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의 의와 나의 의
로마서 10: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예수를 믿는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고 또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이생의 축복을 바라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같이 살아갈지라도 영원한 축복이 있는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지금 조금 힘이 들어도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나온 사람은 모두가 천국을 소망합니다.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또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며 그리고 선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모두가 원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누구에게 열심이 있다고 말씀 합니까?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데 그 열심이 잘못된 열심이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것도 잘못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것은 잘못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는 것이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열심을 냈으니까 다 하나님 앞에 옳은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이단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정통의 교회입니다
로마서는 교리서이며 사도 바울이 구원에 대한 교리를 가르쳐 주면서 교회들이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있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냈지만 잘못된 열심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을 거절하는 열심 그 열심이 무엇이냐, 왜 그러느냐 하면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내면 모조건 좋을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잘못된 열심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잘못된 열심이면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열심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실수로 끝이 나면 좋은데 지금 본문 말씀은 잘못된 열심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모릅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모르고 막연하게 사람의 생각으로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면서 행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행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사실은 지식이 없이 무조건적인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열심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구원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열심을 다 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을 냈는데 그것이 잘못된 열심이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그 말씀에 내 영혼의 생명이 달려 있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열심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의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자기의 의는 무엇이고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거절했다 그러니까 잘못된 열심을 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오고 자기의 의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잘못된 열심이 무엇이냐면 나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의 의가 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고 내 의가 나타나는 것이 잘못된 열심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자기의 의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의 의는 자기가 한 모든 의로운 행동을 자기의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의입니다 내가 한 의인데 어떻게 행한 의냐면 이것은 나의 모든 의가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내 의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내가 구제를 한 것도 나의 의요,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도 나의 의요, 내가 십일조를 낸 것도 나의 의요, 내가 어떤 사람을 도와 준 것도 나의 의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한 모든 것들은 다 나의 의입니다 내 몸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선하고 의로운 행위는 다 내 의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내 몸으로 예배드린 것도 나의 의입니다
기도드린 것도 나의 의입니다, 전도한 것도 나의 의입니다, 이상하지요? 내가 한 모든 의로운 행동 전체가 나의 의입니다 이런 것을 내 의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 자기의 의를 세웠다 하니까 하나님의 일을 실컷 해 놓고 자기가 영광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이 해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가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내가 영광을 받든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든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도 그것은 나의 의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한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나 나를 위해서 한 것이나 다 나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이 마치 하나님의 의인 것처럼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내 몸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의롭고 선한 신앙생활의 의는 내 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위해서 일을 했든지 하나님을 위해 일을 했든지 다 내 의라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아무도 모르게 정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을지라도 그 또한 내 의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알고 있을지라도 내가 한 모든 행동은 나의 의입니다
그것조차도 내 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의와 나의 의가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너무 극단적으로 보일지라도 내 몸으로 한 모든 행위는 다 내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의로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있지만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위해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을 모르고 열심을 갖게 되면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정말 평생을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가지고 헌신을 했지만 지식을 모르고 열심을 냈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행위를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이 결국 자기 영혼을 파멸의 길로 끌고 내려가는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를 합니다.
내 몸으로 한 모든 행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다 내 의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전도를 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에 헌신을 하고 하는 모든 일이 내 의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해도 내 의가 됩니다.
제가 지금 이런 일들을 전혀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성도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해야 하지만 지식으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내 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을 해야 합니다. 설령 사도 바울과 같이 헌신을 했어도 그 모든 일은 내 의가 됩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해도 그것 역시 내 의가 됩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한 것이 내 의라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행한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의롭게 산 것이 내 의라면 하나님이 의롭게 산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안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슨 의를 행하였느냐 하겠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안 계시지만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의롭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와 동등 됨을 취하시지 않고 우리 인생의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한 행실 의로운 일을 해 놓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의로운 의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내 의라면 예수님이 한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내가 한 의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선한 일을 했다, 구제를 했다, 봉사를 했다, 이 모든 일이 법에 의한 것입니다
율법에서 난 모든 의로운 행동이 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라 하지마라 율법입니다 착한 일을 해라해서 한 것은 나의 의가 됩니다 구제를 해라해서 한 것은 나의 의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율법적으로 의롭게 산 모든 것은 나의 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꼭 율법만이 아닙니다.
