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구약의 5대 제사에 대하여

4, 속제제에 대하여

윤주만목사 2018. 10. 6. 18:47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레위기 4:1-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또 그 속죄 제물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찌니라

 

속죄제

이스라엘의 5재 제사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제사제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제사제도의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것은 우리 영의 일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기 때문에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율법은 613가지가 있습니다. 그 율법을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이 굳이 그 율법을 다 외우고 우리 생활에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가 있습니다.

더구나 분명히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제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까지는 그래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속죄제와 속건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각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제사를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죄를 사해 주는 제사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죄를 지면 속죄제를 드리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죄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말씀을 드린 번제를 통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범하게 되면 번제를 드리게 함으로 해서 속죄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번제를 통해서 속죄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제사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각각의 제사입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에 같은 제사라고 한다면 굳이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게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전제를 통해서 속죄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속죄 제물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미입니다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속죄제도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것을 어떻게 드리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속죄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제사를 알아야 합니다.

속죄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속죄제를 안다고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솔직히 자료들을 보아도 이 속죄제에 대해서 바로 말을 하고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죄제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나 율법들을 풀어 가는데 있어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비슷하게라도 풀어 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성경과 다른 해석을 해 놓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치 어두움에서 빛을 찾아가는 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로들로 넘쳐나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속죄제만 조금 다릅니다.

먼저 이스라엘 자손 누구라도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번하였을 때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백성으로 죄악을 입게 했으면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온 회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족장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고 평민의 하나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 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할 수도 있고 이스라엘 전체가 금령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을 수도 있고 적장도 그럴 수 있고 일반 평민도 그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살인을 하는 죄를 점할 수 있습니까? 제사장도 사람이고 족장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살인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속죄제는 그런 십계명을 어긴 죄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까지 속죄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면 마치 그런 죄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일반 적인 죄를 짓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죄라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온 회중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율법이라고 하기에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속죄에게 대해서 더욱 지혜를 구함으로 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미를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제가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서만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제사를 정하셨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 이 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단지 죄가 아닙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살인하지 말라는 죄를 보았다면 그 문자를 보고 누군가 진짜 사람을 죽임으로 해서 속죄제를 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속죄제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죄 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이미 번제를 통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살인에 대한 율법이 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살인을 했다고 해서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가 사함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율법을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킹제임스번역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말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로 인하여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한 주의 명령을 거역하여 그 중에 어떤 일을 어겨 행하고

 

금령

어떠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도 이에 해당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인 율법은 이것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킹제임스번역입니다.

물론 한글개역성경의 번역이 바르다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는 킹제임스번역이 이 말씀에 대해서는 가장 이해하기 쉽게 번역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5가지 정도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말씀에 따라서는 그래도 이해가 쉽게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찾고 있습니다.

 

금령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속죄제라고 정해 놓으니까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이 속죄라는 뜻만을 생각을 하고 이 제사에 대해서 성경을 보고 있고 속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번역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지로 인하여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율법입니다 물론 어려운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쉽게 말씀을 드려서 십계명의 문자를 보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인을 하고 난 후에 내가 무지해서 살인을 했다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있습니까?

실수는 됩니다.

그러나 무지해서 살인을 하면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살인을 했다고 하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도적질 했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배가 고파서 남의 것을 도적질해서 먹었다는 것은 이해가 데도 남의 것을 그냥 먹어도 도적질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저 속죄라는 그 단어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전적인 뜻은 지난날의 과오를 씻는 것을 속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속죄를 한다면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속죄라는 단어를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죄를 속해 주는 것으로 그리고 죄를 사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이 얼마나 잘 번역이 되어 있는가를 늘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데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참고만 하면 됩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들이 있으면 다른 성경을 보거나 혹시 도움이 된다면 히브리어를 보고 헬라어를 보고 또 성경대백과사전을 보면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런 것이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성경을 푸는데 있어서 그런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속죄제입니다

속죄라는 단어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한 제사에 대해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 속죄제는 어떤 사람이 무지로 인하여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금령 중에 하나라도 범하면 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안식일에는 너희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에서 안식일에 나무 하는 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처리를 했는가 하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했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가 모르고 했다기보다는 알고 나무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온 회중으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만약에 속죄제가 된다면 이 사람이 속죄를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속죄제를 드릴 기회조차 주지도 않고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제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에 너희 처소에 불도 피우지 말라는 그 율법이 하나님의 금령이라면 이 사람을 돌로 쳐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그가 나무를 한 것은 예표를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안식일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를 하는 자를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은 사실 이 속죄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금령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십계명의 문자를 보고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하는 사람들이 이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제도 폐하여졌습니다.

제가 이 제사 제도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도 없고 레위인도 없고 제사장도 없기 때문에 설령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해도 속죄제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금령입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금하는 것과 계명을 합성한 말로 번역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령이라는 한 단어로 번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금하는 것과 계명을 합성을 한 것으로 번역이 되는 것으로 사전에서는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히브리어의 원어의 뜻보다는 한글개역성경에서 번역이 되고 있는 뜻을 알고 싶습니다.

