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마태25장 구원론 3가지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3)

윤주만목사 2023. 12. 25. 10:48

마태복음25:31-34절을 보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태복음의 3가지 비유입니다

그 마지막 비유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3가지의 비유는 주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시고 난 후에 마지막 약속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고 오해를 많이 합니다.

특히 35-45절을 보면 행위 구원론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말씀이 복음입니다

만약에 오직 믿음에서 어떠한 행위가 들어간다면 그것은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면 양에 속한 사람들은 행위가 좋았고 염소에 속한 사람들은 행위가 나빠서 주님께서 오셔서 각각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것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면 영과 염소의 비유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론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오직 믿음이 아닌 어떠한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제까지 제가 말씀을 드린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성경 말씀에 따라 내가 믿고 있는 진리가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이 진리가 흔들리게 되면 그 순간에 영혼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을 볼 때 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진리와 반대가 되는 것같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양이 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염소가 행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 행위를 보고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고 또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들을 보고 이 시대도 사람들은 양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하신 말씀을 따라 행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열 처녀도 그랬고 달란트도 그랬고 양과 염소의 비유도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비유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비유를 비유로 보아야지 바른 해석이 되지 그것을 실제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양이 되기 위해서 양과 같은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분명히 구원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비유는 구원론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를 하고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재림 하셨을 때 구원을 받는 성도와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구원론이라는 것을 마지막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6절을 보겠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구원 문제입니다

하나는 영벌에 하나는 영생에 들어가는 구원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구원 문제라면 예수를 믿어도 선을 행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 같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적인 평범한 질문들은 우리가 쉽게 답변을 할 수 있는데 솔직히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은 복음과 반대가 되는 것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질문은 참 난처합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다는 사람에게 여기 이 말씀을 보이면서 질문하면 답변을 하기가 곤란합니다.

본문에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하는데 왜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하느냐 이렇게 말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믿어도 선행이 따라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믿어도 행위가 있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마태복음 25:35-4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행위가 있어야 구원 받는 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근거를 대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믿기만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 합니다

여러분은 믿기만 해서 구원받는 것을 확신 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절에 보면 잘한 사람은 영생에 못한 사람은 영벌에 처한다는 것은 육적인 축복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 문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계속해서 보신 사람들은 믿어도 행위가 있어야 구원 받는 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교회 안에는 믿어도 선행을 해야 구원 받는 다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다고 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확신 합니다

이 구원론에 있어서 어느 말씀을 보더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간혹 가다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내 지혜가 부족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그 믿음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또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고 해도 어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이 있으면 일단 그냥 넘어가고 또 그 말씀을 정말 깨닫고 싶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왜 진리가 흔들립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자기 생각에 따라 억지로 해석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 반대가 되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왜 그렇게 기록이 되었는가를 정말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너무 쉽게 해석을 하다 보니까 오직 믿음이라는 가장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차라리 루터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가 얼마나 복음에 솔직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보고 도무지 해석이 안 되니까 차라리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하면서 강해를 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루터와 같이 해석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명이 관한 문제입니다

복음을 잘 전하면 내 이웃에게 생명을 줄 수 있지만 내가 잘못 전하게 되면 그 영혼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모르면서도 열심을 내다가 영혼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그들이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 알면 그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도 정말 그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전문가가 될까 말까 한데 영의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고민을 하지도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에 반대가 되는 말씀을 보면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생각대로 억지로 해석을 하다가 결국에는 율법주의에 빠져 행위를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 기초적인 사상이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성경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런 비유를 바로 알지 못하면 결국에는 염소의 자리에 서서 영원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는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축복을 받으려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35-3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양들이 한 일들입니다

실제 이 일을 했습니까? 주님께서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불과 33년의 생애를 이 세상에서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신 후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난 후에 40일 만에 하늘로 승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양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께서 주릴 때에 예수님을 먹일 수 있었습니까?

 

비유입니다

실제로 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비유를 통해서 양들이 실제로 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로 한 일이지 실제 주렸을 때 먹이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그런 일들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칭찬을 받고 있는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는 양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굶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절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을 인간적으로 볼 때 정말로 대단하고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칭찬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해결을 해 주고 있다 해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러한 행위가 구원을 받은 성도의 표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칭찬을 해 주는 것이지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한다 해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내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일들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예수님에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 일을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마테복음 25:40절을 보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누구에게 했습니까?

구원을 받은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을 예수님께서는 내게 한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한 일을 예수님께서는 내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했습니까?

구원을 받은 형제에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하지 않고 분명히 여기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밥을 주면 다 구원을 받습니까?

 

그리고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해 단기 선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습니까?

