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야고보서 강해

야고보서 강해 28강

윤주만목사 2017. 4. 4. 14:57

야고보서5: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영의 일과 육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재물은 썩었으며 옷은 좀이 먹어 있지만 그 재물과 옷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썩은 재물과 좀이 먹은 옷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과 복음과의 싸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자체가 이미 거짓이고 스스로 속고 있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종교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 종교가 썩는 재물과 좀이 먹는 옷을 취하라고 강하게 요구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이성을 따라 그것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썩은 재물입니다.

그리고 좀 먹은 옷입니다. 욥과 같이 사람도 역시 자기 의의 옷이 좀이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이 시대 교인들은 그 옷을 입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행위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썩지 않은 것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썩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역시 썩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오면 이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으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육체의 썩는 그것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하고 성도와 같이 살았다 해도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썩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하게끔 사람들의 이성을 자극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썩는 것과 썩지 않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기독교라는 종교는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 졌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20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모양은 내고 있지만 실제 그들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님과 아주 멀어졌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썩지 않은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 행위는 다 썩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선한 일이든 의로운 일이든 모두가 다 썩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 해도 그것 역시 썩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그 자체로 마치 영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반드시 자기 육체를 위해서 하는 일 썩는 그 일을 버려야 합니다. 그 일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하고 있고 전도를 하고 있고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썩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배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또 기도를 하고 연보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을 전혀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썩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금과 은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도 자기의 어떤 금과 은이 녹이 슬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더 열심을 내서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미 금과 은은 녹이 슬어서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데도 사람들은 자기의 금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15절을 보겠습니다. (신 43쪽)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부한 자들에게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재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과 그리고 구원의 옷을 입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생명이 있다고 믿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 금은 녹이 슬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무 쓸모없는 금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달란트는 생명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생명의 달란트를 맡기시고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복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남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성도는 당연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달란트를 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이 생명에 대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달란트입니다.

두 달란트입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입니다. 사실은 모두에게 한 달란트를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믿는 그것은 바로 생명의 달란트입니다. 이 달란트는 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재능대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주님이 주신 달란트의 배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 주시고 이것을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모두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습관적으로 이 세상의 책을 보듯이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아도 도무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왜 나왔습니까?

그 첫 번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모두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전도할 때 처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는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전도를 할 때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재능을 주시고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고아도 그리고 과부도 나그네도 이 세상 모든 죄인도 다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달란트의 비유는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자도 예수를 믿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행위는 할 수 없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천국에 올라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이 복음을 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너희 금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재물을 모았고 그리고 구원의 옷을 입은 것 같이 그러니까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25절을 보겠습니다. (44쪽)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생명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남길 수 있는 재능 또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이 종은 주님의 것을 돌려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있어야 할 달란트를 남기지 못 했습니다. 재능이 없다면 몰라도 충분히 그것을 남길 수 있는 재능이 있는데도 이 사람은 달란트를 남기지 못했고 그것을 야고보는 너희의 금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부자입니다. 그래서 5장 시작부터 들으라 부한 자들아 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서 정작 남겨야 하는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않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부한 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결국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금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녹이 슬었는가 하면 이 시대 부한 자들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물로 부해져 있는 사람들은 생명의 달란트가 녹이 슬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부한 자들은 이 생명이 녹이 슬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악한 행위가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내가 부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를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녹이 슬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왜 부자가 되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녹이 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있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지만 이 악한 종은 부자가 되어 재물을 모으느라 자기 금이 녹이 슬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생명에 녹이 슬었다는 것을 꿈에도 모릅니다. 그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 부자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계속해서 이 부자가 되는 것을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고 은사로 부자가 되고 성화로 부자가 되는 사람들에게 너희 금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부자와 같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이 녹이 슬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그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결국에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 그것을 보고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의 생명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28쪽)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야고보서의 핵심 주제이며 그것을 2장부터 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오직 예수라고 말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행함이 있는 믿음을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니까 마치 행위를 잘하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더욱 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 재물이 썩었고 그 옷이 좀이 먹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너희 은이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그에게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습니까? 재물이 썩고 옷이 좀이 먹어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이 야고보서를 거꾸로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금과 은이 녹이 슬어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므나를 남겨야 합니다.

달란트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므나의 비유는 다릅니다. 반드시 자기가 장사를 해서 남겨야 합니다. 달란트와 같이 모두에게 재능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달란트의 비유보다 더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므나의 비유입니다.

 

어렵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기 때문에 누구나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므나의 비유는 반드시 자기가 장사를 해서 남겨야 합니다. 남기지 못하면 그는 악한 자가 되고 그의 은은 녹이 슬어 쓸모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장에서 배웠습니다.

