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72강, 이긴 자의 축복(2)

윤주만목사 2020. 12. 14. 11:10

72, 이긴 자의 축복(2)

요한계시록3:5절을 보겠습니다. (402)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이 부분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실제 흰 옷이라고 하면서 어느 이단의 교회 안에서는 흰 옷을 입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옷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흰 옷이라기보다는 구원을 받은 우리의 신령한 몸이 그렇게 깨끗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영혼입니다

마치 우리가 입는 옷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옷이 아니라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흰 옷이 우리가 보는 하얀 색깔의 옷을 입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론 자들이 종말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들이 가운을 입습니다.

물론 검정 가운도 입지만 부활절에는 흰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부활의 상징을 보이려고 또 성경에 나오는 흰 옷을 입었다는 말씀을 보면서 그렇게 시각적으로 자기들이 흰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흰 옷을 입은 것을 보이면서 마치 자기들이 부활에 참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입는 옷이 아닙니다.

천국을 묘사할 때 그래서 사람들은 흰 옷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대한 그림과 영화에서 장면을 볼 때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에덴에 있을 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안 입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옷을 안 입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 인생의 상상으로는 도무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에덴만을 생각해도 이 흰 옷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흰 옷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흰 옷을 입으려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표현을 하다 보니까 천국은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흰 옷만 입고 있는 곳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61:10절을 보겠습니다. (1043)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입는 옷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부활의 형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옷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흰 옷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상징하기 위해서 구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흰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우리가 입고 있는 그런 흰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옷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3:27절을 보겠습니다. (306)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어떻게 옷을 입습니까? 이것은 하와가 어떻게 탄생을 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옷을 입었습니다. 아담과 똑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안 됩니다.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볼 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하고 또 무엇을 비유로 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이 범죄를 했을 때 기도할 때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범죄를 하는 자는 내가 내 책에서 반드시 그 이름을 지울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족보가 있습니다.

마치 그것을 말씀하는 것과 같이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족보에 그 자손이라는 것을 기록하듯이 우리 역시 생명책에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시인을 한다는 말씀은 법정 용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법정에서 시인을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가 죄인이다 아니다 라는 것을 시인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성도를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시인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법정을 보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법정에서는 반드시 증인이 있습니다. 그 증인이 있어야 자기가 무죄하다는 것은 밝힐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와 같이 우리를 시인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어떤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성경은 이 세상의 있는 일들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왕이 있습니다.

왕이 사는 곳에 들어가려면 누군가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해서 시인을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청와대를 들어갈 때도 반드시 우리 신원을 확인을 해서 이상이 없을 때 또 청와대에서 초정이 되었을 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세상의 대통령이 사는 곳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신 보좌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우리를 시인해 주어야 합니다.

 

성도라는 것을 시인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을 시인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시인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죄인인데 우리를 의인으로 시인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2절을 보겠습니다. (40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둥이 무엇입니까? 집을 짓는데 있어 기둥이 흔들려 버리면 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둥은 그 집을 지탱하는데 있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부서지고 그 집이 무너지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디모데전서3:15절을 보겠습니다. (339)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충만해 져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이 임재를 했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나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지만 그 진리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 안에 터를 잡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과 같이 버티고 있어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말씀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머리로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복음을 강하게 전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이 진리에 대해서 머리로 알려고 하는 순간 이것은 여러분에게 오히려 화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성경에 대해서 다 표현을 활 수 없습니다. 그저 제 한계의 수준에서 여러분에게 이 진리를 전하고 있지만 그것이 혹시라도 지식으로 끝이 날까 솔직히 두렵습니다.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성경 안에서 아무리 바른 진리를 전한다고 해도 그것을 여러분이 듣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둥이라는 것은 그런 얕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진리는 절대로 기둥이 될 수 없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그 은혜가 가슴에서 넘쳐 나야 기둥으로 든든히 서게 됩니다.

 

이사야11:9절을 보겠습니다. (981)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합니다.

이것을 내가 알고 싶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감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서는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충만하게 알 수 있어서 기둥과 같이 서 있어서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넘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어서 절대로 빠져 나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설령 사단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우리가 진리로 기둥과 같이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 에덴에서 하와와 같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일이 절대로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지난번에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의 야곱의 하나님이라 이 이름이 너희가 영원히 기억할 나의 표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어야 하고 또 이삭의 하나님이어야 하고 또 야곱의 하나님이어야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제 더 이상 그런 이름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 있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그 이름을 천국에서 부를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평화의 소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천국에서는 더 이상 평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기 때문에 평화가 아니라 오직 사랑만이 있는 곳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새 이름이 있습니다.

