는 성도는 죄가 없어지니까 깨끗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예수의 생명을 얻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빌라도가 어떻게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그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위에서 허락하지 않았으면 그런 권세가 빌라도에게는 없습니다.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것으로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19장에서는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갑자기 오셨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을 때부터 주님께서 죽으시고 가죽 옷으로 지어 입히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주님이 오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고 말씀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사도 마태는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살아나신 일을 사도 요한은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유대인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내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빌라도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다수에 의해서 민란이 나는 것을 두려워서 내어 주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율법을 보고 시편의 말씀을 보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인생인 빌라도가 자기 권세를 가지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빌라도가 주님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어 줌으로 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종교인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 오신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생명으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인생들은 자기 철학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님께서는 목숨을 버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목숨은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신 목숨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이제 그 목숨을 버리심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놀라운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손에 넘어간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히브리말로 해골터는 '골고다'이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하는 일은 먼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곳은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를 하고 있으면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데 있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이룰 수 있는 것이고 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 피조물들이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형상을 입고 오셔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그대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피조물입니다
지식이 있다고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들에게 지식이 있고 문자가 있고 그리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하다보니까 자기들이 마치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저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을 보고 십자가의 피만을 외치고 있는데 그런 것은 세상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인도하심에 따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왜 증거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그런 성도만이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저 신약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세상에 어느 사람이 뭐라고 해도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요한복음5장에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기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그분의 일만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그 일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역시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고난입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런 고난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무시하고자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의미가 깊고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를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그저 이 세상 초등학문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면적인 문자입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 표면적인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저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믿어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종교인들이 너무 감성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가다가 영화로 제작이 되면 그 고난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런 것은 다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안다고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우리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 해서 주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가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7쪽)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입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고 자기 차 안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고 집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고 여자들은 장신구로 만들어서 십자가를 걸고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상입니다
그런 형상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십자가를 사용하는 곳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형상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것을 쳐다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 해도 그 십자가는 단지 로마 시대에 당시 사형수들이 받았던 십자가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들입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하는 것은 너무도 잘 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어떤 표시를 내야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형상에 불과하고 성경에서 만들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안 만드는 것이 옳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기 십자가라는 말씀이 성경에 몇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자기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을 하니까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어떠한 결과가 있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져서도 안 되고 또 내 십자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를 바로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이고 우리가 믿어야 하는 일입니다 .
주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이라는 단어 역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자기의 십자가가라고 말씀을 하니까 나무를 지고 가신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실제적으로는 나무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채찍을 맞으셔가지고 지실 수 없으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대신 지고 갔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이 지실 십자가를 대신 졌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니까 마치 막대를 지신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자기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참 하나님이시고 만왕의 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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