 

사전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합니다. 어떠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명령을 금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킹제임스번역에서는 무지로 인하여 하는 행위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4-6절을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디모데전서 1:13절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금령입니다

하나님의 금령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금령이라고 하니까 그저 계명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을 보고 지금 레위기에서 말씀을 하는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 이제까지의 성경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속죄제를 보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이었을 때는 그 역시도 무지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무지했는가 하면 영의 일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율법에 대해서 정통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는가 하면 영의 일에 있어서 무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명령을 지키는데 있어서 금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을 문자적으로 보고 지키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입니다 그런데 그 영생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왜 지켰습니까?

그때는 알지 못하고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는데 그릇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합니다. 기름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회중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족장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또 평민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속죄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속죄라는 말씀만 보고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그저 속죄제를 드린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죄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알지 못했을 때는 그러니까 영의 일에 있어서 무지했을 때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레위기에서 속죄제를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초대 교회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복음을 들었던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그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교회 안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고 이제 이방의 교회는 완전한 율법주의에 빠져 하나님께서 지키지 말라고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죽고 나서 서기 100년이 지나면서 교회는 급속도로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금령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금령입니다

사도들이 처음 복음을 전하는 그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 금령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할 때는 우리 역시 율법의 의를 얻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열심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명령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르고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이 속죄제가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속죄제를 만들어서 우리가 비록 예전에는 모르고 무지해서 율법을 지켰을지라도 속죄를 받을 수 있게 속죄제를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어느 교회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교회는 종교재판을 열어서 그를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니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기 때문에 모두가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소자입니다

그는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은 아니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해도 복음을 듣지 않으면 그는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무지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되고 그것은 하나님의 금령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해서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게 되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속죄제도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금령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범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미 금령을 어긴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긴 자인가 하면 그릇 범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킹제임스번역에서는 무지해서 범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 속죄제를 정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먼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오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그가 복음을 깨닫게 되면 자기가 하나님의 금령을 그릇 범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속죄제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죄제는 영생에 대한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속죄라는 단어만 생각을 하면서 마치 도덕적인 죄를 지면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도덕적인 죄를 사해주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특히,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어서, 그 벌이 백성에게 돌아가게 되었을 경우에, 그 제사장이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소 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속죄제물로 주에게 바쳐야 한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은 정말 이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볼 때마다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이 없었다면 저는 복음을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너무 폄하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오역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입니다

1-2절의 말씀은 제가 킹제임스번역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래도 그 번역이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3절의 말씀은 그래도 새번역이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해가 쉽게 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여러 가지 번역된 성경을 올리고 있지만 그 기준은 늘 한글개역성경이고 가장 잘 번역이 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입니다

성경은 그냥 기록이 된 말씀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더 이상 해석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는 것만 해석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음이 전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우리를 제사장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제사장을 삼으셨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르는 제사장을 삼으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성전이 지어짐으로 해서 제사장을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성전에 지어진 성도는 제사장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사장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금령을 다 알고 있습니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복음이 다 계시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금령을 다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령을 그릇 범하면서 살았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제는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외식이고 율법의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무지할 때는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1-13절을 보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입니다

우리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를 제사장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악에 대한 재앙을 입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금령입니다

그 중에 하나를 제사장이 범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백성이 따라 하다가 그 백성이 죄를 짓게 되고 그것으로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이 속죄제도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전하러 다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와서 외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식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면책을 하고 바나바도 역시 이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마태복음 23장에서 7번을 말씀을 하면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죄얼을 입게 되고 그것을 따라하는 사람은 재앙이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성령이 오시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도들이지만 그들 역시 아직은 복음을 완전히 깨닫지를 못하니까 외식을 하고 말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이 완전히 역사를 하기 까지는 우리는 이렇게 외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입니다

마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성경을 보면 도깨비 방망이 하나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목사들이 신학을 공부를 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 역시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도 외식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들이 외식함으로 바나바까지 유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금령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외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바나바가 유혹을 당했고 만약에 그들에게 이 속죄제가 없었다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속죄제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4-17절을 보면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처음에는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례가 무엇인가 하면 지금 레위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여호와의 금령 중에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마도 세례가 여호와의 금령이라고 하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준 행위가 무엇인가 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한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리스보와 가이오가 나중에 다시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자기들이 받은 세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성령 세례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 역시도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함으로 해서 그리스보와 가이오가 재앙을 당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시 복음을 바로 듣지를 않고 세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의로 가졌다면 그들은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제죄입니다.

만약에 이 속죄제가 없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속죄제를 정하시고 비록 아직은 무지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몰라서 그릇 범죄를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을지라도 속죄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몰랐습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해서 영의 일을 모름으로 해서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난 후에는 어떻습니까? 사도들도 이제는 더 이상 외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0:26절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속죄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속죄제를 정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비록 성령을 받은 후에라도 무지해서 범죄를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을 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다 알고 난 후에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범죄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도입니다

절대로 여호와의 금령 중에 하나라도 그릇 범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여호와의 금령을 그릇 범하지 않습니다.

 

속죄제입니다

오늘은 의미만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의 말씀은 다시 속죄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죄제를 바로 알고 진리를 아는 성도가 되어서 다시 범죄를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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