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마태25장 구원론 3가지 비유

열 처녀의 비유(1)

윤주만목사 2023. 12. 25. 10:50

마태복음 25:1-13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장은 3가지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가지 비유는 모두가 천국에 대한 비유를 가르쳐 주고 있고 이 비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이 3가지 비유에 대해서 바르게 전하고 있지를 않아서 진리가 변질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의 비유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비유를 해서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고 누가 버림을 받을 사람인가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을 하면서 구원을 얻는 성도가 되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비유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이 세 가지 비유를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그 첫 번째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비유로 받아들여야지 비유를 문자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보고 다섯은 구원을 받고 다섯은 버림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내가 다섯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비유로 다섯이라고 말씀을 했지 그 다섯이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하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배워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때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실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 가족 8명만이 하나님으로 은혜를 입고 그들이 방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보면 맞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그 자손들이 세상에 퍼져 나갔던 시대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을 하면서 타락을 했습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들이 이 세상으로 급속하게 타락을 해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한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언약을 해 주시고 그 자손들을 천국 모형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애굽의 강한 손에서 이끌어 내셔서 광야로 나와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불과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진리에서 타락을 했고 그것 때문에 이방의 무수한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또 결국에는 나라가 망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구원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스스로 어려운 길로 가고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은 너무 쉬운데 종교화 되면서 그들이 스스로 천국 문을 막고 서 있습니다.

자기가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 종교인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의 비유에서 다섯은 구원을 받고 다섯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해서 다섯은 구원을 받고 다섯은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은 졸고 다섯은 깨어 있어서 신랑을 맞이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한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때 당시 예식을 할 때 신랑이 밤중에 옵니다.

신랑이 밤중에 오는데 신부와 신부 친구가 같이 있다가 신랑이 오면 전부 등을 들고 맞이하러 갑니다.

신랑을 맞이해서 잔치를 베풀고 먹으면서 유흥을 즐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말씀 하실 때는 그 지방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풍습을 그대로 그것을 통해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냐면 사람들이 둔해서 알아듣기가 힘이 듭니다.

이 세상일도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하는데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하려니까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니까 그 지방에 있는 풍습을 통해서 비유를 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런 비유가 그 지방의 풍습이지만 그것이 영적으로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처음을 보면 그때에 천국은 마치...

천국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그 나라에서 행해지는 결혼식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신랑이 밤중에 오는데 어느 시간에 오는 줄을 모릅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밤에 시작을 해서 새벽까지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와 친구들이 기다립니다.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신랑이 오면 잔치를 하게 됩니다

신랑이 도착하지 않으면 잔치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지방에 있는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신랑이 온다는 그 지방의 풍습은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밤에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밤에 오십니다.

이 밤은 우리가 저녁에 맞이하는 밤이 아니라 영적으로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에 오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점점 사라지고 진리가 사라져 있는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밤이 아니라 참 빛이 사라져 어두움만 있는 진리가 사라진 그 시대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도 진리가 사라져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풍성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믿음이 사라진 때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열 처녀는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이지 실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믿음이 있는 성도가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때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처녀가 있는데 그중에 다섯은 신랑이 올 때 나가서 맞이했는데 그 맞이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다섯은 신랑을 맞고 다섯은 신랑을 맞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신랑을 맞지 못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여러 말을 합니다.

종말론 자들은 열심히 깨어 있지 않으면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 열심히 깨어 있어야 신랑을 맞이한다고 말을 합니다.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요? 말로는 간단하지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처음에 들고 간 것은 등입니다 등은 모두 가졌습니다.

그럼 등은 무엇을 말씀을 하는 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시편 119:105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열 처녀 모두가 등을 가졌습니다.

등을 다 가졌다고 하는 말은 성경은 다 들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가졌습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교회는 다녔으나 예수님은 못 만났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기는 들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등은 다 준비 했습니다

아마 교회 다니는 사람이 등 없이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책은 다 들고 다닙니다.

