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7 :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실패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왜 실패를 하는가를 알 수 없으며 싸움에서 져 본적이 없는 사람은 진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 경험도 자기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그 말에 공감을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는 한끼도 굶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이 굶은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실 때 웃은 것처럼 나도 말씀이 안 믿어 졌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말씀을 보고 아! 그래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접 경험을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경륜을 성도가 조금이라도 바로 깨닫게 하시기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기 보다는 자기가 행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잔치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 의가 좋아지면 잔치하는 기분이 됩니다.
그러나 내 의가 나빠지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들고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 인하여 잔치를 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죄를 보아야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의로워 지지 말라고 잠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마음이 잔치하듯이 기뻐하다가 자기 날을 생각하지 못할까 함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습니다.
너무 사람의 모습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눈은 자연스럽게 잔치집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보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6 : 19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여기 한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의로 연락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부자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생활이 어떠한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로 부자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행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으로 부자가 되어 기뻐하고 있지 않나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신앙인들이 자기 착각 속에서 자기는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 사람 보다는...
정말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거지같은 나사로를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정도 하고 있다고 자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습니다.
모두 잔치집에 마음이 있습니다.
내 신앙생활을 보는 것은 잔치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신앙생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는 자기 의를 보고 잔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없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가지고 잔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사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죄는 십자가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다 지고 가셨습니다.
죄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가 커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기 때문에 죽습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있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할까 고민하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성도는 초상집에 마음이 가 있지만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잔치하는 집에 더 마음이 가 있습니다.
잔치를 보며 즐거워하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지막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기억하면 더욱 십자가가 뚜렸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감사
율법의 고운 옷과 자색 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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