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사도신경에 대하여

사도신경

윤주만목사 2024. 6. 2. 08:40

먼저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천주교에는 아직까지도 기도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것 중에 하나라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제목을 사도신경이라고 해서 마치 사도들이 작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이 작성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경 외에 것은 우리는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이 사도신경의 타당성을 주장하게 되면 위경과 외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정경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 외에 것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오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경 외에 것이 마치 성경과 같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이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작성이 되었다 해도 이것은 성경 외에 것임으로 우리가 참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외웁니다.

마치 주문과 같이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는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을 주문과 같이 외우는 행위가 종교적이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배 때마다 외우는 것은 율법의 행위와 외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이 말씀에 위배가 됩니다.

아무리 그것이 사도들이 작성을 한 신앙고백이라고 해도 (저는 절대로 그렇게 믿지를 않습니다) 성경 외에 것을 더하고 있다면 그것을 예배 때마다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다면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또 다른 것을 증거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재앙을 받을 행위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입니다

또 번역이 서로 다릅니다.

천주교에서 번역해서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과 성공회에서 번역하고 있는 사도신경과 기독교에서 번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사도신경을 마음대로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2.내가 믿사오며,

3.그 외아들

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5.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6.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7.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8.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9.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10.하늘에 오르사,

11.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12.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13.성령을 믿사오며,

14.거룩한 공회와,

15.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16.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7.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18.아멘.

 

사도신경의 전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을 보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이 사도신경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사도들이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1.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2.내가 믿사오며,

 

천지를 만드신 것은 믿습니다. (동의를 합니다)

 

유다서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내가 믿습니까?

내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종교는 그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은 내가 믿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따라 믿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입니다

누가 믿는가에 대한 기초가 유다서의 말씀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해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따라 우리가 믿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믿음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그 외아들

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외아들

성경은 외아들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외아들과 독생자는 다릅니다.

외아들은 아들이 더 이상 없다는 말이고 독생자는 홀로 있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독생자는 맞지만 외아들은 틀립니다.

 

아들은 한분입니다

어느 아들이 한분인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한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홀로 ()독자를 써서 독생자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아들이 없다는 의미에서 홀로 ()독자를 쓰고 있습니다.

말장난과 같이 생각이 될지 몰라도 외아들이라는 말과 독생자라는 말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는 의미에서 홀로 있는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구속을 이루실 수 없다는 의미에서 독생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외아들로 한다는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사실 이런 말들이 너무 맹목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신앙고백이라고 하기 보다는 종교의 맹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6.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의를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누가복음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동정녀

물론 의미는 같습니다.

동정녀의 사전적인 뜻은 남자와 성적관계를 한 번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사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동정녀라는 의미는 같을 수 있으나 성경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에게 나시고

사실 나시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못 합니다.

성경은 잉태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인간적으로 격하시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이 나시고 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8.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9.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로마서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면 안 됩니다.

분명히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에 대해서는 정말 바른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세뇌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기초가 되는 말씀이 베드로전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성경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맞지만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10.하늘에 오르사,

11.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12.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늘에 오르사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역시 막연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맞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대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대제사장으로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골로새서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신앙고백입니다.

무엇을 위한 신앙고백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에 대해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고백은 한 마디로 하면 반쪽짜리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이 나와야 하고 믿는다고 해야 하는데 사도신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주님은 분명히 심판을 하시는 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심판만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들을 부활하게 해서 같이 살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성령을 믿사오며,

14.거룩한 공회와,

15.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령을 믿사오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진리를 믿는다는 것인지 성령이라는 주체를 믿는다는 것인지 모르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면 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거룩한 공회와

이것은 번역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서로 번역하는 것이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도 없는 그 공회가 거룩한지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아무리 성도라 해도 그 모임이 거룩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체에 대해서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우리 육체는 어떤 모양으로도 거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것에 대한 주체가 명확하지도 않은데 주문과 같이 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것도 너무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천주교의 샤머니즘적인 사고가 많이 들어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16.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7.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18.아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요한일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 말씀입니다

근거로 해서 사도신경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사도신경의 마지막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완전히 틀립니다.

사도신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죄와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죄는 본질적으로 다른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에서 말하고 있는 죄는 일반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죄는 사실 요한일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에는 이 사도신경이 요한일서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록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죄는 사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우리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럼으로 죄는 다 사해졌습니다. 사해 주시는 것으로 표현이 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죄를 사해주시는 것으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너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사도가 기록했다면 어떤 죄입니까?

이 죄는 율법을 지키는 그러니까 외식을 하고 행위를 하는 것을 이제 깨닫고 나서 고백을 하면 죄를 사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신경은 그런 의미도 전혀 모르고 죄가 무슨 죄인지도 모르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유적인 죄

도덕적으로 짓는 죄입니다.

그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고백을 하든지 안 하든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 다 사해 졌습니다.

 

영적인 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입니다.

이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이 죄는 사망을 당하는 죄입니다.

그러나 이 죄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요한일서는 이 죄를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그것이 사망을 당하는 죄라는 것을 알고 그 죄를 사해 달라고 고백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죄입니다.

무슨 죄인가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그들은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면서 이 사도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의 기록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베드로전서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때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는가 하면 영으로 살리심을 받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한 마디로 성경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나오고 있는 말입니다.

런데 이 말을 마치 사도들이 신앙고백을 한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절대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육체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썩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썩지 않는다고 누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입니다

그것은 신체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이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썩을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썩을 것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몸이 부활을 해서 다시 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들이 이 신앙고백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은 절대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는 것을 신앙고백을 했다면 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강 적어 봤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이 아닙니다.

마치 성경과 같이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도 아니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을 예배 때마다 주문과 같이 외우는 외식을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저는 말씀드립니다.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을 논한다는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을 논할 시간이 있으면 성경에서 한 가지라도 더 묵상을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수고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성경 외에 것을 가지고 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입니다

로마서1장에서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로마서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알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지 이유입니다.

그 외에 것은 다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을 알아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