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2:45절을 보겠습니다. (신 169쪽)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믿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성경을 안 보는 사람입니다. 아니 성경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가 보기에는 육체를 입고 있고 사람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종교인들이 말을 하는 것과 삼위일체가 맞는다면 주님께서는 지금 잘못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하시면서 종교인들이 말을 하고 있는 성령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을 잘못 말씀을 하셨든지 아니면 사도 요한이 주님의 말씀을 잘못 기록했다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하나님인데 그런데 한 하나님을 빼고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내가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에 맞추기 위해서 그 교리와 맞는 가 확인하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인들은 종교인들이 신학교에서 배우고 그 교리대로 가르쳤는데 그것이 맞는가하여 성경을 상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경에서 성경을 보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도 그들은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입니까?
그들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저 이 세상에서 초등학문으로 신학을 공부를 하고 라이선스를 받아서 종교인으로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말을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보다 더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내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성경과 맞으면 그 사람에게서 말씀을 들어야 하고 성경과 다르면 과감하게 그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을 구해야 하고 또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 구합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으면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고 성령을 받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누가 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지도 않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도 없고 성경을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의 하나님이라면 무엇 하러 믿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지금 계속해서 주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록 사람들이 볼 때는 자기들과 같은 육신의 사람으로 보이지만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창조한 목적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4쪽)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하셔도 유대인들이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믿습니까?
누가 이 시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믿습니까? 인생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으면 이방인 역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시니까 신성 모독으로 해서 로마에 고발을 해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받게 해서 죽였습니다. 오히려 빌라도는 그는 죄가 없다고 하면서 죽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이 흘리는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하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다 받겠다고 하면서 십자가형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성경을 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제가 지혜가 있어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가 믿습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누가 믿고 있습니까? 이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그저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의식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남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까? 그러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믿어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확실한 말씀입니까? 삼위일체가 맞는다면 주님께서는 여기서도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고 성령을 보는 것이라고 해야 맞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말씀입니다. 삼위일체가 맞는다고 하면 주님께서는 지금 잘못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중에 한 위의 하나님을 빼고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까?
종교의 교리입니다
그 교리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포승으로 묶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포승에 한번 묶이게 되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도 그 포승에 묶여서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종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그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거대한 종교에 들어가면 그들이 믿는다고 하니까 소자는 그들을 따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로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밖에 더 있습니까? 이렇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도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형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사도 바울이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보고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보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보는 자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8절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다시 또 이 말씀에서 이미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일을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이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사도 바울이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는 말씀 역시 같은 의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에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시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나태내시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형상을 볼 수도 없고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표현 자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을 하니까 헬라어로 생명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생각을 하는 그런 생명을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영이라는 말씀을 보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는 영을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씀은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의 철학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고 있고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가 이 헬라어를 보아도 알겠지만 실제 형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 의미로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상상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스스로 계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니까 인생들이 생각을 하는 영의 개념을 가지고 영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이 창조주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어느 정도 희미하게 인생들이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도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실제 형상을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유대인들이 보았고 제자들은 삼년 반 동안 거의 함께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을 보았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그런 의미에서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이성입니다
그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의 문자를 안다고 해서 마치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본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46절을 보겠습니다. (신 169쪽)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 피조물들을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생각을 왜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거의 문자에 집착을 하면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그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유대인들을 통해서 성경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가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성막을 알았습니까?
그들이 율법에 대해서 알았습니까? 그들이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을 알았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도 모르는 그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율법의 행위를 했고 그것이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일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성막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도 몰랐고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더구나 요한복음에서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끝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알았습니까? 그들은 율법이 참 형상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율법을 보고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보고도 이스라엘과 똑같이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그 문자를 알고 그대로 자기들의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와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론에게 말하기를 모세가 오지 않는다 하면서 우리를 인도한 신을 만들자 하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당시 지식인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헬라 사상으로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초기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보고 연구를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인생의 지식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들의 지식으로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는 이 말씀을 보고도 그들은 실제 주님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하나님을 자기들이 보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이 구원에 대해서 정말 많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을 멸망당하게 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봄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충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일에 대해서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우리가 빛에 비췸을 받아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고 그 생명을 얻는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이루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본 것이 된다는 말씀과 같이 그 생명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은 그 빛을 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는 빛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보는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전체를 말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도 보지 않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빛입니까?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얻게 하는데 있어서 빛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생명의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그러니까 창세전부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빛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빛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저 이 빛이라는 단어도 헬라어의 뜻을 아는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빛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에 생명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까 그저 단순하게 생명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 빛에 대해서 밝히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빛으로 오셨습니다.
생명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육체가 죽으시고 하늘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로 그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를 통해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만 해도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다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봄으로 해서 책망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비췸으로 해서 어두움의 일을 하는 자들이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빛이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이 빛을 다 비춰주시고 있는데 비췸을 받지 못하고 있고 그들은 아예 책망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비취어야 책망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대 종교는 아예 이 빛이 비춰지지가 않아서 책망을 받지 못하고 있고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빛으로 책망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빛으로 책망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에 비췸을 받아야 하고 빛을 알아야 비췸을 받아서 책망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빛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럼 이 빛에 비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내가 어두움에 일을 하고 있으면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아예 빛에 비췸을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책망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빛에 비췸을 받아야 책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빛도 모르고 있고 어두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책망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하시던 그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이며 그 빛은 빛의 아들이 되게 하는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입니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겨우 그 정도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유대인들을 책망하시고 있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마치 빛에 비췸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다는 그 말씀이 이루어 져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빛에 비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삼년을 밤낮으로 너희를 훈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년 동안 에베소에 있으면서 눈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가고 나면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는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지 않음으로 해서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함으로 해서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빛입니다
그 빛에 비췸을 받아야 어두움에 있는 것을 그러니까 어두움의 일을 하는 것을 책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빛에 비췸을 받고 있고 어두움의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실 때 이미 영광을 받으셨지만 이제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창조의 영광을 알게 하는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에 비췸을 받아야 합니다.
어두움에 있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35절에서도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장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시작부터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왜 빛으로 오셨는가 하면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두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게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빛을 따라오면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거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비춰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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