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마태25장 구원론 3가지 비유

달란트의 비유(2)

윤주만목사 2023. 12. 24. 11:21

마태복음 25:14-15절을 보겠습니다. (43)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달란트

많은 사람들이 이 달란트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재능과 오늘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달란트는 전혀 다른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달란트를 재능으로 알고 있고 재능을 잘 사용해야 다른 달란트를 남길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는 금의 단위입니다

금을 세는 최고의 단위가 바로 달란트입니다

이 금은 성경에서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빛이 나는 귀한 금속이라는 것으로 해석이 되어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달란트의 비유를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은 구원론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는 모두가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는 비유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이 비유를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다가는 큰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이런 말씀을 함부로 해석을 하다가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론입니다

그렇다면 이 달란트는 재능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재능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재능을 보고 달란트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달란트가 많다고 하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뜻은 재능으로서 달란트를 말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 달란트는 아닙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능이 아니라 각각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예수님께서 맡겼다고 말씀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달란트는 재능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달리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만 알아도 성경을 해석을 하는데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데 그 기초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보아도 모르고 있고 또 바르게 성경을 해석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10절을 보겠습니다. (12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성경을 볼 때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고 있는가 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바른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수많은 선지자들 중에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얻는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해야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갈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을 하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는 그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을 도덕책이 아닙니다.

만약 도덕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도덕적인 면에 대해서 방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문제를 강조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누가 찾습니까?

잃어버린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대도 복음이 있는 성도를 통해서 그들을 찾아 구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이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 가운데 몇%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4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몇%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몇%가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의 100%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실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성경을 보면서도 구원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비유를 문자 그대로 보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해석을 해야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달란트를 재능으로 해석을 했다가는 큰 문제가 되고 그것은 결국 종교적인 행위의 열심에 빠지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 비유라는 것은 실제 그 당시에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실제 있는 일을 가지고 영적의미를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실제 있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실제 있는 일은 달란트로 장사하는 것입니다

실제 있는 일이 장사하는 것이니까 우리도 장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장사하는 비유를 통해서 구원에 관한 것을 가르치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 실제 있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교리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도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실제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일들을 맡겨놓고 어떤 주인이 타국에 나가 있다가 들어와서 계산 할 때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구원에 관한 문제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무심하게 보지마시고 첫 번째부터 자세하게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대충보다 보면 그 속에 담겨진 진리를 놓치게 됩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볼 때 고민을 하지 않고 이 세상에 있는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지고 보다 보니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14절을 보겠습니다. (43)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자기 소유를 맡긴 것입니까? 맡긴 것과 같은 것입니까?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갈 때 맡겼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타국에 갈 때 맡긴 그와 같은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맡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고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할 때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것은 이해하기 좋게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것과 비슷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 같다.

이런 것 같이, 이런 형태다 하는 것에서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중요한 키가 있습니다.

중요한 키는 달란트가 아니고 다른 키가 있습니다.

달란트를 맡기고 한 것은 어떤 주인이 타국에 나갈 때 이렇게 하는 것과 같은 그것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하면 장사하는 비유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가진 달란트대로 충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육적으로 볼 때 맞는 이야기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려고 하는 달란트는 그런 달란트가 아닙니다.

달란트를 맡겨 놓고 나간 어떤 주인과 같은 것을 그와 같으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 우리가 이해 못할 부분이 여러 가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비유가운데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우리가 찾아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바로 알지 못하면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되어 있고 그것으로 결국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목적을 찾아내야 합니다.

목적했던 것을 찾아내야지 목적했던 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 합니다

장사를 잘못하면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충성을 해서 남기지 못하고 장사를 잘 못하면 지옥 간다.

그런 결론이 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말씀합니다.

같으다 는 말씀을 첫 번째부터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예를 들어서 영의 일을 쉽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성도가 알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소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계시는 가를 알아야 이 소유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께 다른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15-16절을 보겠습니다. (43)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능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그 재능이 있는데 달란트라는 새로운 것을 맡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달란트를 재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장사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주인이 달란트를 맡기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이 달란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남길 수 있습니다.

만약 남길 수 없었다면 주인은 절대로 달란트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달란트는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 큰돈을 맡기면서 재능이 없는 종에게 그것을 맡기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을 여러분 같으면 맡기겠습니까?