저도 그 새 이름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 의미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제가 찾지를 못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도로 알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너무 그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알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 보다는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집중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천국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감동하여 주시는 대로 믿음으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 해도 하늘에서 있을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하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천국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이상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21절을 보겠습니다. (403)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저도 표현을 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언어를 통해서 천국에서 우리가 받는 복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알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보좌라는 것을 잘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번역입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보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있던 그때에는 왕의 보좌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보좌라는 말을 안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왕이 있을 때도 그것을 용상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보좌에 앉는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긴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고 말씀을 합니다. 사실 이 함께 라는 단어도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한 분이라고 제가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함께 지만 실상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지금 삼위일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리라고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하는 것이지 실상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후의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우리에게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설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고 또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저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함께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한 성도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왕입니다 그 왕과 함께 보좌에 앉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지 실제 천국에서는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우리를 함께 앉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함께 앉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엄청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왕의 보좌에 앉는 것도 너무도 큰 영광인데 만왕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보좌는 상상 이상입니다

만만의 천사 그리고 천천의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좌에 우리가 함께 앉아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앉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보좌가 어떤 보좌인가를 안다면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3절을 보겠습니다. (268)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천사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로 많은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들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영광을 누릴 때 천사들이 우리에게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뛰어난 존재 천사가 우리의 판단을 받게 되는 자리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앉아 있는 보좌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천사가 우리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누구를 위해 존재를 하고 있느냐면 바로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보좌에 앉으면 모든 천사들이 우리에게 수종을 들고 우리는 그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중국 영화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쟁을 할 때면 끝이 보이지 않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를 호위를 하고 있느냐면 바로 왕입니다 혹시라도 왕의 신병에 무슨 일이 있을까봐서 몇 겹으로 왕을 호위를 하면서 자기 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그 영광의 자리에 앉는 순간에 아마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그런 영광의 자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 축복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에서 져서 초라하게 아무 이름도 없이 살아갈지라도 반드시 이겨서 우리는 천국에서 이 모든 것을 누려야 합니다.

 

잠언21:31절을 보겠습니다. (935)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김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 시대 사람들이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겨야 하는 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로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또 육체가 이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이기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이김은 우리 육체의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는 그것이지 육체가 구원을 받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이김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김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셔야 하고 또 우리를 이기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이 두려워 하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긴 것을 믿지를 않고 자기들이 세상을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에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주님은 절대로 오시지도 않았고 십자가도 지시지 않았고 또 주님의 십자가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까?

그들은 이김이 누구에게 있는 가를 몰랐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온전히 믿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문제가 결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김과 자기의 이김을 별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한 몸이라고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예수님이 이겼으면 내가 다시 이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천국은 이기는 자가 들어갑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 이기는 자들이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누가 이기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가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다 자기들이 이겨야 천국이든 극락이든 자기들이 주장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만은 이 세상의 이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이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역설입니다

내가 이기려고 하면 반드시 집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이기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진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은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믿음 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과 같이 오히려 더욱 행위에 빠져 들어가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어떤 화가 임한다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13-14절을 보겠습니다. (389)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우리는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자기들의 행위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태초에 계신 이를 앎이라 그 아는 것이 선지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너희가 이겼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이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겼는가를 알고 또 그 이김이 우리를 어떻게 이기게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안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들의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됩니다. 이김은 하나님께 있고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는가 하는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는 이유가 바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가 악한 자를 이기고자 함입니다.

 

말씀입니다

그저 지식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한 자를 이기고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김이 하나님께 있다는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고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겼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겼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이겼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면 우리가 이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긴 것을 모르고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통해서 자기가 이기는 것을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4-5절을 보겠습니다. (393)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누가 이깁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사람은 절대로 못 이깁니다.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자들만이 이길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육체의 모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해서 우리가 진리로 충만해 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이긴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이기는 방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도무지 이해를 못 합니다

또 교회 안에 있지만 진리로 기둥을 세우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 믿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기는 줄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반드시 이기는 자라야 천국의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지만 이기는 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고 또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믿음입니까?

이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의 비밀을 주시고 우리가 이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을 모르고 그저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5:57절을 보겠습니다. (28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누구로 말미암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능력을 주셔서 우리가 육체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신 그것을 믿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도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그것을 거저 주셔서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모습으로는 예수를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이기려고 오늘도 치열하게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겼습니다.

앞으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이미 이긴 것을 다시 이기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입니다

이렇게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이긴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해서 이기려고 싸우는 자는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이긴 자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이기고 천국의 기업을 상속 받기를 예비 되어 있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을 나 혼자 기뻐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함께 천국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직무를 맡은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입니다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그 천국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느 정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기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잠깐 보이는 것에 미혹되지 마시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사실 이 세상에서의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후에 있을 축복과 영광이 너무 크기에 우리는 기꺼이 이 복음을 위해 헌신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기셨다는 것을 믿고 이 세상에서 믿음이 있는 성도로서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