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5: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4쪽)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한복음14장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셨다는 것을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2000년이 지난 이 시대까지도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하셨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이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로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인생들이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유월절을 다 먹었지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격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성경에서 증거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믿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대표로 해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분이 창조를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는 것을 믿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입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다고 말씀을 하니까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입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빌립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14장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러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 역시 주님과 지난 삼년 반 동안 다니면서 주님의 말씀을 다 들었지만 14장의 말씀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을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믿으려면 성령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구해서 받아야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을 구해서 받으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창조하신 일을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성경에서 증거를 하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격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는 삼위일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하나님이시면서 위가 있고 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격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믿지를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알게 되고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생명을 얻어야 하는데 그 생명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믿으니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진리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에 따라 삼위일체라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언어입니다
당시 언어로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왜 반드시 진리의 영을 받아야 하는가 하면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창조하신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고 이방인들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은 생명이 없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 되려면 반드시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말씀 그대로 진리의 영입니다. 이 어원의 뜻은 공기의 힘, 기류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기가 기류를 따라 흐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이 보내신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영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여기를 떠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기도를 하시는 장소로 옮기시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2:21절을 보겠습니다. (구 1052쪽)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비유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창조하신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들의 한계라는 것을 바로 알고 우리 성도는 더욱 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일관성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일관성이 없게 가르치는데도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더구나 내세의 일이고 하나님을 믿어서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런데 일관성이 없는 말을 들으면서 믿을 수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라도 성경을 전하는데 일관성이 없다면 그는 거짓을 전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보고 있는 성경에서도 분명히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아들이라는 의미를 모르니까 성자라고 불러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순된 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포도나무도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포도나무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는 것은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문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사물로 표현하는 방법을 무슨 문법이라고 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비유법 정도로 말씀을 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강 말씀을 합니다. 문법을 안다면 더 정확하게 말씀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경의 의미를 알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주님께서 당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도나무를 보고 주님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셨어도 우리는 이것은 비유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종교의 교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교리로 정합니다.
그것을 다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말씀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데도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군중심리입니다
다수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제 처음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은 그 다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더구나 소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을 보고 연구를 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를 해도 다수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 되는 것이 종교의 군중심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을 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대단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자기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하니까 아니 다수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이 시대 어느 종파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두가 방언을 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방언을 해야 합니다. 방언을 하지 않으면 자기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방언을 해야 하고 그것이 정말 웃기는 샤머니즘적인 행위가 되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언이라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소리를 반복을 하면서 마치 주술사가 떠드는 것과 같이 하는데도 그것을 방언이라고 하고 있고 사람들이 방언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해야 자기가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저 역시도 옛날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도 늘 마음 한 구속에서는 찜찜한 마음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수가 그것을 방언이라고 하니까 저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합니다.
참으로 웃기는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주술을 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으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으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더구나 교리로 세워져 있으면 그것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입니까?
차라리 포도나무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고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입니다
참이라는 단어는 진짜의, 실제의, 정당한,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한, 진실한, 참된 등의 더 많은 의미가 있는 단어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헬라어의 단어의 의미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입니다.
실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을 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참이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지금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을 얻는 것을 영의 생명을 주님께서는 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나를 믿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을 자로 세웠는데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을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왜 선택을 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셨습니까? 그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일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너무 놀라서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악한 일만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를 보고 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림자를 보고 우리가 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까?
헛것이고 그것은 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너를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심었는데 이스라엘은 모두가 악만 행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입니까? 그것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은 다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참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참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에 속한 것 우리가 사는 이 우주를 참이라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고 하나님 나라가 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입니까? 그것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그렇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과학에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우주를 버추얼리얼리티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상현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거하심으로 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이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참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생명이 참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참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고 참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그림자이고 헛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이 영의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그 헛것인 인생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고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5: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4쪽)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참입니다.
그 반대어는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참이라는 단어 보다는 거짓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있고 거짓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자기가 참되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참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그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의 행위를 잘하면 그가 하는 말이 참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들의 철학적 사고입니다
거기서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그렇게 그가 하는 행위를 보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참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겉에는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면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겉에 양의 옷을 입고 속에는 이리가 있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철학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거짓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기록이 되어 있고 그 이유는 인생들이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듣고 보는 것에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양의 옷을 입으면 그 속에 이리가 있는 것을 인생으로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한 그 모든 행위가 다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종교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도 그러니까 누가 봐도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스스로도 모르고 있고 다른 사람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입니다.
그리고 거짓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참이 무엇인가 그리고 거짓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성경을 수백 번 읽고 신학자로서 살아간다고 해도 이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도리어 사도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과 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거짓입니다
인생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거짓인가 하면 우리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에 셀 가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누가 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참입니까? 다윗이 참입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이 참입니까? 그들은 다 거짓이기 때문에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지금 우리에게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까지 살아 있다고 하면 그를 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그 육체가 죽는 순간 티끌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그를 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참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도덕적으로 행위를 잘하면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그렇게 행위를 잘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라는 힘을 빌어서 세력을 키워서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세력으로 자연스럽게 참이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고 다수가 인정을 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전에는 이단으로 취급을 받았던 교회도 정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들의 이성적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시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이 말씀이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거짓 선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생들은 다수가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가 다수가 다 틀리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알 수 있습니까?
왜 종교에 이 시대만 해도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습니까? 그들은 그 종교가 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먼저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이방의 종교 역시 거짓이라는 것을 성경의 비유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다 거짓입니다
그러면 인생들이 만든 종교 역시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만 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 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나도 참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 안 믿든 인생은 그 자체로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이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사도 바울이라고 해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이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나를 참되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비록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은 자가 되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은혜지 그것을 한다고 해서 내가 참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참이라고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이 시대 종교인들이 자기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이 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참된 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참된 자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자를 알고 믿음으로 해서 참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리고 내가 예수의 생명을 얻은 것을 믿고 있습니까?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 인생은 거짓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내가 진리를 전할 수는 있어도 인간 그 자체는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참되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인생인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고 싶으나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자기가 스스로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오로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참되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에게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떡을 먹게 하시고 참된 음료를 마시게 함으로서 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참된 자를 우리가 알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참된 자를 알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에는 그것이 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자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지키게 하고 있고 거짓을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참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거짓말을 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거짓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합니다.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전에 와서 그들이 말을 하는 것이 다 거짓이고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참입니다.
왜 그분만이 참인가 하면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 그 자체로 태초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까지 영원히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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