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7절을 보겠습니다. (신 161쪽)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갔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우리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빛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율법주의로 갔는가 하면 본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계속해서 바알과 아세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이 지구 안에서 오직 우리 인생들만이 지적인 능력이 있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능력이라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문자를 보고 지식으로 습득을 하고 하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자체를 가지고 자기들에게 특별함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 지적인 능력이 상당히 향상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번역이 된 성경을 본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주님께서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에 다니는 것을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빛이라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무엇에 대해서 세상에 빛 이신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빛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율법을 바로 알고 어두움에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만 소경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 역시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모두가 다 똑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유대인이라 해도 마찬가지고 이방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세상에서 학문을 많이 공부를 했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생명의 빛에 대해서 보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다 소경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지금 정의를 내려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입니다.
선택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택하셨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문자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모태에서부터 이 생명의 빛을 보고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경입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8장까지 말씀을 하시고 나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서 그로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시는 표적을 보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땅입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소경이 주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 밝은 눈으로 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땅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침을 뱉으셔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는데 주님께서 저주를 하신 그 땅에 침을 뱉으시고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매 그가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실로암 못입니다.
이미 그 의미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표면이 중요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다는 그 말씀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고 이미 보냄을 받았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 소경입니다. 나면서부터 다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을 나타내시고 있는가 하면 이제까지 주님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듣고 믿겠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경을 비유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실로암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를 하면 이 실로암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조금만 말씀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실로암이라는 못이 왜 생겨났는가는 성경을 자세히 보고 또 공부를 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입니다.
앗수르가 침략을 해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를 함으로 해서 앗수르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보면 다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때 앗수르의 산헤립이 가장 강대한 나라였고 이미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고 이제 남 유다를 멸망을 시키기 위해서 왔던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기혼이라는 샘이 있습니다.
그 샘의 이름은 터져 나오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실제 그 뜻과 같이 예루살렘 성에 샘이 터져 나와서 사람들이 사용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멸망을 시키려 할 때 예루살렘 성 안으로 샘이 흐르게 하려고 기혼 샘에서 굴을 파서 흐르게 했고 그 이름이 실로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로입니다.
그 중에서 물이 고이는 구간이 있었고 그곳을 실로암 못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두 번이나 훼파가 되는 가운데서도 이 실로암 못은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못이라는 의미로 우리가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히스기야 왕 때에 기혼 샘에서 굴을 파서 수로를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원래는 없는 샘입니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 수로 가운데서 물이 조금 더 많이 고여 있는 곳을 실로암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이 실로암의 의미 그대로 주님이 오셔서 소경인 우리 인생을 대표를 해서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이 사람의 눈을 씻어 보게 하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기혼 샘입니다.
그 뜻은 터져 나오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실로암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소경인 우리 인생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소경을 보내시는 것을 미리 아시고 그렇게 이스라엘로 이름을 짓게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입니다.
성경은 그냥 기록이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이 실로암이라는 못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스라엘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짓게 하시고 주님이 오셔서 실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싶습니다.
이 수로를 만든 것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고 그리고 그 이름을 붙인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 실로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한 사람을 예표로 해서 우리 인생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소경을 예표로 해서 우리 인생들 전체가 영의 일에 있어서 소경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이 사람이 보냄을 받아 씻고 눈을 뜨게 된 것은 우리 인생을 대표하는 표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서 씻으라.
씻다, 깨끗이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어 원어의 뜻에서는 깨끗이 하다. 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못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유대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성경을 보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악을 행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요한복음 7장에서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씻어야 합니다.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나면서부터 소경이기 때문에 씻지를 않고는 이 생명의 빛을 볼 수 없고 그러면 그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소경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또 어떻게 해야 씻을 수 있는가를 모르면서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의 시작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에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을 지켜서는 온전케 될 수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을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율법을 비교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온전케 될 수 없으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내 육체가 거룩함을 얻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거룩한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거룩한 생명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의 생명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그 길은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 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휘장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영으로 부활하심으로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과 같이 우리 역시 그의 생명이 거하심으로 그 길로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것은 우리 역시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영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신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빛입니다.