성경을 정말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밥을 주고 있지만 그리고 병자를 고쳐주고 있지만 그렇게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 혹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이 한 일들은 분명히 그 일을 통해서 지극히 작은 자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이 한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과 한 형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만 보아도 이 양들이 한 행위가 육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육적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양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그들이 예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분명히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가 우리의 구원과 절대로 연결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형제에게 했습니다.

양들은 형제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형제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형제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을 해 주었고 형제가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형제가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형제가 옥에 갇혔을 때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한 일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형제에게 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이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요한복음 6:57-58절을 보겠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주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먹을 것을 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이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무엇을 먹였습니까?

 

이 세상의 떡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였습니다.

그 떡을 먹임으로 해서 그가 영원히 사는 자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산 떡을 먹어야 합니다.

누룩이 섞여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산 떡을 먹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양들이 지극히 작은 형제들에게 이 산 떡을 먹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배고픔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영의 양식으로 주림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자꾸 사람들이 회의를 느끼고 이단들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잘못된 구원관이지만 그들은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산 떡을 주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소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이지 않고 있습니다.

누룩을 섞고 있고 또 세상의 지식을 섞어서 먹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소자들에게 산 떡은 안 먹이고 다른 떡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반드시 이 떡을 먹이고 있습니다.

 

육신의 떡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육신은 언젠가는 죽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도가 이 세상에서 육신의 떡도 나눠 줘야 하겠지만 그 육신의 떡을 아무리 많이 나누어 주었다 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가 한 일은 헛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양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 떡을 먹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온 마음을 다 쏟고 있습니다.

양들은 영혼 구원을 생각하고 있고 그 일에 직분을 맡은 자로 세상에서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준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육신의 떡을 준다고 해서 그가 그것을 먹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 양들이 준 떡은 그런 육신의 떡이 아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였다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먹였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웃 사랑이 무엇입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이웃 사랑을 못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한 마디를 했을 지라도 그가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내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영혼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다른 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형제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바로 가르치고 그로 하여금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성도는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먹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려 있습니까?

그들이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리저리 유리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주려서 자기 배를 채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먹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역시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지만 그것을 먹고 죽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그렇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은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산 떡인지 누룩이 섞인 떡인지 도무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도 않고 있고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고 있지도 않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구속이 되어 마치 소가 푸줏간에 끌려가는 것 같이 종교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6-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반드시 산 떡이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다 산 떡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누룩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누룩도 있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중에는 누룩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누룩을 섞어 먹으면 그 영혼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누룩입니까?

율법과 은사가 누룩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율법과 은사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을 바로 분별을 못하고 그것을 그대로 먹다가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또 고린도교회와 같이 은사주의에 빠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은사는 그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다가는 그것이 누룩이 되어 결국에는 그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은사가 누룩으로 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나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이 누룩을 먹게 되면 결국에는 그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만약에 이 예수에 누룩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되는 순간에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누룩을 섞고 있고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들은 자기들을 찾아온 소자들에게 절대로 이 누룩을 섞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먹여서 그가 구원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조심하기 바랍니다.

모르면 참고 가만히 있는 것이 하나님을 돕는 일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열심을 내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이 되고 있는가를 이 시대 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 전하면 그 영혼이 죽는 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손에 칼을 들고 찔러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그렇게 죽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피가 난자해서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영생이 없는 자들이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원수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나서고 있습니까?

사실을 어린아이에게 칼이 쥐어진 것입니다

그 칼을 가지고 함부로 휘두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누룩을 먹이고 있는 곳으로 형제를 데리고 가는 일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요한복음 7:37-39절을 보겠습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서 말씀을 들어도 갈증이 해소가 되지 않고 있고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더 갈증만 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에 이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나온 지극히 작은 소자들의 갈증 해소를 시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르치기 보다는 누룩이 섞여 있는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황을 수십 년을 했어도 도무지 확신이 서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늘 목말라 있고 어느 누구도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늘 물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단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모두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생명의 생수가 흐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늘 갈증이 나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론에 대해서 시간이 되면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가를 그때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또 영생에 진리를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답답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아 목이 마르면서도 율법주의에 빠져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영적인 갈증이 해소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게 해야 합니다.

내 형제가 성령을 받았는가를 바로 분별을 하고 그가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해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가 구원을 받아 양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오히려 갈증만 더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말씀들이 바로 깨달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성경을 해석은 하지 못할지라도 바른 진리를 전하는 자의 말씀을 듣고 영생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에 대해서 모르면서 믿는 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맹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그렇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요한복음 16:13절을 보겠습니다. (17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경을 본다고 다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오셔야지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세상 지식으로 보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속이 시원할 정도로 구원에 대한 확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에 나온 사람은 마치 자기들이 다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성령을 거절하고 성령을 훼방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야 내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이 오셔야 믿음의 비밀을 깨닫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봐도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데 그가 아무리 세상 적으로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양들은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고 그들에게 성령을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성령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게 함으로서 선물로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믿어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사도행전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은 이렇게 지극히 작은 형제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베드로전서1:1-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는 나그네입니다

이 나그네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성령의 책망을 듣고 있고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대해서 나그네입니다.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를 보면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초대 교회의 성도는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서 고달프게 살았고 또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성도를 영접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해서 나그네가 되어야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령의 책망을 듣고 순종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늘 고달픕니다. 그런 성도를 영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의 마음을 성도가 아니고는 그 누구도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가 나그네가 되어본 사람만이 나그네의 처지를 알고 그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를 영접하세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를 영접하는 일은 주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의지를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가 성도의 심정을 안다고 합니다.