 

이 재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모르고 아무에게나 달란트를 맡기시겠습니까?

그가 달란트를 맡기면 반드시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종들에게 맡기는 것이지 그런 재능이 없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맡기지를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달란트를 맡은 모든 종은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이 비유를 보아야 합니다.

 

반드시 달란트를 주면 남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또 하나 남긴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세 종을 비유로 했고 각각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장사를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꼭 두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한 달란트를 남길 수도 있고 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것이 장사인데 그렇지가 않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도로 그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는 그런 우연을 말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지 이 세상의 우연을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장사를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꼭 배가 되게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경우를 보면 꼭 배가 남았습니다.

이것이 장사하는 것이라면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면 열 달란트를 남길 수도 있고 백 달란트를 남길 수도 있는데 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을까요?

다섯 달란트의 다섯 달란트이니까 꼭 배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남긴 것도 배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배가 아니고 그냥 하나입니다

이 사람도 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하나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장사하는 것이라면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열 달란트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요?

예를 들어서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 벌어서 세 달란트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다 배를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장사를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원금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장사입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의 경우를 보면 원금을 잃어버린 사람은 없습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사실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원금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신기하게도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를 남긴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남겼으니까 하나를 남긴 것입니다

처음 줄 때 다섯 이니까 다섯을 해야 하나가 되는 것 아닙니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둘을 해야 하나입니다 처음 줄때 둘을 주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정확하게 배를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키가 들어 있습니다.

타국에 간 동안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을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주인이 주었던 달란트는 모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배로 남겼고 한 사람은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고 있다가 주인에게 도로 주었습니다.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왜 땅을 파고 감추었을까요?

땅을 파고 묻어 놓으니까 처음에 주었던 상태로 하나는 그냥 있는 것입니다 원래 있던 상태 주인이 주었던 상태로 그냥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인이 준 상태로가 아니라 전부 하나씩 불어났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만 주인이 준 그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하는 것을 비유로 달란트를 맡기면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인이 주고 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히 이 세 종은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5:19절을 보겠습니다. (43)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이것을 다시 계산 합니다

이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다시 오실 것을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마지막 약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러면 이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이렇게 달란트를 남기는 사람이 있고 또 그것을 땅에 감추었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달란트를 그냥 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회계를 하십니다.

왜 회계를 하십니까?

모든 종들에게는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달란트를 맡기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만약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이 종들에게 없었다면 주님은 분명히 불의 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종들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맡기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이 세 종에게만 달란트를 맡기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달란트를 맡기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은 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억지를 부리십니까?

우리가 남길 수 없는 것을 주시고 남기라고 하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그가 이 달란트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장사를 하지를 않아서 문제지 사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누구나 주님께서 맡기신 달란트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도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다면 모든 종이 달란트를 남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5:20-23절을 보겠습니다. (43)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든지 두 달란트든지 하나를 남긴 사람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합니다

이 두 종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대로 주님이 맡기고 가신 달란트를 그대로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배인 두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배인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 두 종에게 그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겠습니다. (367)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인의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그 즐거움에 참여를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참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의 즐거움은 이 세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바라는 자가 아니라 천국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고난과 환난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두 종이 무엇을 위해 달란트를 남겼습니까?

하늘의 즐거움에 참예하기를 바라고 장사를 해서 달란트를 남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같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늘의 즐거움에 참예를 하기 위해서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이 앉는 것이 주님의 즐거움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즐거움도 역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주님과 함께 있는 그것이 즐거움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즐거움을 위해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도 이 세상에서 주님과 같이 그렇게 부끄러움과 고난을 당하면서 달란트를 남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 너무 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것 그리고 자기들이 구해서 얻은 것을 보면서 너무 즐거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즐거움이 하늘의 즐거움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즐거워하는 자체는 이미 타락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장사를 할 때 즐겁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장사를 마치고 나서 회계를 해서 또 달란트를 남겼을 때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장사를 하는 순간에 장사가 잘 되어서 분명히 남길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즐거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마치고 회계를 해서 자기가 또 다른 달란트를 남겼을 때의 그 즐거움에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24-27절을 보겠습니다. (4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이 주인은 주님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다가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회계를 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다가 이제 마지막 때가 되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는 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일어날 일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비유는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 비유 모두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3가지의 비유로 말씀을 해 주시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누구는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이 세 가지 비유를 바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구원 문제면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구원 문제라면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구원에 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각자에게 구원을 위해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주님이 가지고 계신 소유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소유를 알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절을 보겠습니다. (16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 아니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를 하셨지만 이 지구는 사단이 들어와 아담을 타락하게 만든 후에는 지구의 모든 주권이 사단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는 사단의 소유입니다

이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단의 소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소유는 이 지구가 아닙니다.