우리는 이 빛을 보고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로 씻음으로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자기가 행하는 일이 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의 행사가 악한데도 전혀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씻으니까 이제 밝은 눈으로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유대인들과 같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에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면서 율법으로는 온전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물로 씻어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가 되어서 물로 씻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물로 씻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종교는 유대교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유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을 하지 않고 있고 신약 성경을 안 보아서 그렇지 구약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앞에서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나면서부터 소경인 이 사람을 왜 눈을 뜨게 하시는가를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어두움에 다닌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세상의 행사가 악하다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소경에게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으로 보내시면서 물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냄을 받은 자가 되어서 물로 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13:1절을 보겠습니다. (구 1324쪽)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이사야 64:6절을 보겠습니다. (구 1045쪽)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은 거의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림자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비취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까지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다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다 나면서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표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종교인들 역시 자기들이 소경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입니다.
인생 전체는 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경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의 일에 있어서 참 빛으로 비취주시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소경이 되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하는 모든 행사가 다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장입니다.
주님이 우연히 이 소경을 만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8장까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소경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를 않고 있고 생명을 얻는 빛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 나면서부터 진리에 대해서 소경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도 똑같은 인생이고 유대인들이 주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이방의 종교인들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유대인들과는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는 자기들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하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구원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씻음을 받아서 거룩하신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그리고 더러움입니다.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저 문자만 보고 있고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가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더러운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을 내 생각을 가지고 볼 것 같으면 성경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같으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는 정말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들이 자기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서 이루어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러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생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죄가 무엇인지 더러움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죄입니다.
주님께서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실상은 자기들이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실제 이 세상에서 살면서 짓는 죄를 가지고 죄를 짓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입니다.
너희는 육체로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죄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육체적으로 간음을 한 여자는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서 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죄를 짐으로 죄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면 다 죄의 종으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범죄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알아야 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가를 알아야 씻을 수 있는데 도리어 그 죄를 범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러움입니다.
무엇이 더럽습니까? 유대인들도 그렇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무엇이 더러운 것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이런 말씀이 있으면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는 더러운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왜 성경을 보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더러움이 무엇이라는 것을 성경에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로 알고 죄와 더러움을 씻어야 하는데 도리어 더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행위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그러니까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외식이 다 더럽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럽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다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는 것은 더럽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이 바뀌지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을 보고하고 있는 말씀이고 그러면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같이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을 전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더럽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그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배가 끝이 날 때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예배를 다 누가 드리고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행위로 하고 있고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더럽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났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소경을 주님께서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을 하심으로 그가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영의 생명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행위가 죄를 범하는 것이 되고 있다는 말씀이며 그들의 행위가 다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고쳐주시고 있습니다.
아니 유대인 뿐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을 고쳐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생명을 주는 일을 스가랴 선지가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소경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를 주님께서는 가르쳐 주시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와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점점 더 율법주의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너무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이 어떻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와 더러움이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버리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15:30-31절을 보겠습니다. (구 927쪽)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성경입니다.
왜 성경에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말씀이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단지 소경이 그리고 병자들이 불쌍해서 그를 고쳐 주시는 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까?
절대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 요한복음 8장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을 보시고 이 표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참 빛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서 씻으라.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보냄을 받은 자로서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경은 우리 인생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 인생은 영의 생명에 있어서 소경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구약의 예언의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소경의 눈을 고쳐 주시고 그가 밝은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봐야 합니다.
밝은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어두움에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에 있어서 우리는 밝은 눈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역시 밝은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유대인들과 같이 어두움에 다니면서 죄를 범하고 죄의 종으로 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그가 밝은 눈으로 보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는 소경이 안 되어 봐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가르쳐 주는 말씀이고 참 빛을 보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밝은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될 수 있고 그런 성도는 마음이 기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실로암에 가서 씻음으로서 밝은 눈을 가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next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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