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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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윤주만목사 2015. 5. 14. 22:38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마태복음23:23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이 이것을 말하기도 하고 저것을 말하기도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본문 말씀이 그런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부모가 화가 나서 집을 나가라고 했다고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 말을 듣고 나서 집을 나간다면 그 아들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화가 나서 그렇게 말을 했을지라도 그 진심은 분명히 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을 나가버린다면 부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자녀입니다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화가 나서 그 자녀를 혼을 내 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부모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그런 자녀를 본다면 더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자녀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안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감정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문자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어떤 말씀을 그 문장만 보고 해석을 하게 되면 전혀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해석이 될 수 있고 그것은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일이 되어 그 영혼을 사망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복음에 반하는 말씀이 있다면 왜 이 말씀을 이렇게 하셨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묘합니다.

아니 그 생각이 악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네 형제가 와서 꾸어 달라 하면 주라 하셨는데 그런 것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 본문 말씀을 보면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찌니라 하는 이 말씀에는 목숨을 걸고 이 둘을 다 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 합니다

초대 교회에 사람들이 순교를 하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사도들은 그들에게 천국에 소망을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믿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것과는 다르게 200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주님은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 말씀을 보면서 속히 오리라고 한 말씀이 아직까지 오시지 않았다고 해서 성경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면 스스로 멸망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초대 교회에 성도들을 속이기 위해서 그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 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속히 오시는 것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성경은 물론 문자적으로 먼저 해석이 되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서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그 해석을 영적으로 해야 하며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뜻을 살펴 헤아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성경 해석이 마치 엿장수 마음처럼 되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가 어떤 때는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마치 구원에서 탈락이 될 것처럼 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점잔은 말씀으로 화 있을진저 입니다.

사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말다툼이라면 아마 쌍욕이 오갔을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적 차이가 있는 다툼을 보게 되면 목사들이라도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심하게 꾸짖는 말씀입니다 처음에 말씀을 드렸듯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심하게 꾸짖어서 집을 나가라고 하는 말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려 하다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고 그것이 자기에게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출애굽기보면서 율법을 어떻게 주셨는가를 바로 보고 분별을 해야 합니다.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말씀들을 하신 이유를 모르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폐하신 율법을 바리새인들에게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찌니라고 말씀을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모든 율법은 폐하여 졌습니다.

만약 어느 한 가지라도 아직도 율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가장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 율법이 폐하여 지면 사람들이 방종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율법주의에 세뇌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목사가 살인을 하라고 하면 합니까? 삯꾼 목사가 살인을 하게끔 유도를 해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나쁘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도 알고 있지만 또한 이미 이 세상에서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를 것이라 하면서 자꾸 율법을 살립니다.

 

율법은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로마서에서 한 남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죽어 있는 사람을 발가락만 살릴 수 없습니다. 또한 눈동자만 살려서 세상을 보게 할 수 없습니다. 폐하였다는 것은 죽였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사람을 입만 살려서 음식을 먹게 할 수 없는데도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도 아닌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가락을 살리고 손가락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죽었으면 다 죽어야 하는데 어느 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살려서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율법에 있는 도덕적인 법은 이 세상 법에 다 있습니다.

 

살인을 하면 도적질을 하면 교회가 돌로 쳐 죽이지를 않아도 이 세상 법이 그들을 강제해서 구속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살인을 하면 돌로 쳐 죽였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법이 있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율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의 법만으로도 선하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이 세상 제도와 법에 순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있는 도덕적인 법은 이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 세상 법에 다 있기 때문에 세상 법만으로도 충분히 성도는 성하고 의롭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죽인 율법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바로 분별하고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율법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에 십일조가 나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율법을 누가 지키라고 했습니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율법을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을 하셨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19:5-7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오면서 율법을 받기 까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다 경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반포하시고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너희에게 반포한 언약 율법을 잘 지키면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말씀하니까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감격을 한 것입니다

 

열국 중에서 내 백성이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국을 이스라엘에게 굴복을 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없던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열국 중에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다고 하니까 이스라엘이 뭐라 대답을 했나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로마서 3:20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이 그 율법을 보면서 죄를 깨닫고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시기를 원 하셨습니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법에 이를 수 없는 죄인이구나! 이런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주시고 제사장을 삼아 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택해 주셨구나 하고 그 은혜를 깨닫기를 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생각은 달랐습니다.

