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8:1-5절을 보면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음녀입니다
잠언 7장에서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8장에 와서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음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음녀가 누군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음녀를 모르면 그는 음녀에게 잡혀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음녀에 대해서는 잠언과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음녀가 신약에 와서 요한계시록에서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음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보고 있는 거의 모든 교회는 음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음녀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음녀를 세상에 진짜 여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언을 마치 세상의 지혜의 말씀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지혜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 성도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거의 다 음녀로 변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교회들이 음녀가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솔로몬을 통해서 이 잠언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풀어지지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7장에서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음녀에게 죽은 자가 허다합니다. 어느 정도로 허다한가를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 같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음녀에 의해서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리고 음녀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거의 모든 교회가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서 허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음녀에게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녀가 누구입니까?
세상의 상식으로는 두 남편을 섬기는 여자를 음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에 있어서 두 남편을 섬기는 자를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두 남편인가 하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두 남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두 남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남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의 남편과 예수 그리스도의 남편입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이 두 남편을 교회 안에서 섬기고 있다면 그는 음녀입니다 율법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는다고 하면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편지에서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역시 사람들은 음녀에게 속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 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는 사람도 음녀에게 속고 있습니다. 분명히 음녀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줘도 역시 음녀에게 속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음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와 같이 보이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강조를 하고 또 말씀을 드려도 역시 사람들은 이 음녀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집입니다
음녀의 집입니다. 음부의 길이고 사망의 방으로 내려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 편지를 통해서 이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역시 사람들은 음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 방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는 다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비유를 통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음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허다하게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음녀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호세아 시대에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음녀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허다한 사람들이 이 음녀에게 사망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부르고 있지 않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느냐?”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 높이지 아니하느냐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허다한 사람들이 음녀에게 죽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녀에게 사로 잡혀서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대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음녀에게 사망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의인법을 써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그리고 명철입니다 지혜가 어떻게 우리를 부르겠습니까? 그리고 명철이 어떻게 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허다한 무리가 음녀에게 사망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풀 수 있습니까?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지혜도 사람이라고 하고 명철도 사람이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들에게 잠언의 이 말씀을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의인법 입니까?
지혜와 명철을 의인화 시킨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들이 성령을 의인화 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명철은 의인화가 되도 성령은 하나님이라서 의인화가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 빤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입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럼 지혜는 무엇이고 명철은 무엇입니까?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지혜도 역시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소한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무엇인가 의문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의인화입니다.
왜 지혜와 명철을 의인화 시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허다한 사람들이 음녀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다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성령을 말씀을 하시면서 존칭을 쓰셨습니다. 왜 존칭을 썼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존칭을 썼다는 것으로 마치 성령이 하나님이나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 전체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성령을 성령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지혜님이라고 하고 명철님이라고 할 것입니까?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가 되는 줄을 모르고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불러서 소리를 높여서 음녀에게 가서 사망을 당하게 하지 않고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혜와 명철입니다
음녀에게 사망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가 오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구원을 생각하시면서 의인화를 했고 또 존칭을 써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망입니다.
그것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있으면 그리고 명철이 있으면 음녀에게 들어가서 사망을 당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언은 지혜와 명철을 의인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진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해서 지혜를 우리에게 얻으라고 하고 있고 명철이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을 보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욥기 28:28절을 보면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지혜입니다
그리고 명철입니다 지혜가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음녀가 누군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러나 음녀는 사망을 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름으로 해서 음녀의 사망에서 우리가 건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아도 모두가 사람의 이성을 따라 봄으로 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가 부르지 않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지혜는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목사들까지도 성경을 안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가 인터넷에 수십만 편이 있다 보니까 굳이 성경을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 보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음녀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봐도 역시 음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본다고 해서 음녀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만이 음녀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음녀에게 가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명철이 소리를 높여서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음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명철이 소리를 높임으로 해서 이 시대도 악에서 떠나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하기 때문에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름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어서 음녀에게서 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음녀가 행하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명철이 소리를 높임으로 해서 모든 악에서 떠나 구원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마을 어귀 성문 곁에서, 여러 출입문에서 외친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것과 같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불러야 잘 들립니까?
