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0:9절을 보겠습니다. (신 163쪽)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성경은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라고 해서 그 말씀만 비유가 아니라 거의 모든 말씀이 다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우리가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비유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고 그 비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제까지 많은 말씀들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율법이 비유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더욱 든든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율법에 정한 대로 주님에게 꾸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 손을 펴서 넉넉히 꾸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그 결과로 우리 안에 의로운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종입니다
그 종에서 도망을 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비유의 말씀을 보고 우리가 종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는 주님께로 도망을 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곳 그러니까 우리가 가고 싶은 천국을 바라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할 수 있게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킵니까?
주님께서 지킨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유의 말씀을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고 정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영생을 얻은 자로서 살고 있지만 영생을 붙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비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그리고 주님께서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이기 때문에 지금 이 요한복음을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성경에서 보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서 믿고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직접 자기들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모르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그들은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인생입니다
영의 일을 그리고 내세의 일을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 언어로도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는 비유로 해서 우리가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세상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도 자기들은 하나님의 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주님이 오셔서 내 양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문이라고 하니까 헬라어를 안다고 하면서 입구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문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의 양들은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있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 시대 종교인들도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양의 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양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반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내 양은 내가 하고 있는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로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누가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까? 어두움에 다니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또 나면서부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밝은 눈으로 보게 하신 의미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어떻습니까?
양들은 그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다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다 깨닫고 있고 이 말씀대로 믿음으로 해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절도입니다
그리고 강도입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그들의 영혼이 다 도적을 맞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종교가 되었고 음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다 도적을 맞음으로 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 시대 종교인들도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양들은 듣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지금 종교인들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있습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도 우리 성도들은 듣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 문자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텍스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 시대 종교인들도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이고 내세의 일을 믿으라고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가 아니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고 그것이 종교를 만들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양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을 절대로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아무리 종교에서 지키라 해도 우리는 절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내 부모라 해도 내 형제라 해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듣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헬라어의 단어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의 말씀은 입구를 의미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으로 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들의 문입니다 이미 한번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히브리서를 통해서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좇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문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18:19-23절을 보겠습니다. (구 889쪽)
“내게 의의 문을 열찌어다 내가 들어 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에베소서1:1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양입니다
우리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대교가 되어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내 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 양은 듣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입니다 주님의 양은 종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유대교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그들은 영의 일에 있어서 나면서부터 소경이라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것을 주님께서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더라도 그들은 어두움에 다니고 있어서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열심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절도와 강도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절도와 강도입니다 이 세상에 절도와 강도가 얼마나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국가의 법에 의해서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자를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나쁜 의미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나쁩니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왜 종교를 갖고 왜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인생들의 이성으로는 종교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말이 다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그런 일들이 다 영혼을 빼앗는 절도고 강도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의 이성으로는 그들이 하는 일이 너무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같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자와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짓 선지자가 양의 옷을 입고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옷입니다
인생들의 이성에서는 양과 같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도 역시 종교를 보고 거짓 선지자를 보면 양과 같이 보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교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유대교와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외식을 하고 있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그 문자를 보고 행위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내게 의의 문을 열찌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돌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사도 베드로가 인용을 해서 베드로전서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시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문이 누군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미 시편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그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의의 생명이 탄생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분명히 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양들은 그 말씀을 듣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그러니까 염소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진노를 자청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도 분명히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 두려움이 없이 종교가 시키는 대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의와 우리의 의를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성경에서 알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보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문이다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어두움에 다니고 있고 죄를 범하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장입니다
시편118편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갓난아기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신령한 집을 세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기이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이한 빛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되어서 다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만이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약속을 받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에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시대는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주님의 아내가 되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세라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는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세라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물론 자기들이 문자적으로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는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교회를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의 문자만을 보고 있고 그 문장을 보고 성경을 풀려고 하다보니까 도무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도 모르고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주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라 온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양인지 염소인지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만 보고 양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이하신 빛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8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두움에 다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니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생명의 빛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왜 기이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이 기이한 빛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본성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기이한 빛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고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문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영의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의 기이하신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빛에 비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의 일에 빠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교입니다 그것이 다 절도요 강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은 이 빛을 깨달을 수 없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어두움에 다니고 있어서 이 빛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오직 예수입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8장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같은 말씀을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계속해서 어두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어두움이 무엇을 비유로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인생의 이성으로는 나쁜 의미로 연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에서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으로 어두운 것을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에 나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움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지합니까?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이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적으로 다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인생의 이성으로 어두움이라는 것을 연상을 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에 아들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8장에서 말씀을 하신 것을 그대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입니다 이미 초기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빛의 아들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빛의 아들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10장에 와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 양이 아니라 내 음성을 듣지 않고 나를 따르지 않는다고 반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인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절도와 강도에게 다 그 영혼을 빼앗겨서 주님의 말씀을 듣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종교에 의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절도와 강도에게 빼앗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주님을 죄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나 주일이나 그 날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소경입니다 그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이제 밝은 눈으로 보게 하심으로 해서 생명의 빛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얻게 하시는가 하면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종교인들도 말로는 다 오직 예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다 어두움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면서 그 날에 온갖 어두움의 일을 다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의 문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모든 일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빛으로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그 빛에 비췸을 받아 정말 우리 인생들의 이성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빛을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에 비췸을 받습니다. 그것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이제 주님이 오시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 영광에 참예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 중에 누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은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어두움에 다니고 있고 빛에 비췸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빛의 아들이 아니라 어두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영생이라는 것을 이제까지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반어적으로 주님께서 양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과 같이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교를 주님께서는 먼저 온 자라고 그리고 내 양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모든 곳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들은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날에 온갖 율법을 지켰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일이라는 날에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그들이 너무도 옳게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거대하게 지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에게 휩쓸려서 다수가 이야기를 하면 마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면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종교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그들의 본성에 따라 미혹을 하면서 절도와 강도짓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성에는 거짓 선지자가 양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10절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을 하고 있고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을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비유의 말씀을 보고 그 비유를 풀어 깨달아야 하는데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인생은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서도 남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 이방인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우리 이방인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자기 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절도와 강도를 남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을 예표로 삼아 우리도 그렇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들어가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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