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요한복음 강해

163-1, 유대인들이 저를 믿었으나

윤주만목사 2022. 12. 25. 20:28

요한복음11:45절을 보겠습니다. (166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병든 나사로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주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시고 나서 유대로 가셨습니다

 

병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육체의 병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영적인 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고 자기가 병이 들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교회들이 병을 고친다고 하고 있고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면서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10장에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자기 양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종교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내 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상태가 어떤가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영적으로 어떤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권능으로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뼈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 뼈를 잠언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그 골짜기에 뼈가 많은데 아주 말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령의 근심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이렇게라도 뼈가 마를 정도라도 고민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종교에 빠져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부활입니다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는 부활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데 자기들은 마르다가 말을 하는 것과 같이 마지막 날 부활에는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다시 산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했고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들이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있는 그러니까 아담을 지으시기 전에 있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육체의 생명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것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주님이 오셔서 그대로 행하시고 있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실제 나사로의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시는 분이 누군가 하면 바로 여호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살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진토로 지으시고 우리 진토가 죽으니까 태초의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고상한 척을 하면서 성경에는 없지만 계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서 만든 교리를 따라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보다도 교리가 우선이 되고 그 교리에 벗어나는 말씀이 있으면 해석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성경이 잘못 번역이 되었다고 하면서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시간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 생명은 태초 전부터 영원까지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 속에서 보면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우리는 나사로와 같이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이성으로는 이 생명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있고 종교의 교리에서도 이 생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생명을 주시고 풀어 다니게 하심으로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그대로 다 보여주셨지만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마리아에게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대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적으로 다 병이 들어 있는 자들이고 죽은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죽은 자이기 때문에 무덤에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그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게 하고 생명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구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종교인들이 말을 하고 있는 삼위일체라는 것은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선지자들의 말씀을 응하게 하심으로 믿음으로 역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가신 길입니다

우리가 그대로 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적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죽은 사람이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한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을 본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표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23절을 보겠습니다. (14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믿었으나 

2장에서도 이미 한번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도 역시 헬라어로는 (피스튜오) 믿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만 약250회 정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다. 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단어이지만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입니다 

어휘력과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어로는 요한복음2장에서 믿었으나 라고 하는 말씀이나 지금 11장에서 믿었느냐 라고 하는 말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피스튜오 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2장에서 이미 말씀을 했기 때문에 이 말씀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다른 번역에서는 믿었다는 것으로 단정을 해서 번역을 했습니다. 다만 킹제임스 번역도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은 딱 두 번입니다. 2장에서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고 11장에서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보고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헬라어로 성경에 믿다. 라는 것으로 250여회 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두 번입니다 

그것도 한글개역성경에서만 그렇게 번역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2장에서도 충분히 말씀을 했지만 우리나라의 언어로 번역을 하는 은사 자들이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로 이렇게 번역을 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리고 이러한 표적을 보고 있습니까? 그런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이나 이 시대 교인들이 주일을 지키고 여러 가지 절기들을 지키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리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주님을 대적하면서도 그들은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까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한 은사자는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했다면 같은 헬라어를 신약 성경에서만 250여회 사용을 하고 있는데 단정을 지어서 믿었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한 것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글을 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히브리어를 아는 것보다 그리고 헬라어를 아는 것보다 한글을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용을 하고 있는 한글을 너무 폄하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이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잘못 번역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 번역이 되었습니까?

믿었다고 단정을 하는 번역이 오히려 잘못 번역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번역을 볼 때마다 한글의 표현력이 얼마나 우수한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데 있어서 더욱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언어입니다 

여러 언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사람의 이성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공부를 잘  하고 언어적인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지금도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흔히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행위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행위를 자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겸손해야지 그런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도 역시 부자가 되어서 자기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나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나 뭐가 다릅니까? 그리고 그것을 누가 합니까? 행위도 내가 하는 것이고 언어를 하는 것도 역시 내가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다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그런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자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우리 언어로 번역을 하게 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시대 히브리어를 하고 헬라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 역시 언어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믿었으나 

왜 이 번역이 맞는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3-4번의 강의 때에 제가 계속해서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와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선지자들의 말씀이 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아직 입니다.