물론 천국도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난 후에 성도가 얻을 기업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소유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재능대로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에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모든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탄생이 된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은 영원히 보장을 해 주어서 우리가 천국에서도 영원히 누리를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있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소유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장사를 비유로 해서 달란트를 나눠 주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드려서 예수님의 소유를 얻을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소유를 맡기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달란트로 비유로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달란트의 비유를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소유를 맡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맡기신 소유를 남길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불행해 지는 가를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절을 보겠습니다. (17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생명은 우리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번 죽어야 하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으로부터 이 생명 말고 다른 것을 얻으려 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를 해서 받은 것을 즐거워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그런 것을 가지고 얼마나 자랑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계신가를 알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가 죄로 인하여 정녕 죽게 되었기 때문에 죽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그 새 생명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이 세상의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도 거기서 하는 모든 것이 다 세상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6:23절을 보겠습니다. (247)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어 이 영생을 얻으라고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유는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세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 영의 일을 이해를 하지 못하다 보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하는 기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가 하는 문제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계략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얻은 것같이 미혹을 하고 있는 것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 안에만 들어와 있으면 구원을 받을 것 같이 사단은 미혹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넘어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구원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구원 문제가 생명을 얻는 문제이기 때문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으면 생명이 또 하나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가졌던 생명 말고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되어야 합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가졌던 생명은 그것은 예수님 것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원 하시는 것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정말 잘 기억하시고 꼭 알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여러분이 처음 듣는 말씀인 줄 알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고 또 한 편으로는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꼭 전해야 하는 믿음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24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것이고 이제 우리 안에 예수님과 같은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 말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생명이 오셨습니다.

그 생명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아니 생명을 알고 있어서만은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교적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달란트입니다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달란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믿어 영생에 이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나타내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10절을 보겠습니다. (343)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복음으로서 생명을 드러내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이 생명을 모든 사람들이 얻을 수 있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생명을 보았으면 이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을 받았으니까 자기 안에 새 생명을 탄생을 시켜야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그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달란트의 비유에게서는 세 명의 종에게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실제 세 명의 종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드러내심으로 생명의 달란트를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 이렇게 드러난 생명을 통해서 자기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드러난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 말고 주님으로부터 주님이 맡기신 것으로 인하여 내 안에 새 생명이 주님과 똑같은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고 있고 성경을 통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알아감으로 해서 자기 안에 생명을 탄생을 시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이 생명을 자기 안에 탄생을 시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언 3:18절을 보겠습니다. (913)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 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를 얻은 자는 생명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통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바로 그렇게 구한 지혜가 그들에게는 생명나무가 되었습니다.

 

자기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 가셨으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는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 성도가 두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고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 됩니다.

 

배가 되어서 하나가 더 되었습니다

처음에 주었던 것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 말고 하나가 더 탄생 되어야 하는 것인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가 더 탄생이 안 된 것입니다 하나가 더 탄생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은 구분해서 따진다면 예수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한다는 말씀의 뜻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가졌는데 그때 남편이 그 속에 들어간 것입니까?

남편의 정자가 들어간 것입니까?

정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남편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가진 생명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진 생명을 받아 가지고 또 하나의 생명을 탄생 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은 또 하나의 생명을 탄생 시키지를 못 했습니다 어디 가서 묻었습니까?

땅을 파서 묻었습니다.

 

땅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냥 육체 속에 묻어 놓았습니다.

생명을 탄생 시켜야 되는데 그냥 묻어 놓았습니다.

탄생 되지가 않은 것입니다 하나가 불어나야 합니다.

받은 것 말고 하나가 불어나야 합니다.