그가 길가에 높은 곳에서 부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가장 잘 드립니까? 길가에 높은 곳에서 부를 때 가장 잘 들립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부르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거리에 서며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 사거리입니다. 이 사거리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사거리에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있지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청하지만 역시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거리로 내보내어서 만나는 대로 그가 악한 자든지 선한 자든지 아무 사람이라도 혼인 잔치에 불러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혼인 잔치에 들어와서도 예복을 입기를 거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혜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듣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정말 모든 곳에서 지혜가 부르고 있고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음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어디 안 부르는 곳이 있습니까? 길가에 높은 곳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사거리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못 들었습니까?
아니 안 들렸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우리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역시 모두가 잠언의 말씀과 같이 음녀의 길로 가서 허다한 무리가 사망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불러도 사람들은 음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왜 음녀의 길로 가고 있는가 하면 그 길이 하나님의 길과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음녀의 길이 하나님의 길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음녀도 역시 오직 예수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 음녀도 오직 예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음녀의 길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율법에 빠져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데도 음녀가 오직 예수라고 한 마디를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에 있다고 해서 그 부름에 응답을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보이는 교회가 다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면 그 보이는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혜도 모르고 또 명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른다. 내가 모두에게 소리를 높인다.”
사람들아
사람들이 듣고 있으면 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음녀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듣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경계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음녀의 길로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상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 65:2절을 보면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종일 우리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잠언의 말씀과 같이 허다한 무리가 다 음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있고 사람들은 음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아닙니까?
성경이 여러분에게 거짓을 말씀하겠습니까?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100명 중에 10명이 죽으면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반만 죽어도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100명입니다
여기서 허다하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100명이 아니면 혹은 99명이 죽을 때 허다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역시 허다한 사람들이 죽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고 소리를 높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귀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렀는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들었습니까? 아니 이스라엘 중에서 100명이 들었습니까? 예레미야 시대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르면 뭐합니까?
이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어도 자기들은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어도 자기들은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혀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아니 다른 모든 사람은 그렇게 해도 자기들만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나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만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부른다.
모든 사람에게 소리를 높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에게 소리를 높이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소리를 높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도 자기들은 다 듣고 있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들이 다 음녀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솔로몬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음녀의 길로 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니 지혜를 구함으로 해서 내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어수룩한 사람들아, 너희는 명철을 배워라. 미련한 사람들아, 너희는 지혜를 배워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0명이 교회 안에 있으면 100명이 모두 어리석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느 일부의 사람에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계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허다한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경계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자기들은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리석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어서 지혜롭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도 안 믿고 성경도 안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이 이 성경을 기록하셨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성경도 안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면 굳이 그런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보는 방향부터가 바꾸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 7:7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에베소서 5:17-18절을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누가 어리석습니까?
당연히 지혜가 없는 자가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으로도 지혜가 없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그 어리석은 자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음녀의 길로 감으로 해서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지혜 없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모든 사람을 대표로 해서 한 지혜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지혜 없는 자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잠언 7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자가 사망의 방으로 내려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누가 어리석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허다한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허다한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어리석은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자는 술 취해서 방탕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뜻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어리석은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술에 취해서 방탕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녀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허다한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명철하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9절을 보면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마태복음 25:3절을 보면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미련한 자들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미련한 자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모르면 그는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비유를 모르고 그 의미를 모르면 그는 미련한 자가 되어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지혜입니다
공자, 맹자가 이 세상 지혜입니까? 어느 것이 세상 지혜입니까? 정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는데 있어 세상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 지혜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면서 공자, 맹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이 세상 지혜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세상 사람들도 성경을 보고 똑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성경을 가지고 말을 한다고 해도 이 세상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지고 있으나 기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미련합니다.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미련한 자인가 하면 성경을 보는데 이 세상 사람의 생각과 같이 보고 있는 사람이 미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이 시대도 수많은 음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미련함으로 해서 이 음녀를 교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음녀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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