요즘은 성경책을 안 들고 가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등은 다 가졌는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가지고 있었는데 기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기름이 없어서 이 다섯 처녀는 맞이하지 못 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이 기름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줄줄 외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니 성경을 수 백독을 해서 달달 외우고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저는 성경 66권을 다 외워서 성경 없이 설교하는 목사도 압니다)

 

성경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있다면 그가 알고 있는 성경적인 지식은 쓰레기에 불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자기 발에 등이 되고 빛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이 세상에서의 등이 되고 빛이 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3-4절을 보겠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준비하지 못한 것이 기름 이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등만 준비를 했고 다서 처녀는 등과 기름을 준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처녀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영접을 할 수 있었고 등은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주님께서 천국 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등만 가지고 있는 미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미련이라는 단어가 100회 이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에 나와는 있지만 미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또 미련에 빠지지 말라고 경계를 하는 말씀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미련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미련하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버리고 지혜를 구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가 미련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잠언 12:15절을 보겠습니다. (923)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자기 행위가 바른 줄 압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미련한 자인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보면 분명히 바르니까 그것을 보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미련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 행위가 바르니까 자기가 미련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분명히 바르게 보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 분명히 그들의 행위는 바릅니다.

십일조를 내는 행위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행위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 너무도 바르기 때문에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실제 바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르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미련한 자는 기름이 없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있었고 기름이 없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름이 무엇인가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요한일서 2:20-21절을 보겠습니다. (389)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너희가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름은 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173절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것은 인생들이 자기들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이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압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 하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성경 말씀을 본다고 해서 다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성도만이 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그렇게 기름 부음을 받은 성도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름 부음을 받은 성도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진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진리가 그 안에 없다면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성도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 부음을 받아서 그들은 기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아니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그가 기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등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 들으려 하지 않고 있고 그들은 누가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그것에 대해서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등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교회에 나와서 성경에 대해서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름은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름은 진리입니다

성경은 듣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었습니다. 이 진리가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물론 예수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5:7절을 보겠습니다. (393)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은 성도는 진리에 대해서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이 진리가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진리가 되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어떻게 압니까?

내가 공부를 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절대 안 됩니다.

성경을 어려서부터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셔야 합니다.

이 기름인 바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셔야 내가 성경을 볼 때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박사 학위를 따면 뭐합니까?

아무리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성경에 대해서 세상 지식적인 박사 학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진리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가 교회 안에 나와서 자기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행위를 보면서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다수가 이 미련한 자가 되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이 성도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 다섯 처녀는 자기의 행위를 옳다 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진리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리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따라 행한다는 말씀은 진리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그들의 안에 임재를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진리의 성령이 임재를 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세상 적으로는 아무리 똑똑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잠언 14:8절을 보겠습니다. (925)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가 속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하는가 하면 자기의 행위가 바른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행위들을 보면 너무도 바르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속고 있습니다.

 

인생이 가야 하는 길이 어디입니까?

바로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내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그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진리의 성령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가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성령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다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수가 청함을 받아서 교회에 나왔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적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온 다수의 사람들은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다수를 따라 가다가 결국에는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살이 그 간과 폐를 찌르고 들어와도 미련한 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자기가 다 슬기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다섯은 미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은 비유로 다섯을 말씀을 한 것이지 실제로는 다섯이 아니라 하나도 안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섯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슬기로운 자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길을 압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교회는 나왔지만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압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에 대해서 솔직히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는 이단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어느 이단보다는 더 예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정통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는 있지만 실제 예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왜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예수를 부른다고 하는 것으로 예수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알 때 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가 바로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사람의 깊은 것을 알 수 있지는 못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려면 성령이 오셔서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름을 부릅니다.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명박 대통령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부인이라 해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한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에 대해서 알게 하시기 위해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9절을 보겠습니다. (345)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주께서 나를 아셔야 합니다.