므나를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하던 그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던 사람이 그것을 부모님 때부터 그렇게 해 오던 사람이 야고보서를 알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배웠을 때 과연 그가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줄로 생각하면서 보고는 있지만 실제 교회 안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를 못하게 되면 그의 은이 녹이 습니다. 그의 은이 녹이 슬면 그의 금도 역시 녹이 슬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십일조 안 할 수 있습니까?

주일이라는 날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탄절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교회에서 법으로 만들어 놓은 성찬식을 안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안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설교를 본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율법적인 행위 종교적인 행위 은사적인 행위를 그대로 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은은 이미 녹이 슬어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도 맙니다.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라고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버리라고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는 행위를 버리라고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지식으로 다 알고 있다고 해도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다면 그의 금과 은은 녹이 슬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금과 은이 녹이 슬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재물로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부자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자기들의 재물이 왜 썩고 옷이 좀이 먹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128쪽)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 시대는 암담합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자기 므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행함이 있는 믿음을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을 행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한두 가지면 그래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행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열 가지만 되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단 한 가지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없는 그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는 열 므나가 되어도 그것이 다섯 므나가 되어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므나도 못 합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니 사람의 행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기 이성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버리지를 못 합니다. 사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미 100여년을 넘게 해 왔습니다. 절대 버리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도 못 버립니다.

추수감사절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미국의 명절입니다.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하면서 자기들이 순수한 종교적인 의미로 감사 절기를 지킨 그것이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그것을 교회에서 지키게 되었고 미국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우리나라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의 명절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미국의 명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어려서부터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또 그것에 대한 추억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오고 나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알고 나니까 그것은 지켜서는 안 되는 절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 지키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문제가 됩니까? 성탄절도 그렇고 송구영신예배도 그렇고 맥추감사절도 그렇고 교회 안에 수많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하나만 안 지키는 것도 그런데 그 많은 것을 안 지키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어려서부터 너무도 당연하게 지켜왔던 것들입니다.

 

못 합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에서 수도 없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고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녹이 슬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복음을 바로 전한 그때에도 이런 일이 있는데 종교로 2000년간 계속해서 타락을 한 지금의 교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율법 못 버립니다.

은사 나타내고 싶어 견디지를 못 합니다. 또 종교인으로 살아가기를 너무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재물이 되어서 금과 은을 녹슬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그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진리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야고보서5:3)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요, 불과 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

 

녹이 슬었습니다.

그 녹이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 행위들이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종교인이 되어서 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고발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7:16절을 보겠습니다. (신 416쪽)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그 살을 먹고 불로 사른다고 말씀합니다.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과 은이 녹슬어 있는 교회를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인하여 음행을 하는 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음녀라고 합니다. 교회라고도 하고 있고 그것이 타락을 한 것을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이요

그 여러분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바로 이렇게 음녀로 변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음녀에 속해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가 너무도 은혜가 넘치고 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 큰 힘이 되고 있고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릅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해서 그것이 너무도 옳기 때문에 도무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제가 틀립니까? 추수감사절을 이제까지 지켜온 교회가 틀립니까? 이것은 말하나 마나 제가 틀리다고 말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제가 더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제가 그것을 모르고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여러분들과 같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저 입에 바른 말만 하고 목사로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살을 먹습니다.

교회 전체가 잡혀 먹힌다는 말씀입니다. 큰 음녀입니다. 마지막 때의 큰 음녀입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를 다 합한 것입니다. 어느 일부의 교회가 타락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교회가 다 타락을 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살을 먹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벌거 벗깁니다.

그리고 그 살을 먹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교회의 모습입니다. 어느 특정 교회가 아니가 큰 음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극히 일부의 교회가 있겠지만 그 교회도 사실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으로 난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종교가 되어서 결국에는 이 큰 음녀가 되어서 살이 먹히게 됩니다,

 

너희 살을 먹으리라

그것이 바로 음녀입니다. 그것이 너희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입니다. 큰 음녀가 되어 있는 너희 살을 먹는다고 분명히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빠지면 이렇게 됩니다. 분명히 모든 교회가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판단을 하면서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는 음녀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그 교회들이 다 음녀라는 것을 모르고 재물을 쌓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음녀입니다.

그것은 교인들 전체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모임이 교회가 되듯이 교인들 모임도 역시 음녀가 됩니다. 내가 사람의 이성으로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에게도 수도 없이 음녀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음녀를 압니까?