내가 은사를 행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하기 위해서 찬양을 하기 위해서 은사가 나에게서 나타났다 해도 그것역시 내 의입니다 모든 은사도 역시 내 의라는 것을 모르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지금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도 내 의입니다 비록 복음을 전하고 있을지라도 역시 내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려고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까? 실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만을 전했지만 그 역시도 사도 바울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바른 진리를 전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했다 해도 역시 내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심을 내지만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이냐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의롭게 산 것은 다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나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거절 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의는 내가 한 것이고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이 한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거절했으며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이 왜 잘못입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잘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참으로 이상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다했는데 왜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나 잘못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다 했지만 잘못 되었습니다
내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을 전 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아마 이런 일을 했다면 누구나 다 그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 해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해도 그것은 내 의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어떻게 요구하시는 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3:2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나의 의는 율법을 행한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킨 것 말고 다른 것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른 것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해놓은 의를 내가 가져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의롭게 산 것을 내가 가져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해놓은 것을 가져오지 않고 나의 의를 가지고 구원 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를 하나님을 향해서 열심이 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율법은 그 행하는 것에 따라 차별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절대 차별이 없습니다. 간음한 자나 살인을 한 자나 도적질을 한 자나 모두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의를 내 것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사실은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의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의는 가려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내 의는 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취하려고 하다가는 망 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의를 다 얻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적으로 간음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의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내의로는 안 됩니다 아니 내 의는 쓰레기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내 의가 너무 빛나게 보여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당시 그렇게 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의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의를 가지고 축복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 권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태에서 나오면서부터 장자 권을 빼앗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별미를 만들어 오면 축복해 주겠다고 에서에게 한 말을 알아 가지고 형보다 먼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이삭에게 내가 에서입니다. 별미를 해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뭐라 말합니까? 음성은 야곱이라고 말 합니다
창세기 27:22-23절을 보겠습니다. (구 39쪽)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아버지 생각에도 너무 빨리 온 것도 이상하고 음성도 야곱의 음성이니까 이리오라고 해서 만져봅니다 만져 보니까 야곱이 형의 옷을 입고 염소 털로 팔에 감았으므로 에서라고 믿습니다. 이삭이 만져보고 음성은 야곱인데 껍질은 에서라고 말하면서 축복을 하였습니다. 축복을 받은 후에 에서가 와서 대성통곡하면서 그 장자 권을 달라고 했지만 그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야곱이 염소 털을 안 감고 들어가서 축복을 받으려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가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아니요 그 밖에 있는 양털 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입니까?
자기가 아니고 형의 것 이었습니다
물론 양털이지만 그 양털을 누구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까?
에서 것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야기 한데로 속은 야곱인데 겉은 에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야곱의 의가 아닙니다.
야곱은 형의 것을 가지고 이것이 형입니다 말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서 이것이 예수님입니다 말하며 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롭게 살아놓은 의를 가지고 이것이 예수님 의입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내놓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삭과 같이 눈 감아 주십니다.
예수님 인줄 알고 눈감아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삭이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야곱이 에서입니다 라고 말할 때 그 아버지가 음성은 야곱인데 겉을 만져보니 에서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삭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을 때 자기가 야곱이라고 했다면 그는 아버지를 속이려 했다고 하면서 저주를 받고 쫓겨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에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데 사람들은 자기 것을 가지고 가려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내 것은 안 되고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영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을 가지고 가려고 하다가는 저주를 받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좋은 뜻이 아닙니다. 사기꾼, 간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할 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예 내가 야곱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몰라서 묻습니까? 알면서도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것은 그 이름의 뜻을 고백 받기를 원해서입니다. 예! 내 이름은 사기꾼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분명히 알지만 물으셨습니다. 그때 야곱은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승리자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사기꾼입니다 나면서부터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의 좋은 것을 다 가져오고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 수단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형편없는 그가 장자 권을 받았습니다.
장자 권은 그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었습니다.
장자는 3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1. 재산을 상속 받을 권한이 있습니다.
2. 그 가정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할 권한이 있습니다.