 

출애굽기 19:8절을 보면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 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이스라엘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열국 중에서 내 백성이 되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에 율법을 주신 의미를 깨닫지도 못하고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미를 모르고 자기들이 다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습니다. 이때 어떻게 했어야 바른 것입니까?

하나님! 우리가 그 율법을 어떻게 다 지키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요? 그렇게 대답을 했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제사장 나라 삼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 주신다는 그 말을 듣고 지키지도 못할 것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언약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스라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대답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럼 다 지키라고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분이 그 체질을 아시는 분이 왜 그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것을 아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율법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언약을 했습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율법에 있는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는 잘 드리는 것을 보시고 이것을 행하라고 하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 언약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언약한 그것을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실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입니다

율법의 언약이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아직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여기서 이것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무시한 것이 됩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의와 인과 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온 율법을 다 지키다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어서 율법에 따라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율법으로는 모든 육체는 사망을 당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영생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를 드릴 정도로 율법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렇게 지킨 이유는 자기들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율법을 지키는 것 때문에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율법도 잘 지키고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가 하면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되면 의를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의를 버리면 사랑도 잊게 되고 또한 믿음 또한 버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양쪽을 다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취하면 하나는 가려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와 인과 신이 율법보다 더 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의와 인과 신 그것만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했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과 한 언약도 행하고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의와 인과 신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한 것이지 우리 이방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쉽게 말씀을 드리면 내 이웃이 보증을 섰는데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왜 책임을 집니까?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는 남이 보증을 선 것을 내가 행하겠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의 보증을 기꺼이 자기가 행하겠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제까지 이렇게 행했으니까 무조건 행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고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맹목적인 믿음과 이성을 가진 믿음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게 보인다 해도 내가 하는 그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영적 범죄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말씀 하십니다

하루살이는 날라 다니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잘 이해가 안 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물 대신 포도주를 많이 먹습니다. 그 당시에는 포도주를 가죽 부대에다 넣고 먹습니다. 가죽 부대를 그냥 두면 하루살이가 들어와서 빠지는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이것을 채에다 받혀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먹었습니다.

 

그냥 먹으면 하루살이를 먹을까 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루살이도 부정한 것이고 약대도 부정한 것입니다 성경에 굽이 안 갈라진 약대를 먹지 말라고 말씀 합니다 약대도 부정한 것이고 하루살이도 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먹었습니다. 바리세인들이 실제 하는 그 행위를 비유해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 말씀 하신 것입니다 작은 것은 걸러내고 큰 것은 먹는 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지키는 것은 육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의를 버리는 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 같이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켰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아주 작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는 최선을 다 했지만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 것에는 약대를 삼키는 것 같이 그냥 삼켜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하루살이와 같이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런 작은 것에 집착을 하게 되면 정말 필요한 자기 영혼을 살릴 수 있는 큰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약대를 그냥 삼키는 것 같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루살이를 걸러 내려면 얼마나 잔 일이 많습니까?

사실 포도주에 빠진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은 아주 잔일이면서도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일을 기꺼이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큰 것은 약대를 꿀꺽 삼키는 것 같이 무시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의를 몰랐기 때문에 하루살이같이 작은 율법을 지키느라 최선을 다 했습니다.

 

빌립보서3:9절을 보면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의인이 되었는데 의를 가졌는데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자기가 잘해서 의를 얻은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고 말씀 합니다

 

내가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도 자기가 율법으로는 의로워 질 수 없어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고 말씀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작은 하루살이와 같은 율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작은 것에 집착을 하다 보니까 정작 필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아주 작은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를 거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 둘을 다 행하고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자기가 어떤 의를 가졌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의 의도 가지려 하고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도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음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집착을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복음이 내가 내 이웃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내 행위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선하게 보는 것은 세상의 법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면 무엇 할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선하고 의롭지 모하다면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율법을 잘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613가지의 율법을 모릅니다.

 

그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세상의 법의 잣대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폐하신 율법을 행하는 것은 성도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의와 인과 신을 내 안에 있도록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 조상이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방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로 아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의와 인과 신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