하나가 안 불어났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하나가 안 불어났습니까?

 

안 물어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5:24절을 보겠습니다. (4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 사람은 주인을 잘못알고 있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굳은 사람입니까?

주인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누가 굳은 사람입니까? 사단이 굳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굳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장사를 하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이 심지 않은데서 거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으로 오셔서 그 씨를 세상에 뿌려 주셨는데도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그것을 모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24절을 보겠습니다. (16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씨를 심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생명의 씨가 이 세상에 뿌려졌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되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우리도 함께 죽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에 행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씨를 뿌렸는데도 이 종은 예수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인 맹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이 세상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게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씨를 뿌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해서 그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많은 열매가 맺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세히 알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를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을 해야 하는데 이 종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한 알의 밀이 되어서 땅에 심어 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보이지 않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으라고 하시는 분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어 영생에 이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어서 그 쉬운 것을 자기에게 재능이 있으면서도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25절을 보겠습니다. (44)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떠하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종은 주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달란트를 남길 수 없었습니다.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이 두렵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다가 결국 그 두려움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어떤 가에 따라서 그 영혼의 생명이 결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무엇이 두렵게 만들고 있습니까?

성경에는 율법이 기록되어 있고 그 율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 두렵습니다.

주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려워 할 수도 있고 또 자유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종은 주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보면서 율법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내는 십일조를 한번 이라도 안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라도 빼앗아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 두렵습니다.

실제 출애굽기에서 보면 안식일을 어긴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어떻습니까?

자기가 주일을 안 지키면 마치 돌에 맞아 죽는 것같이 영혼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종은 율법주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재능을 주어서 예수님의 생명을 자기 안에 있게 할 수 있는데 이 종은 그런 생명에 대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기 보다는 자기 행위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 행위가 잘못이 되면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실제 이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1:7절을 보겠습니다. (34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종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었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었지만 그는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자기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두려운 마음을 누가 주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려워 집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면 자유 하는 마음을 주는데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을 보고 늘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율법을 가지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붙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무엇입니까?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능력을 믿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죄를 지면 어떻습니까? 물론 혼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절대로 그 아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자기가 대신해서 죽을 수는 있어도 아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모르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두려워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쓰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두려워합니까?

물론 아버지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알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18절을 보겠습니다. (392)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려워 할일이 뭐가 있습니까?

사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기만 하면 두려울 것이 없는데 이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몰랐던 것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만 의지를 했어도 하나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데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니까 또 그 율법에 따르는 형벌을 보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을 하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고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 종은 성경에서 율법만 보고 있다가 율법의 형벌을 보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다릅니다.

아무리 내가 큰 죄를 지었어도 내 아버지는 나를 죽이는 않는 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옆집 아저씨는 나를 정죄를 해서 죽일 수 있어도 내 아버지는 절대 나를 죽이지 않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자유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 사랑을 모르다 보니까 자유하지를 못하고 법에 따라 살면서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인을 두려워함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전부 주인을 두려워함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함으로 섬깁니까? 심지 않은데서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지도 않고 너희가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안 주었습니까?

예수님 자체가 생명이신데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방법으로 마음으로 믿어 그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분명히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오직 예수를 통해 생명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예수도 믿으면서 또 율법도 잘 지켜서 생명을 얻으려 하다가 그 율법의 덧에 걸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만약 이렇게 못하면 죽일 것이다 두려워함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주인의 속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모르고 한 달란트 가지고 있던 사람은 완전히 주인을 오해해 버렸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똑 같이 하나씩 남겼는데 주인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준걸 통해서 하나 받아서 하나를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또 다른 생명을 자기 안에 탄생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오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고 하나님은 굳은 분이다 굳은 분이라는 말은 법대로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고 법대로 철저하게 처리하는 분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았다면 당연히 지옥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그대로 법대로 못했으니까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법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법대로 하는 하나님이다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믿어서 구원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독생자를 보내셔서 구원 받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는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잠언 10:24절을 보겠습니다. (921)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누가 두려워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또 악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악인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이 그대로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믿지를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두려워서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사실 이 생명을 얻는 것이 너무도 쉬운데 이 종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드러내 주신 생명을 예수님께 도로 드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해서 자기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하는데 드러낸 것을 받았다가 도로 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져가 버리니까 자기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생명을 영접을 해서 내 안에 예수와 같은 생명을 탄생을 시켜야 합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드러내셨으면 우리는 예수님 것 말고 내 것을 남겨야 합니다.