3. 그 자손에게서 예수님이 탄생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 도의 영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3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장자 권을 받는데 야곱은 장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먼저 나야 하는데 그는 나중에 낳아 장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 하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 가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의 사랑도 못 받았습니다. 조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야곱의 손에 씌어져 있던 양털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장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를 에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전혀 자격이 없는데 그 양털 때문에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는 전혀 자격이 없습니다. 천국에 갈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으로도 하늘에 갈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먼저 나서 장자도 못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도 못 받습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그 어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갈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유월절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덮어 쓰는 것입니다 그 양털을 감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자기 의를 버리고 형의 의를 옷 입어서 내가 형입니다 라고해서 축복 받은 것 같이 오늘 우리도 역시 자기의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의를 내 것으로 가져와야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21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라서 하나님 앞에 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죄 없는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데 우리가 안 보이고 그 위에 예수님의 양털이 가려져서 만져보니 예수님만 만져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소리는 들어보니까 나인 것입니다
이삭이 뭐라 했습니까? 음성은 야곱인데 만져 보니까 에서라서 축복 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의 음성은 죄인의 음성입니다 야곱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만져 보니까 예수님만 만져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나의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의를 옷 입어서 하늘에 갈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 가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야곱이 자기의 의로 장자의 명분을 얻으려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이것은 무엇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우리의 의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는 하늘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 예수님이 행하셨던 의를 내 것으로 가져 와야만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의인으로 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께 봉사하지 말고 충성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헌신을 해야 하는 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말 기쁨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 만드신 것은, 그 이유는 우리가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생애를 살았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습니다 선물을 여러 개로 나누어 선물 공세도 폈고 그래도 불안 하니까 가족을 여러 때로 나눠서 진행 시켰습니다. 자기 자신은 맨 뒤에 있을 정도로 꾀가 많았습니다. 최후에는 자기 자신만이라도 도망가려 했습니다. 이런 저런 수단을 다 썼지만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기 생명은 경각간에 달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노력으로 다 해 보았습니다
모든 방법을 다 해보고 안 되니까 그때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노력으로 천국가려고 내 의를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살아 보려고 내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율법적으로 꾀를 부리고 수단을 부려 보았습니다.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된다고 믿어지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엎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안 믿어지면 안 됩니다 안 믿어지면 계속 자기 꾀를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모형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천국 가는 것 때문에 어떻게 하면 천국 갈수 있을까? 별의 별 노력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꾀를 아무리 써 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을 때 예 제 이름은 사기꾼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승리자의 이름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승리자의 이름을 붙여 주니까 자기 꾀가 아니더라도 그때는 살아 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우리는 지금 야곱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그 다음에 내 의로는 못갑니다 하나님의 의를 주십시오. 예수님의 의로 밖에는 갈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깨달아 질 때 예수님의 의의 옷이 입혀진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자기가 그냥 가서는 도저히 장자의 명분을 못 받겠다고 생각했을 때 양털을 감은 것입니다 만약 그냥 가서 꾀를 부려 아버지 앞에서 혹시라도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면 감지 않고 그냥 아버지에게 가서 축복을 받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꾀를 부리려 합니다.
혹시 하는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조금 잘한 의 그것을 가지고 갈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점도 흠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 앞에 그것을 가지고 가면 죽을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이도 그렇게 천국에 갈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절대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기 때문에 양털을 감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의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 외에 나타난 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율법적으로 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내 의와 하나님의 의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것을 둘 다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의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내 의는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 열심을 다해 헌신하지만 사도바울과 같이 그것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자기 재물로 삼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8쪽)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생명을 얻는 보물은 바로 의입니다
지금 마태복음에서 어떤 보물을 택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쌓아 두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쌓아 두는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의를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보물이 왜 의가 되느냐는 것은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마태복음 6장33절을 보면 이것이 바로 의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마태복음 6장19절부터의 말씀의 결론이 바로 33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뿐이지 이 보물은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은 우리 사람이 땅입니다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쌓아 둔다는 말씀은 내 의로 보물을 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복음에 나오는 부자처럼 자기 몸에 쌓아 두고서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땅에 쌓아 두고 입고 있지만 결국에는 인생의 의는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해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빼앗긴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가 행한 의는 다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렇게 땅에 쌓아두는 사람은 결국에는 도적 사단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은 하늘에 쌓아 두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에 쌓아 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늘에 무엇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늘에 쌓아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늘에 누가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의에 대해서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의 하면 사람이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의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는데 그 의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의가 무엇이냐면 바로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올라가신 것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이 의를 모르면 의에 대해서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이 의를 모르는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지식이 없는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의는 깨닫지 못하면 결국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게 됩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것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의가 하늘에 올라가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에 올라가 계신 것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어야 합니까?