성도가 나그네가 되어 환란을 당하고 있는데 그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믿음을 저버린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나그네를 영접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를 않으면서 나그네를 영접했습니다.

때로는 그를 영접함으로 해서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 순교를 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그네를 영접했습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의 박해를 받을 때 성도가 이렇게 서로 영접을 함으로 해서 그들이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이사야 61: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극히 작은 소자들이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줄 수 있는 복음이 있는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안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헌신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극히 작은 소자가 교회에 나왔을 때는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구원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로 옷을 입혀야 합니까?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 주어야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성도는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이 옷을 입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 아직까지 이 옷을 입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이 어떤 옷인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입혀 주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나온 그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물론 육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육적인 병자를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소경이 있고 이 시대도 앉은뱅이가 있고 이 시대도 문둥병자가 있고 이 시대도 혈유 병이 들은 사람이 있고 이 시대도 중풍 병자가 있습니다.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 이 사람들을 돌아 보셨지만 이것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문둥병자가 있습니다.

이 문둥병은 감각이 없는 병입니다.

자기 사지가 떨어져 나가도 감각이 없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입니다

영적으로 진리에 대해서 감각이 없어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병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소경들이 있습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의 참 빛을 보고 있는 성도들이 이 병자들을 돌아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병자는 병원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돌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만이 그들을 헌신적으로 돌아보아서 그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정말 헌신적으로 돌아보아 주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진리를 아는데 있어 병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도는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아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명입니다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갈라디아서 3:23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율법에 갇혀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 율법 아래 매여 믿음의 때까지 갇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지키는 것이 바로 옥에 갇히는 것인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옥에서 건져 내 주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율법주의는 지옥을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가 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런 형제를 돌보아 주어서 그 옥에서 건져내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교회도 급속히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 율법주의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옥에 갇혀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찾아가서 그 옥에서 건져내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옥에 갇혀 있습니까?

 

성도의 사명입니다.

그들을 옥에서 건져내 주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율법주의에서 빼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혜가 없어 분별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성도가 그것을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편에 있는 양들이 이 일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의 일입니다

우편에 있는 양들이 행한 일이 육적인 일이 아니라 형제를 구원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육적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육적인 이 일들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자기가 양에 속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교인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편에 앉아 있는 양들은 지극히 작은 형제들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일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양들이 했던 일들은 모두가 구원에 대한 일을 했습니다.

세상 적으로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돌보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함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구원하는 일을 했던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37-40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자기가 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렇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의인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의인들은 육적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만큼 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 일을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 이 일들은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이렇게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들이 육적으로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는 늘 이런 마음으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려고 살았습니다.

 

성도는 다릅니다.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영의 일에 마음을 두고 하는 사람이 있고 육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 일은 성도라면 당연히 행하면서 살아왔던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모든 성도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한 영혼이라도 구원을 하기 위해서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헌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 육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을 못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이런 일을 늘 생각하면서 또 그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이 세상에서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참석을 하는 지극히 작은 형제가 있다면 여러분들로 인하여 그가 구원을 받는다면 이 일을 하고 있는 의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양과 염소는 다릅니다.

생각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은 구원을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이 말씀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었지만 염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 염소들이 어떻게 대답을 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41절을 보겠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염소들에게는 말씀을 하기도 전에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염소들은 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염소가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인보다는 악인이 더 많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실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염소로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가 염소인지 양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2-4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염소들에게는 너희가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일이라면 아마 양도 했고 염소도 했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분명히 양도 하고 염소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했지만 염소들은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염소들은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영적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 일을 안 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아마 왼 편에 서 있는 염소들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까 염소들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4절을 보겠습니다.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했습니까? 안했습니까?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이런 일에 얼마나 열심을 냈겠습니까?

