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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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윤주만목사 2016. 6. 14. 06:32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말라기3:13-18절을 보면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지만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지식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보는 마음부터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선은 내 인생의 지식은 다 버리고 그리고 성경을 순수하게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 내 인생의 지식이 들어가는 순간이 성경을 보는 눈은 소경이 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민족입니까?

이 시대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민족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돈을 거의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그들은 최고의 상이라 불리는 노벨상을 제일 많이 수상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그런 민족이지만 성경을 보는 눈은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의 그런 똑똑한 지적 능력으로 보다가 결국에는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똑똑합니다. 그것이 스스로의 올무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똑똑한 머리로 공부를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목사들이 이 세상의 학문과 같이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있습니다. 아니 박사 학위가 없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신학 박사라는 말이 있습니까? 신학을 공부해서 박사가 된다는 것을 말이 됩니까? 그것은 정말 성경을 모르는 아주 무식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또 누가 자기가 그렇게 성경을 연구를 했다고 자랑을 했습니까?

 

박사 학위

저 같으면 차라리 안 받습니다. 그것이 설령 목회를 하는데 있어 이 세상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박사가 자기 스스로를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박사가 되었는데 성경을 그 사람이 무엇을 연구를 하겠습니까? 박사가 되었는데 무슨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이미 세상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신학 박사가 되었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최고의 권위자인데 성령의 감동은 필요 없습니다.

 

교만입니다

성경은 연구를 해서 박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평생을 성경을 보면서도 늘 지혜를 구해야 하고 또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도 진리를 바로 전할까 말까 한데 이미 박사가 된 사람이 무슨 그런 마음이 있겠습니까?

 

신앙을 모릅니다.

아니 성경 자체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해서 그 당시에 사역을 하고 또 성경을 기록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물론 사도 바울이나 몇몇 제자들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 역시 자기들의 이성적 지적 수준을 결코 자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위해서 사모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을 볼 때 소경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지적인 능력으로는 성경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시고 난 후에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이 보혜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보혜사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세상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보혜사가 오지 않고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고 또 평생을 연구를 한다 해도 그는 그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6:63절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은 육입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문자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고 그것은 육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무익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래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육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또 자기들의 육이 잘 되는 것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말라기 시대입니다 그 시대는 정말로 암흑기와 같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육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포로로 있던 민족이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자기 나라를 건설을 하고 있었지만 주변 국가에 의해서 모든 내정 간섭을 받고 있었고 또 그들이 건축한 스룹바벨의 성전이 다 훼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온 세계를 다 점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더 이상 점령할 나라가 없자 한탄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술에 의해서 죽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나라가 4등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신하들 중에 4사람이 나름대로 자기 세력을 키워서 나라를 세웠던 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아니오커스 에피파네스입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전쟁을 하러 갔다가 회군을 하면서 예루살렘을 침략을 해서 스룹바벨 성전이 완전이 훼파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너무 미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평화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가운데 너무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가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밀고 들어와 성전을 다 훼파를 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이 말라기 선지자가 있기 전 백 몇 십 년 전에 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정말로 참담한 일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겨우 돌아와서 정말 어렵게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는데 그 성전이 완전히 믿었던 도끼에 의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성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도 큰 절망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기들을 완전히 버리시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말라기서를 보면 이스라엘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가를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육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자기들이 어렵게 지은 성전의 훼파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신 것과 같이 보였습니다.

 

육의 이스라엘입니다.

다윗왕의 영화는 다 사라지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 명맥조차 유지를 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제사장들의 생각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의 일을 안 보고 육으로 보여 지는 자기들의 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평화가 깨지고 나라가 어렵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은 상황이 그대로 재현이 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서 돌아오면 자기들에게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돌아왔지만 그래서 아주 미약한 민족이지만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위를 이은 왕이 오면 마치 알렉산더 대왕과 같이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스라엘은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다윗의 위를 이은 왕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그 예언을 믿고 있었고 그 왕이 와서 자기들을 육적으로 구원해 줘서 이 세상에 으뜸이 되는 나라가 되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겨우 성전을 건축을 했는데 그것마저도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완전히 훼파가 되고 거기에 태양을 섬기는 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돼지를 제물로 드리게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돼지고기를 안 먹습니다. 안 먹는 것 정도가 아니라 냄새를 맡는 것도 싫어하고 돼지고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육적인 생각인가를 모르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육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그렇게 육을 보고 있고 육이 잘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있고 육이 안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고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육이 잘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고 육이 잘 못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것으로 지금 이 시대 교인들도 이스라엘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그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말라기를 보면서도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말라기를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리기는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영의 일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고 난 후에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세례 요한이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영의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리고 난 후에 실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동문서답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괴리감이 얼마나 큰가를 말라기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완악한 말로 대적을 하였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을 했습니까? 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악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절대로 완악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우리가 어떤 일로 완악해 졌느냐고 묻고 은혜를 구해야 하는데 우리가 언제 완악해서 주를 대적했나이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3:15절을 보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완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완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전했지만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완악한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또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성경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려 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는 너무 잘 보고 있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를 못 하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성경을 보고는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소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육의 일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아무리 많이 보내도 그들은 역시 선지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또 성경을 보면서도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완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얼마나 완악했는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말라기 선지자가 완악하다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말을 합니까?