바로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인 자체가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1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보물이 바로 하늘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물이 하늘에 있는데 그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내 것으로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의가 내 것이 되었다면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의는 내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믿는 것이 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영의 말씀을 육의 생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면 도저히 안 됩니다.
로마서 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이 누구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올라가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의에 대하여라 함은 그 의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인데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보물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2: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보화라는 말씀입니다
그 보화는 바로 우리에게 주신 생명입니다
사실 생명보다 더 귀한 보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가 있어도 아니 이 세상을 다 가졌다 해도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네 보화가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기 때문에 그곳에 보화를 쌓아두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지식으로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행하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보면서 자기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태복음 6장의 말씀과 로마서 10장의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을 보면서 이상하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마치 헌금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으로 교인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하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 해도 그것을 하늘에 쌓아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는 것과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늘에 쌓아 둘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어린아이도 압니다.
그런데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 것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헌금을 하나님께 드렸어도 하늘에 쌓아 둘 수는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쌓아 둡니까? 택배로 보냅니까? 아니 온라인으로 하늘에 부칠 수 있습니까? 정말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그냥 편하게 보면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심이 있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다고 했는데 실제는 보니까 그 열심이 복음을 거절하는 열심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의 결론은 33절에 말씀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인가를 지금 19절부터 자세하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두 주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는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로 말씀을 하고 지금 마태복음 6장에서는 하나님과 재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재물이 되는 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시편 119:56절을 보겠습니다. (구 892쪽)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내가 지킨 모든 율법 적인 의는 내 소유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내 의가 재물이 되어서 내 보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지금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과 재물로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 율법적인 의도 좋고 믿음도 가지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을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내 의를 보화로 만들어 땅에 쌓을 것이냐 아니면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냐 둘 중의 하나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이 둘 다를 취하려고 하는 순간 그 영혼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잘못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거듭 말씀 드리지만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 하면서 자기 의를 재물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기 보다는 자기가 행한 의의 모습을 보고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죄와 싸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신 것을 내가 왜 싸워야 합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문제는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다는 말씀은 내가 지켜야 할 율법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이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땅에 쌓아두는 재물과 하늘에 쌓아두는 보화 이 두 가지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제가 의롭고 선하게 살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의 의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싸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싸움에 대해서 성경에 명확하게는 안 나와 있어도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8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에 대해서 말을 하고 난 이후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이냐면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의를, 자기의 모든 족보를 배설물로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버리면 안 됩니다
성도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 복음을 위해 정말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설물로 버리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배설물로 버려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 더러운 배설물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배설물과 같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써 거절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배설물과 같은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배설물을 가지고 하나님 받으십시오. 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쳐다보기도 싫고 냄새가 나는 배설물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영광을 받으라고 한다면 심한 모멸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썩어 버릴 것을 가지고 아니 썩은 냄새가 나는 내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영광 받으십시오. 하면서 자기들이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내의와 예수님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진다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마치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면 자랑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이 배설물이라고 안다면 어떻게 하든지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설물을 너무 귀하게 재물로 삼고 있습니다.
로마서 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그가 얼마나 복음을 위해 헌신을 했습니까? 그는 순교를 당할 때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다 갔습니다.
그런 그가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진심으로 선을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니까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한 모든 일들이 악이 된 것입니다. 왜 악이냐면 사도 바울은 복음만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나의 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 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 세 사람은 모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서 복음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려졌습니다. 복음을 전했지만 예수는 안 보이고 그들이 보인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행위조차 예수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제 의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나타나는 것을 사도 바울은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선을 행하기를 원했지만 그래서 복음을 전했는데 분명히 예수를 전했지만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의 눈에는 사도 바울의 수고가 너무도 대단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 까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이지만 우리는 해야 합니다. 악이라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 해야 하기 때문에 악이지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고 사도 바울은 배설물처럼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를 만나서 선을 행하려고 하니까 도리어 그것이 악으로 나타나니까 한탄을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32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면서 탄식을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의를, 아니 자기가 복음을 전하면서 행했던 모든 것 까지도 배설물과 같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사실 내가 행한 의를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지면 안 됩니다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이 볼 때는 재물과 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의 의가 바로 이삭이 보는 야곱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5: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우리 재물은 썩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의 의에 옷은 좀이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재물에 너무 연연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재물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더 많은 재물을 모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 문제입니다
내가 의롭게 사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재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할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지만 교회 안에 구원을 못 받는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도 귀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했습니다.