나 혼자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고 요한복음 1027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지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자기가 아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나를 알아야 아는 것이지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가 주님을 아는 것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이 등만 가지고 있는 미련한 다섯 처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내가 주님을 안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나를 영접해 주셔야지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가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마치 그것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를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쉽게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25:12절을 보겠습니다. (939)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입니다

우리가 성령론에서 배웠지만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책망하시는 그 말씀을 똑같이 책망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말씀이나 성령의 책망이나 또 그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슬기로운 자의 책망이나 같다는 말씀입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라고 말씀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이 세상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께서 책망을 하시는 그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소리에 청종을 하는 성도가 또 성령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책망의 소리가 너무 어렵고 딱딱하기 때문에 미련한 자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미련한 자가 자기들이 성령을 안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습니까?

자기들도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령의 책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감성적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불행합니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책망을 하고 있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포승처럼 묶여 있어서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론에 대한 강의를 다 마쳤습니다.

여러분이 성령론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하고 성령의 책망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교회는 나와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이 하고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미련한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5:25절을 보겠습니다. (138)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슬기로운 여인은 어떻습니까?

슬기로운 여인은 성막을 만들 때 손수 실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실이 어떤 실입니까?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실을 낳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실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성막을 지으면서 자기 안에 성전을 지으면서 그 성전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실을 통해서 자기 안에 성전을 지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청색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색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홍색은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는 베실은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구복음입니다

사도들이 그 실을 신약에 와서 4복음서를 통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바로 알아야 성전을 지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이렇게 슬기로운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해 주실 다섯 처녀를 구약에서 이미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알아야 예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는 줄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이 복음서도 제대로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성전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련한 자들이 되어서 자기 행위가 바른 줄로 알고 자기가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기 지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슬기로운 처녀를 찾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1:21절을 보겠습니다. (287)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 기름 부으신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 안에서만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밖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기름을 부음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가 냉정하게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슬기로운 자는 예수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예수에 대해서 들을 때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고 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43-44절을 보겠습니다. (205)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저에 대하여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듣는다고 다 예수에 대해서 듣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가 아닌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럴 지라도 이면적으로 다 예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슬기로운 성도만이 그것을 이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렸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다는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 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 죄가 사해 진다는 예수님의 사역을 100%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진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받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 합니다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말씀 듣는 사람에게 내려 왔습니다.

이것은 부르짖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방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그것이 믿어지니까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십자가의 도 곧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믿어지면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줍니다.

 

 

그 기름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100%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등에 기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등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기름도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기름입니다

성령을 기름 붓듯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렇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5절을 보겠습니다. (43)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다 졸면서 잤습니다.

열사람 다 졸고 잤는데 다섯 처녀는 맞이했습니다.

여기서 다 잤다는 말씀은 인생은 밤이 오면 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이 육체적으로 자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졸음이 밀려오면 잠을 안자고 버티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야 합니다.

잠을 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낮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에 잠을 안 자게 되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 처녀가 다 졸며 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리적인 현상을 벗어나서 잠을 안자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25:6-7절을 보겠습니다. (43)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주님은 밤중에 오십니다.

이 밤은 우리가 생활을 하는 저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저녁이 아니냐는 것은 주님이 오실 때는 저기 동쪽부터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실 때 단 한 번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나라는 저녁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나라는 아침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나라는 대 낮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식이 있다면 충분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둥급니다.

예전에 재림을 기다리는 이단이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서 저녁 12시에 기다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에 속는 것입니다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저녁 12시가 다른 나라에서는 대 낮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에 속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보겠습니다. (142)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두움에 있었기 때문에 참 빛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밤중에 오신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 빛이 사라진 시대에 오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는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빛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는 이 진리의 빛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믿음이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그때가 밤중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절묘합니까?

이스라엘은 실제 혼인 잔치를 저녁에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잔치를 하는 것이 풍습입니다.

주님께서도 신랑으로 오시는데 밤중에 오시는데 실제 그때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는 때에 오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래도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빛이 사라집니다.

진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은 진리의 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까지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 전에 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참 좋은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밤에 오십니다.