바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을 선택한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다윗의 위를 이을 왕을 보내 주셔서 구원을 해 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들은 점점 이웃 나라에 의해 작아져만 가고 있으니까 그것을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적으로 잘 되기를 바라고 하는 말이 완악한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영의 일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태평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말라기서의 이스라엘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완악하여 나를 대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를 대적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완악을 해서 대적을 했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완악하다는 것 자체도 모릅니다. 역시 이 시대도 완악하면서도 자기들이 왜 완악한가를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완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전혀 완악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않았다고 하는 이유를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제가 이스라엘은 현실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시대 상황을 모르면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을 할 때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를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그런 자기들의 처지를 비관을 하면서 이스라엘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의 명령을 지키고, 만군의 주 앞에서 그의 명령을 지키며 죄를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헛되다고 말 합니다.

왜 헛되다고 생각을 합니까? 사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와서 스룹바벨 성전을 짓고 할 때 그들이 얼마나 비통한 마음으로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이방에 포로가 되어 가지 않기 위해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까?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 못 믿었고 또 율법을 안 지키고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짓고 정말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율법을 잘 지키면서 다시는 이방에 침략을 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자기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잘 섬겼는데 결과는 스룹바벨 성전이 훼파가 되고 또 이방에 의해서 계속해서 침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우리가 아무리 잘 섬겨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지켜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 합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이 명령을 지켰습니까?

그들은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명령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큰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고 있지 않느냐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명령을 지켰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지켜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다 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성장을 하고 있고 고난을 안 받고 있으니까 문제가 안 되지 만약에 고난과 환란이 오고 있다면 결국에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 합니다

 

이스라엘은 명령을 안 지켰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자기들이 어떻게 죄를 사함을 받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이 죄를 사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0:43절을 보면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죄 사함을 받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죄를 지면 그것을 뉘우치고 있고 또 슬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죄 사함의 방법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지면 그것을 고백을 하고 있고 또 그 죄를 인하여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니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죄 사함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가신 지금도 이스라엘과 같이 죄 사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려 하지 않고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고백을 하면서 뉘우치고 슬피 울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악합니다.

물론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통해서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가를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너무 똑똑한 그 지적인 능력으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보다가 자기들이 완악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지키지 않고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있는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을 하는 완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똑같이 이스라엘과 같이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완악한 줄을 모르고 있고 또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육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셔서 구원을 해 주시고자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도 않고 죄 사함도 받지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대적을 했느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 자체가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이고 명령을 지키지 않고 있는 일이며 또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러면서 말 합니다

교만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말 합니다. 악한 일을 하는 자가 더 세상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 합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재앙을 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누가 교만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가장 교만한 것입니다

 

육을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잘 되는 나라를 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교만합니까?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악을 행하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는 누가 교만합니까?

누가 악을 행하고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육적인 모든 행위가 그러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겸손의 모양은 내고 있었지만 능력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자기들의 육체가 잘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명령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아주 잘 지키고 있습니다. 또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송구영신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종이에 적어서 그날 태우는 그런 미신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에 빠져 있습니다.

영의 일애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육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잘 믿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고 명령도 지키지도 않았고 죄 사함도 받지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것을 다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런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아무리 그렇게 말하고 있을지라도 나를 공경하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다수는 그렇게 이야길 할지라도 나를 경외하고 또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외하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행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대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성경의 문자를 통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 죄를 고백을 하면서 뉘우치고 있고 또 매일 죄를 회개 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죄 사함이 어떻게 없어지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 믿으니까 이스라엘과 똑같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뉘우친다고 하면서 고백을 하고 있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기념 책에 기록이 될 수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는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이 아닌가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인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왜 하나님을 대적을 하고도 모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을 똑같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완악해서 대적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대적을 하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말로는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절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인데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셨습니다.

이제 반드시 또 다시 오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했던 사람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 같이 아끼면서 그들을 아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의 일과 육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육의 일과 영의 일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지금은 모릅니다.

악인이 자기가 악을 행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완악하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얼마나 완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한번 이렇게 악에 빠지면 죽을 때 까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완악한 자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완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을 하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을 했느냐고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대화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런 대화가 없습니다. 그냥 완악한 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을 하면서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 압니까?

자기가 악을 행했다는 것을 언제 압니까?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그 이름을 존중하지 않고 경외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마지막 심판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내가 회개를 하고 내가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길 때는 지금입니다 이때를 놓치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오셔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할 때는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가 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기념 책에 기록이 되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