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윤주만목사 2024. 2. 1. 08:06

시편9 :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공의의 사전적 뜻은 공평한 도리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공의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주의화 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에는 반드시 공평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성인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또한 다리를 다친 장애인과 정상인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달리기해서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세대가 바로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입니다

 

공의를 강조하는 곳은 거의 이단입니다

그들은 공의로운 하나님을 말하면서 율법을 잘 지켜서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할 수 있다고 말 합니다

 

그런 사상이 바로 알미니안 계열에서 팽배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알미니안 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복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교리 자체가 이미 성화주의와 율법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 교리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성인이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질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613가지 율법에 대해서 어느 사람에게는 유별나게도 약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조건에서 달리기는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잘 지키는 율법이 있다 해서 다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다 지킬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공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노력에 따라서는 다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달리기를 못하는 것은 타고난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율법에 대해서 잘 못 지키는 것도 타고난 것입니다

달리기 못하는 사람이 노력한다고 다 선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기독교인들 중에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100미터를 20초에 뛰는 사람과

10초에 뛰는 사람은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됩니다

그 사람이 평생을 노력해도 15초 가까이 가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공의를 말한다면 그는 정말 공의롭지 못한 자 입니다

똑 같이 10초를 뛸 수 있는 두 사람 중에서 공의를 말한다면 얼마든지 공의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15초 이내에 뛸 수 없는 사람에게는 공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공의란 이렇게 먼저 공평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10초에 뛸 수 있고 상대도 10초에 뛸 수 있어야 공평하고 그 시합을 공의롭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공의롭게 판단한다고 하면 그는 공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습니다

어느 사람은 달리기를 잘하고 어느 사람은 턱걸이를 잘하고 어느 사람은 윗몸일으키기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기 잘한다고 달리기만 적용 한다면 그는 공의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공의롭다고 하고 있습니다

공평치 못한 것을 가지고 공의를 찾는다면 공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공의는 다 할 수 있는 공평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우리에게 율법으로 심판을 하신다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하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3 :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행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율법을 다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는 있습니다

 

율법이 100이라고 할 때

99%를 행한 사람도 믿을 수 있고 1%를 행한 사람도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공평한 것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에 따라 그 행한 것이 다 다릅니다

그렇게 다르게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공의의 심판을 한다면 그 심판은 처음 부터 공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공의라는 것은 반드시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공평한 가운데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비록 그 체질이 연약할지라도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으려 하기 보다는 율법을 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한 것을 가지고 공의의 심판을 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세요

믿음을 갖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공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잣대로는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에 매달려 구속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을 가지세요

하나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공평한 것을 가지고 심판을 행하십니다

 

오늘의 감사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