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강,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잠언27:15-22절을 보면
“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지혜입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지혜를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잘하는데 있어서 지혜를 얻으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스스로를 사망의 길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죽으면 그것으로 썩어 없어지고 맙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생명입니다
내 육체의 생명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썩어 없어지고 나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듭남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 생명은 그것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생명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영의 생명이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성경은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을 방해를 하고 있는 그러니까 믿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세상의 지혜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목사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인들은 그 말을 듣고 세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썩습니다.
그 썩는 인생이 무엇을 잘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무법천지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도라 해도 세상의 법아래 살기 때문에 그들이 요구를 하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까?
그리고 기독교인입니까? 또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불교인입니까? 그들이 도덕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불교인도 윤회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다음 생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서 공덕을 쌓기 위해서 잘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이것도 아니도 저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성도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차라리 유대인이 되든지 불교인이 되든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교회 안에서 성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서 무슨 짓을 다 해도 용납이 되는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혹시라도 한 사람이라도 깨우치고 복음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보다도 더 종교인들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종교 안에서 칭찬을 받는 것을 최고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우리 안에 그의 생명인 영의 생명이 거하시고 있음을 믿고 있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윤주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상입니까?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죽은 자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을 해서 썩은 시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가 살았습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그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고 있고 그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고 진짜 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내가 그 이름을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그의 생명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진짜 실상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얻으려면 우리는 성경에서 방해가 되는 것을 깨달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5절,“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부녀,
부인과 여자라는 뜻으로, 성숙한 여자와 결혼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사전에서 이렇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한글의 뜻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한글을 알아야 부녀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입니다
사람이 다투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부녀만 다투고 있습니까? 부녀 혼자서 다투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여자만 그러니까 가정에서 주부만 다투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부녀가 다투면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툼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이성적 상식으로는 상대가 있어야 다툴 수 있습니다. 만약에 혼자서 다투고 있다면 그 부녀는 정신 이상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정신 이상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도 다툽니다.
교회 안에 있는 남자들이 이 말씀을 보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 어리석음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결국에는 그것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언의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세상 초등학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모르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모르게 되어 그는 복음을 깨달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13:18절을 보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부녀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녀입니다
이 부녀가 일만 여자라고 생각을 합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해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부녀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가 사람의 영혼을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녀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는가 하면 다투는 부녀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 가운데서도 역시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말씀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던 부녀만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부녀는 영혼을 사냥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부녀가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 영혼이 사냥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다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는 반드시 그 영혼이 사냥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이 이 말씀을 보고 다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남자들은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녀는 영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을 사냥합니까?
부녀가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부녀가 이스라엘의 생리적인 여자를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생리적인 여자들은 감히 남자에게 말을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아랍인이나 이스라엘의 풍습을 보면 여자는 인격체로 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사냥합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문자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초등학생이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고 이 부녀를 비유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6:32절을 보면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부녀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부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거대한 종교에 의해 유대교에 의해서 사냥을 당했습니다.
부녀와 간음을 합니다.
누가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간음을 하고 있고 그것이 영적으로 짓는 죄가 되어서 그 영혼이 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와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언에서 그를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부녀와 간음을 하지 않는 자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교회 안에서 왜 율법을 지킵니까? 그 부녀가 영혼을 사냥하고 있는데 지혜를 깨달을 수 없어서 부녀와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를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 지금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부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냥을 당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종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잠언의 말씀을 보고도 부녀와 간음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으로 간음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간음이 문제가 되어서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간음을 하라고 합니까?
저는 영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은 부녀들에게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을 향해서 간음을 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만 간음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성경에 문자적으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와 간음을 하면 여러분은 무지한 자가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이 부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간음을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그들이 모두가 다 부녀와 간음을 하기 때문에 무지한 자가 되어서 영혼을 망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잠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육체를 보면서 부녀와 간음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지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나 되는 것과 같이 더 부자가 되고 있고 그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디도서3: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부녀입니다.
이 부녀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의미로서의 교회입니다 .물론 작은 성읍마다 다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고 또 이방의 기독교 역시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녀가 다툽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다투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다투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다투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성도는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자유 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실행을 함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부녀가 되어서 다투고 있습니다. 왜 다투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다투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전체가 율법을 지켰습니다. 왜 그들이 율법을 지켰는가 하면 부녀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율법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다투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죽고 나자 교회는 다투기 시작을 했고 그 다툼에서 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기 시작을 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는가 하면 복음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지한 자입니다
부녀와 다투게 되면 그 부녀가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게 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를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는 다툼입니다.