솔직히 이 시대 교회와 음녀를 누가 분별할 수 있습니까? 아마 서로 자기들은 교회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음녀라고 할 것입니다 음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음녀는 재물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에 빠져 자기 금과 은이 녹이 슬어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이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누구입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물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음녀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재물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재물이 사람의 의라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 더 이상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를 볼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내 의입니다.

율법의 모든 행위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물을 쌓는 큰 음녀의 살을 먹어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은 이 재물로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고 이것이 재물이라고 하면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23:4-5절을 보겠습니다. (구 936쪽)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부자 되기를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기를 애쓰면서 이 재물에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눈에 너무 보기에 좋고 또 이성으로도 바르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 재물을 모으고 있고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허무 합니다.

그것은 헛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그가 예수를 안 믿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기를 애쓰지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를 버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재물입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또 절기를 지키고, 헌금을 하고 하는 등 내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내 신앙생활 전체가 재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을 잘 압니다.

그가 얼마나 의롭게 살았습니까? 그보다 더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욥이 한 모든 행위도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 뿐 아니라 우리가 정말 그와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사도 바울 역시도 그가 한 모든 행위가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뭐라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자기 흠 없는 재물을 배설물과 같이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날아가기 전에 사도 바울은 버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행위를 하고도 그것을 재물로 자기 마음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하늘에 가지고 간다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다 이 세상의 사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가 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한 모든 행위대로 자기들이 가는 그곳에서 더 좋은 것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들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육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영의 일을 모르고 아니 믿음이 없어 재물을 쌓고 있습니다. 그 재물이 나중에 어떻게 날아가는 줄을 모르고 그것을 쌓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쌓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살이 먹힐 줄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그 살이 반드시 먹힙니다. 재물은 반드시 날개를 달아서 날아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서도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재물을 자기 마음의 창고에 넘치도록 쌓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말세입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이후는 말세입니다. 이 말세에 이스라엘에 그랬던 것과 같이 음녀가 되어 재물을 쌓고 있습니다. 재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줘도 두려움을 모르고 아직까지도 재물을 쌓고 있습니다.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해도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으면 반드시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5: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들의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렇게 불쑥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말씀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부자들에게 너희가 재물을 쌓았다고 야고보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쌓아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해야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재물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도 잘 믿고 행위도 좋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늘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원을 못 받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고 자기가 얼마나 가난한 자인가를 깨닫고 주님의 부요하심을 자기 것으로 은혜로 가져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말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오직 예수라고 큰 소리를 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늘 부자가 되라 하고 있습니다.

 

왜 삼천포로 빠집니까?

오직 예수를 말씀을 했으면 계속해서 오직 예수만을 전해야 하는데 목사들이 얼마나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가 하면 교인들에게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아주 큰 소리로 침이 튈 정도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부자가 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을 같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과 사망을 같이 주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번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 +참=참입니다. 거짓 +거짓=거짓입니다. 그런데 참 +거짓=거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참 +거짓=참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참이 있으면 마치 거짓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예수라는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해도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거짓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부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일부러 거지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또한 억지로 부자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되는 순간에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마치 이 시대에 일을 했는데 급여를 안 주는 회사를 말하는 것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닙니다.

품군이라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성경을 볼 때마다 왜 이 말씀을 기록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마지막 때가 되면 품군들에게 삯을 주지 않은 회사가 많은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거의 목사들이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전혀 다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해온 말씀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한 그 말씀과 지금 이 말씀은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이지 전혀 다른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레위기19: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75쪽)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율법입니다.

모든 율법은 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율법에도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회사를 다니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때는 농경과 목축사회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일을 해서 하루의 일당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일정 기간을 정해서 일을 하고 그 삯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품꾼의 삯입니다.

그것을 밤새도록 두지 말고 아침이 되기까지 그것을 안 주는 것을 율법에 금하고 있습니다. 품꾼이 일을 했으면 반드시 그 삯을 아침이 되기까지 두지 말고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정한 그것을 야고보서에서 보니까 일꾼들이 일을 했는데 삯을 주지 않아서 그 삯이 소리를 지르고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께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침이 되었는데도 삯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품꾼이 일을 했는데 삯을 주지 않으니까 그 삯이 소리를 지르고 추수한 자들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께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기까지 삯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4:4-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삯이 무엇입니까?

은혜로 받는 것을 삯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은혜로 받는 것이 삯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 자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삯은 의롭다 함을 얻어 영생을 얻는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삯입니다.

