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전서1:26-3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의 본능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 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기 좋아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타락의 척도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을 가지고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타락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헛된 것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냐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교회에만 나오면 사람들은 자랑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회 안에서 간증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간증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간증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다. 자기가 간증을 할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그에게는 복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왜 자랑을 합니까?
그것은 자기들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싶어 하고 있고 또 그것을 간증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들이 진리를 아는데 있고 방해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역시 속물의 근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가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사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과 은사를 제외하고 나면 자랑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 율법주의와 은사주의에 빠져 있어서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것들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도시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이제는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로 교인을 하나라도 더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자랑을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자랑을 해야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진리는 사라졌습니다.
거대한 도시 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마케팅을 하느냐에 따라서 교회가 성장을 하기도 하고 또 정체를 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자랑하고 있고 또 자기들의 교회에서 하는 일을 자랑하고 있고 자기 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자기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로는 영혼 구원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하는 교회가 과연 그 안에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은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은 그런 교회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영의 눈을 떠서 그 안에 정말로 진리가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전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정통이라는 간판만 내 걸면 마치 모든 교회가 다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그 안개가 잠깐 보였다고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물론 안개가 있을 때는 그 안개도 멋있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없어지고 말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안개가 무엇을 자랑합니까?
뭐가 남아 있어야 자랑하고 말 것이 아닙니까? 그냥 없어지고 마는데 자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안개를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보였다가 없어지는 안개를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가 그 안에 없기 때문에 진리를 가지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그래도 좋게 말씀을 해서 안개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에서는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기에서는 벌레요 구더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더기가 자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렁이가 자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벌레가 자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기가 찰 것입니다 보는 것 자체부터가 안 좋은데 그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알고 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텐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구더기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구더기가 자랑을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발로 밟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구더기는 그래도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은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과 구더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너무도 교만해져 있습니다. 자기들이 짐승과 같다는 것을 모르고 이성을 가지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마치 하나님이 된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해 주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볼 때 정말 낮은 자세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성경 안에서 무엇을 내 이성적 지식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지적인 능력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교만해져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교육을 받다 보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왔을 정도로 지적인 수준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이 결국에는 율법주의를 만들고 은사주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쓰레기입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까? 아니 신학 박사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다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면서 가운데 박사 학위를 받은 표를 해서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쓰레기를 가지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학도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신학을 공부를 하고 거기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는 결국에는 이 세상 초등학문을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것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성경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보고 초등학문을 가르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텍스트입니다
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그것은 초등학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성경을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성경말씀이라고 해도 역시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가르치면 마치 하늘의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초등학문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 안에서 간증을 하고 자기들이 행한 것을 자랑하는 자체가 초등학문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성경을 보면서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린도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고린도교회 안에는 자기들을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바나바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라고 하면서 자기의 정통성을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사도 바울이 답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랑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성도들이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노예나 그리고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예가 무슨 공부를 했겠습니까?
지금부터 2000년 전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계층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여자들은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문이 좋지 않은 이상에는 일반 사람들은 여자들은 배우지도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권력도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기독교를 모두가 인정을 하는 시대니까 그렇지 그 당시만 해도 기독교는 박해의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권력이 있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 권력을 포기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누가 예수그리스도를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박해를 받았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군력을 가진 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고는 대통령도 못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와는 너무도 다른 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문벌이 좋은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중세 시대도 교회에 다니려면 문벌이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 시대도 그렇다는 것을 방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지혜 있는 자가 많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가 많이 있고 또 문벌이 좋은 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의 모양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 교회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교회 안에 기복을 바라고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 외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미혹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고 진리는 그런 다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수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영의 비밀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그물에 걸려든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너무 지혜가 넘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신학 박사 학위를 그렇게나 많이 받았는지 목사가 이제 신학 박사가 없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미련한 자입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있습니다.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미련한 자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택하셔서 제자로 삼으시고 그 당시 지혜 있다고 하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지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지혜 있는 자를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혜가 병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너무 똑똑한 사람은 그것을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자기 지혜를 자랑하는 것 같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지혜가 있는 자들은 결국 자기가 자기고 있는 이 세상의 지혜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마음이 다릅니다.