그럼 낮 동안에 성도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깨어서 내가 정말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충분한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고 그 어두움을 보면서 자기가 빛에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등은 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성경말씀을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등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등만 가지고는 안 되는 가를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령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등만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책망을 전혀 듣고 있지도 않으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남들이 그러면 그렇다고 하면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등만 가지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3:5절을 보겠습니다. (14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본다고 해도 그것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지 않으면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수백 번을 읽어서 성경을 달달 외운다 해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주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면서 성령의 책망을 듣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이 성령의 책망을 우리는 성령론을 통해서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책망하시는 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성령론이 왜 중요하냐면 바로 이 책망의 소리를 들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를 말씀드렸습니다.

과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망의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이 책망에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진리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감동이 없이 성경을 통해서 자기들의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등은 준비를 하고 있고 평생을 이 등을 가지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것이 이 세상의 종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제 성령의 감동을 받기 보다는 그저 등만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를 모르고 자기 입에서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진리를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등만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아니 그 성경을 공부를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는 예수를 부르고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들의 행위로 철저하게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등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많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많이 본다 해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거듭 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으로부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다른 것을 구하지 말고 오직 영생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당연히 성령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을 듣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행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자기가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고 있지만 미련한 자는 자기 미련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8절을 보겠습니다. (43)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모릅니다.

이 사람들이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등만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 오실 때 기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미리 기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 등만 보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모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아주 태평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줄 알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성령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에게 기름이 없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압니까?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알면 참 좋은데 그렇지 못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들의 행위를 보니까 자기들은 성령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같이 보인 것입니다

당연히 기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태평하게 등만 가지고 있었는데 주님이 오실 때 보니까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던 성경적인 지식이 쓰레기로 변해 꺼져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름을 안 가지고 있습니다.

등을 너무 밝게 가지고 있다 보니까 자기 안에 있는 기름이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죽을 때 까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도 자기에게 기름이 있는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 신앙생활을 통해 비춰지고 있는 등을 보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다급해진 것입니다

기름이 없다 보니까 그것을 나누어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되니까 정작 필요한 기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나누어 달라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평생 했으면서도 죽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주님이 오실 때 영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성령은 개인이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가지지 못하고 있던 미려한 다섯 처녀는 다급해 지니까 그것을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가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렇게 다급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성령을 나눌 수 있습니까?

각 사람에게 보내주시는 성령입니다 그것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막상 오실 때가 되어 다급해진 다섯 처녀는 그것을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진리의 성령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9절을 보겠습니다. (43)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진리의 성령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물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분명히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은 거듭난 생명인데 생명을 어떻게 나눌 수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그 생명을 가진 자가 생명에 대해서 전할 수는 있어도 이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각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라고 합니다.

누가 팔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우리가 값없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는 성령을 어디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이들은 자기들에게 성령이 있는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니 성령이 있다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13:45-46절을 보겠습니다. (22)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사야 합니다.

그것을 언제 사야 합니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사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사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데도 이 성령을 사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내 소유를 다 팔아야 이 진주를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땅에 쌓아 두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이 소유를 가지고 얼마나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사려 고는 하지 않고 자기 소유를 어떻게 하든지 많이 모아서 교회 안에서 자랑을 하느라 모든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더 귀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어야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이 세상사는 동안에 빨리 사서 내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사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령을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니 너무도 쉬운데도 사람들이 믿지를 못해서 이 성령을 내 안에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는데 돈이 많이 필요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거저 살 수 있는데도 사람들의 생각은 하늘에 있지를 않고 땅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을 보겠습니다. (190)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선물입니다

선물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는 이가 그냥 주는 것을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싸서 못사는 것이 아니고 또 어려워서 못 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살 수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행위로는 거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싸서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아니고 자기들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종교적인 행위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고 있고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를 듣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세례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 보면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다고 다 말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전체를 말씀하는 것이지 일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사했다면 우리 죄를 전부 사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사한 것을 믿는 다면 앞으로 짓는 죄도 사해졌다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이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진 사람이라야만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죄에서 해방이 된 사람만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믿지를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가 도덕적인 죄를 지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세례를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평생 이미 죽었다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살아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고 그것을 간증하면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말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내가 죽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 평생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지가 한 신앙생활의 의를 가지고 자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랑한다는 자체가 간증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세례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습니다.

