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9-2,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윤주만목사 2024. 6. 5. 08:22

요한복음1:17절을 보겠습니다. (143)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진리가 어디서 왔습니까?

성경이 진리입니까? 성경의 문자는 진리가 아닙니다. 이 시대는 마치 성경을 진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으로 내가 진리를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지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로마서는 시작부터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고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려면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세가 기록한 율법이 누구에 대해서 기록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복음을 아는 것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율법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에서 은혜와 진리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율법을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성경을 보면 율법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재하시면 율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진리를 거짓으로 다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율법을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까막눈이 아니고는 누구라도 성경을 보면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진리를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해도 그것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다 이렇게 율법으로 보는 것을 보고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1:6절을 보겠습니다. (823)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디도서1:14절을 보겠습니다. (348)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73)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거짓입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은 겨우 문자적으로 주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그 말씀을 아는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짓이 무엇입니까?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된 것도 이 거짓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진리를 안다고는 하고 있지만 실상은 진리도 잘 모르고 있고 문제는 거짓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거짓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거짓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단어만 알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자기들이 세상이 인정하는 정통이니까 참이고 자기들과 다른 곳은 거짓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적인 뜻이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헛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모든 행위가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을 버리라고 하면서 이는 무익하고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헛된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진리와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교회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실이 아닙니다.

디도서에서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실이 아니고 헛된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헛된 것을 마치 사실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익하고 헛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제까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누군가 하면 이 헛것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거짓 형제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진리가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도 분별이 안 되고 있고 모두가 거짓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있는가 하면 허탄한 거짓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차라리 복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 듣지를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수입니다

이스라엘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이단을 따라가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다수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율법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거대한 종교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허탄한 거짓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어떤 허탄한 이야기를 했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말씀하시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거절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못 보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사도 바울을 고소하면서 저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이고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허탄한 거짓을 숭상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유대인과 같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서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 정욕에 빠져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를 그대로 불의하게 두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얼마나 진리를 대적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진리를 배반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역시 진리를 배반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아 거짓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허탄한 것이 거짓입니다.

그것을 야고보는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은 이미 야고보서를 통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의를 보고도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허탄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유대인으로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허탄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거짓입니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많은 유대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초대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허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허탄하다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의 믿음이 헛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야고보는 그런 유대인들에게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런 말씀들이 깨달아지지를 않아 도리어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을 합니까?

성도로서의 삶인 도덕법이 살아 있으니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야고보서를 썼다고 하는 모든 신학자들이 거꾸로 풀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을 거꾸로 풀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거짓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거짓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가를 모르고 마치 세상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4:9절을 보겠습니다. (413)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13장에 두 마리 짐승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아카데미 강의에게 말씀을 드렸듯이 먼저 나온 한 마리 짐승은 유대교가 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온 짐승은 이방의 교회가 기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가 되어 버린 두 교회를 환상으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고 이 짐승이 만든 그의 우상에게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를 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건물의 교회를 얼마나 열심을 다 해서 섬기고 있습니까? 그것을 섬기면서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세우신 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짐승이 세운 우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섬겼던 아세라가 이 시대 교회라는 건물이 되어 그것을 섬기느라 모두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짐승입니다

그것은 종교가 되어 버린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우상을 교회 안에 세우고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짐승이 되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까?

전부 우상만 가득 차 있습니다. 짐승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섬기느라 모두가 정신을 잃고 있지만 그것을 우상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의 행위라고 하면서 칭찬을 하니까 사람들이 우상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모릅니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에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짐승이 되어 버린 종교는 이렇게 교회를 만들어 놓고서 그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조물을 더 섬기고 경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분만을 우리가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마음의 정욕을 이기지를 못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더러움에 빠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요한계시록의 두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우상에게 경배하고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짐승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는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짓 선지들이 있게 하고 있고 그 거짓 선지자들은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보이는 부처 같은 우상이 아니라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행위가 우상이 되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 우상이 하는 행위를 따라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거짓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거짓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이 얼마나 허탄한 것이고 헛된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자 경쟁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단이라고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이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거짓입니다. 율법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왜 거짓인가 하면 그 율법으로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도 생명을 주고 있지만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성경은 허탄한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26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무엇으로 인하여 입니까?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대로 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문제가 많은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실제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비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성경을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동성연애입니까?