실제 육적으로는 오히려 양들 보다 이 염소들이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 안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소자에게 하는 일들이 예수님께 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소들은 이것을 육적으로 열심을 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실제적으로 이런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염소들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육적으로 의롭고 선한 일을 아주 열심을 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그것이 복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일을 통해서 영혼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염소는 영혼 구원과 상관이 없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주님을 위해서 일을 했다고 하고 있고 양들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자기들이 실제로 육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알고 내가 언제 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염소들은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계에서 이런 일을 육적으로 하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육적인 일로는 절대로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염소들은 육적으로 이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선하고 의로운 일들을 참으로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이 한 일을 보면 주님과 함께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구원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점점 이렇게 육적인 일에 관심을 갖다 보면 영의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비유입니다

실제 이렇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구원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제가 이제까지 말씀을 드린 것은 비유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가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을 하는 가를 비유로 말씀을 한 것이지 이렇게 해야 양이 되고 염소가 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염소들은 자기들이 한 행위를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고 양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염소들은 교회 안에서 실제 이런 행위에 열심을 냈고 양들은 행위에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9절을 보겠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늘 형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를 사랑하고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는 분명히 형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에게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쓸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형제를 사랑하고 있고 지극히 작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를 세우기 위해서 헌신을 하고 있는데 형제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친히 가르쳐 주심으로 형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염소는 다릅니다.

육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이런 일을 안 했다고 하니까

주님 무슨 말씀을 합니까? 하면서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안 했습니까?

우리가 그 일을 하면서 산 것을 아시지 않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실제 염소들은 이 일을 육적으로 너무도 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형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입니다.

만약에 어떤 행위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설령 이것을 영적으로 했다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교회 안에 있는 구원을 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은 영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있고 구원을 못 받을 사람은 육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설령 이 일을 안 했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성도는 자기는 모를 지라도 이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형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를 지라도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당연히 형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실제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실제로 영의 일이라 해도 그 일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은 형제를 사랑을 해도 그 형제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주님 곁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일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체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주님께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고 옷을 입하고 병이 들었을 때 찾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고 했지만 그것이 다 육에 상관된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를 사랑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 세상의 사랑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31-33절을 보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최후의 심판입니다

사실 이제까지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 성도는 지극히 작은 형제를 사랑하면서 살았을 것이고 염소들은 육적으로는 그 일에 열심을 냈지만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재림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대로 주님께서 영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비유로 양과 염소를 갈라놓는 것 같이 하여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6:11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편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양들을 우편에 분별해서 놓았다는 말씀은 양들은 구원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묻겠습니까?

구원은 오직 믿음입니까?

행위가 포함이 되어야 합니까?

구원은 오직 믿음입니다.

만약 여기서 흔들린다면 여러분은 구원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구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을 상징할 때 모두가 우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편에 있다는 말씀은 이미 그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만약에 이 선택의 교리가 무너진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이 선택의 교리가 무너져 있는 것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양입니다

그리고 이미 염소입니다

 

로마서 9:11절을 보겠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선택입니다

이미 야곱과 에서가 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행위를 해서 야곱이 되고 에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낳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택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야곱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교리가 흔들린다면 여러분의 구원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양이 어떤 행위를 해서 양이 되고 염소가 어떤 행위를 못해서 염소가 된다면 여러분은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우편에 있는 양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양이 실제 무슨 행위를 잘 해서 아니 복음의 일을 해서 양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분별이 되었습니다.

우편에 있는 자들은 양이고 좌편에 있는 자들은 염소입니다

마치 에서와 야곱을 분별한 것같이 우리도 역시 내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양으로 선택을 해서 우편에 서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양과 염소는 이미 선택이 되었습니다.

다만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한 양과 같이 살아 갈 것이고 염소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한 염소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 갈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양과 염소는 선택이 되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만약 선택이 안 되었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양의 일을 다 하면서 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것은 하고 어느 것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성도의 마음은 그렇게 영혼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서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양입니다

여러분인 이미 양입니다

진리를 알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어서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양의 위치에 주의 우편에 서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의 일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편에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이미 우편에 서 있습니다.

이 일을 해서 우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되어서 이미 우편에 서 있고 이 일을 형제 사랑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일을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34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우리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았습니다.

그 일을 해서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이미 상속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선택이 되었는가를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4절을 보겠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언제 선택을 했습니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편에 서 있는 양들은 이미 선택을 받아서 서 있는 것이지 그들이 무슨 행위를 해서 아니 복음을 위해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해서 양이 되어서 우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만 보아서는 우리는 잘못하다가는 행위로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선택을 받아서 양이 되었고 그 양이 우편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양이 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양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선택이 되어서 양이지만 양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한 것을 믿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이미 양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양의 본분을 지키며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살아가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6절을 보겠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염소는 영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의인입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된 의인입니다

이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시고 견고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염소는 영벌이 들어갑니다.

이 영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 영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때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양이 되어서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만 얻을 것이 아니라 복음에 빚진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를 구원에 이르게 해서 내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희는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받아서 양이 되었으니까

이제 은혜에 빚진 자로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라고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사모하고 지극히 작은 형제를 사랑해서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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