내 안에 기름이 있는 것은 너무도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성령을 선물로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그런 고백이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에서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보여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름 없으면 안 됩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24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열 처녀의 비유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지 이 세상 사람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으로 비유를 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단이 아닙니다.

 

복음이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단성이 있는 교회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단성이 있는 교회에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서 나만 잘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비유는 바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등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바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교회 안에서 다섯 처녀는 미련하여 등만 가지고 있고 다섯은 슬기로워서 기름까지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열 처녀를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이 시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을 선물로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물로 거저 주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이 선물을 거절을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25:10-11절을 보겠습니다. (43)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지금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회개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절대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을 수 없고 그때는 성령이 선물로 오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에 수장절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드려지고 가을에 추수를 하기 시작을 해서 수장절에 창고에 들입니다.

이렇게 창고에 들이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이미 수장절이 되어서 열매가 다 창고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문이 닫혀 버립니다.

그때는 회개를 하지도 않고 회개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수장절이 오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그때가 지나고 나서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이미 늦은 때입니다

 

지금 이 때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이때 진리가 서 있는 이때에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때가 지나고 나면 절대로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회개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수장절이 되기 전에 창고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육체의 수장절이 어느 때에 올 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빨리 회개를 해서 창고에 들어가야 합니다.

 

문이 닫힙니다.

그때는 다시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수많은 기회가 있고 또 진리를 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미련한 자들은 그 미련이 벗겨지지를 않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벗겨지지가 않는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잠언 27:22절을 보겠습니다. (94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번 미련에 빠지면 이렇습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그가 미련에 빠지면 절대로 그 미련을 벗겨 내지를 못한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기름이 있는지 모르는 미련한 자들은 성경을 보고 예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바른 줄로 알고 그렇게 미련에 삐지면 절대로 그 미련이 벗겨지지를 않습니다.

 

 

은혜입니다

정말 미련한 자들이 있는 곳에서 여러분이 나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도 자기의 미련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벗겨지지가 않습니다.

공이로 찧으면 얼마나 아픕니까?

그런데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5:12절을 보겠습니다. (43)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합니다.

이들이 예수를 안 믿었다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갈 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 같으면 이렇게 사정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지도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 열어 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문을 안 열러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7:23절을 보겠습니다. (10)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기름이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반드시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의 영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 합니까?

진리의 성령의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듣고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는 결국에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5:13절을 보겠습니다. (4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잠자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상하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문장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한 문장이 아니라 다른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번역과 공동 번역에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에 콤마를 찍고 있습니다.

다른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아 빛 가운데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진리 가운데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0절을 보겠습니다. (332)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진리에 깨어 있으면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우리는 영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 육체는 자든지 깨든지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를 깨워 자기와 함께 살게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일수록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잠도 못 자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잠을 많이 자면 주님께서 잠 잘 때 오셔서 자기를 버리실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서 처녀와 같이 기름을 가지고 있으면 내 육체가 자든지 깨든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를 깨워서 영접해 주시고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 밖에는 모른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늘 종말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종말도 있겠지만 개인의 종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죽은 후에는 회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급합니다.

사실 내 안에 성령이 임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것을 위해서 늘 깨어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 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 행위들을 보면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또 예배를 하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처량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이 사람들은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무서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들어가지 못했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어떻게 해서 들어 갈 수 있었는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정말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늘 깨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성경을 통해서 확증하면서 자기 믿음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평생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았는데 정작 주님께서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속은 것 때문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임재 해 있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여러분 주변에 미련한 처녀들을 구원 하는 도구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마태25장 구원론 3가지 비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과 염소의 비유(3)  (1) 2023.12.25
달란트의 비유(2)  (2) 20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