그 부녀가 누군가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가 왜 다투는가 하면 율법을 지켜야 자기가 세워지기 때문에 다투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예배도 시간에 맞추어서 드려야 하고 또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여러 가지 이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녀는 끊임이 없이 다툼을 일으키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무지한 자들은 그 다툼에서 져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제 기독교라는 종교가 2000년 가까지 내려오고 있고 그들은 당연히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다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율법 하나가 들어오자 사도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율법으로 인하여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율법 한 가지가 교회를 율법주의로 만들고 있고 그 안에 있는 무지한 자는 부녀와 다투다가 지게 되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이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입니다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녀는 마치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이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이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방의 교회 역시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지만 감각이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지킵니까?
교회가 율법을 하나를 지키게 합니까? 그것으로 끝이 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이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율법을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행하게 하고 있고 무지한 자는 자기 영혼이 망하는 줄도 모르고 그 교회를 따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16절,“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다투는 부녀입니다
이 부녀는 율법을 지키게 하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이렇게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이방의 교회는 초대교회를 잠시 제외하고는 교회사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교회입니다.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제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부녀가 얼마나 지혜로운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자기 영혼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교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를 제어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율법이 들어오니까 그를 제어하지를 못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율법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사도들과 말씀을 나누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을 제어할 수 있습니까?
오른 손으로 가름을 움켜 쥘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는 제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는 자기 영혼이 망하는 것도 모르면서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그 교회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무지한 자이며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도 그렇고 이방의 교회도 무지한 자가 되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17절,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요한복음15:14절을 보면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합니다.
우리가 대장장이를 알고 있습니다. 철을 불에 달구어서 그것을 두둘김으로 해서 철을 날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친구가 있음으로 해서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날카로운 말씀으로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입니다.
그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있어서 그 부녀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면 그 친국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누군가 하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부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명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친구가 되심으로 해서 그 말씀으로 해서 우리의 얼굴이 빛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녀가 우리를 미혹한다고 해도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8절,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영혼의 생명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영혼에 대해서 지키는 자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내 영혼을 지켜야 하는가 하면 다투는 부녀에게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45절을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시종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지키고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지키고 있고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잠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절,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거울이 없었습니다.
잠언이 기록이 될 당시에는 청동 거울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청동 거울도 거의 귀족이나 쓸 수 있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은 자기 얼굴을 보려면 물에 비추어서 봤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입니다.
당시에는 물에 비추어서 봤습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보이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맑은 물에 비추어 보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물에 비추어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투는 부녀에게 미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춥니다.
그것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떻게 비추게 되는가 하면 마치 물에 비추어서 자기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는 행위를 보면 그 마음이 서로 비추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물에 비추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추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말씀이지만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다 비추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절,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전도서5:10절을 보면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다투는 부녀에 의해서 온갖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음부에 들어갈 정도로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정말 기독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만족함이 없이 끊임이 없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다투는 부녀가 그에게 끊임이 없이 요구를 하고 있고 그의 눈에도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입니다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음부의 고통 중에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옥 불에 들어가면서도 사람의 눈에는 만족함이 없어서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종교에 빠지면 보이는 교회를 보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음부에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사람의 눈에는 만족함이 없어서 더욱 더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다투는 부녀에게서 사람의 이성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그 지혜 있다고 하는 신학자들 역시도 다 무지한 자가 되어서 다투는 부녀가 시키는 대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만족함을 모르고 더욱 열심을 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사람의 눈에 그것이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고 그것이 마치 만족함이 없는 음부와 유명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이런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1절,“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그러니까 다투는 부녀가 시키는 행위를 함으로 해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칭찬이 자기를 어떻게 시련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칭찬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은을 만드는 도가니와 같고 금을 만드는 풀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칭찬에 자기에게 다가올 시련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련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투는 부녀는 그가 다투는 것을 잘 하는 사람들을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칭찬이 나중에는 도가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풀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율법의 행위로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고 있고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서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서 아무리 좋은 칭찬을 받으면 뭐합니까? 오직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고 있는 그 칭찬은 마치 도가니에서 은을 만드는 것과 같고 풀무에서 은을 만드는 것과 같이 시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기 바랍니다.
22절,“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로마서1: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미련한 자입니다.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미련한 자입니까?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를 미련하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섯 처녀가 누군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둡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을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까?
그들은 미련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다투는 부녀에게 미혹을 당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미련한 자가 되면 그 미련을 절구에 넣어서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까?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곡식을 절구에 넣어서 공이로 찧으면 그것이 벗겨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교회 안에서 미련하면 곡식을 절구에 넣어서 공이로 찧었는데도 그것이 벗겨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벗겨집니다.
그런데 사람의 미련은 벗겨지지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곡식은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으면 그것이 벗겨집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미련함은 절대로 벗겨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에게 미혹을 당해서 한번 율법주의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투는 부녀가 되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이 부녀에게서 이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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