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4: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2쪽)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 종교에서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대로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구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에서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고 사도 요한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고 있고 생명을 얻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가장 중요한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본을 보여 주시고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이 시대는 천국에 대해서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알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사람들의 사상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는데 그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셨고 유대인들에 의해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창조주의 생명을 우리 피조물이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인생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이제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기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전해 주신 복된 소식을 제자들이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저녁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정말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을 주님께서는 직접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유월절 전 저녁을 드시면서 다른 복음에서는 떡을 떼어 주시고 또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언약의 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죄의 종이 되어 있는 그들이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주님께서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성찬식이라고 하고 있고 세족이라고 하면서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아니 신학교에서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배운 것으로 지식으로 쌓아 아는 것으로 종교인으로 안수를 받고 종교의 교리에 따라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런 그들에 의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고 나서 가룟 유다에게 조각을 찍어 주고 네 할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가룟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가는 것을 보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도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아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창조를 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생명을 얻는 자들이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도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시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그는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생명을 얻게 하게 한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서 얻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오신 목적이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서 믿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말씀과 같이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이 생명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이 생명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또 강조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저 자기들의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러니까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어두움에 거해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더 이상의 언어로 말씀을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과 같은 단어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는 우리 성도는 이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생각을 하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서 이제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80쪽)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가 하나님께 로서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니까 사도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내가 어찌하여 주를 따를 수 없다고 하느냐고 말을 하면서 주를 위하여 내 목숨도 버리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실제 이제까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표적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자들로서는 우리가 누가복음에서 보면 알겠지만 유월절을 저녁을 먹을 때 누가 더 큰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맞으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외치면서 주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다고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왕으로 맞는다는 의미로 다른 복음에서는 자기 겉옷을 주님이 오시는 길에 깔아 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사실 그렇게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이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서 누가 더 큰 자리를 앉을 것인가를 놓고 다툼이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제자들은 비록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에게는 반대를 받아왔었지만 그래도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임금 그러니까 다윗의 위를 이을 임금으로 알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충격일 수 있습니다
사실 삼년 반 동안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부르시니까 따라 다녔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무슨 말씀인줄은 알지 못하지만 권세가 있는 말씀임에는 분명하고 또 수많은 표적들을 볼 때 충분히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통치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땅이 꺼지는 것과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비록 주님께서 제자를 삼아 자기들이 부르심에 따라 이제까지 왔지만 인간적인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요한복음에서는 그런 말씀이 없지만 다른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고 종교 사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표적을 나타내시고 사람들은 대 놓고는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다윗의 위를 이을 왕이라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제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빌립과 나다나엘 같은 사람은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들 역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자 하는 영의 일을 밝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제 제자들을 보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부활에 대해서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로서는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근심하다
이 헬라어의 단어에 대해서는 요한복음5장에서 그리고 11장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단어의 헬라어의 뜻이 많이 있습니다. 함께 뒤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 등 여러 가지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한번 언급을 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이제까지 주님께서 계심으로 해서 자기들이 그래도 든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태복음에서 간질 걸린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 앞에 와서 우리 아이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와서 고쳐 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병을 고치지 못한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자기들이 간질 걸린 어린 아이를 고치려고 했는데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주님은 만능에 가깝습니다. 실제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못하실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런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실 제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되겠습니까? 아니 얼마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를 지내고 나서 제자들은 이제 예전에 하던 일을 하러 가야겠다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인간적으로 엄청나게 근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불안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안 계십니다.
자기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삼년 반 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표적을 보고 했지만 정작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다는 말씀은 마치 땅이 꺼지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아직까지 육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로서는 당연히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면 근심을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과 삼년 반 동안 동고동락을 한 제자들이지만 역시 그 육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근심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당연히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심은 육적인 근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다고 하니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근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을 하면서 이 일로 너희는 마음에 인간적으로 근심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번역이 되어 있고 베드로전서에서는 소동치 말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사도 베드로는 인간적으로 근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그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의를 위하여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꾸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철학에 따라 두려워말고 소동치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고 난 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졌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제자들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면 사도 베드로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당연히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인생들은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않은 제자들에게 이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을 하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저는 보면 볼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게 하고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자체가 감히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도 그저 인생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자기들이 헬라어를 조금 아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13장을 마치고 나서 14장을 보면서 마치 새로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니까 해석이 안 되고 있으면서도 그저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4: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1쪽)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하나님입니다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요한복음을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이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창조에 대한 말씀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결입니다
모든 성경은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지금13장의 말씀을 보고 14장의 말씀을 보면서 인생들은 거의 다 주님께서 마치 다른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장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말씀을 했지만 최소한 한권의 성경은 다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왜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도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리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버리면서 따라가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런 사도 베드로에게 네 목숨을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로서는 마음에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륫 유다가 주님을 팔러 나가는 것을 보고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장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그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고 그런 제자들을 다 아시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무엇인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를 만들었고 그 종교에서 교리를 세우면서 기초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에 따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14장입니다
물론 이제부터는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기초가 되는 말씀이 세워져 있어야 14장부터 말씀을 하는 성령에 대해서 바로 깨달을 수 있지만 인생들은 14장부터 새로운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생뚱맞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13장에서 주님과 제자들이 어떤 말씀을 나누었는가를 알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사도 베드로가 자기 목숨까지 버리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이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숨입니다
그것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는 다른 제자들은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근심할 수밖에 없는 말씀을 하니까 근심을 하고 있고 그런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은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로서는 너무도 당황스러운 말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과 주님을 동등하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그러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동등하시다는 것을 또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구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은 나와 하나님은 동등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제자들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이방인들은 삼위일체라는 신을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을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인생들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가장 기초가 되는 믿음의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인생들의 철학을 따라 그들의 교리로 만든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는 일을 보고 믿으면 또 나를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가 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진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입니다
누가 봐도 성령이라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의 프뉴마와 같이 히브리어의 루아흐도 숨, 바람, 영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갈하고 마른 땅 같은 이스라엘에게 시내가 흐르는 것과 같이 내 신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고 믿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인간적으로 근심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사야 말씀을 직접적으로 인용을 하시지 않았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고 그들의 믿음으로 이스라엘이 그러니까 이긴 자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전혀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제자들이 근심을 하는 것을 아시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성취입니다
믿음이 그냥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에 따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을 수 있고 그렇게 믿음으로 이긴 자를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거의 모든 인생들이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는 말씀을 보고 육적인 이스라엘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고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복을 받는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은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알고 있는 것을 아니 성령이 오시면 증거를 받는다는 것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어지는 것을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일을 누가 믿고 있습니까?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알고 있지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성령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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