전부 하나가 남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만 하나가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 합니다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종은 자기 육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행위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행위를 바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다가 생명을 그냥 감추어 두고 만 것입니다

 

복음이 더 중요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덮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지 못 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영혼의 생명보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더 중요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혜가 없다 보니까 이것도 중하고 저것도 중하다 보니까 생명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6절을 보겠습니다. (44)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주인이 반문 합니다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 네가 알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닌데 이 종은 자기에게 재능을 주고 또 생명까지 드러내 주셨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았습니다.

사실 믿는 것만큼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종은 악한 종입니다

누가 악했습니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명을 보고 영접을 해서 자기 안에 생명을 탄생시키기보다는 덜 중요한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 생명을 얻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자기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서 이 생명을 거저 주었는데도 그것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보다는 교회 안에서 종교적인 의식이 빠져 있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으릅니다.

이 종은 영의 일에 대해서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에 관한 일에 대해서 너무 게을렀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나와 있지만 영의 일에 대해서 이렇게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너무 부지런해서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또 모든 예배를 참석을 하고 있고 또 시간이 나면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는 있지만 또 세상 지식적으로는 성경을 보고 있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8절을 보겠습니다. (384)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신앙생활은 참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는 너무도 게으른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성경을 보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 지식으로 성경을 많이 알기 위해서 보고 있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은 아주 잘하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을렀습니다.

예수를 알아야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성경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예수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지식은 많습니다.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 한마디 하면 두 세 마디로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하다 보니까 영생의 열매가 그 안에서 맺혀지지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모르고 또 왜 예수를 믿는지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사는 동안에 충분히 지혜를 구하면 누구나 자기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될 수 있는 재능을 주셨지만 교회는 나왔어도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언 26:15절을 보겠습니다. (940)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영생이 어렵습니까?

손을 그릇에 넣고 입으로 올리는 것보다 쉽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 시대를 보면 예수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주 부지런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너무 부지런해서 참 신앙인 같이 보이는데 실제 그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생명의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아주 게으릅니다.

또 사단은 교회에 나온 것으로 마치 자기가 예수를 다 알아서 구원을 받은 것 같이 미혹을 하고 있어서 거기에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7-29절을 보겠습니다. (44)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생명입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실 얻을 수 있는 재능을 다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오히려 악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죄인이 될지언정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있는 자에게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두 개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 빼앗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두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더 주고 말 것도 없이 풍족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30절을 보겠습니다. (44)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무익한 종입니다

생명이 아니고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사람은 결국 무익한 것을 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모든 것을 누렸다 해도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7:18절을 보겠습니다. (35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디도서 3:9절을 보겠습니다. (350)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무익한 종입니다

이 종이 누구인가를 성경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전엣 계명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무익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데는 아주 열심을 내고 부지런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의 열매를 맺는 데는 너무도 게을렀던 사람입니다

 

생명은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 모든 것은 무익합니다.

사실 생명이 없다면 그 어떤 것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무익한 것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렇게 무익한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진짜 중요한 생명을 얻는데 아주 게으른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그런 것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무익한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무익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너무도 소중해서 그것을 보물과 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이 종이 어떻게 됩니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슬피 울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슬피 울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는 정말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보니까 쫓겨나니까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를 갈고 있습니까?

교회라는 종교에 속아서 자기는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실제 주님이 오셔서 보니까 쫓겨나는 것입니다

속은 것이 너무 억울해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갈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속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하나님께 이 생명에 대해서 구했어도 그런 불행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 행위가 너무 좋아 자기도 거기에 동조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는 아무리 억울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또 성경을 주셨는데도 종교에 빠져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를 구하지 않은 자기가 잘못이지 누구를 탓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때는 아무리 슬피 울며 이를 갈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달란트보다 더 귀한 생명을 오직 믿음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이 시대도 그 생명을 얻기 위해 늘 깨어서 말씀을 보고 있고 또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는 가 늘 깨어 성령의 감동으로 확증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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