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오늘의 말씀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윤주만목사 2022. 7. 17. 06:25

시편28 :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구약의 이스라엘은 육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로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신약을 사는 우리가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인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는 보이는 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그것이 복을 받았으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다는 공식이 성립되고 그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복은 율법주의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보상도 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시대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하게하고 있고 실제 그것을 통해서 육적인 복을 받는 것과 같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십일조를 하면 저도 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일조로 인하여 하늘의 복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의가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 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반드시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일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로 하여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것이 더욱 열심으로 교회 안에서 행하지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이 세상에서 복 받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제사와 같은 것이며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복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다른 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성도의 복은 이 세상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이 자기의 그물이 될 수 있고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1 :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늘에 복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은 분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골고루 나누어 주신 분복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늘의 복과 연결시키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는 땅의 분복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서 분복을 누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 써 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땅의 분복을 얻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하늘의 복은 저절로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이 땅의 복을 전혀 무시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땅의 분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을 위해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이 땅의 분복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교회가 세상과 차별이 없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상과 같이 이 땅의 분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 보다 죄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서 하늘의 복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 세상의 복을 위해 살다 보니 세상이 볼 때 웃기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에게 그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분복은 하나님의 분복에 맏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는 성도는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복 아무리 많이 받으면 뭐하는 것입니까?

그 복을 많이 구하고 받아서 자기 믿음을 지킬 수 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상황이 오면 자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서로 보이려고 보이고 싶어서 그 분복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성도의 복 하늘에 있습니다.

자기의 복이 어디 있는가를 모르면 결국 무리할 수밖에 없고 무리수가 자기를 사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너무 세상의 복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들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런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있는 성도는 지금 내 형편이 어떠한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복을 바라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감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성령 께서 감동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