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은혜와 진리의 말씀

421강,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윤주만목사 2020. 2. 2. 04:31


421,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잠언 28:4절을 보면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비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 인생들이 아무리 지적으로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인생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성경을 통해서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쉽게 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고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말씀인데 사람들은 아주 쉽게 성경을 보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까지 영혼을 사냥하고 있는 일인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고 조금 아는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전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아도 자기 생각을 먼저 기초로 세워 놓고서 성경을 보고 있다 보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생각을 하면서 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이 번성을 하고 있는 그때에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다고 하니까 그 당시에 모든 사람이 다 타락을 해서 하나님을 안 믿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 겉으로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노아의 사건은 그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입니다.

노아의 사건은 지금도 똑같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는 말씀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노아 한 사람 하나님을 믿어서 그가 은혜를 입은 것으로 착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다른 종교가 생겨나기 시작을 한 것이 언제부터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아 이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다른 종교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거의 1000년을 살았기 때문에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지혜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 더 뛰어났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백 년을 살고있는 인생과 그 10배를 살고 있는 인생의 지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담이 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또 인생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때입니다. 사실 1000년을 산다는 것이 상상이나 됩니까? 그만큼 지혜나 또 체력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100세를 사는 노인들을 보면 그 지혜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년을 산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그들도 타락을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단 한 사람은 노아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10억 명이 된다 해도 그 숫자는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노아 시대와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의인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지구에 종말을 주지 않고 주님께서도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에서 과연 몇 명이나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주님이 찾아가셔서 그렇지 아무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경계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랬어도 자기들은 안 그런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미련해서 주님을 잘못 알고 있었고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주님을 바로 알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8:8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예언하셨기 때문에 또 주님께서도 하늘로 승천을 하시면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도 그랬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으면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이 세상 사람들의 이성으로 볼 때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보였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모두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지혜가 없어서 영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과연 믿음이 있는 성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인자가 다시 올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많아지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시대 믿음이 있는 성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한국 교회가 약 1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그 의미 자체를 모르고 있어서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하는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저를 이단이라 해도 좋습니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지금 한국교회에 믿음이 있는 자는 1000명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보고 또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그렇게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말 1000명이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적습니까?

아니요, 제가 보기에는 많습니다. 1000명이라는 숫자도 제가 보기에는 정말 많은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 몇 명이 들어갔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표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비례를 할 수는 없습니다.

 

60만 명 중에 두 명이었습니다.

비례로 한다면 600만 명이면 20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1000만 명이니까 약40명 정도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비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표가 그렇게 보여 지고 있다면 이 시대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고민해야 하고 정말 내가 믿음이 있는 성도인가를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그 안에 있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 믿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교회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무엇이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십억도 넘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믿음이 있는 자가 적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영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자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에서 남은 자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주 적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믿음의 비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자가 아주 극히 적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자기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종말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때가 오면 아예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종말의 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아주 적은 소수의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영적인 눈에는 절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최소한 믿는다고 할 때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내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다고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오히려 율법을 버리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주 난감한 말씀입니다. 분명히 율법을 버려야 하는데 잠언의 말씀은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버리지를 못하고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근거로 봐라 율법을 버리는 자가 누구고 율법을 지키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라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버려야 합니까? 참으로 난간한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는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악인을 대적하려면 분명히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말씀이 있어서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바른 것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하나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율법 폐하셨습니다.

성도가 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 문제는 구원과 직결이 된다는 것을 제가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폐하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 지키면 안 됩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단호합니다. 그것은 제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게 된다면 저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유익입니다.

이 세상 죄인으로 살지언정 악인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인이 되기보다는 죄인이 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언에서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주셨습니까? 참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말 율법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계속해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왜 율법을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언약을 한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마치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자기들이 언약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또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더욱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20절을 보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에 가입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은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주신 것은 범죄를 더 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율법에 가입을 한 것은 범죄를 더 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했습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죄가 더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율법을 알면 죄가 더 많아지고 율법을 모르면 죄가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율법을 아는 성도는 자기 죄가 얼마나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죄가 어느 정도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율법에 가입을 했다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죄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만큼 죄가 더 적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에 가입을 하면 죄가 더 많아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계명을 다 해석을 했습니다.