그것은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부자가 되어서 자기가 일을 해서 그것으로 삯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니 이제는 교묘하게 말을 바꾸어서 자기가 은혜를 받았으니까 성도로서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삼모사 같은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을 하지 않아서 은혜로 삯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성경은 분명히 일을 하지 아니할 지라도 은혜로 삯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뒤집어서 너희가 은혜를 받았으니까 이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삯을 은혜로 받았으니까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럴듯합니까?

조삼모사 같은 이 이야기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일하는 자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은혜로 삯을 받았으니까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혹하는 말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속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가난한 자가 은혜로 삯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서 너희가 삯을 받았으니까 이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원숭이들과 같이 조삼모사에 속아 넘어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조삼모사는 그래도 원숭이들에게 같은 것을 주기라도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이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너무도 교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그렇게 속여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삯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속이고 있지만 일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아예 삯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원숭이들은 그래도 같은 양을 받습니다. 하지만 조삼모사에 속고 있는 교회 안에 어리석은 자들은 그것으로 사망이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삯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 모두가 얻을 수 있는 삯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을 해서 얻는 삯이 아니라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제 은혜로 삯을 받았으니까 너희가 성도가 되었으니까 일을 해야 한다고 미혹을 하고 있고 거기에 모두가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성적입니까?

내가 은혜로 삯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은혜에 답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입니다. 성경을 뒤집어 버리면 이렇게 이성적으로 너무 좋은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다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합니까?

이제는 자기들이 다 삯을 은혜로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교회가 아직 삯을 받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다 오직 예수를 이야기 하고 있고 이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그런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은혜에 진짜 감사해서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은혜입니까?

그리고 진심입니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부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크고 또 감사가 넘친다 해도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일을 하지 않아도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믿음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삯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한 자들이 되어서 삯을 은혜로 받아야 하는데 그 삯을 받지 못하니까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삯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삯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부자가 되어서 은혜로 그 삯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삯을 받아야 하는데 삯을 받는 사람이 없으니까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거저 주는 삯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그 삯을 아침이 되기까지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도 삯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죽하면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까? 정말 교회 안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적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삯이 소리를 지를 정도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아주 적습니다.

 

삯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추수한 품꾼에서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이 삯은 로마서에서 일을 하지 아니할 지라도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은혜로 일을 하지 아니할 지라도 주는 품꾼들에게 삯이 주어져야 하는데 품꾼들이 있지만 다 부자가 되어서 삯을 받지 못하니까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자가 되면 이런 결과가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도 부자가 되어서 그 삯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미혹에 빠져서 그 영혼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삯을 누가 가로챕니까?

사단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서 가로채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까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삯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삯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왜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하면 모두가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13:39절을 보겠습니다. (신 22쪽)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라고 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야고보서는 말세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은 부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말의 때도 말세가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누구나 말세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말세에 재물을 쌓은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추수하는 자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추수꾼을 천사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진짜 천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천사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입니다.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성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그리고 비유이다 보니까 사실 우리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힘이 듭니다. 이 모든 비유는 모두가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런 비유들을 바로 이해를 해야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웁니까?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이 재물을 쌓아서 삯을 줄 수 없자 추수한 품꾼들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삯을 받아야 하는데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는가 하면 삯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비유로 해서 삯을 주지 아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추수한 자의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은혜로 삯을 받아야 하는데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아서 삯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구원을 받는 사람이 없으면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습니까?

 

천사입니다.

말세에 추수꾼입니다, 그것은 성령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이렇게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적은가 하면 다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재물을 쌓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재물을 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그리스도편지 설교를 통해서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조를 하고 또 강조를 하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거꾸로 해석을 해서 오히려 말세에 재물을 쌓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세에 재물을 쌓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추수한 품꾼에게 삯을 주어야 하는데 삯을 주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삯이 소리를 지르고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려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습니까?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고 재물을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들은 믿음이라고 하고 있고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 스스로 속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26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추수한 일꾼이 울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는 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탄식을 합니다.

정말 우리 인생들의 지혜로는 이 복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서 재물을 쌓아 두다 보니까 이 복음을 믿는 성도가 사라지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이 복음을 듣다가도 자기들이 있던 세상으로 가는 그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추수한 자가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의 일을 이해를 하지 못하니까 정말 말할 수 없는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교회에만 나오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성을 잃고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까?

지혜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종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 사람은 소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다가는 천국의 축복의 아니라 지옥의 재앙을 당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성을 가진 그도 역시 이 영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부자들은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가 너무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재정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교회가 마치 불교가 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를 보면 불교입니다. 이 세상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부자가 되고 있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추수한 자가 울고 있습니다. 얼마나 추수할 것이 없으면 울겠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있으면 울지 않을 수 있는데 아예 없다 보니까 울고 있습니다. 삯을 은혜로 받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환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음녀고 짐승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선지가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칭찬을 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끼리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음껏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 마음에 재물을 쌓아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종교는 그렇게 사람들의 혼을 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이 옳다보니까 더 쉽게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서도 자기 영혼이 망하는 길을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로마서9:2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시대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벌써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씨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있는 우리입니다.