세상에 지혜 있는 자들은 자기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자기 지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고 있고 또 자기가 지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음의 비밀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지혜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지혜가 없었다면 아마도 쉽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지혜가 발목을 잡아서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지만 그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택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약한 것들을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약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약한 자들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아
지렁이가 얼마나 약합니까? 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지렁이는 너무도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에서를 버리시고 약한 야곱을 선택하셔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너무도 지혜 있는 자들이 많이 있고 또 강하지 않고는 교회에 나갈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럽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를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또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간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약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강한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강한 자가 자기에게 굽히는 것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간증을 하는데 정말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이 세상 육체의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약한데 육체적으로 강한 자를 이긴 것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인용해서 간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육체의 일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영의 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바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10:11절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 세상에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또 이 세상에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그 말씀은 이 세상에 지혜 있는 자와 강한 자들에게는 믿음을 주지 않고 이 세상에 미련한 자와 약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의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에게는 믿음을 안 주십니다. 실제 바리새인들에게는 믿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시는데 누구에게 주시는가 하면 이 세상에 미련한 자들에게 주시고 있고 또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으면 뭐합니까? 그리고 강하면 뭐 합니까?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다 주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 있고 또 이 세상에서 강한 자들은 믿음을 없어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강합니까?
내 원수는 나보다 강하다고 시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하기 때문에 율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강하기 때문에 근체의 십일조를 드리고 이레에 이틀을 금식을 했습니다. 사실 강하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강한 자들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강한 자들에게는 믿음을 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이성적 지식이 많은 자에게는 진리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오면 지혜가 있기를 바라고 있고 또 강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그래도 교회 안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직분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내 지혜를 너무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해도 성경에서 영의 비밀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강한 자들은 자기의 강한 것을 너무 의지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십일조도 내고 주일도 잘 지키고 또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척척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은혜로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구원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다고 하면 그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고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주일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선택을 하신다면 당연히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지혜 있고 강한 자들은 자기들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때문에 선택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이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 가 찾아보신 즉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고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분명의 정의를 내려 주시고 있습니다. 강한 자들이 왜 부끄러움을 당하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선택입니다
기분 나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다 미련합니다. 또 약합니다. 그리고 천합니다. 또한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고 구원을 받을 만한 의가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장에서 무엇을 말씀합니까?
내가 미련한 자입니다 내가 약한 자입니다 내가 천한 자입니다 내가 멸시를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구원을 받을 만한 의가 없는 거지같은 자입니다 그런 나를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는 사람은 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립니다.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나를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될 수 있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떤 죄인인가를 알아야 하고 내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가를 알아야 하고 내가 얼마나 천한 자인가를 알아야 하고 내가 얼마나 멸시를 받아야 하는 자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나는 어떻게 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또 폐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지혜가 많고 또 강해서 율법도 잘 지키고 있고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고 멸시도 안 당하고 있고 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폐하시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그런 자들을 택하셨습니까?
그 이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자랑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사망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아니 진심으로 복음을 위해서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아주 교묘하게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는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랑한다는 자체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지혜가 있다는 것이고 또 자기가 강하다는 것이고 또 자기가 귀하다는 것이고 자기가 멸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자기가 구원을 받을 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폐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 심령에 임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겁이 없이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 자랑하는 것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했을지라도 그것은 내 육체로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자랑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왜 자랑을 하면 안 됩니까?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왜 자랑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까?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의와 거룩함을 입어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가 의와 거룩함에 이르렀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때로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을 보면 전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는 부인을 하는 가증한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예수로부터 왔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고 또 거룩함을 입은 것 역시 예수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혜로워서도 아니고 율법을 잘 지켜서도 아니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해서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거저 주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이나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육체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자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어도 그것 역시 내 육체로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자랑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자랑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가를 자랑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자랑해야지 내 육체가 행한 일을 가지고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한 어떤 일도 자랑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정말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 신부는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남편에 대해서만 자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느냐 아니냐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초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자랑하는 가를 똑똑히 분별을 하는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속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를 받고 천하고 구원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 같지만 주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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