죄를 더 지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죄가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재물이 거지같이 빈곤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재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를 알아야 그것에 집착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한 선한 일이나 의로운 일을 천국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여러분의 상급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오해가 있어서 더욱 사람들은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기 위해서 재물을 모으려고 합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미 천국의 상급은 정해 졌습니다. 또한 그 상급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그런 상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상들이 재물을 모으게 만들고 있고 그것이 함정이 되고 그물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4쪽)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두 아들이 주님 나라가 임할 때 주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가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는지를 모르겠지만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으로 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내가 구원을 받은 것 이상 더 큰 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욕심이 스스로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상급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 세상에서 누가 잘해서 상을 받는 것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 자체가 은혜이고 거저 얻었는데 더 이상 무슨 상을 바랍니까? 그것은 인생의 탐욕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시편 84:10절을 보겠습니다. (구 865쪽)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천국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 같이 그런 계급이 있고 또 어떤 차별이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곳에는 가기만 하면 왕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샤머니즘적인 사상이 나로 하여금 재물을 모으게 하고 있고 그것이 나를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 것은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성도만이 천국에서 왕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원 그 이상의 상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것이 선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이 선한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사람의 지식으로는 그것이 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을 하셨습니까?
부자 청년이 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질문을 했을 때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것을 찾느냐 하나님 한 분 이외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이 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선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있지만 자기의 의를 세우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선을 행해도 그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려 합니다.
우리가 왜 선을 행할 수 없는 가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아 13:2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72쪽)
“구스 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흑인이 그 피부를 하얗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없는 것 같이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불가능 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하면 굉장히 기분 나빠합니다. 자기는 분명히 잘하고 있고 아주 못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취급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합니다.
너무도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것은 교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줄때 뭐라 맹세 합니까 다 지키겠다고 했지만 그 들은 실패 했습니다 죄를 안 져본 아담도 실패했는데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고요? 지금도 교회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를 힘써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완전해 질수 있는 것으로 착각 합니다
우리 가지고 있는 육신은 안 되고 새로운 생명 예수 믿어서 탄생된 우리 속에 새로운 생명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성화주의 사상이 만연해서 마치 자기 육체가 완전해 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서 조금 나아진 삶의 변화를 가지고 자신이 성공한 것처럼 너무도 쉽게 이야기 합니다 물론 조금 달라진 모습이 아름답죠. 하지만 조금이 아니라 완전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갈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죄인은 안 됩니다 성경에서 자기의 의로 하나님 앞에 간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로 가릴 때만이 가능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얗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체질을 아시기 때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야곱과 같이 형의 의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맏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의 것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뭐라 해야 합니까?
내가 예수입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좀 뻔뻔하지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살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를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받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열심은 하나님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의 옷을 입겠다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어준 의의 옷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보면 야곱은 꾀를 안 써도 가나안땅에 들어 갈수가 있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누운 땅을 주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야곱이 꾀를 쓴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이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의를 모두 받아드린 줄 믿습니다.
야곱은 약속을 기억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환도 뼈가 위골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승리자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 승리자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졌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안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5:4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대저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 입니다
여러분이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승리자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자기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의를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려면 점도 흠도 없어야 가능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인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믿는 것은 내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에 앉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깨끗하므로 천국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겉의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이미 옷 입은 사람은, 예복이 준비된 사람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아름다운 옷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마음껏 주님을 찬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푯대를 향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형의 것으로 축복을 받은 것 같이 우리도 맏형인 예수님의 의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약속을 확실히 받아들이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79쪽)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제사장 삼으신 것은 여러분들을 통해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의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의로 옷 입은 사람은 그 아름다운 덕을 자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의가 입혀진 사람은 그것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입히고 싶기 때문에 자랑을 하게 됩니다.
은혜 없이 의무감으로 지식적으로 알아 전도하는 것과 은혜 받은 자가, 그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가 전하는 말씀은 너무도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열심을 내더라도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고 그 아름다운 옷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내 의로 가져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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