 

다수가 아닙니다.

씨를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부자가 되어서 추수하는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에 종말의 때가 임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하늘의 씨를 남겨 두셨습니다.

 

부자는 모릅니다.

하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은혜로 삯을 받은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하늘의 씨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추수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만약에 복음이 있는 성도가 구원을 받을 성도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오시고 이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직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실 때가 되면 추수하는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의 생명에 대해서 늘 깨어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받은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탁이기 때문에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는 이 시대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그 교회 안에 삯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단은 아예 이야기를 하고 실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보는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보는 이 시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이 없습니다.

 

왜 구원이 없습니까?

그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쌓고 있는 그 재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아주 적은 숫자지만 그래도 은혜로 삯을 받게 하시고 있어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성도는 정말 감사하면서 내게 주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야고보서5: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가 땅에서 사치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치를 할 수 있습니까? 가난한 자는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부자만이 사치할 수 있습니다. 정말 야고보는 사람이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작부터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는 부자가 될 수 없고 부자가 안 되는 성도는 사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절대 다수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수한 자가 도무지 추수할 수 없어서 울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야고보서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부자가 되기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지냈고 도살당할 날을 눈앞에 두고도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지냈다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부자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몰라서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들이 지금도 역시 이 세상에서 사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누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쾌락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그것으로 쾌락을 누렸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자가 추수를 하려고 하니까 아무도 없어서 울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현실인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몰라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8:3절을 보겠습니다. (신 417쪽)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무엇으로 사치합니까?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보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불가능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다 보니까 자기들이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음행의 포도주가 진노를 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치하고 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사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다 보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서 그것으로 사치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못 벗어납니다.

이 시대는 절대로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 합니다. 이미 2000년 동안 율법주의가 교회를 차지하고 있고 그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들이 스스로 정통이라고 하다 보니까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주의가 아닌 교회가 없습니다.

 

안식일 교회만 율법주의입니까?

천주교도 율법주의고 또 기독교라고 하는 정통의 교회도 역시 율법주의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 중에는 율법주의가 아닌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구원파를 영지주의라고 하는데 구원파도 역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있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남이 하면 율법이고 자기들이 하면 믿음입니다. 많은 율법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단 하나의 율법이 그리고 단 하나의 행위가 그리고 단 하나의 은사가 사람을 연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는 연락하는 자가 아닙니다.

정말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은 은혜를 말로는 하고 있지만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로만 은혜, 은혜해서는 안 되고 은혜를 받은 성도는 스스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설령 내가 부자가 된다 해도 그것을 버리고 있습니다.

 

만국이 무너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교회가 다 무너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교회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교회가 다 무너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6: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23쪽)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한 부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부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었는데 그 사람들을 대표로 해서 한 부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부자보다 더 연락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꽤나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을 입고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통회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추수하는 자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뿐 아니라 이 시대는 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복음을 직접 들은 사도들이 있어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연락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음부의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야고보는 너희가 도살의 날에 마음을 살지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와 같이 도살을 당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음부의 고통 중에 있어야 하는데도 마음을 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그렇게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치하게 만들고 있고 연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말이 와서 도살의 날이 왔는데도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서로 성도라고 칭찬을 하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주님의 날에 도살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7:4절을 보겠습니다. (구 954쪽)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지혜자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매자의 마음입니다. 이 두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부자가 개들이 율법주의자들이 거지 사라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매자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사치와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집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는 결국 도살의 날에 끌려가는 짐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우매자는 그대로 당하게 됩니다.

 

우매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지혜자는 아주 적습니다. 거의 다 우매자라고 보면 맞습니다. 지혜자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지혜자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또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으로 지혜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부자가 되어서 사치를 하고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속아서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도살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부한 자들에게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엇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말세의 날에 재물을 쌓아 두고서 그것도 모자라서 또 새로 창고를 짓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추수하는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려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추수하는 자가 울 정도로 곡식이 없는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을 보면서 서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을 보면 구원을 받는 성도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짐승이 되어 있는 교회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도살할 날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도살의 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고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얼마나 연락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이 먹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이렇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서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계속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었으면 주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이스라엘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면서도 자기들에게 당할 도살의 날을 모르고 행위로 마음을 살지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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