성경이 우리 인생들이 하고 있는 동성연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동성연애를 안 하니까 좋은 건수가 생긴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반대를 하면서 자기들이 그런 것을 안 하는 거룩한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성경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인생들이 하고 있는 동성연애로 인하여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아니 그것이 구원을 받는 것에 문제가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믿어 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동성연애를 찬성합니까?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마치 동성연애를 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정상작인 남자입니다. 동성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제 개인적으로는 혐오감을 가질 정도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저 역시도 혐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동성연애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연애를 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간 것이 아니라 세상 죄에서 동성연애를 빼고 지고 가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했어야 맞습니다. 확실하지도 않는 것을 왜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분명히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 역시도 찬성 안 합니다

그러나 동성연애를 하는 자들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최근 들어서 가끔 이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목사들의 행위를 메시지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꽤나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고 이 메시지를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 돌려달라고까지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솔직히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기도 시간이 부족한데 그런 일을 하면서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고 있는 동성연애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바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렇다 해도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목사입니다

복음을 알면 그 일을 하겠습니까? 정말 그가 복음을 알고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동성연애를 하는 것과 우리 성도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것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고 경찰서까지 갔다 왔다고 무용담을 늘고 놓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5:24절을 보겠습니다. (308)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저희의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저희 여인들이 쓸 것을 역리로 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누구입니까? 진짜 여자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런 비유를 알지 못하면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동성연애를 반대한다고 세상일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비유입니다. 진짜 여자가 순리대로 남자와 혼인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서 사랑을 하는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인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이렇게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남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아직 여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있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자기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니까 자기가 순리로 쓸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역리로 바꾸고 있습니다. 여자면 당연히 자기 쓸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역리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는 순리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순리입니다. 그럼 역리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저주를 받는 것이 역리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이 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를 않고 교회 안에 있는 여인들은 정욕의 더러움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들었으면 순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 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역리를 따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서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모든 행위가 다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고 또 그것이 부끄러운 욕심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을 압니까?

문자적으로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가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인입니다

순리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너무도 쉬운 순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리로 바꾸어서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44절을 보겠습니다. (160)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부끄러운 욕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마귀의 자식들입니까?

그들은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리를 따라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순리와 역리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대해서 순리와 역리를 말씀하고 있고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 아비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욕심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부끄러운 욕심을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흠 없는 율법의 의로 욕심을 냈는데 그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영광이 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끄러운 욕심을 이 시대 교인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욕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끄러운 것이 마치 여인이 순리를 거스르고 역리로 쓰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역리가 되어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27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입니다.

무엇과 같이 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순리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율법을 지키는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또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0년 전이지만 로마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실제 있었던 일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동성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리입니다

세상의 순리입니다. 그것은 여인과 혼인을 하는 것이 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들이라는 말씀은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받은 사람을 계수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남자만을 계수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비유로 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지 실제 동성연애를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기가 동성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그러는 것과 같이 남자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남자와 남자로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로마 교회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또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는 일을 가지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그렇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그런 부끄러운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끄러운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순리로 쓰면 안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역리로 써서 율법을 지키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치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저희의 그릇됨으로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2:18절을 보겠습니다. (344)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부끄러운 일을 했습니다.

마치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과 같이 부끄러운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구원을 받은 남자라고 하면서 믿음을 무너뜨렸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에 관하여 그릇 되어서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남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마치 이 세상에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과 같이 믿음을 무너뜨림으로 해서 저희의 그릇됨이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당시 동성연애가 있었던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동성연애를 당시 로마에 있는 사람들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데 영생에 있어서 저희가 불의를 행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면서 순리를 저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육체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자유하다 보니까 이 부끄러운 일도 정당하게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만해도 이 부끄러운 일을 하면 세상이 가만히 두지를 않았고 감히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그릇 행하여 믿음을 무너뜨려서 자기 자신에게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서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과 같이 이 믿음을 무너뜨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믿음을 무너뜨린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그릇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순리를 역리로 쓰고 있는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과 같이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는 사람들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어서 사도 바울이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