이미 설교 말씀에 다 올려 드렸습니다. 그 십계명 하나하나를 보고 이 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적으로는 살인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가입을 하고 보니까 내가 영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육적으로는 살인을 안 했지만,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을 보니까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몰랐을 때는 죄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가입을 하고 나니까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인만 했습니까? 간음도 하고 도적질도 하고 또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십계명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으니까 죄가 더해 졌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더 져서 죄가 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누가 더 많고 적은가를 논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저울에 달아 보니까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몰랐을 때는 입김보다 경하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을 알고 보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죄가 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정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율법을 알면 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자기가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을 알고 나니까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가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에게 죄가 더하지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에게서 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율법은 육적으로 보는 사람과 영적으로 보는 사람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하나도 못 지켰습니다.

아니 십계명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율법에 가입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에게는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에 가입을 하지 않아서 아니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에게 죄가 더한 것이 아니라 죄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주셨습니까?

아니 율법을 누가 지키는 것입니까? 이 명제부터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 인생이 지킬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으라고 주셨습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는데 율법에 가입하지 않아서 율법을 통해서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은혜를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악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누가 지킵니까?

 

마태복음 5:17절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왜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에 가입을 해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죄가 더하게 하라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죄가 더한 성도만이 은혜를 알고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율법을 완전케 하실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교만한 마음 때문에 결국에는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이 첫 언약에 실패를 해서 에덴에서 쫓겨남으로 인생은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사람입니다.

아니 죄라는 것을 모르는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담도 첫 언약에 속한 율법을 어겨서 죄를 지었는데 죄악 중에 탄생한 인생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행위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조금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세상 사람과는 다른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된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해서 죄가 더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 죄를 없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은혜를 가리는 악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어린아이가 어린 아이다워야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같이 행동을 하면 징그럽고 그 아이가 전혀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 다워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죄를 더 지라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내가 예수님이 된 것 같이 자기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이나 되는 것 같이 행동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또한 그것이 악한 행위라는 것을 더욱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주님이 지키십니다.

정말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어기기만 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런 인생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율법은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못 믿으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욥도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게 살았다고 하는 욥도 안 되었습니다. 자기가 고난을 당할 때 자기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를 찾아보라고 할 정도였고 또 하나님 나오셔서 나와 변론을 해 달라고 할 정도로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를 했습니다. 그런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입을 다물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착시 현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육체로 몇 가지 지키는 그것으로 율법에 가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가입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을 보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은혜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율법을 지키신 분이고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그는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죄가 없으신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5절을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신 그대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데 그것은 누가 한 것입니까? 주님과 내가 한 몸이라면 주님이 완전케 하신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한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율법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의 종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자유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이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는 말씀이고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다는 것을 야고보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합니다.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율법은 안 지키는 사람입니까? 지금 야고보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는 자가 자유 하는 율법을 지지키는 자가 아니라 안 지키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물론 야고보서 강해에 해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까?

자유하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누구인가 하면 자기 육체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자유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성도라고 야고보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유하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식하면 죽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영혼은 사망입니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이스라엘이 소경이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은 율법은 문자 그대로 안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고 있는 성도가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바로 해석이 안 되어서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율법주의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서만 바로 해석을 해도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4,“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누가 율법을 버린 자입니까?

그리고 누가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까? 율법을 문자 그대로 자기 육체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율법을 버린 자이고 율법을 주님께서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고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고 있는 성도가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합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자기들이 지키면서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도는 악인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육체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악한 행위라고 하면서 대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것은 내가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에 가입을 한 것은 죄를 더하기 위해서이고 그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있다는 말씀이고 자유하는 율법을 보고 지키고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자유하는 율법을 보고 실행하는 자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겠다고 악을 행하고 있는 악한 자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악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버리고 악인을 칭찬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어 깨닫지를 못하고 점점 더 악을 행하는 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주시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가입해서 죄가 더하게 해서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악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자기 육체로 지키면서 악을 더하게 하고 있고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분명히 폐하여 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자유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잊어버리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성도는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고 있는 악인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악에 대적을해서 선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