왜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했는가 하면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게 되면 성령이 오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물론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적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믿음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유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 성도가 계속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입니다 

그가 살아나는 것은 인생의 철학적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약하기 때문에 그 표적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라는 것은 단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현상을 보고 믿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은사 자 역시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이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를 받을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들이 생명을 얻은 자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왜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한 은사 자는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했는가 하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했고 그것은 단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사는 것을 보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표적을 나타내시는 것은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믿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믿습니까? 지금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산 것을 직접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산 것을 믿는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난 후에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내가 그인 줄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요한복음11장에서 응하게 하신다는 것을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이 응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더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앞 동편 감람산에 주의 거룩한 자와 함께 서신다는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왜 제가 한글개역성경을 말씀을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은사 자가 성경을 이상하게 아니 잘못 번역을 한 것과 같이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서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 철학적 지식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상을 입고 오신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사야 선지자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헬라어의 단어입니다 

은사자의 번역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한 은사 자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믿었으나 라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을 하고 있고 그 번역이 저는 정확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르다 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있었고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을 보고는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이신 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요한복음 11장은 더구나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증거를 받아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역사를 해야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직 제자들에게도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한 은사 자는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만약에 요한복음 11장의 사건이 스가랴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임을 모른다면 번역은 믿음이라는 단어 그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한 은사 자가 최소한 그것을 증거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믿었으나 라고 부정적으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17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입니다

들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단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었다고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종교인들은 믿음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이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만약에 이것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이 믿음으로 우리 안에 생명이 거하신다면 우리는 굳이 성경을 이렇게 볼 필요도 없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의 살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시는 일을 힘써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비유의 말씀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지식이 있고 지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 성경을 자기 스스로 보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뒤에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어떻게 했는가 하면 아라비아로 갔다고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라비아에 몇 년을 있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전승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3년 있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는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인이고 바리새인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학파라고 하는 가말리엘 문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다시 성경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와서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맞는가 하여 아라비아로 가서 홀로 3년을 성경과 씨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그러니까 이제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이방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성경을 다 알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 그도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있었습니다. 아마도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또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이방의 사도로서 얼마나 강하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지만 그 역시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복음을 전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아직까지도 성경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말씀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생을 얻은 믿음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 깨달아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먹이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께서 먹이시는 유월절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를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서 그때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고 계시지만 지금 요한복음 11장 만 해도 구약의 선지자들의 말씀이 어떻게 응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21)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 믿음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로 해서 수백 번 이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를 보면서 내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믿는다는 단어만 나오면 다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맹목이 되면 안 됩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라고 하는 모든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가장 기초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분이 전지전능하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고 어느 교회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이방의 종교라고 하는 교회는 삼위일체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삼위일체입니까

주님이 성자 하나님입니까?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믿는 하나님도 모르는 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생명입니다. 지금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 생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에서는 이 생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뭐가 다릅니까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주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빌립보서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개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주의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경계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그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랑을 하던 그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직 생명만을 말씀을 하고 있고 자기가 얻은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귀한 생명인가를 알기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명을 아직 못 얻었습니까? 그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믿음에 든든히 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기가 믿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얼마나 오묘합니까?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지혜를 얻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가 성경에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깨달을 때마다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다 압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라비아로 가서 계시를 받을 때 모든 것을 거의 다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도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성경을 보면 너무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습니까? 제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겨우 우리가 아는 정도는 구원을 받을 정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우리가 지금은 청동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고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당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도 그렇게 말씀을 했다고 믿고 있고 우리 한글개역성경이 정말 잘 번역이 되어 있다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유월절을 먹이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살을 주시고 있고 주님의 피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느 누구도 다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요한복음 2장에서 성령이 오신 후에 그 말씀이 생각이 나서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을 불러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시고 제자들이 이제 성령을 받은 후에 거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next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